# 68
68. S급 게이트(3).
여전히 지하 2층으로 가는 입구엔 지옥의 문을 지키는 켈베로스 3마리가 있었다.
그리고 지하 1층은 지금 헌터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S급 게이트가 뜬다는 소문에 피난 온 헌터들이 가득했다.
“지킬 생각은 안 하고, 헌터가 피하려고만 하다니, 지상이 밀리면 이곳이 무슨 의미가 있다고...”
내 말에 창수가 피식 웃었다.
“어차피 이곳에 오래 못 있을걸.”
“왜?”
“그냥 그럴 거 같은 생각이 들어.”
창수가 황금색 카드를 내밀자, 지하 2층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2층에 도착하자, 포탈 입구를 지키는 헌터에게 말했다.
“성주를 뵙고 싶습니다.”
“약속은 하셨습니까?”
“아니요. 물건을 사고 싶어 왔습니다. 제 이름은...”
“알고 있습니다. 성주께 기별을 넣었으니, 곧 연락이 올 겁니다.”
언제 연락을 한 거지?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그렇게 한쪽에서 기다렸다.
“성주께서 만나 시겠답니다. 저를 따라오십시오.”
사내를 따라 대리석 길을 걸었다.
한참을 걷자, 곧 뾰족하고 아름다운 은빛의 성이 나왔다.
“그럼.”
사내가 돌아가고 성문이 열렸다.
문 안쪽에서 40대 후반의 중년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환영합니다. 어서들 오십시오.”
“안녕하십니까. 최강해 성주님.”
성주가 직접 마중을 나왔다.
그것도 혼자.
“오랜만이오. 남창수 헌터.”
나도 고개를 살짝 숙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나태준이라고 합니다.”
“오! 소문으로 듣던 것보다 훨씬 평범하시오.”
“제 소문이 어떤데요?”
“피에 물든 잔혹한 도살자라고 하던데, 역시 소문은 믿을 게 못 되는가 보오.”
말투가 조금 이상했다.
마치 판타지 소설에서나 보던 말투를 자연스럽게 내뱉고 있었다.
“자, 어서 안으로.”
성 내부 역시, 은빛 광채가 번쩍였다.
“내 성이 어떻소? 엘프의 성을 그대로 옮겨 왔는데, 아쉽게도 엘프가 없네. 하하하.”
싱거운 농담.
성안엔 다른 사람은 없었다.
혼자 사는 건가?
성의 상부, 지하 헌터 시장의 전경이 보이는 응접실로 이동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성주가 창수를 칭찬했다.
“먼저 내 땅에서 레전더리 아이템을 만들 걸 축하하오.”
“보셨군요. 감사합니다.”
창수가 고개를 숙였다.
“그날 나도 빛무리를 보고 대장간으로 달려갔는데, 권왕이 있어서 그냥 왔소.”
“그랬군요.”
권왕 김득구와 사이가 좋지 않은가?
친하지 않은 건 분명했다.
아니면 아는 척을 했을 테니까.
“혹시, 그날 만들어진 아이템을 볼 수 있겠소?”
창수가 나를 바라보았다.
그 물건은 이제 내 소유였다.
인벤토리에서 갈고리를 꺼냈다.
“성주께서 보시겠다니, 보여드리지요.”
최강해는 내가 넘긴 갈고리를 이리저리 살피기 시작했다.
“오, 정말 균형이 잘 잡혔네. 갈고리 중에서 이렇게 잘 만든 건 처음이오.”
최강해의 눈빛이 반짝였다.
정말 아이템을 볼 줄 아는 걸까?
아니면 그도 도구 계열의 헌터인가?
나도 모르게 그를 살피고 있었다.
“잘 봤소.”
그가 갈고리를 돌려주었다.
“그런데, 나를 왜 찾아온 것이오?”
“성주님께 있는 아이템을 사고 싶어 왔습니다.”
“아이템? 구매자는 누구요?”
“접니다.”
내 대답에 최강해가 창수에게 향했던 몸을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그럼 구매자와 직접 이야기해야지.”
“흉포한 에이션트 마그투스의 각반을 사고 싶습니다.”
“흠. 하나밖에 없는 물건인데...”
그가 살짝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 물건 용도는 알고 있소? 잘못 사용하면, 오히려 독이 될 텐데?”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지금 당장 필요합니다.”
“미안하지만, 그 아이템을 사고 싶은 이유를 들을 수 있겠소?”
“이미 아시겠지만, 곧 S급 게이트가 발생할 겁니다. 그때 상급 괴수를 상대하기 위해 꼭 필요합니다.”
“특이하군. 다른 헌터들은 이곳으로 도망쳐오기 바쁜데, 괴수와 싸우려고 하다니. 뭐, 나 같은 장사꾼이야 돈만 맞으면 못 팔 것도 없지.”
최강해가 잠시 고민하더니 한쪽 눈을 크게 치켜뜨며 말했다.
“내가 390억에 낙찰받았으니, 800억은 받아야겠지?”
“좋습니다. 주십시오.”
“800억인데, 산다고 하셨소?”
“네.”
최강해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아, 아쉽군. 이럴 줄 알았다면 1,000억을 부를걸.”
“1,200억을 불렀어도 샀을 겁니다. 돈이야 언제든 벌 수 있지만, 목숨은 하나밖에 없으니까요.”
“그럼, 가격을 다시 정정해도 되겠소?”
“아니요. 그 물건은 이미 800억에 거래하기로 했으니, 더 드릴 순 없습니다.”
“아까워라.”
최강해가 중년인의 고독한 눈으로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돈에 연연하지 않는 것이 누구와 닮았군.”
“아닙니다.”
“아니라고?”
“전 돈 좋아합니다. 단지 돈보다 중요한 게 뭔지 알고 있는 것뿐이죠.”
최강해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허허! 아무래도 우린 자주 보게 될 것 같소. 게이트 출구에 말해둘 테니 2층 출입카드를 가져가시오.”
“감사합니다.”
내가 잘못 들었나?
게이트 출구라고?
포털을 게이트라고 잘못 말한 건가?
시간을 더 끌진 않았다.
현금 400억과 계좌에 있는 400억을 최강해에게 넘겼다.
그리고 각반을 받았다.
[흉포한 에이션트 마그투스의 각반(레전더리) - 잔뜩 흥분한 S급 괴수 에이션트 마그투스의 20톤 힘이 고스란히 담긴 물건. 다리 근력이 강화되어 폭발적인 힘을 낼 수 있다. 단, 신체적인 한계를 넘어가면 뼈와 근육이 손상될 수 있다.]
역시나 설명이 부실하다.
뼈와 근육이 손상될 뿐만 아니라 영구적으로 불구가 될 수 있고, 출혈로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고 적혀 있어야 했다.
마그투스의 각반은 유니크급이 10톤의 힘을 발휘했고, 이건 20톤의 위력을 발휘했다.
수치상으론 단순히 2배지만, 이건 엄청난 차이였다.
물론 내 다리가 버틴다면 말이다.
“창수야. 그만 가자!”
1층으로 올라가는 포털 입구에서 내 이름으로 된 황금색 출입카드를 받았다.
다음에 올 때는 기태를 꼭 한번 데려와야겠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서울역 앞쪽으로 버스와 컨테이너가 성처럼 세워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게 무슨 일인지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사람들의 대피는 크리스마스 이후에 시작될 것이다. 지금 서울 외곽의 학교와 관공서에는 피난민들을 위한 시설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창수와 집으로 올라가려는데 그에게 전화가 왔다.
밖으로 나가자, 한 남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남창수 헌터님?”
“예. 접니다.”
“장영실 길드에서 배달왔습니다. 여기 사인해 주십시오.”
지게차로 트럭 2대에서 커다란 물건을 내렸다.
“이게 뭐야?”
“한번 봐봐.”
상자를 들여다보자, 커다란 대포 같은 것이 들어있었다.
“이거?”
“지옥의 묵시록.”
“뭐?”
“마력 발칸포 이름이야.”
“이건 왜?”
“나도 헌터인데, 가만히 있을 순 없지.”
“그럼 뒤에 저건?”
“총알.”
작은 컨테이너에 총알이 가득 들어 있으니, 그 양을 가늠할 수 없었다.
장벽을 설치하고 있는 군인들을 시켜서 발칸포와 컨테이너를 서울역 광장 쪽으로 옮겼다.
그리고 김성하도 창수와 함께 전투에 참여하기 위해 마력 기관단총을 준비했다.
두 사람뿐만 아니라 다른 도구 계열의 헌터들까지 모두 괴수를 막기 위해 동원됐다.
***
12월 24일.
“모두 준비됐어?”
“오케이.”
파티원들을 데리고, 국가 헌터원을 찾았다.
오늘은 팀원들의 헌터 등급 테스트를 다시 받는 날이었다.
“잘할 수 있을까요?”
이수호가 조금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자신의 상태창에 헌터 등급이 B등급으로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혹시나 등급 테스트에서 B등급 받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하고 있었다.
“긴장만 하지 마. 실전보단 훨씬 쉬우니까.”
대답한 것은 최한별이었다.
그녀만 우리 파티원 중에서 유일하게 B등급 헌터증이 있었다.
이수호가 테스트를 받는 시간에 모두 최규환이 마련해준 회의실에 모여 있었다.
최규환은 지금 헌터 협회에서 다른 헌터들과 S급 게이트 공략에 대해서 작전을 짜고, 상의하고 있었다.
이번엔 6학년 3반 신귀족들이 거의 대부분 모이는 만큼, 확실한 성공을 자신하고 있었다.
이수호가 테스트를 끝내고 들어왔다.
“다녀왔습니다.”
“어떻게 됐어?”
“B등급입니다.”
힘없이 들어오길래 등급이 오르지 못한 것은 아닌지 걱정했었다.
다음으로 윤상희가 들어갔고, 정기용이 대기했다.
윤상희 역시 B등급 헌터가 됐고, 정기용도 가볍게 B등급을 통과했다. 그는 지금 조자룡의 능력을 70%까지 발휘할 수 있을 정도로 체력이 올라갔다.
그리고 한수진이 들어갔다.
솔직히 다른 동료들이야 걱정하지 않았지만, 수진이가 제일 걱정이었다.
“히히!”
1시간 후에 수진이가 손가락으로 승리의 V를 만들며 들어왔다.
“됐구나?”
“네.”
모두 B등급으로 올랐다.
이제 우리 팀에서 B등급 이하는 이수경과 나뿐이었다.
이수경은 다음에 테스트를 받기로 하고, 마지막으로 내가 들어갔다.
“태준 오빠는 당연히 통과하겠지?”
“그럼 그걸 말이라고 해?”
수진이의 말에 윤상희가 타박을 주었다.
“수경 언니도 다음엔 꼭 B등급이 될 거에요.”
“네.”
이수경은 현재 윤상희와 정기용이 검술 대련 상대를 해주고 있었다. 괴수를 잡는 실전이 제일 좋지만, S급 게이트가 언제 뜰지 모르는데 다른 게이트에 들어갈 수는 없었다.
잠시 후.
“헌터증이 나왔습니다. 로비로 가셔서 수령하시면 되겠네요.”
“어? 우리 팀 나태준 헌터가 아직 나오지 않았는데요?”
“아! 테스트가 조금 길어져 끝나는 대로 로비로 가시겠답니다.”
조금 불안해졌다.
나태준의 실력은 파티 중에서 최고였으니, B등급은 무난히 받을 줄 알았다.
일행은 로비에서 B등급 헌터증을 받고 기다렸다.
하지만 시간이 너무 오래 지나자, 조금은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세 시간이나 지난 후에 태준이 모습을 드러냈다. 게다가 그는 매우 초췌한 모습이었다.
“왜 이렇게 늦었어.”
“휴, 생각보다 너무 어렵네. 겨우 통과한 것 같아.”
“그래도 다행이네. 통과했다니.”
정신 계열 헌터들이 경험하고 만든 시뮬레이션이라 클래스가 특이한 태준의 괴수 배를 가르거나 살을 뚫고 뼈를 바르는 스킬은 하나도 쓸 수 없었다. 오로지 체력과 검술만으로 B등급을 따야 했기에 그에겐 어려울 수 있었다.
잠시 후 B급 헌터이자, 최규환의 오른팔인 강민수 서기관이 직접 헌터증을 가지고 왔다.
“충성! 축하드립니다. 나태준 헌터님.”
“고맙습니다.”
그는 나태준에게 경례까지 붙였다.
그런데 태준이 받아든 헌터증엔 A라는 알파뱃이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헉! 에...에이급?”
“정말?”
“이거 실화야?”
“겨우 턱걸이로 통과했어. 마지막에 A등급 괴수들이 몰려오는 바람에 너무 무리했더니 좀 피곤하네.”
레전더리 마그투스 각반의 위력까지 무리하게 선보였기에 겨우 통과할 수 있었다.
이는 헌터 역사상 가장 빠른 A등급이었다.
보통 때 같으면 방송과 신문에 대서특필되고 난리가 났을 상황인데, S급 게이트 때문에 조용히 묻혔다.
지금 언론은 이미 어느 정도 유출된 S급 게이트에 대한 정보를 정부가 감추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었다.
대피령이 떨어지는 26일부터는 더 큰 난리가 날 것이다.
***
밖은 분위기가 흉흉해도 서울역 앞 고층의 펜트하우스는 지금 축제 분위기였다.
등급 시험을 본 전원이 B등급 헌터가 됐고, 드디어 팀의 리더인 태준이 A급 헌터가 되었으니, 이는 경사도 아주 큰 경사였다.
게다가 오늘 밤은 크리스마스이브였다.
“언제 다시 이런 밤이 올지 모르니, 오늘은 좀 놀자!”
윤상희도 오랜만에 잔뜩 흥분해서 맥주 캔을 들었다.
“그래 마셔요.”
수진이가 맥주캔을 들자, 잠시 침묵에 휩싸였다.
“저 1년 꿇었다고요!”
“하긴. 마셔라.”
“와하하!”
말볼까지 물 대신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다들 기분이 좋은지 웃고 마시며 떠들었다.
하지만 태준은 아까부터 계속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최한별이 슬쩍 다가와 말했다.
“연희 언니가 전화 안 받나 보죠?”
“어? 아니 문자 보냈는데 아직 답신이 없어서.”
“이리 오라고 하셨나 봐요?”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시간 되면 펜트하우스로 오라고 했다.
게이트 공략팀은 지금쯤 계획을 짜고, 공략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이리 올 시간이 없을 것이다.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괜히 기다리게 되는 것은 어떤 마음일까.
그날 늦게 전화가 왔다.
[연희야.]
[미안해 못 가서.]
[아냐, 바쁜 거 알아.]
[나도 가고 싶었는데, 아쉽네...]
버스로 겨우 다섯 정거장, 전철로 세 정거장이면 용산역에 갈 수 있었다.
이렇게 거리가 가까운데, 가지 못하는 마음이야 어떻겠는가.
하지만 그녀는 서울을, 대한민국을, 인류를 구하는 막중한 책임을 지고 게이트로 들어가야 한다.
오늘따라 연희 어깨에 짊어지고 있는 무게감이 더욱 무겁게 느껴졌다.
내가 힘이 있었다면, 그녀 대신, 아니면 그녀와 함께 갈 수 있었을 것이다.
아직은 더 힘을 키워야 했다.
[나 오늘 A급 헌터 됐다.]
[뭐? 정말?]
연희 목소리가 밝아졌다.
[와! 정말 축하해!]
[고마워! 이번에 게이트 클리어하고 돌아오면 근사한 데서 밥 먹자. 내가 살게.]
[거기 펜트하우스도 괜찮아. 사람들도 너무 좋고.]
[아니, 우리 둘만 봐. 이거 데이트 신청이야.]
[좋아. 대신 아주 비싼 거 먹을 거야.]
남들이 들었다면 시시콜콜한 대화였을 것이다.
하지만 내게는 이 시간이 너무 소중하다.
[이연희 헌터님, 다른 헌터분들이 기다리십니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소리.
끊기 싫었지만, 그녀에겐 해야 할 일이 있었다.
[태준아 미안한데, 다음에 내가 다시 걸게.]
[알았어. 그리고 조심...]
뚜뚜뚜.
다음 게이트 공략 땐 같이 가자.
사실 그 말을 하고 싶었다.
아직은 그녀와 실력 차이가 컸지만, 그래도 방해가 되진 않을 자신은 있었다.
그리고,
‘내가 널 지켜줄게.’
이 말을 그녀에게 할 날도 머지않았다.
레전더리 각반을 사용하며 다리 힘을 키웠다.
다음날은 고요한 크리스마스였다.
그리고 드디어 내려진 대피령과 국가 헌터 총동원령.
군인들이 통제하고 있었지만,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용산구와 마포구, 중구와 동작구, 서초구, 여의도까지 대피령이 떨어졌다.
방어선은 용산구에 있었지만, 이곳이 뚫릴 수도 있었기에 그 주변의 시민들도 서울 외곽으로 대피시켰다.
연희에게 연락은 오지 않았다. 아니 받을 수 없었다.
이틀 후부터 용산구뿐만 아니라, 서울 일대가 게이트 파장으로 통화 불능이 됐다.
우리 팀은 계획대로 서울역 앞에 방어 전선에 투입됐다.
***
1월 1일.
그날따라 엄청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