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살자-71화 (71/149)

# 71

71. S급 게이트(6).

S급 게이트!

그 거대한 것을 클리어했다.

이번에도 분명 연희가 해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불안한 마음은 뭐란 말인가.

“비켜!”

촤악!

백정의 칼에 B급 괴수 줄란마의 다리가 잘렸다.

그 뒤를 이어 팀원들이 달려들었다.

얼음 창을 찌르고, 푸른 검을 휘두르고, 도끼를 찍자 줄란마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마무리로 미노타우로스 세 마리가 서리 도끼로 난도질하며 마무리했다.

이제 그들 앞에 B급 괴수는 스쳐도 죽는 괴수가 됐다.

그렇게 괴수를 죽이며 빠르게 달려왔다.

‘다 왔다!’

용산역 광장 주변에 헌터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약 백여 명의 헌터들이 넓게 펼쳐져서 하늘에서 내려오는 괴수들을 요격하고, 땅에 내려오는 즉시 달려가 도륙을 했다.

하늘에 바람의 상급 정령 실라이론 두 마리가 날아다니며 떨어지는 A급 괴수를 소용돌이 주먹으로 공격하고 있었다.

그리고.

“달빛 베기!”

촤촤촤!

검에서 뻗어 나간 검기가 점점 커지며 무려 50여 미터를 날아 하늘에서 떨어지는 괴수의 목과 사지를 베어버렸다.

A급 괴수의 몸뚱어리가 후두두 떨어졌다.

엄청난 실력의 검사에게 달려갔다.

“저, 이연희 헌터는 어디 있습니까?”

“네?”

몸을 돌린 헌터가 나를 보고는 눈을 크게 떴다.

“나태준?”

“어? 누구?”

“나야. 노병원.”

기억난다.

반에서 항상 1번을 달고 맨 앞줄에 앉아 있었던 그였다.

큰 애들에게 가끔 괴롭힘을 당했지만, 작은 체구에 강단이 있었기에 굽히지 않고, 같이 덤볐던 기억이 났다.

그를 특히 기억하는 것은 피난소에 붙었던 포스터 한 장 때문이었다.

어린아이가 날카로운 검 한 자루를 들고, E급 괴수의 머리를 들고 있었고, 그 뒤로 군인들이 따르던 포스터였다. 이것은 병력이 부족해 사람들을 전장으로 이끌기 위한 수단이었다.

노병원은 지금도 키는 작았다.

“반가워.”

“최규환에게 들었어. 엄청나게 빠른 성장을 하고 있다며.”

“규환이에게?”

“나도 국가 헌터원 소속이야.”

“아! 저기, 연희 어디 있는지 알아?”

“글쎄, 그쪽 팀하고는 헤어져서 잘 모르는데 규환이에게 물어봐.”

“규환이 어디 있지?”

노병원이 반쯤 무너진 용산역 위를 가리켰다.

“저기 바람의 정령을 부리는 놈이야.”

“어, 알았어. 나중에 보자.”

내가 용산역을 향해 달려가자, 뒤를 이어 팀원들이 달려왔다.

최규환이 달려오는 나를 봤다.

그런데 7층 높이에서 갑자기 뛰어내렸다.

그가 몸을 날렸고, 머리부터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 모습이 꼭 추락하는 것 같아, 심장이 뛰었다.

부앙!

떨어지던 그의 손끝에서 큰바람이 불더니, 작은 정령들이 나타나 그를 붙잡았다.

그리고 서서히 땅에 내려놓았다.

상급 정령 둘을 부리고, 작은 놈들까지 한번에 소환했다.

‘저 녀석이 원래 이렇게 강했나?’

그리고 그는 물의 정령을 잘 다뤘는데, 이젠 바람의 정령까지?

“나태준, 무사했구나.”

나와 팀원들이 최규환에게 다가갔다.

“어떻게 된 거야?”

“나 S급 헌터 됐다.”

“뭐?”

그러고 보니 방금 만난 노병원의 실력도 A급 같지 않았다.

공중에서 떨어지는 A급 괴수를 검기만으로 도륙을 냈으니, 그도 S급의 실력이었다.

“연희는? 연희는 어딨어?”

“아, 보스 공략팀은 아직이야. 우린 게이트 클리어 알람이 뜨자마자 나왔고, 그쪽 팀도 조만간 나올 거야.”

“따로 움직인 거야?”

“그래, 우리는 클리어 알람이 뜨면, 곧바로 나와서 게이트 밖으로 나간 괴수들을 잡기로 했어. 이곳의 사정이 더 급했잖아.”

“게이트 소멸 시간은?”

“24시간이야. 이제 한 22시간 남았을걸.”

최규환이 소리쳤다.

“거기 조심해!”

그가 손을 뻗자, 바람의 상급 정령 두 마리가 날아가 한수진의 위로 떨어지는 A급 괴수의 목을 뚫어버렸다.

“헉헉! 고맙습니다.”

수진이가 다가와 최규환에게 고개를 숙였다.

“서울역에 있으라니까.”

“궁금해서 견딜 수가 있어야죠.”

“알았어. 우리도 이곳에서 자리를 잡고 떨어지는 괴수를 잡는다.”

“네!”

최규환을 중심으로 자리를 잡고, 하늘에서 떨어지는 괴수를 사냥하기 시작했다.

“저놈들 왜 이렇게 많이 떨어지는 거야?”

“말도 말아. 여긴 지름이 1킬로미터지, 그 안에는 이것보다 몇 배나 커.”

“그 정도야?”

이상한 일이었다.

그동안 B급 게이트까지 여러 개의 게이트를 가봤지만, 입구와 출구 크기가 다른 게이트는 보지 못했다.

“저건 평범한 게이트가 아니야. 우리가 세 팀으로 나눠, 게이트 입구 주변에 베이스 캠프를 치고 막았지만, 몰려오는 놈들이 워낙 많고 지킬 곳이 많아서 밖으로 나가는 놈들을 막을 수가 없었어.”

최규환의 말대로 저건 평범한 게이트는 아니었다.

처음본 S급 게이트는 기존 헌터들에게도 미스터리한 존재였다.

“그리고 저 게이트 안에서 사냥하면 경험치가 2배 이상이야.”

“경험치를 더 준다고?”

“그래 나도 처음엔 몰랐는데, S급 헌터가 되고 나서야 깨달았지. 그리고 함께 들어간 대부분의 A급 헌터들이 S급 헌터가 됐어. 그리고 S급 헌터들은 SS급이 됐고.”

“연희도 그럼?”

“물론, 가장 처음으로 SS급이 됐지.”

역시 연희는 누구보다 강했다.

최규환의 바람 정령들은 그가 따로 명령을 내리지 않았어도 떨어지는 괴수들을 공격했고, 팀원들이 달려들어 마무리했다.

이제 겨우 A급이 됐는데, 연희는 한 걸음 더 달아났다.

자신이 S급이 돼도 연희와는 차이가 벌어졌다.

조금씩 하늘에서 떨어지는 괴수 숫자가 줄고 있었다.

“괜찮을까?”

“누구 보스 공략팀?”

최규환이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쪽에 SS급과 S급 헌터들이 득실거려, 다들 살아 있을 거야.”

연희가 SS급이 됐다는 소리에 그래도 조금은 안심이 됐다.

한강 이남에 있던 대한민국 3대 길드원들도 괴수들을 처단하고 용산역 앞으로 몰려왔고, 마포와 한남동 쪽에 있던 헌터들도 괴수를 죽이면서 전진해 용산역에 모였다.

그리고 전투에 참여하지 않은 얌체 헌터들까지 모여들어, 용산역 광장엔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모인 수많은 헌터가 집결했다.

‘왜 이렇게 나오지 않는 거지?’

초조했다.

식사도 하지 않고, 연희와 헌터 협회 소속 헌터들이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뭔가 답답한 마음이 심장을 짓눌렀다.

“대장, 너무 걱정하지 마! 연희씨가 누구야. 금방 나올 거야.”

윤상희가 옆에서 어깨를 살짝 두드렸다.

“그렇겠죠.”

연희는 강하니까.

헌터들이 폭죽놀이를 구경하는 좀비처럼 게이트만을 뚫어지게 올려다보고 있었다.

“이거 너무 안 나오는데...”

S급 게이트에서 먼저 나온 헌터들도 시계를 보며 슬슬 초조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최규환의 표정은 왠지 좋아 보였다.

이대로 헌터 협회 헌터들이 나오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국가 헌터원의 세상이 될 테니까.

최규환과 함께 하는 6학년 3반 신귀족들은 모두 4명, 한명은 이번에 SS급이 됐고 나머진 S급이 됐다. 그 외에도 A급 헌터들이 있었지만, 주력은 역시 신귀족 출신들이었다. 그들이 이번에 S급 게이트를 클리어하면서 모두 등급이 올랐으니, 이대로 게이트가 닫힌다면, 그들 세상이 될 것이다.

게이트가 점점 흐려지기 시작했다.

이건 소멸 직전의 전조 증상이었다.

그때였다.

“저기 나온다!”

“와! 드래곤이다!”

“역시 백색의 마녀 최민지다!”

온통 푸른빛의 드래곤 한 마리가 등에 헌터들을 잔뜩 태우고, 내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백색의 드래곤이 또다시 모습을 보였다.

둘 다 SS급이 된 최민지의 소환수였다.

S급일 때는 백색의 화이트 드래곤 한 마리를 소환했는데, 지금은 백색의 드래곤보다 조금 큰 블루 드래곤까지 추가로 소환했다.

부웅! 부웅!

두 마리의 거대한 드래곤이 용산역 광장에 내려앉았다.

모여 있던 헌터들은 자리를 비켜주었고, 헌터 협회 주축 헌터들이 드래곤의 등에서 내렸다.

“와! 만세!”

“서울을 구했다!”

“대한민국을 구했다!”

엄청난 헌터들의 환호성이 들렸다.

그들은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동경하던 진짜 영웅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없다?

연희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재수 없는 김상국도, 백색의 마녀 최민지도, 암살의 대가 도경수도, 헌터 협회 이사면서 불법 게이트 회사를 운영하는 이태성까지 모두 있었다. 그런데 연희가 없다.

최민지에게 달려갔다.

“연희는? 연희는 어디있지?”

최민지가 나를 보자,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나태준, 오랜만이네.”

“연희는 어디 있냐니까?”

“죽었어.”

“뭐?”

“안타깝게도 보스를 거의 죽이고 마지막 일격에 당했어.”

“그...그럴 리가 없어.”

옆에 있던 김상국에게 달려갔다.

“김상국, 연희는?”

김상국 역시 연희의 이름을 듣자, 인상을 확 구겼다.

“나도 몰라 민지가 마지막까지 함께 있었으니까. 최민지에게 물어봐.”

김상국은 곧바로 자리를 피했다.

그는 자신의 신화 길드원들이 모여 있는 자리로 가더니 손을 번쩍 들었다.

대한민국 1위 길드인 신화 길드원 수천 명이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팀원들이 다가왔다.

“조금만 더 기다려봐. 아직 게이트가 소멸한 건 아니잖아.”

“맞아. 곧 나올거야.”

다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칠흑 같았던 게이트가 점점 연해지기 시작했다.

다른 게이트처럼 한꺼번에 사라지지 않았다.

그때였다.

하늘에서 검은 그림자 하나가 떨어졌다.

“누가 나왔다!”

“오!”

200미터 상공에서 떨어진 헌터는 무서운 속도로 아래로 추락했다.

“비켜!”

아래로 떨어지던 헌터가 소리쳤다.

그리고 주먹을 아래로 뻗었다.

파파파파팡!

엄청난 권풍이 밀려오더니, 남아 있는 용산역 절반을 흔적없이 부숴버렸다.

그리고 그는 아래에 사뿐히 착지했다.

“권왕이다!”

“권왕 김득구다!”

잠시 그를 잊고 있었다.

권왕 김득구.

그가 홀로 게이트에서 나온 것이다.

그를 향해 달려갔다.

그라면 연희에 대해서 뭔가 알고 있을 것이다.

헌터들이 김득구를 향해 몰려들었다.

“와아아아! 권왕 만세!”

“우리의 영웅들 만세!”

권왕의 귀환을 축하하며 헌터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그들은 아직 이연희가 귀환하지 않은 것을 알지 못했다.

“김득구!”

내 목소리를 들었는가.

김득구가 내게 다가왔다.

“나태준, 너도 무사했구나.”

“연희는 연희는 어떻게 됐어.”

“그, 그게.”

그때였다.

헌터들이 일제히 소리쳤다.

“게이트가 사라졌다!”

“와아아아아!”

엄청난 함성이 용산역 일대에 울려 퍼졌다.

다들 살아남았다는 감격과 S급 게이트를 클리어했다는 기쁨에 소리를 질렀다.

“일단 조용한 곳으로 가자!”

김득구가 나를 데리고 모여 있던 수많은 헌터들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그 모습을 최민지와 신귀족들이 보고 있었다.

귀...귀가 멍하다.

엄청난 함성이 들리지 않았다.

머리가 띵하고, 누군가 심장을 칼로 저미는 것처럼 가슴이 아리고 쓰리다.

아니겠지... 아닐 거야.

연희가 어떤 아이인데, 죽을 리가 없어.

하지만 게이트에서 나오지 못했는데, 그럼 다시 볼 수 없다는 뜻이 아닌가.

“으윽!”

“형! 괜찮아?”

이수호가 나를 부축했다.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지난 수십을 동안 괴수를 잡으며 체력이 다 소진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가슴이 뻥 뚫린 듯 허무하고, 손발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연희가 그럴 리가 없어...”

내가 뱉은 한 마디에 팀원들의 표정이 심각하다.

김득구와 팀원들은 수많은 헌터들을 뚫고, 나를 부축해 서울역까지 걸어왔다.

서울역 부근엔 군인들과 집을 떠나있었던 피난민 수천 명이 몰려 있었다.

“와! 저기 헌터들이 온다!”

“대한민국 헌터 만세!”

“고마워요!”

사람들이 우리를 보며 환호했다.

우린 괴수로부터 자신들을 지켜준 고마운 존재가 아닌가.

하지만 아무리 큰 함성도 힘이 나지 않았다.

윤상희는 아이들을 데리려 수유리로 향했고, 나와 다른 팀원들은 우리 때문에 기스하나 없이 멀쩡한 펜트하우스로 올라갔다.

***

머리가 멍한 나는 잠시 기절했던 거 같았다.

눈을 뜨자, 김득구가 팀원들에게 뭔가를 설명하고 있었다.

몸을 일으켰다.

“연희가 죽었어...”

내 힘없는 목소리에 김득구가 발끈했다.

“누가 그래?”

“최민지.”

“아니야, 나도 처음엔 그렇게 믿었어. 그런데 드래곤을 타고 나오는데 저 끝에서 연희가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어.”

“그게 무슨 말이야. 연희가 달려왔다고?”

“그래, 분명히 보았지. 그래서 나는 드래곤에서 뛰어내려 게이트 입구에서 연희를 기다렸어.”

권왕, 김득구.

그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연희를 위해 게이트가 소멸하는 것을 보고도 밖으로 나가지 않고 입구에서 그녀를 기다렸다.

그런데 게이트가 소멸하는 것을 알기라도 한 것처럼 수많은 괴수가 게이트로 향하는 연희에게 달려들었다.

아무리 SS급 헌터라도 S등급 괴수와 A등급 괴수가 떼로 덤비는데, 무시하고 달려올 순 없었다.

“연희는 끝까지 괴수를 죽이며 게이트로 달려왔어.”

다들 내가 잠시 기절하듯 잠든 사이에 이미 김득구에서 들은 이야기였지만, 긴장한 표정으로 듣고 있었다.

“그런데 게이트가 흐려지는 거야. 이젠 나도 더는 버틸 수 없었지. 게이트가 소멸하면 나도 영원히 갇히게 되니까. 그래서 게이트 밖으로 나가려고 발을 뗄 때였어.”

김득구가 침을 꿀떡 삼켰다.

그때 문이 열리며, 윤상희가 주혁이와 기태를 데리고 들어왔다.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오자 기분이 좋은지 웃고 떠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 분위기를 보더니 윤상희가 아이들을 조용히 시켰다.

“그래서 어떻게 됐다는 거야?”

“연희가 갑자기 허공에 손을 뻗는 거야. 그런데 그 허공에 붉은색 게이트가, 아니 포탈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게 뜬 거야.”

“뭐? 포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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