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살자-72화 (72/149)

# 72

72. 거래(1).

“끝까지 들어봐봐. 그 붉은색 포탈이 생기자, 연희가 그 속으로 몸을 던졌어. 그리곤 감쪽같이 사라졌지. 나도 그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고는 그냥 게이트 밖으로 몸을 던진 거야.”

갑자기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김득구가 하는 말이 뭔지 알아듣지 못하겠다.

그 순간 그가 설명한 포털을 본 기억이 떠올랐다.

“그 포탈이란 거? 지하 헌터 시장의 그걸 말하는 거야?”

“맞아, 맞아! 색깔만 틀렸지 똑같았어.”

“연희가 포탈을 만들었다?”

자신도 지하 헌터 시장에서 직접 눈으로 봤기에 알고 있었지, 그냥 들었다면 믿지 못했을 것이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아마 게이트 클리어 보상 때문일 거야.”

김득구가 또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보상이라니?”

“아! 말 안 해줬구나! S급 게이트 클리어 보상으로 신급 아이템이 나왔어.”

“신급?”

“그래, 레전더리급 아이템이 여태까지 최고 좋을 줄 알았는데, 갑자기 클리어 알람이 울리더니 보상으로 신급 아이템이 뜬 거야.”

“그게 뭐였는데? 연희가 포탈을 만든 거와 상관있어?”

“아마 그럴 거야. 보상으로 게이트 반지가 나왔거든.”

“게이트 반지?”

처음 들어본 반지였다.

그 순간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창수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

‘뭔가 알고 있는 건가?’

그때 최한별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휴, 그럼 포탈을 만들어 그리 피했다는 말인가요?”

“그렇지 않을까?”

“그럼 뭐해요. 이미 게이트가 소멸했는데.”

그녀가 현실을 일깨워줬다.

한번 소멸한 게이트는 다시 뜨지 않는다.

한마디로 연희는 다시는 이곳으로 돌아올 수 없다는 말이었다.

또다시 심장이 아려온다.

“아닌데!”

갑자기 기태가 소리쳤다.

“아닌데! 아닌데!”

윤상희가 기태를 조용히 시키려고 했다.

하지만 기태는 내게 다가와 말했다.

“게이트 사라진 거 아닌데!”

“뭐?”

모두 기태를 바라보았다.

“기태야. 그게 무슨 말이니?”

“저기 있는 게이트 사라진 거 아닌데, 그대로 있는데.”

윤상희가 다가왔다.

“기태야. 그 게이트는 이제 사라졌어. 그럼 용산역 쪽에 또 다른 S급 게이트가 뜬다는 거니?”

“아닌데. 게이트 파장이 똑같은데!”

다들 눈동자가 흔들렸다.

기태에게 다급히 물었다.

“그럼 같은 게이트란 말이야?”

“같은 게이트인데! 더, 더 커지고 있는데.”

“뭐야?”

그 순간 다른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같은 게이트란 말에 가슴속에 한 줄기 희망이 비췄다.

그리고 당황한 정기용이 물었다.

“S급 게이트가 더 커지고 있단 말이야?”

“맞는데, 더 커지기 시작했는데!”

잔뜩 흥분한 기태를 윤상희가 말렸다.

“기태야 잠깐 쉬어, 무슨 말인지 알았어. 엄마가 안 믿어줬지.”

“난 거짓말 안 하는데!”

“그래그래, 엄마가 미안해.”

기태는 흥분하면 말을 제대로 못 했다.

다행히 윤상희가 안아주자, 다시 얌전해졌다.

“태준아. 이 아이가 누구야?”

김득구가 잔뜩 흥분한 얼굴로 물었다.

“용산역 상공에 S급 게이트가 발생한다고 우리에게 알려준 아이야.”

“허, 정말?”

김득구에게 기태의 존재에 대해 말해줬다.

그러자 그가 두 눈을 똥그랗게 뜨며, 흥분했다.

“게이트가 더 커지고 있다니, 그럼 곧 SS등급 게이트가? 헉!”

너무 놀라 턱을 다물지 못했다.

S급 게이트를 클리어하는데 처음보다 조금 더 많은 230여 명의 헌터가 들어갔다. 그리고 게이트 밖으로 나온 것은 150명이 조금 넘었다. 그럼 80여 명은 게이트에서 죽은 것이다.

A급 헌터 80여 명이 죽었다.

이는 국가적으로도 엄청난 손해였다.

하지만 들어간 헌터들이 대부분 한 등급씩 올랐기에 전체적인 힘은 몇 배나 더 커진 것이다.

“그럼 SS급 게이트가 언제 다시 열린다는 거야?”

“그건 아직 아무도 몰라. 기태도 게이트가 열리기 일주일 전쯤에 알았어.”

“바로 열릴 수도 있고, 한참 지나서 열릴 수도 있다는 말이야?”

“그래 S등급 게이트가 생기고 커지는 것을 기태는 3년 전부터 알고 있었다. 물론 예언가는 그보다 훨씬 전에 예언했지만...”

안정을 찾은 기태가 말했다.

“S급 게이트가 생성된 파장의 크기와 세기, 그리고 지금 커지는 속도를 봐서는 SS등급으로 완전히 커지려면 2년 정도 걸릴 것 같아요.”

“2년?”

“네. 정확한 수치는 아닌데, 그 정도 되면 지름이 10킬로미터 정도로 커질 거고, 게이트가 폭발을 하기 위해 응축할 거에요. 물론 도중에 커지는 속도가 지금보다 빨라지면, 기간은 줄어들 수도 있어요.”

기태의 설명을 들은 김득구는 고개를 흔들었다.

“허! 정말 놀랄 노자로군. 이런 아이가 있다는 게 알려지면, 다들 눈독을 들일 거야.”

“김득구 넌?”

“나야 강해지는 것 말고는 관심이 없어서...”

그가 고개를 돌려 창수를 바라보았다.

“창수야, 조금 더 강한 아이템이 필요한데 말이지.”

하지만 창수는 아예 고개를 돌렸다.

김득구가 창수 옆으로 가서 계속 조르고 있었다.

그때.

최규환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하지만 받지 않았다.

내게는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내가 밖으로 나가려 하자, 창수가 물었다.

“어딜 가게?”

“지하 헌터 시장에.”

“뭐? 지금 차도 안 다닐 텐데.”

“괜찮아. 금방 다녀올게.”

밖으로 나갔다.

벌써 복구를 위해서 군대와 건설 장비가 용산역 인근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피난민들은 아직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고, 거리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차 편이 없었기에 그냥 달렸다.

다리가 회복되지 않아 끊어질 것같이 아팠고, 숨이 턱까지 찼지만 쉬지 않았다.

그렇게 강남역에 도착했다.

하지만 포털을 안내하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나처럼 포털을 찾는 폐인 헌터들이 주변에 가득했다.

“이봐, 왜 안내자가 없지?”

약에 취한 것인지 술에 취한 것인지 구석에서 비틀거리는 헌터를 붙잡고 물었다.

“어? 나도 몰라, 술 자알... 마시고 있었는데 갑자기 곧 밖으로 튕겼어.”

다른 헌터들에게도 포털에 대해 물었지만, 다들 모른다는 답변뿐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오늘 튕긴 것이 아니었다.

S급 게이트가 뜬 날, 지하 헌터 시장 1층에 있던 헌터들이 모두 밖으로 튕겼다고 했다.

“나태준 헌터님.”

“누군가 다가왔다.”

“당신은?”

그는 2층 포털 입구에 있던 최강해 성주의 부하였다.

“저 성주님을 만나고 싶습니다.”

그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그것이 지금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머지않아 포털이 다시 열릴 테니, 그때까지 기다려 주십시오.”

“무슨 일이 있는 겁니까?”

“그건 아닙니다. 대한민국의 헌터들이 S급 게이트를 클리어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1층을 폐쇄하고 그들을 모두 밖으로 내쫓은 겁니다. 다만 다시 만들려면 시간과 재료가 필요하기 때문에 시간이 필요한 것뿐입니다.”

“오래 걸릴까요?”

“최소한 서너 달은 필요할 겁니다.”

입술을 깨물었다.

연희가 게이트 안에서 들어갔다는 붉은 포탈에 관해서 묻고 싶었다.

그 포탈이 이곳처럼 다른 공간으로 갈 수 있거나 여는 용도라면, 연희가 생존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연희가 그곳에서 살아만 있다면 2년 후에 자신이 SS급 게이트로 들어가서 그녀를 구할 수 있을 것이다.

“황금 출입증을 가진 분들에게는 포털이 생기면 바로 연락을 드릴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기다리죠.”

이번엔 자신도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연희가 살아있다는 희망이 있었으니, 구할 가능성이 생긴 셈이었다.

그리고 그 전에 처리할 일이 있었다.

곧바로 헌터 협회를 찾아갔다.

***

[용산 헌터 협회]

이곳도 아수라장이나 마찬가지였다.

괴수가 안으로 들어왔었는지 녹색 피와 종류를 알 수 없는 괴수들의 살덩이가 여기저기 붙어 있었고, 직원들과 군인들이 물을 뿌리며 치우고 있었다.

“아 글쎄. 지금 여기 꼴을 보십시오. 그리고 최민지 이사님은 안 계시다니까요.”

“급한 일입니다.”

정문 로비에서 경비가 나를 밀어냈다.

일반인이었기에 힘을 쓰진 않았지만, 물러설 순 없었다.

“그럼 연락처라도 주십시오.”

“아니, 우리 같은 직원이 어떻게 이사님 연락처를 알겠습니까.”

최민지가 왜 연희를 죽었다고 했는지 직접 듣고 싶었다.

만약 버리고 온 것이나 비겁한 짓을 한 거라면 절대 용서할 수 없었다.

“허허! 글쎄, 모른다니까요.”

“태준아.”

누군가 나를 불렀다.

헌터 협회 이사이자, 불법 게이트 중개 회사를 운영하는 이태성이었다.

“이태성, 잘 만났다. 최민지 지금 어디 있냐?”

“민지는 왜?”

“연희 일로 물어볼 게 있어.”

“연희 일?”

이태성이 주변을 한번 둘러보더니 말했다.

“잠깐, 나가자.”

“최민지는?”

“글쎄, 나가자니까.”

이태성과 밖으로 나갔다.

용산역 뒤쪽에 있는 8층짜리 건물로 들어갔다.

이곳은 이태성이 소유한 거상 길드의 건물이었다.

맨 꼭대기 층에 있는 이태성의 사무실로 들어갔어.

“거기 앉아봐.”

소파에 앉자 이태성이 맞은 편에 앉았다.

“최민지를 찾아서 뭘 하려고?”

“나한테 연희가 죽었다고 했어. 하지만 김득구가 게이트를 나설 때까지 연희는 살아 있다고 했어. 왜 거짓말을 했는지 알아야겠어.”

“그때 상황은 나도 좀 알아.”

이태성이 설명했다.

보스 공략팀은 헌터 협회 헌터들을 중심으로 국내와 일본이나 중국 등 해외에서 온 S급 헌터들이 합쳐져 40명이 조금 넘었다.

SS급 보스가 있는 신전의 미로 같은 동굴에 도착해 보스 공략팀 인원이 둘로 갈라졌다고 했다.

평소 같았으면 절대 하지 못할 행동이었다.

SS급 괴수는 상대해 본 적도 없었고, 무지하게 강할 테니까.

하지만 헌터들은 이곳에 들어와서 몇 날 며칠 동안 수많은 괴수를 잡았고, 경험치도 배 이상 올랐기에 다들 헌터 등급이 올라있었다.

특히 S급 헌터들이 모두 SS급이 되자, 그 자신감은 하늘을 찔렀다.

“먼저 연희가 이끄는 우리 팀이 SS급 괴수를 만났어. 아주 무시무시한 놈이었지.”

S급 이상의 헌터 20여 명이 괴수와 싸웠다.

하지만 놈은 너무 강했다고 했다.

놈의 공격을 정면으로 받을 수 있는 것은 연희와 몇몇 SS급 헌터들 뿐이었다.

그들은 돌아가면서 괴수를 공략했고, 하루가 넘도록 싸웠다.

하지만 놈을 죽이진 못하고, 서로 상처를 입기 시작했다.

그때 최민지가 이끄는 다른 팀이 도착했고, 전투는 헌터들 쪽으로 흘렀다.

다시 하루가 지냈고, 연희가 SS급 괴수의 목에 치명타를 날리며 사냥이 끝나감을 느꼈다고 했다.

그때 괴수가 마지막으로 발버둥 치면서 지하 신전이 무너지기 시작했고, 지하 동굴도 안쪽에서부터 차례로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이곳은 지하 수백 미터 아래에 있는 곳이었기에 잘못하면 고립될 수도 있었고, 게이트가 클리어되기 전에 나가지 못할 수가 있었다.

그때 연희가 외쳤다.

“다들 탈출해! 연희의 그 소리를 듣고는 S급 헌터들이 먼저 밖으로 나갔고, 몇몇 SS급 헌터들만 남았어.”

다들 무너지는 신전을 뛰쳐나가고 있을 때 게이트 클리어 알람이 울렸고, SS급 헌터들도 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시간이나 달려서 미로 같은 동굴을 빠져나왔을 때, 연희와 몇 명의 헌터들은 나오지 못했다.

“그래서 우린 연희가 죽은 줄로만 알고 있었어. 그리고 최민지와 도경수가 연희의 마지막을 봤는데 SS급 괴수와 동귀어진을 했다고 했어. 그리고 그녀와 괴수 몸 위로 신전의 기둥이 쓰러졌고, 엄청난 양의 토사와 바위가 쏟아져 내려서 시체도 가져오지 못했다고 했는데.”

최민지와 도경수만이 그 마지막 모습을 봤고, 다른 헌터들은 먼저 달아나는 상황이라 보지 못했다고 했다. 연희가 당했다는 게 뭔가 의심스러웠지만, 본 사람이 두 사람밖에 없으니 믿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민지의 드래곤을 타고 게이트 밖으로 나가는데, 득구가 연희가 온다고 소리친 거야. 사실 나도 끝자리에 앉아 있어서 살짝 봤는데, 그게 연희 인지는 확인할 시간이 없었어. 게이트가 소멸하고 있었거든.”

연희의 마지막 행적을 자세히 본 것은 김득구밖에 없었다.

다른 헌터들은 그녀가 진짜 죽었는지 살았는지 몰랐고, 단지 게이트 밖으로 나오지 못한 것만은 확실히 알고 있었다.

“그러니 네가 최민지를 만나도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순 없을 거야. 괜히 사이만 틀어지고 헌터 협회와 척이나 지겠지.”

말을 한 이태성 역시 최민지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땐 조심스러웠다.

태준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지금 헌터 협회에서 힘이 가장 센 것이 누구지?”

“뭐?”

갑작스러운 질문에 이태성이 당황했다.

하지만 곧 장사꾼의 침착한 표정으로 변하며 대답했다.

“알다시피 개인의 힘으론 최민지가 가장 세지. 두 마리 드래곤은 연희라면 모를까 누구도 대적하기 힘들지. 그리고 그녀가 거느린 드래곤 길드도 만만치 않고.”

예상대로 연희 다음으로 강하다는 평가를 받은 최민지가 헌터 협회에 큰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세력은 김상국의 신화 길드의 세력이 제일 커. 대한민국, 아니지 지금은 세계 최대 규모의 길드이기도 하고, 우리 동창인 S급 헌터들이 가장 많이 포진되어 있고.

마지막으로 SS급 헌터가 가장 많은 것은 도경수 쪽이야, 물론 그가 소유한 하세신 길드도 무시할 순 없고. 지금 현재로써는 그 셋이 헌터 협회의 주축이라고 할 수 있지.”

“그럼 너는?”

“나?”

이태성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나는 그들 다음이고.”

“그 세 명의 하수인은 아니란 말이군.”

“솔직히 나야 어디 붙을지 모르지, 유리한 쪽으로 붙거나 아니면 누구든지 밟고 올라설 수도 있겠지.”

그가 음침한 웃음을 보였다.

“우리 거래 하나 하자.”

“거래?”

거래를 제안한 태준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도 무섭게 변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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