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살자-74화 (74/149)

# 74

74. 거래(3).

태준이 나가자, 이태성의 오른팔 강남길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괜찮을까요?”

“뭐가?”

“이번에 공략하는 A급 게이트면 우리와 살라딘 길드가 주축이 되어 들어가는 진부령 게이트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까?”

“맞아.”

“저쪽에선 김상엽이 대표로 나올 텐데요.”

이태성이 웃었다.

“그렇겠지.”

“나태준이 날뛰면 김상엽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아까는 나태준을 써먹어야 한다면서?”

“하지만 김상엽은 만만한 놈이 아니지 않습니까?”

“물론이야. 하지만 그 정도는 돼야 사냥개가 잘 훈련되어 있는지 확인할 것이 아닌가.”

첫 번째 사냥감이 거물이었다.

강남길이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그런데 나태준이 우리와 함께 움직이려 할까요? 제 명령을 듣지 않을 가능성이 클 텐데요.”

“하하, 자넨 옆에서 조용히 지원만 하고, 그가 무슨 일을 하든 상관하지 마. 사냥개가 살라딘 길드에게 잡아 먹히더라도 모른 척하고.”

“하지만 너무 아깝지 않습니까. 놈이 먹은 게이트가 몇 갠데...”

“후후후. 너는 그놈을 아직 몰라, 절대 쉽게 당할 놈이 아니야. 그리고 이번 일이 성공하면, 전쟁을 준비해 살라딘을 접수한다.”

“네?”

강남길이 매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임영호 이사를 친다고요?”

그가 매우 놀랄 수밖에 없었다.

임영호는 헌터 협회 이사이자, 신귀족이었고, 대한민국 7위 길드인 살라딘 길드의 길드장이었다.

***

헌터 협회!

겉에서 보기엔 철옹성처럼 보였다.

현재 그곳에 주인은 초등학교 6학년 3반에서 시작된 전설적인 영웅담의 주인공들.

게이트가 생겨났을 때부터 다들 똘똘 힘을 모아 괴수를 처단하고, 지금은 게이트를 공략하는 세계 최고의 헌터 집단이 되었다.

그 완벽한 헌터 협회도 단점이 있었다.

<절대 군주가 없다!!>

그것은 여러 세력으로 나뉘어 있다는 말이었다.

큰 세력이 3개, 중간 세력이 여러 개, 작고 소수로 움직이는 헌터들까지 그들은 전부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해 움직인다.

외부의 위협에는 강력한 공동 대응 체제가 있었지만, 내부는 그야말로 약육강식의 세계이자, 욕망과 배신,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만연한 그야말로 혼돈의 세상이었다.

헌터 협회가 그래도 하나로 뭉쳐 있었을 때가 있었다.

김대환 헌터 협회 회장이 장기 집권하고 있었고, 귀족들이 그를 지지했을 때였다.

그는 대한민국 최초로 헌터들과 정·재계, 군대의 유력 인사들을 모아 괴수에 대항하기 위해 헌터 협회를 만들었다.

자신 역시 헌터였기에 헌터들의 힘을 잘 알고 있었고, 그들을 뒤에서 물씬 양면으로 지원했다. 그리고 기존 권력자들의 힘을 조금씩 헌터 협회로 흡수하고, 이양받으면서 그 몸집을 불렀다.

그렇게 10년 만에 대한민국, 아니 세계 누구라도 건들지 못하는 초거대 공룡 협회를 만든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6학년 3반 어린 사냥개들이 있었다.

시키면 시키는 데로 움직이고, 물라면 물어뜯고, 죽이라면 죽이는 진정한 사냥개.

그들을 키우기 위해 초기에 헌터들의 숫자가 급격히 줄어드는 큰 피해를 감수해야 했다.

하지만 그 값어치를 충분히 했다.

등급 높은 헌터 하나가 100명의 낮은 등급의 헌터들보다 나았다.

그리고 사정을 모르는 헌터들은 어린 영웅들을 중심으로 더욱 뭉쳤고, 사람들 역시 괴수에 대항해 싸웠고, 5년 만에 이땅에서 괴수를 몰아내고 게이트를 공략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제 인류의 구원자들이었고, 사람들은 그들을 지지하고 갖은 편의와 특권을 그들에게 주었다.

그렇게 그들만의 세상은 완벽히 만들어졌고, 그것이 오래도록 지속할지 알았다.

그런데 일이 생겼다.

사냥개가 점점 말을 듣지 않았다.

물라고 했더니, 주인을 향해 으르렁거렸고, 괴수를 잡으라고 했더니 게으름을 피웠다.

게다가 몽둥이로 버릇을 고치려고 했더니, 덩치가 너무 커져 버렸다.

주인들은 두려움을 느꼈다.

자신이 키운 사냥개가 자신을 물까 봐.

자신이 죽이라고 했던 자들처럼 자신들도 죽을까 봐.

그날!

주인들은 사냥개를 잡으려다 처참하게 물려 죽었다.

그리고 주인이 사라진 세상에 사냥개는 주인의 자리를 물려받았다.

그런데 사냥개의 크기와 능력이 전부 제각각이었고, 숫자가 너무 많았다.

스물아홉 명.

몇 명이 죽었고, 6학년 3반의 생존 헌터는 스물아홉 명이었다.

누가 헌터 협회를 장악할 것인지, 그들은 보이지 않는 치열한 싸움을 시작했다.

그때 가장 빨리 움직인 것이 이철용과 지금의 3대 세력이었다.

이철용은 자신과 자신을 따르는 네 명의 헌터를 중심으로 가장 첫 번째로 치고 나갔다.

헌터 협회장에 스스로 앉았고, 그 당시 가장 큰 세력인 보라매 길드를 흡수했다.

하지만 모난 돌이 정을 맞는다고 했던가.

그의 독주는 다른 신귀족들이 연합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3대 세력의 주축인 최민지, 김상국, 도경수가 각기 다른 헌터 길드를 흡수하면서 커졌고, 연합하여 보라매 길드를 밀어냈다.

그때 큰 타격을 입은 보라매 길드는 헌터 협회를 떠났고, 국가 헌터원과 연합했다.

쫓겨났지만 이철용과 신귀족들이 합류한 국가 헌터원은 그 이후로 잔존한 귀족들을 포섭하고, 대괴수 부대를 장악하면서 헌터 협회와 어느 정도 힘의 균형을 맞췄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섯이 남은 스물넷을 상대할 순 없었다.

그리고 그땐 이미 헌터 협회는 수많은 헌터들을 거느리고 있었기에 규모 면에서 상대가 되지 않았다.

결국, 지금은 헌터 협회가 국가 헌터원보다 2배 이상의 규모였다.

하지만 최근 국가 헌터원의 이미지가 많이 바뀌면서 새로운 헌터들의 유입이 늘었고, 헌터 협회처럼 세력이 여럿으로 나뉘지 않았기에 그 격차가 다시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다.

‘놈들은 괴수와 같아! 겉에선 단단하고 뚫지 못할 철옹성 같지만, 내부에서 공략한다면 쓰러트리지 못할 것도 없지.’

나태준은 마음속에 날카로운 칼을 갈고, 진부령 게이트로 향했다.

A급 게이트라 그런지, 미시령 입구부터 경비가 삼엄했다.

하지만 헌터 협회의 차량은 빠르게 통과할 수 있었다.

진부령 계곡 끝자락에 길이 200미터의 A급 게이트가 이글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어서 오십시오.”

거상 길드의 B등급 헌터 김서라가 나태준을 마중 나왔다.

“아직인가?”

“네?”

“게이트 공략 말이네?”

나태준의 반말에 기분 나빴지만, 상대는 A급 헌터에 이태성 길드장과 친구 사이였기에 김서라는 그냥 인상만 한번 찡그리고 말았다.

“우리 팀은 진부령 유원지 앞에 모여 있고, 한 시간 후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김서라는 사무적인 말투로 대답했다.

그녀의 안내로 거상 길드의 헌터들이 모인 곳으로 이동했다.

이태성의 오른팔이자, 거상 길드의 공략 책임자인 강남길이 나태준에게 말했다.

“늦지 않고 왔군. 필요한 것은?”

“없어. 아니 한 가지 있군. 게이트 보스를 발견하거든 나에게 먼저 알려주기 바란다.”

“그런데 A급 게이트는 처음이라 하지 않았나?”

“...”

강남길 말대로 나태준은 A급 게이트를 처음 들어가 보는 것이었다.

“조심하는 게 좋아. B급 게이트하고는 차원이 달라. 특히 B급 게이트 보스인 A급 괴수가 필드에 아무렇지도 않게 나타나니까.”

“잘 됐군. 미리 경고하는데 내가 먼저 공격한 괴수는 아무도 건드리지 말라고 좀 해주지. 흥분하면 옆에 있는 헌터를 죽일 수도 있으니까.”

“뭐?”

“이 새끼가 지금 협박하는 거야?”

옆에 있던 거상 길드의 다른 헌터들의 험악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강남길이 그들을 만류했다.

“다들 들었지. 여기 있는 나태준 헌터가 먼저 공격한 괴수는 손대지 마. 길드장께서 허락했으니, 다들 명심하라고.”

“네.”

헌터들이 그를 노려보며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태준은 계곡 한쪽 바위에 홀로 떨어져 앉았다.

그 모습을 보더니 A급 헌터 박영배가 한마디 했다.

“참! 재수 없는 새끼네.”

박영배는 강남길처럼 거상 길드의 주축으로 A급 헌터가 된 지 3년이나 지난 베테랑이었다.

강남길이 다시 길드원들에게 주의를 시켰다.

“될 수 있으면 저놈하고 말 섞지 마. 그리고 무슨 짓을 하든 상관하지 말아, 그리고 저놈은 김서라 네가 계속 맡아.”

“예?”

“옆에 딱 달라붙어서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지 나한테 계속 보고 하고.”

“헐, 전 괴수 사냥을 해야죠. 이번에 A급이 못되면 길드장님께 혼난다고요. 다른 사람으로 바꿔주세요.”

“안돼. 내 말을 안 들을 거면, 이번 게이트 공략에서 빠져.”

김서라가 한쪽 입술을 씰룩거렸다.

“쳇. 알았어요.”

김서라는 이쁘장한 외모에 긴 팔과 다리를 가졌다.

원거리 딜러로 활과 소총, 석궁까지 못 다루는 무기가 없었고, 인벤토리에 초콜릿을 항상 가지고 다니며, 길드원들에게 나눠주는 마음 씀씀이를 가지고 있었기에 거상 길드의 마스코트나 다름없었다.

“뭐해?”

“옆에 바짝 붙어 있으라니까.”

“아직 게이트 안에 안 들어갔잖아요.”

그때였다.

살라딘 길드원들이 버스를 타고 진부령 계곡에 도착했다.

“모두 하차!”

버스 네 대에서 100명의 헌터들이 내렸다.

그 모습을 보고 거상 길드의 박영배가 말했다.

“저 새끼들 꽤 많이 데려왔는데.”

“C급 헌터도 데려온 거 아냐?”

“아니야, 잘 봐 전부 B급 이상이야.”

강남길의 표정이 좋진 않았다.

길드 순위 9위의 거상은 60명을 데려왔고, 헌터 협회에 소속된 중간 규모의 길드 다섯 개에서 C급 이상 헌터 100여 명이 합류해 있었다.

살라딘 길드와 거상 길드 이외에는 A급 헌터가 없었기고, 대부분 B급과 C급 헌터도 있었기에 그들은 보스 공략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작은 길드의 헌터들이 큰 길드와 연합을 하는 것은 그들이 괴수를 공략할 때 옆에서 조금만 참여해도 경험치를 많이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이! 남길이, 오랜만이네.”

이번 살라딘 길드 공략팀의 리더인 김상엽이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강남길의 인상이 살짝 찡그려졌다.

하지만 곧 얼굴을 펴고 고개를 숙였다.

“김상엽 헌터님, 오랜만입니다.”

김상엽은 나이가 40이 조금 넘었고, 각성한 지 15년이 된, 1세대 헌터였다.

한때 김상엽과 강남길은 같은 길드에 선후배로 있었기에 아직도 반말했다.

“우리 몇 년 만이지?”

“횟수로 3년 됐습니다.”

“그렇군. 너희 애들은 몇 명이나 데려왔어?”

“60명입니다.”

“제법 많이 데려왔네. 왜? 보스 한번 잡아 보려고? 클클클.”

“물론입니다.”

“그래? 자신 있나 보지.”

“네. 이번엔 저희가 게이트를 클리어할 겁니다.”

“이태성이가 오지 않는 한 힘들지 않을까?”

강남길이 인상을 확 구겼다.

“말을 조심하십시오. 이태성 이사님이라고 하셔야죠.”

“뭐 어때? 당사자 없는데 선 나라님도 욕한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그럼 저도 임영호라고 부를까요?”

“뭣이?”

김상엽이 비웃음을 날렸다.

“강남길이 이태성의 오른팔이 되더니 많이 컸네.”

“원래 제가 선배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큽니다.”

“싸움은 덩치로만 하는 게 아니지.”

두 사람은 만나자마자 서로 신경전을 벌였다.

둘 다 A급 헌터로 협회에서 제법 이름은 알려져 있었다.

“이봐, 계속 입으로만 떠들 텐가?”

“뭐?”

김상엽이 자신과 강남길을 향해 소리친 사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임영호를 기다릴 게 아니라면, 그만 들어가지.”

“뭐야 저거?”

김상엽이 자기 길드장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건방진 헌터를 쳐다보았다.

“넌 뭐야?”

“난 너희가 말하는 이태성, 임영호와 동창이다. 6학년 3반 출신이지.”

“무...뭐?”

김상엽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이태성과 임영호 동창에 6학년 3반이면 신귀족이 아닌가.

“나 먼저 들어갈 테니 따라오던가 마음대로 해.”

나태준이 게이트로 향하자, 그를 전담하고 있는 김서라가 투덜대며 따라 들어갔다.

김상엽이 물었다.

“저, 저놈 누구야?”

“나태준이라고 이번에 우리 길드에 들어온 신입니다.”

“나태준? 그 슈퍼 루키가 저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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