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살자-75화 (75/149)

# 75

75. A등급 게이트(1).

김상엽도 나태준에 대해 알고 있었다.

살라딘 길드에서도 몇 달 전에 영입하려고 했던 인물이었고, 길드장 임영호에게 동창이라고 들은 기억이 났다.

나태준이 가장 먼저 A급 게이트로 들어갔다.

“우리도 들어가죠.”

그 뒤를 이어 헌터 협회 헌터들이 차례로 들어갔다.

***

[A급 게이트]

“여기 왜 이렇게 어두워?”

“피 냄새다! 모두 경계해!”

헌터들이 어깨에 달린 렌턴을 일제히 켰다.

“으아아악!”

“괴수다!”

비명이 들리는 방향으로 렌턴이 같은 곳을 비췄다.

그곳엔 A급 괴수 마그투스의 머리가 자신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헉!”

“뭐지, 누가 죽인 거지?”

그때였다.

구름에 가려졌던 보름달이 대지를 비췄다.

한 여자가 멍하니 서 있었다.

“김서라, 너 거기서 뭐 해?”

강남길의 물음에 김서라가 손가락을 가리켰다.

“저, 저기...”

“뭐?”

100여 미터 떨어진 언덕 위에서 칼과 갈고리가 반짝였다.

환한 달무리 아래에서 한 인간이 10미터가 넘는 마그투스를 쓰러트리고 칼과 갈고리로 목을 마구 짓이기고 있었다.

“설마, 혼자 잡은 건가?”

바닥엔 이미 세 마리의 마그투스 시체가 뒹굴고 있었다.

헌터들이 게이트 안으로 차례로 들어오는 그 짧은 시간에 A급 괴수를 세 마리나 잡은 것은 A급 헌터 중에서도 이름이 알려진 헌터들이나 가능한 일이었다.

“와! 세 마리를...”

“저 헌터 실력이 대단한데요.”

다른 길드의 헌터들이 나태준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그때 상태창에 게이트 클리어 조건이 떴다.

[밤만 계속되는 세상(A등급) - 이곳은 늘 밤만 존재합니다. 달이 없을 때 그들은 모습을 드러냅니다. 어둠 속에서 도사리는 괴수들을 조심하십시오.]

[게이트 클리어 조건 : 어둠의 지배자 블랙 드라칸(S)을 죽이시오.]

[게이트 클리어 보상 - ?]

[블랙 드라칸(S등급) - 드래곤과 익룡을 교미시켜 놓은 듯한 모습, 날개를 활짝 펴면 50미터에 이르고, 날갯짓 한 번에 수백 미터를 이동한다.

입에서 북극의 찬바람보다 강한 냉기를 뿜어내 모든 것을 순식간에 얼려버린다.

보통 암수 한 쌍이 주변에서 가장 높은 곳에 둥지를 짓고 산다.]

다행히 보스만 죽이면 끝나는 게이트로 수만 마리나 되는 괴수를 잡아야 하는 조건보다 훨씬 편했다.

하지만 보스급 괴수가 하늘을 날 수 있는 놈이란 것이 마음에 걸렸다.

강남길이 소리쳤다.

“거상 길드원들은 괴수 사체를 치운다!”

그러자 길드원들이 빠르게 움직였다.

강남길이 맨 나중에 들어온 살라딘 길드의 김상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 역시 나태준이 괴수를 잡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선배, 어떻게 하실 겁니까?”

“뭐?”

“베이스 캠프 말입니다. 이곳에서 함께 칠까요?”

“아. 잠깐.”

김상엽이 주변을 둘러봤다.

“우린 저쪽 바위 언덕 쪽에 캠프를 따로 치겠네.”

“네. 알겠습니다.”

김상엽과 살라딘 길드는 게이트에서 앞쪽으로 200미터 지점에 있는 작은 언덕 위에 큰 바위 십여 개가 놓여 있는 지역을 골랐다.

아무래도 바위가 괴수들을 막는 바리케이드가 될 수 있었기에 그곳을 선택한 것이다.

살라딘 길드가 이동했다.

“우리는 이곳에 베이스 캠프를 친다.”

거상 길드는 게이트가 있는 언덕 위에 베이스 캠프를 쳤다.

뒤쪽에 커다란 게이트가 바리케이드 역할을 했고, 언덕 위에 있었기에 한쪽 면만 방어하면 됐기에 나쁘지 않은 조건이었다.

다른 길드의 헌터들은 거상 길드와 함께 이곳 베이스 캠프에 함께 하기로 했다.

그들은 큰 길드와 함께 움직여야 경험치도 얻고, 안전할 수 있었다.

잠시 후.

나태준이 베이스 캠프로 돌아왔다.

그는 온몸에 피를 뒤집어쓴 상태였다.

김서라가 달려가 물었다.

“괘, 괜찮아요?”

나태준은 말없이 캠프 안으로 들어갔다.

“뭐야, 저 사람. 걱정해서 하는 말인데.”

“저 사람 피가 아니야.”

“네?”

“모두 괴수 피야.”

강남길은 야간 시력이 좋았다.

그는 나태준이 단 한 대도 맞지 않고 괴수를 잡는 모습을 똑똑히 보았다.

강남길이 주변을 둘러보는 나태준에게 다가가 물었다.

“괴수가 어디쯤 있겠나?”

“모두 세 곳이 의심스러워. 뒤쪽의 홀로 떨어져 있는 산과 저 앞쪽에 있는 두 산, 셋 다 높이가 비슷해서 괴수가 어디로 날아가는지 지켜봐야 할 것 같아.”

“흠. 후보가 셋이라면 함부로 움직일 순 없겠군.”

산이 하나라면 좋았을 것이지만, 셋이나 있었고, 공교롭게 셋 다 높이가 비슷했다. 그럼 높은 곳을 좋아하는 블랙 드라칸의 둥지를 확정할 수 없었다. 게다가 각각의 거리가 너무 멀었기에 일일이 뒤질 수도 없었다.

“당분간 이곳에 머물며 교대로 하늘을 관측한다.”

이곳은 계속 밤이었다.

블랙 드라칸은 온통 검은색이었으니, 밤 하늘에서 그 모습을 확인하기는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그나마 달이 밝을 때라면 모를까, 구름이 낀 하늘에선 놈을 절대 찾을 수 없었다.

강남길이 다시 한번 주의를 시켰다.

“모두 긴장해! 괴수가 언제 나타날지 모르니까.”

헌터들은 게이트 주변에 모여 있었다.

그리고 블랙 드라칸의 둥지가 어디 있는지 확인할 때까진 이 주변에서 괴수를 사냥하며 기다리기로 했다.

***

그 시각 태준의 팀원들은 B급 게이트를 공략하고 있었다.

창수가 최규환과 거래해 국가 헌터원으로부터 B급 게이트를 얻어 냈고, 다섯 명이 게이트를 공략했다.

그리고 말볼도 함께였다.

이번 게이트가 벌써 10번째 게이트로 그들도 A등급의 헌터가 되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하고 있었다.

윤상희가 모닥불 옆에 엎드려있는 말볼을 걱정스러운 얼굴로 보고 있었다.

“말볼이 요즘 통 힘이 없네.”

무슨 일인지 말볼은 게이트에 들어와서도 힘이 없었다. 그냥 괴수가 다가올 때만 몇 번 으르렁거릴 뿐 잘 움직이지 않았다.

최한별이 말했다.

“말볼도 태준씨가 보고 싶어서 그런 거겠죠.”

“그런가...”

집에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주혁이와 기태가 장난을 쳐도 심드렁한 표정을 짓고 구석으로 피하기 바빴다.

“그런데 어째 세 사람이 늦네.”

이수호와 한수진, 정기용이 A급 보스를 잡으러 동굴로 들어간 지, 네 시간이 지났다.

전에는 팀원들이 한번 에 몰려서 A급 보스를 잡았다면, 이제는 나눠서 잡을 정도가 됐다.

[디울리스(A)를 잡았습니다.]

[게이트를 클리어했습니다.]

곧 게이트 클리어 알람이 떴다.

그리고 세 사람이 동굴에서 나왔다.

“유니크 아이템이 3개 나왔어요.”

수진이가 나오면서 말했다.

“이야! 3개나 나왔으면 축하할 일이네.”

윤상희가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사실 다들 상태창으로 봐서 알고 있었다.

B급 게이트를 공략해 유니크 아이템이 3개나 나온 것은 매우 희귀한 일로 축하해야 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무엇을 해도 흥이 나지 않았다.

“그만 돌아갈까요?”

“앞으로 게이트가 부족하다는데, 최대한 잡고 돌아가죠.”

최한별이 말했다.

헌터 협회뿐만 아니라, 국가 헌터원이 확보한 B급 게이트도 바닥을 보였다.

“그래, 아직 48시간이 남아 있으니까 잡고 가자.”

게이트 안에 리더는 윤상희가 맡았고, 팀의 전체적인 움직임은 창수가 맡았다.

그들은 게이트 소멸 2시간을 남기고 밖으로 나갔다.

“다들 고생했어.”

게이트 밖에는 남창수와 김성하가 기다리고 있었다.

“왜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요?”

“그냥, 우리도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어.”

“대장 소식은 없어요?”

“없어.”

단답형의 대답.

최한별이 물었다.

“다음 게이트는 어디죠?”

그녀는 이상하게 태준이 사라지고, 더 열심히 괴수를 잡고 있었다.

“글쎄요, 이제 B등급 게이트는 없다고 하던데.”

“그럼 이제 A급으로 가죠.”

“뭐?”

“네?”

최한별의 말에 다들 그녀를 쳐다보았다.

수진이가 놀라 물었다.

“A등급이요?”

“그래, B급 게이트가 없다고 놀 수는 없잖아. 태준씨는 지금도 열심히 괴수를 잡고 있을 텐데. 우리도 이제 A등급을 공략해야지.”

팀원들이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물론 국가 헌터원 소속 헌터들과 함께 들어가야 할 거야. 그러면 다른 헌터들과 트러블도 생길 테고. 안 좋은 일도 있겠지, 하지만 그걸 이겨내지 못하면 A급 헌터가 되도 소용이 없다고 생각해. 태준씨 상대가 누구인지 다들 알잖아.”

태준의 상대는 헌터 협회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한마디로 공룡과 싸우는 인간이었으니, 그를 돕기 위해서는 정말 강해져야 했다.

최한별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던 창수가 입을 열었다.

“벌써 A급을 공략한다... 매우 위험할 텐데요?”

“물론 위험이야 하겠죠. 하지만 하루빨리 A등급 헌터가 되려면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이건 태준씨와 연희씨 문제도 있지만, SS급 게이트가 떴을 때 우리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등급업은 필수입니다.”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한별씨 의견에 찬성해! 대장은 지금까지 우리를 많이 도와줬잖아. 그러니 이번엔 우리가 대장을 도와줄 차례야. 그런데 지금 헌터 등급으로는 도움은커녕 짐만 될 거야. 다들 그걸 바라는 건 아니겠지?”

정기용이 한마디 했다.

“맞아요. 이대로는 너무 늦어요. 하루빨리 엘프 세 마리를 뽑아 대장을 도우려면 헌터 등급을 올려야 합니다. 전 찬성입니다.”

이수호도 A등급 게이트를 공략하는 데 찬성했다.

“그럼 망설일 필요가 없지. 지금 당장 최규환한테 스케줄 잡아달라고 해!”

윤상희는 두말할 필요가 없었다.

다들 마지막으로 남은 한수진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배시시 웃으며 대답했다.

“제가 언제 이런 일에 빠진 적 있나요. 저도 콜이예요.”

창수의 눈동자에 이슬이 살짝 맺혔다.

팀원들이 이런 마음인 것을 태준이 알까?

창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A급 게이트는 내가 최규환과 만나서 담판을 지어 볼게.”

***

살라딘 길드의 베이스 캠프 입구가 소란스러웠다.

헌터들이 웅성거리자, 리더인 김상엽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무슨 일인데 이렇게 시끄러워?”

헌터 하나가 고개를 옆으로 돌린 채 다가왔다.

“그 개새끼가 주변의 괴수를 싹쓸이해 잡을 게 없습니다.”

“뭐? 어떤 새끼 말하는 거야.”

“나태준, 그놈 말입니다.”

“그럼 그놈보다 더 빨리 괴수를 잡으면 되잖아.”

“그게 괴수를 발견해서 달려가면 이미 놈이 잡고 있는데, 어쩌란 말입니까?”

“뭐?”

김상엽이 헌터가 자꾸 얼굴을 가리자, 턱을 잡았다.

주변 조명에 얼굴을 비추자, 한쪽이 시퍼렇게 피멍이 들어 있었다.

“너 얼굴이 왜 그래?”

헌터가 입을 삐쭉거리며 대답했다.

“하도 약올라서 놈이 사냥하고 있는 괴수를 공격했더니, 그놈이 다짜고짜 주먹을 달려서...”

“뭐? 그럼 맞고 왔단 말이야?”

헌터가 창피한지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주변에 다른 두 명의 헌터들도 고개를 숙였다.

“설마 너희도?”

그들에게 렌턴을 비추자, 하나는 주먹에 맞아 코가 삐뚤어졌고, 다른 하나는 입술이 터져있었다.

“이런 병신 같은 새끼들! 아무리 그래도 같은 A급 헌터 한테 맞고 왔다는 게 말이 돼?”

“그게 그 새끼 눈빛이...”

“눈빛이 뭐?”

“싸우기 시작하면 한쪽이 꼭 피를 봐야 할 것 같아서 그랬습니다.”

사냥감을 중간에 스틸하는 것은 매너 없는 짓이었고, 사실 공격받아도 할 말이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게이트! 힘이 곧 법이 곳이었다.

지금 이곳에서 살라딘 길드의 힘이 제일 강했으니, 눈치 볼 필요는 없었다.

“그쪽은 몇 놈이었어? 내가 강남길 그 새끼한테 따져야겠다.”

“저 그것이 나태준은 여자 헌터 하나와 둘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뭐? 그럼 둘한테 셋이 당했단 말이야?”

“저기, 여자는 B등급 헌터고, 싸운 것은 나태준 혼자였습니다.”

김상엽은 헌터들의 말을 듣고는 잠시 침묵했다.

A급 헌터 셋을 주먹으로 제압했다?

놈은 전사 클래스고, 이쪽은 소환사 하나에, 샤먼 한 명, 마법사 한 명이었다. 1대3으로 당할 조합이 아니었다.

“놈의 상태는?”

“...”

헌터들이 대답하지 못했다.

“멀쩡하다는 말이군.”

“아무래도 보스를 잡기 전에 그놈을 손봐야 하지 않을까요?”

이대로 보스급 괴수를 함께 잡는다면, 그놈이 막타를 칠 가능성이 컸다.

그리고 살라딘 길드원이 거상 길드원에게 맞고 왔는데 보복을 하지 않으면 약하다는 소문이 퍼질 것이다.

“단둘이 움직인단 말이지?”

김상엽의 눈빛이 음흉하게 변했다.

***

고된 사냥이 끝나고 태준이 잠깐 나무에 기대앉아 있었다.

그리고 눈앞에 김서라가 쪼그리고 앉아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나만 계속해서 따라다니는 모습이 하도 안쓰러워 괴수가 주변에 있다면 먼저 화살을 쏴서 선공을 가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러자 신나서 화살을 쏘더니 저렇게 지쳐서 졸고 있는 것이었다.

‘왔군.’

백정의 칼을 들었다.

인벤토리에서 신선한 괴수의 피가 담긴 병을 꺼냈다.

그리고 마셨다.

‘흡혈(吸血)!’

[피의 탐욕(Blood greed) 스킬이 발동됩니다.]

눈동자가 붉어졌다.

새롭게 익힌 도살자 스킬을 활성화했다.

그리고.

[그림자 반지(유니크)를 사용합니다.]

나무 아래 그림자 속으로 숨었다.

[그림자 반지(유니크) - 그림자 속에 숨어 있으면, 상대방의 눈을 현혹해 보이지 않게 한다. 단 움직이는 순간 효과는 사라진다. 그림자가 없는 곳에선 사용할 수 없다. 그림자 크기가 대상보다 작으면 숨을 수 없다.]

처음으로 다크로드 교 이광섭을 죽이고 얻은 반지를 사용했다.

“나태준, 이 새끼 어디 간 거야?”

“저기 그놈과 함께 다니던 여자다!”

여섯이나 되는 헌터들이 우르르 몰려오자, 김서라가 깜빡 잠에서 깼다.

“저년 잡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