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6
76. A등급 게이트(2).
[나태준]
- B등급
- 체력 : 862
- 마나량 : 52(78)
- 클래스 : 괴수 백정, 도살자.
- 특성 : 관찰(lv6), 도살(lv8). 해체(lv14), 감식(lv5).
- 특기 : 비대각(批大卻). 도대관(導大窾). 난도(亂刀)(lv5)
- 각성 : 할야(割也), 절야(折也), 흡혈(吸血), 섭취(攝取), 재생(再生), 포효(咆哮).
- 도살자 업적 : F등급 도살자, E등급 도살자, D등급 도살자, C등급 도살자. 독 수련자(A).
* 흉포한 에이션트 마그투스의 각반(레전더리) - 사용 중지.
* 난폭한 디울리스의 팔찌(유니크) - 사용 중지.
* 그림자 반지(유니크) - 사용 중.
* 회복의 반지(레어) - 사용 중.
* 녹음의 링(유니크) - 사용 중.
- 흡혈(吸血) 실행 : 피의 탐욕(lv3) 발동 중.
왜? 아직도 B등급에 머물러 있는지는 모른다.
국가 헌터원의 등급 테스트를 통해 진작 A급 헌터가 됐지만, 내 상태창에는 여전히 B등급. 검사 클래스 A등급의 체력이 600이었고, 체력 수치가 가장 높은 권법가 역시 700이 넘으면 A등급이 된다. 지금 내 체력은 이미 800을 훨씬 넘겼지만, 등급은 B급를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등급은 상관없었다.
모든 백정 스킬 레벨이 5를 넘어섰을 때, 도살자 클래스가 활성화됐다.
그리고 생겨난 여섯 가지 도살자 각성 메뉴들.
할야(割也), 折也(절야), 흡혈(吸血), 섭취(攝取), 재생(再生), 포효(咆哮).
그중에 흡혈(吸血)을 실행했다.
[흡혈(吸血) - 괴수의 피를 마시면 온몸이 뜨거워지고, 끝없이 피를 갈구하는 피의 탐욕(Blood greed) 스킬이 발동된다.]
[피의 탐욕(lv3) - 스킬이 발동되면, 눈동자가 붉은색으로 변하며 끝없이 피를 갈구하는 몸으로 변한다.
마시는 괴수 피의 종류에 따라 수초에서 수 분간 괴수의 특성이 몸속에 녹아 들어간다. 스킬 레벨이 오를수록 동기화율이 올라간다.]
내 눈동자가 온통 핏빛으로 변하고,
마그투스의 뜨거운 피가 내 몸을 휘감는다.
나는 어둠속에서 그들을 지켜본다.
“포위해!”
A급 헌터 여섯이 김서라를 포위했다.
“왜? 왜 이러지?”
“그놈 어디 갔어?”
“누구를 말하는 거야?”
김서라는 말을 하면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조금 전까지 눈앞에 있었던 나태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알면서 묻는 건가? 나태준, 그놈 지금 어딨지?”
김서라가 화살을 활시위에 매겨둔 채로 잔뜩 경계하며 대답했다.
“방금까지 이곳에 있었는데, 금방 사라졌어.”
“지금 우리에게 그 말을 믿으라는 거야?”
“나도 정말 모른다니까.”
나태준에게 얼굴을 맞아 눈 주위가 퍼런 김학수가 이를 갈았다.
“주변을 뒤져봐.”
헌터 셋이 주변 숲과 언덕을 뒤졌다.
하지만 나태준은 보이지 않았다.
“여기 없는데.”
“거봐, 내 말 맞지.”
김서라는 포위가 느슨해진 빈 틈을 향해 달렸다.
하지만.
“이년이 어딜!”
땅에서 나무뿌리가 뻗어 나와 김서라의 다리를 휘감았다.
“아악!”
김서라가 넘어지자, 뿌리가 그녀를 잡아당겼다.
김서라가 몸을 일으켜 화살로 나무뿌리를 쏘았다.
화살은 정확히 나무뿌리에 맞아 끊어져 속박에서 풀렸지만, 그녀 주변으로 헌터들이 포위했다.
“이년, 몸은 호리호리한데 가슴은 꽤 큰데?”
“그러게 베이글녀네. 얼굴도 꽤 반반하고...”
사내들의 표정이 음흉하게 변했다.
“무...무슨 짓이야? 난 거상 길드원이야. 날 건들면 우리 길드가 가만두지 않을 거야.”
김학수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걸 누가 알까?”
“뭐?”
“네년을 덮치고, 사지를 잘라서 숲에 묻는다면 누가 알까? 그 말이야. 게다가 게이트에서 벌어진 일은 게이트에서 끝나는 법이지.”
사내들이 점점 김서라의 곁으로 다가갔다.
김서라는 화살을 겨누며 소리쳤다.
“저리 꺼져! 죽고 싶지 않으면!”
“앙칼진 것이 겁탈하는 맛 좀 있겠는데.”
“맞아. 저번에 그 년은 너무 가만히 있어서 꼭 통나무 같았다니까. 크크큭!”
“이번엔 내가 첫 빠따다.”
놈들의 대화에 김서라가 진저리를 쳤다.
이놈들에게 당한 여자가 한둘이 아닌 것 같았다.
여러 길드가 게이트를 공략할 때 철칙이 하나 있었다.
절대 혼자 다니지 말 것.
특히 등급이 낮은 여자 헌터는 혼자 다니다가는 지금과 같은 일을 당하기 쉬웠다.
“아악! 누가 도와줘요! 사람 살려!”
김서라가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렀다.
“크크크! 소리를 질러봐야 소용없어.”
“지금 이 숲 주변 일대는 우리 길드원들이 포위하고 있어. 밖에서는 괴수를 사냥하는 것처럼 보일 거고, 아무도 이쪽으로는 들어오지 않아. 그냥 가만히 있으면 재미 좀 보고, 고통 없이 죽여줄게. 흐흐.”
사사삭!
뒤쪽에서 덮치는 소리에 김서라가 몸을 돌려 화살을 날렸다.
하지만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다시 앞쪽에서 누군가 달려들자, 화살을 꺼내며 몸을 돌렸다.
퍼억!
“커헉!”
창대 끝이 그녀의 배를 때렸다.
그리고 옆에서 헌터들이 달려들어 그녀의 활과 화살을 빼앗아 버렸다.
A급 헌터 여섯을 B급 헌터 김서라가 당할 수 있겠는가.
자신의 창을 바닥에 꽂은 김학수의 눈에서 붉은 안광이 뿜어졌다.
“크크크, 내 샤먼이 벌써 흥분했구나! 네년의 살 맛을 봐야겠다.”
헌터 둘이 그녀의 양팔을 잡고 나무 아래로 끌고 갔다.
그리고 접신 스킬을 쓴 김학수가 바지를 벗었다.
그 시각 다른 세 명의 헌터들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주변을 경계하며 망을 보고 있었다.
“응?”
김서라를 덮치려 했던 김학수가 갑자기 고개를 들었다.
그러더니 몸을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뭐하는 거야? 하기 싫으면 나오던...”
서걱!
달빛에 푸른 칼날이 번쩍였다.
그리고 찾아온 짧은 침묵.
네크로맨서는 목이 잘렸다.
그 순간 한쪽 팔이 자유로워진 김서라가 옆에 있던 헌터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으윽! 이년이!”
쩌억!
내려치는 힘이 얼마나 강했는지, 백정의 칼이 어깨에서부터 심장까지 순식간에 도달했다.
“어...어어억!”
헌터는 소리를 지르지도 못하고, 자신의 심장이 뛰는 모습을 허탈하게 바라보았다.
그리곤 무릎을 꿇었고, 뒤로 쓰러졌다.
“자, 자...잠깐.”
바지를 올리지도 못하고 김학수가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그 뒤를 핏빛 눈동자의 나태준이 다가갔다.
“우리, 말로...”
촤악!
김학수의 중요한 것이 허공으로 날아갔다.
뒤에서 달려든 김서라가 바닥에 떨어진 검으로 베어버린 것이다.
“으아아아!”
김학수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그 소리를 듣고 주변에 있던 세 명의 헌터가 달려왔다.
“뭐, 뭐야?”
김학수는 바지가 벗겨진 채로 머리가 잘려있었고, 다른 두 명의 헌터도 끔찍한 모습으로 죽어 있었다.
그들은 모두 A급 헌터.
평소처럼 경계하고 있었다면 이렇게 허무하게 당하진 않았을 것이다.
“저기다!”
숲으로 뛰어가고 있는 김서라를 발견했다.
“저년 잡아!”
셋이 하나를 쫓는다.
그들은 김서라를 쫓기 전에 죽은 동료의 시체를 자세히 살펴야 했다.
B급 헌터의 능력으로, 그것도 궁수계열의 헌터가 A급 헌터의 몸에 만들 수 있는 상처가 아니었다.
“저년이 동료들을 죽였다!”
“잡아 죽여!”
[흉포한 에이션트 마그투스의 각반(레전더리)을 사용합니다.]
나무 뒤에서 육중한 발이 날아왔다.
맨 뒤에서 김서라를 쫓던 헌터는 갑작스러운 공격에 지팡이로 막았다.
콰직!
“크억!”
쿠아앙! 쾅!
지팡이는 부러지고, 마법사는 공중을 날아 커다란 나무에 부딪혔다.
엄청난 충격에 마법사는 코와 입에서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뭐, 뭐야?”
“이용학! 어딨어?”
뒤에서 들린 이상한 소리에 김서라를 쫓던 두 헌터가 그 자리에서 멈췄다.
마법사 이용학이 보이지 않았다.
그때였다.
달빛 사이로 시퍼런 것이 반짝였다.
나무와 나무 사이를 지날 때마다 칼이 번쩍인 것이다.
“나태준이다!”
언뜻언뜻 비추는 백정의 칼을 헌터가 알아봤다.
그가 검을 들고 앞으로 나섰다.
“조심해!”
카앙!
동료의 말이 끝나자마자 백정의 칼이 검을 든 헌터를 덮쳤다.
치이익!
“으윽!”
검으로 받아 냈지만, 힘에서 밀리며 뒤로 3미터나 밀려 나무에 등을 기댔다.
나무가 아니었다면, 뒤로 넘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안심하긴 이르다.
태준이 칼을 휘둘렀다.
캉! 카카캉! 캉!
칼과 검이 부딪히며 불꽃이 튀었다.
검이라면 자신의 장기.
같은 A급 헌터라면 질 수 없었다.
태앵!
나태준의 칼과 헌터의 검이 공중에서 맞닿았다.
태준이 엄청난 괴력으로 검을 밀어내며, 머리를 상대의 어깨를 향해 내밀었다.
“뭐, 뭐하는 거야! 어...어.”
콰직!
이빨로 헌터의 목을 물었다.
“으악!”
고개를 젖히자, 살점이 뜯어져 나갔고, 피가 공중으로 뿜어졌다.
“큭! 도...도와줘.”
헌터가 동료를 애타가 불렀지만, 그는 이미 태준과 검을 섞자마자 달아났다.
태준은 A급 헌터를 넷이나 죽인 자였다.
동료와 자신이 힘을 합치더라도 이길 수 없음을 깨닫고, 진작 달아난 것이다.
검이 힘에서 밀리며 백정의 칼이 가슴에 닿았다.
“아...아악! 그...그만!”
비명을 듣고 김서라가 돌아왔다.
하지만 태준에게 다가가진 못했다.
칼날이 A급 헌터의 가슴을 서서히 파고드는 모습에 두려움이 일었다.
그녀가 각성하고 헌터가 된 지 7년째, 수많은 게이트를 다니며 잔혹한 괴수와 싸우고, 악독한 헌터들을 많이 봤다지만, 지금 눈앞의 광경을 뭐라 설명할 길이 없었다.
그저 공포감에 몸이 굳었을 뿐이었다.
“제...애...발... 살려!”
“너희가 시작한 싸움이다.”
푸슉!
칼이 가슴을 찔렀다.
헌터가 살려달라 애원했지만, 도살자에게 자비는 사치였다.
검을 든 헌터는 눈을 뒤집어 까고, 아래로 무너졌다.
헌터가 쓰러지고, 태준은 칼로 심장을 찔러 마무리했다.
“하...한 놈이 도망갔어요.”
몸을 돌린 나태준의 모습은 지옥에서 돌아온 야차 같았다.
김서라는 바들바들 떨면서도 물러서지 않았다.
태준은 나무를 잠시 잡고 서 있었다.
그러다가 고개를 돌렸다.
그쪽은 헌터가 달아난 방향이었다.
***
“헉! 헉!”
자연 계열의 헌터 이수원은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었다.
겨우 숲을 벗어났다.
이제 동료들을 찾으면 안전해진다.
그런데,
‘이곳이 어디지?’
하필 정신없이 달린 방향이 동료들이 있는 반대방향이었다.
“제길, 돌아가야겠군.”
크르르르!
낮고 날카로운 울음에 수원은 등골이 섬뜩함을 느꼈다.
조용히 주머니에서 씨앗을 꺼내 바닥에 뿌렸다.
그 사이 괴수가 자신의 옆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라이즈(A등급) - 밤의 야수. 고양이의 모습과 닮았다. 하지만 그 크기가 수십 배나 큰 것이 함정. 날카로운 발톱과 꼬리에서 발사되는 독침이 위력적이다. 어둠에 숨어 있을 땐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이라이즈가 거리를 좁히더니 자신의 거리에 도달하자, 몸을 날렸다.
“지옥의 가시덤불!”
파파파팟!
바닥에 뿌린 씨앗들이 터지면서 엄청난 양의 가시덤불이 괴수를 휘감았다.
“크와왕!”
괴수는 가시덤불 속에 갇혔다.
놈이 발버둥 쳤지만, 그럴수록 덤불은 더욱 꼬여만 갔다.
지옥의 가시덤불로 A급 괴수를 죽일 순 없었다.
아니 한참을 붙잡고 있다면 굶주려 죽일 순 있을 것이다.
이럴 때 주변에 다른 A급 헌터가 있었다면 손쉽게 처리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물러나는 것이 상책이었다.
“끼야앙!”
괴수가 필사의 몸부림을 펼쳐보지만, 괴음만 허공에 울려퍼졌다.
이수원이 팔을 뻗어 가시덤불을 유지한 채 뒤로 물러섰다.
“헉!”
몸을 돌리자, 자신의 눈앞에 핏빛 안광을 뿌린 사내가 서 있었다.
도살자의 눈빛에 순간 소름이 돋았다.
“이 개새끼! 저리가!”
태준의 앞으로 씨앗을 뿌리자, 거대한 가시덤불이 솟아올랐다.
하지만 가시덤불은 태준을 막지 못했다.
칼과 갈고리로 가시덤불을 헤치고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태준의 옷은 찢어지고, 여기저기 피가 배어 나왔지만, 절대로 멈추지 않았다.
“지겨운 놈!”
결국, 수원이 몸을 돌렸다.
숲을 향해 달아나려는데,
휘리리리릭! 푹!
“크윽!”
갈고리가 날아와 옆구리에 박혔다.
나태준이 갈고리를 부메랑처럼 던진 것이다.
“돌아와!”
갈고리가 갑자기 당겨지며, 옆구리가 칼날에 베었다.
피가 안개처럼 뿜어졌다.
놈이 쓰러지고, 도살자가 그를 덮쳤다.
‘여섯이라, 첫 사냥치고는 나쁘지 않군.’
그때였다.
콰악!
“끼야아옹!”
괴수의 비명에 고개를 돌렸다.
보름달을 덮는 거대한 그림자가 날아와 A급 괴수 이라이즈의 머리통을 잡더니 통째로 들고 그대로 날아갔다.
‘찾았다! 네놈의 둥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