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7
77. A등급 게이트(3).
“이거 너무 늦는군.”
“사람을 보냈으니, 곧 돌아올 겁니다.”
나태준을 처리하러 간 헌터들이 몇 시간째 돌아오지 않았다.
헌터들을 보낼 때까지만 해도 그놈의 이상하게 생긴 칼과 잔인하게 생긴 갈고리를 기념품으로 챙길 생각에 신이 났던 김상엽은 초조했다.
‘숫자를 더 보낼 걸 그랬나?’
A급 헌터 하나를 잡는데 A급 여섯을 보냈으니, 과하면 과했지 부족하지 않은 숫자였다.
그런데도 왜 계속 찜찜한 마음이 드는 걸까...
잠시 후.
확인하러 보낸 헌터가 돌아왔다.
“크, 큰일 났습니다!”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 여섯으로 부족했구나!’
“말해라.”
“나태준을 죽이러 간 헌터들이 모두 당했습니다.”
“여섯 명 모두 당했단 말이냐?”
“하나는 보이지 않았고, 나머지 다섯은 숲 근처에서 시체를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잔혹하게 도살당했습니다.”
김태용은 쓰게 웃었다.
“그놈은 지금 어디 있지?”
“지금 산을 향해 달아나고 있습니다. 혹시 몰라 주변에 있던 추격대를 보냈습니다.”
“베이스 캠프가 아니라 산이라고?”
“네.”
자신들의 공격을 알아챘다면, 거상 베이스 캠프로 돌아가 이를 알려야 정상이었다. 그런데 산을 향해 달린다?
‘나태준이 블랙 드라칸의 둥지 위치를 발견했구나!’
“모두 짐을 꾸려라! 우리도 놈을 뒤쫓는다.”
“하지만 우리가 모두 자리를 비우면, 거상 길드에서 가만히 있겠습니까?”
김태용이 비웃음을 날렸다.
“강남길, 내가 그놈을 잘 알지. 한 명 때문에 공략팀 전체를 위험에 빠트리는 행동은 하지 않는 놈이야. 그러니 우린 나태준 그놈을 죽이고, 그가 향하는 산으로 간다.”
“네!”
A급 헌터 여섯이 죽었지만, 아직은 살라딘 길드의 헌터 숫자가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모두 거상 길드보다 유리했다.
혼자 있는 나태준을 먼저 제거하고 둥지에서 블랙 드라칸을 제거하면, 이번 게이트도 자신들이 클리어하는 것이다.
갑자기 살라딘 길드의 베이스 캠프가 어수선해지더니 헌터들이 모두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거상 길드의 척후병이 강남길을 찾았다.
“살라딘 길드가 움직였습니다.”
“어디로 가더냐?”
“아래쪽에 산을 향해 움직였습니다.”
“산? 나태준은?”
“그 역시 산을 향했습니다.”
“둥지를 발견했구나!”
“저, 그리고 나태준이 살라딘 길드원 여섯을 죽였습니다.”
“뭐? 여섯이나?”
“네, 그자들이 하는 말을 엿들었습니다.”
강남길이 두 눈을 똥그랗게 떴다.
“그중에 A급이 몇 명이더냐?”
“전부 A급 헌터들로 김상엽과 오래도록 함께 다닌 헌터들입니다.”
“그래? 허! 나태준, 제법 날카로운 이빨을 가졌군.”
“이제 우리도 슬슬 움직여야 하지 않을까요?”
“아니, 우린 움직이지 않고, 저 숲에서 매복을 준비한다. 그리고 사냥을 끝내고 돌아온 살라딘 길드를 친다.”
“그럼 나태준이 위험하지 않을까요?”
강남길은 대답 대신 음침한 웃음을 지었다.
대장인 이태성은 아깝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태준 하나를 희생시켜 살라딘 길드의 주축인 김상엽과 그의 팀을 전부 제거한다면, 엄청난 이득이었다.
‘유능한 사냥개이긴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이곳에 있는 60명 중에서 아홉을 제외한 나머지 헌터들은 모두 A등급이었다. 이는 거상 길드의 절반에 해당하는 전력이었다.
살라딘 길드원들에겐 일부러 B급 헌터들만 보여 주고, 약한 척을 했다.
처음부터 이 게이트에 들어온 목적은 괴수 사냥이나 게이트 클리어가 아니라, 살라딘 길드였다.
자신들은 푹 쉬면서 게이트 주변에서 매복을 준비하고, 저들은 수많은 괴수와 보스급인 S등급 괴수를 상대하고 돌아올 것이다.
그때 잔뜩 지친 자들을 기습한다면, 어렵지 않게 전멸시킬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그들을 처리하고, 그 빈틈을 노려 임영호를 친다면, 나머지 살라딘 길드원들은 거상 길드에 투항할 것이다.
‘나태준이 하라는 데로 놔두라고 했지, 꼭 데려오란 말은 없었으니까...’
이태성의 오른팔 강남길이 득의에 찬 웃음을 흘렸다.
***
김서라는 지금 죽기 살기로 나태준을 따라가고 있었다.
명령도 명령이었지만, 지금 자신들의 뒤를 살라딘 길드원들이 따라오고 있었다. 나태준에게 떨어지면 자신은 분명 죽을 것이다.
그러니 유일한 생명 줄인 그를 필사적으로 따라가는 것이다.
“이야!”
“죽어!”
갑자기 좌우에서 헌터들이 나태준에게 달려들었다.
그 순간 김서라는 숨어서 그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크르르르!”
“크앙!”
헬하운드 네 마리가 뒤에서 나태준에게 달려들었다.
칼과 창이 번쩍이고, 순간적으로 화살까지 연이어 날아왔다.
헬하운드는 집요하게 나태준의 다리만을 노렸고, A급과 B급 헌터들이 나태준을 압박했다.
하지만 그는 달리고 움직이기를 멈추지 않았다.
칼과 갈고리를 쉴새 없이 휘둘러 화살을 쳐내고, 찔러지는 창과 검을 막아냈다.
‘정말 괴물 같군.’
뒤를 따르는 김서라는 항상 일정 거리를 유지했다.
그래야 자신이 타겟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절야(折也)!”
“으악!”
고통스러운 비명이 숲을 울렸다.
이는 태준의 비명이 아니었다.
태준의 칼에 한 헌터의 팔이 잘렸다.
검을 든 팔이었기에 헌터는 그 고통이 더했다.
또다시 비명이 숲을 울렸다.
화살을 쏘던 헌터가 갈고리에 목이 찍혀 쓰러졌다.
김서라가 계속 뒤를 따르며 살피자, 뭔가 이상했다.
‘왜지? 저 사내가 사냥당하는 거 같지 않아!’
헌터들이 사방에서 달려들었고 나태준도 상처를 입었지만, 헌터들은 치명상을 입거나 죽었다.
나태준 옆으로 헬하운드 네 마리와 데스나이트 두 마리가 거리를 좁히고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소환술사와 네크로맨서.
나태준이 칼과 갈고리를 휘두르고, 헬하운드 네 마리가 이빨로 물로 발톱으로 할퀴었다. 그리고 데스나이트 두 마리가 앞뒤에서 동시에 달려들었다.
서로 피를 튀기는 처절한 공방이 이어졌다.
데스나이트 두 마리를 먼저 박살내고, 그도 상처를 입었다.
“커컹! 컹!”
헬하운드들이 피투성이가 되고, 다음 공격을 위해 잠시 물러섰다.
그때였다.
“으아아아!”
나태준이 갑자기 괴성을 질렀다.
순간 귀를 찢는 느낌에 손으로 귀를 막았다.
엄청난 나태준의 포효(咆哮)에 헬하운드들이 몸을 바르르 떨었다. 그리고 한 놈은 뒤를 돌아 도망가는 놈도 있었다.
태준은 상태 이상이 된 헬하운드를 차례로 도륙하고, 소환수를 다시 소환하던 헌터에게 달려들었다.
쿵!
헌터가 앞으로 꼬꾸라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급하게 스파토이를 잔뜩 뽑은 네크로맨서의 목을 벴다. 그러자 수십 마리의 스파토이가 우르르 쓰러졌다.
두 사람 다 움직임이 전혀 없는 것이 죽은 것 같았다.
“헉! 헉!”
온몸에 자기 피와 상대의 피를 뒤집어쓴 나태준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가 죽인 소환수들은 사라졌고, 바닥엔 헌터들의 시체가 아홉 구나 널브러져 있었다.
“이리와!”
‘뭐지?’
나태준이 나를 향해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내가 따라붙은 것을 알고 있나?
“이리 오라니까.”
그가 내게 손짓하자, 조심히 다가갔다.
살라딘 길드의 추격대는 모두 죽였다.
“저... 아깐 구해줘서, 고마웠어요.”
“이것 좀 잡아.”
“네?”
헬하운드에게 물린 그의 한쪽 팔이 너덜너덜해졌다.
힘줄은 겨우 붙어 있었고, 근육은 끊어지고, 살이 벌어져 백색의 뼈가 보일 정도였다.
“팔을 들고 있어.”
왼쪽 팔을 들었다.
그러자 나태준이 인벤토리에서 실과 바늘을 꺼냈다.
그리고.
너덜너덜해진 살덩이를 억지로 꿰매기 시작했다.
“윽! 그렇게 살을 막 꿰매면 어떻게 해요? 초등학교 여학생도 그것보단 잘하겠네.”
“그럼, 직접 해봐.”
“네?”
“목숨을 살려줬는데. 그 정도도 못하는 거야?”
“한번 해볼게요.”
늘 명령조에 밥맛없는 사람이었지만,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사람이었다.
김서라가 인상을 찡그리며 벌어지고, 떨어지고, 너덜너덜해진 살들을 억지로 붙였다.
“그런데 이거, 이미 살점과 근육이 떨어져 나가 붙지 않고, 썩을 거예요. 힘줄도 상했고...”
“어서 꿰매기나 해.”
“네.”
그동안 헌터 생활을 하면서 어느 정도 상처는 치료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심하게 상한 경우엔 전문 치료팀이 치료해도 팔을 살릴 가능성은 반도 되지 않았다.
그나마 거상 길드 베이스 캠프엔 전문 자격증을 가진 A급 치료사가 있었지만, 그곳까지 갈 시간이 없었다. 게다가 자신들을 쫓는 살라딘 길드원들까지 있었으니, 어쩌면 팔을 잘라야 할지도 몰랐다.
“남아 있는 살들은 대충 붙이긴 했어요.”
“그럼 붕대로 감아.”
팔을 붕대로 감았다.
***
인벤토리에서 재생력이 특히 뛰어난 괴수 줄란마(B등급)의 고기를 꺼냈다.
‘섭취(攝取)!’
도살자 각성 스킬 섭취를 발동했다.
그리고 괴수 고기를 씹어 먹었다.
- 섭취(攝取) 실행 : 고기 치유(lv4) 발동 중.
[섭취(攝取) - 괴수의 살을 먹으면 피가 맑아지며, 고기 치유(Meat cure) 스킬이 발동됩니다.]
[고기 치유(lv4) - 스킬이 발동되면, 괴수 고기를 섭취해야 한다. 고기 종류에 따라 힘과 체력, 근력이 오르는 경우가 있고, 피부와 근육 재생이 빨라지는 경우 등 여러 가지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윽! 그거 설마 생고기에요?”
“그래, 괴수 고기야.”
“헉! 괴수 고기엔 독이 있어요. 먹지 마요.”
“난 독에 면역이 있어 괜찮아.”
스킬을 실행하고 고기를 먹자, 살과 근육이 빠르게 회복되는 것을 느낀다.
녹음의 링으로 살펴보자, 살라딘 길드원들이 3킬로미터까지 접근했다.
“이 방향으로 쭉 2시간만 걸었다가 게이트를 찾아가면 놈들의 포위망을 벗어날 수 있을 거야.”
“정말요?”
“그래 놈들은 1시간 거리에 있으니까, 마주칠 일은 없을 거야.”
“근데 그걸 어떻게 알아요?”
“헌터에게 너무 많은 것을 묻는군.”
“아, 죄송해요. 하지만 다친 사람을 두고 그냥 가는 건 예의가 아니죠. 함께 달아나요.”
어이없어 피식 웃어줬다.
“내가 지금 뭐하는 거 같아?”
“그거야 놈들을 피해 도망치고 있죠.”
“아니, 나는 지금 놈들을 사냥하고 있는 거야.”
“네?”
김서라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은 이놈들을 유인하려고 일부러 모습을 드러낸 거야. 이제 추격대가 모두 죽었으니, 저들은 나를 추격하기 위해 큰 덩어리를 쪼개기보단, 블랙 드라칸을 잡고 게이트를 클리어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꿀 거야. 그럼 나는 그들의 뒤를 야금야금 치는 거지. 무슨 말인지 알아들어?”
“...”
“그리고 네가 있으면 오히려 걸리적거려. 싸움에 방해가 된다.”
“아, 알았어요. 아무튼, 베이스 캠프로 살아 돌아온다는 거죠?”
“물론이지.”
“그럼 이 게이트에 나가면, 밥 한번 먹어요. 내가 비싼 거로다 거하게 쏠게요.”
어디서 많이 듣던 대사였다.
내가 연희에게 자주 했던 말.
그녀에게 S급 게이트를 클리어하고 돌아오면 정식으로 데이트하자고 했다.
연희에게 매우 비싼 음식을 사주겠다고 했지만, 약속은 지키지 못했다.
그녀는 지금도 그 게이트에서 고독하게 살아 있을 것이다.
그녀를 구하기 위해 한시도 쉴 수가 없었다.
그렇게 백정의 칼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각오를 다진다.
괴수 고기를 섭취하자, 몸이 한결 가뿐해졌다.
“놈들고 오고 있다.”
“그럼, 저 가볼게요.”
김서라가 몸을 돌려 내가 알려준 방향으로 움직였다.
그녀는 뭐가 아쉬운지 자꾸 뒤를 힐끔힐끔 쳐다보면서 사라졌다.
이미 죽은 자들에게 필요 없는 아이템들을 모두 챙겨 넣었다.
아쉽게도 레전더리 아이템은 없었지만, 유니크 아이템만 서른 개가 넘었다.
그리고 A급 괴수를 잡을 때보다 경험치가 몇 배나 빨리 올랐다.
멀지 않은 나무 위에 그림자 반지를 이용해 조용히 숨었다.
이곳에서 녹음의 링으로 놈들이 오는 방향을 확인하고, 상처가 아물 때까지 쉴 생각이었다.
***
살라딘 길드는 예상대로 더는 헌터들을 나눠서 나를 쫓지 않았다.
대신 블랙 드라칸의 둥지를 찾아 빠르게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가면서 A급 괴수들이 출몰했고, 전투가 벌어졌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살라딘 길드원이 하나씩 사라졌다.
“제길, 이게 몇 명째야?”
“열셋입니다.”
“야! 이 새끼야, 그걸 누가 몰라!”
김상엽은 지금 화가 잔뜩 올라있었다.
지금까지 나태준에게 당한 헌터가 모두 28명이다.
그렇게 야금야금 헌터가 사라지는데, 놈을 잡을 수가 없었다. 만약 헬하운드라도 있었다면, 냄새로 추격했을 텐데, 그놈이 먼저 당하는 바람에 본진 헌터 중에는 사냥개로 쓸만한 소환수가 없었다.
“블랙 드라칸의 둥지를 발견했습니다!”
정찰을 보낸 헌터가 돌아와 보고했다.
괴수의 둥지는 절벽 위에 있었다.
“괴수가 둥지에 있더냐?”
“어미는 없고, 새끼가 한 마리 있습니다.”
“새끼라...”
김상엽이 머리를 굴렸다.
“이곳에 함정을 만든다.”
“어떻게 말입니까?”
“새끼를 데려와야지. 그리고 주변에 잠복조 대기 시키고, 나태준 이놈도 여기서 사냥한다.”
헌터들이 괴수와 태준을 잡기 위한 함정을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숲속이었기에 그들의 대화는 모두 태준의 귀에 들어가고 있었다.
‘좋아, 여기서 삼 분의 일을 줄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