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8
78. A등급 게이트(4).
거상 길드의 이태성과 이번 거래의 조건은 하나였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A등급 게이트를 클리어한다.
살라딘 길드원들을 줄이는 것은 S급 괴수 블랙 드라칸을 잡기 위한 포섭일뿐 목표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저들은 자신을 죽이기 위해 함정을 파고 있었다.
그렇다면, 최선을 다해 상대해줄 수밖에.
“아악!”
어둠 속에 여자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김상엽과 살라딘 길드의 헌터들이 총알처럼 달려왔다.
“무슨 일이야?”
“서인해가 죽었습니다.”
“뭐?”
자신이 만든 돌골렘에 깔린 서인해는 피떡이 되어 있었다.
“나태준, 이 개새끼!”
“벌써, 여섯 명째입니다. 무슨 방법을...”
“시끄러워, 나도 아니까.”
옆에서 함께 작업하고 있던 헌터는 얼이 빠진 모습이었다.
2인 1조가 되어 땅을 파고 커다랗고 뾰족한 통나무를 박고 있었다.
울타리를 만드는 것이었다.
이는 나태준이 도망치지 못하게 하는 효과와 괴수가 땅으로 쉽게 달아나지 못하게 하려는 트랩이었다.
“그놈 어디로 갔어?”
“저, 저쪽 숲으로 들어갔습니다.”
“어떻게 당한 거야?”
“그, 그것이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헌터가 천천히 방금 상황을 떠올렸다.
“아! 갑자기 놈이 달려들어 서인해가 골렘으로 막았고, 전 검을 겨눴죠. 그런데 놈이 서인해의 옆으로 스쳐 지나가면서 단검을 두 번 휘둘렀습니다. 그게 답니다.”
“겨우 검을 두 번 휘둘렀는데, A급 헌터가 죽었다?"
“네, 검이 짧아서 절대 맞을 거리가 아니었습니다.”
“놈이 검기까지 다루는 건가?”
“하지만 A등급 헌터 중에서 검기를 쓰는 헌터는 없지 않습니까?”
“그렇겠지, 놈이 S급이 아니라면, 그럼 그런 무기가 있겠군.”
김상엽은 기억을 떠올렸다.
마검이나 신검 중에서 검기를 쏘아내는 아이템이 몇 개 떠올렸다.
이런 무기들은 유니크 등급만 돼도, 가격이 어마어마했다.
이연희가 쓰는 염화의 채찍은 게헤나의 불꽃을 쏘아내고, 도경수가 쓰는 흡혈의 검은 피를 머금으면 검은 마나를 쏘아낸다고 들었다. 이런 무기들은 레전더리급이었고, 그 가격이 부르는 게 값일 정도로 비쌌다.
‘놈을 잡으면 아이템이 아주 후두두 떨어지겠어.’
김상엽이 속으로 웃었다.
그가 싸우는 것을 유심히 봤기에 손에 낀 여러 개의 반지와 팔찌를 보았고, A급 괴수 마그투스를 힘으로 짓밟는 것을 봤다. 다리 쪽에도 아이템이 있는 것이 분명했고, 손에 들린 갈고리와 괴상한 칼 역시 보통 아이템이 아니었으니, 그를 죽이면 그것이 모두 자신의 것이 되는 것이다.
그가 잠시 달콤한 꿈을 꿨다.
“추격대를 꾸릴까요?”
“아니, 그럴 필요 없어. 놈은 다시 온다. 이제부터는 4인 1조로 작업을 한다.”
이번엔 꼭 나태준을 잡을 생각이었다.
***
[A등급 게이트, 남양주]
A등급 게이트의 강함이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다만 몇 달 전 S급 게이트가 발생하고, 그것을 클리어하면서 S등급의 헌터들이 많이 늘어나고, SS등급의 헌터까지 생기면서 그 위력이 약해 보였을 뿐이었다.
하지만 A등급 헌터들도 잠시만 한눈을 팔면 목숨을 잃을 수 있는 무서운 곳이었다.
지금처럼.
푹!
“커억!”
거대한 사마귀 괴수 푸스카(A)의 앞발에 A등급 헌터의 배가 뚫렸다.
“으아아아!”
괴수가 커다란 앞발을 들자, 배가 뚫린 헌터는 공중으로 몸이 떠올랐고, 엄청난 고통에 연신 비명을 질렀다.
“아이스 블라스트!”
최한별이 바닥을 향해 손을 뻗자, 뾰족한 얼음 창과 냉기가 땅 위로 솟아올랐다.
“지금이야, 공격해!”
이수호의 미노타우로스가 땅땅하게 얼은 사마귀 괴수의 다리를 도끼로 내려찍고 있었다.
얼음이 깨지듯, 푸스카의 다리 하나가 산산조각이 났다.
괴수가 놈이 꼼짝 못 하는 사이, 수진의 폭풍의 화살이 날아갔다.
푹! 푹! 푹!
놈의 옆구리에 화살이 박혔다.
“끄아아아가!”
사마귀 괴수가 힘을 모아 다리를 힘껏 들어 올렸다.
그러자 최한별의 얼음이 부서지며 속박에서 풀렸다.
“조심해!”
서걱!
놈이 휘두른 앞발에 미노타우로스 한 마리의 허리가 잘렸다.
“이얍!”
사마귀 괴수의 앞발이 회수되는 순간 조자룡으로 접신한 정기용이, 놈의 배쪽으로 달려들었다.
푸른 검이 휘둘리자, 괴수의 배 쪽에 타격을 입혔다.
푸스카(A)가 고통을 참지 못하고, 몸을 돌렸다.
하지만 그곳에 두 자루의 도끼를 들고 있는 윤상희가 기다리고 있었다.
“어딜! 죽어!”
쩍! 화르르르!
도끼가 적중하자 화염이 쏟아졌다.
괴수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그 순간 몸을 날려 놈의 앞다리를 도끼로 잘라버렸다.
거대한 한쪽 다리를 잃은 놈은 공격력이 반으로 줄었다.
“얼음 창!”
푹! 푹!
“끄에에에!”
최한별의 얼음 창이 괴수의 옆구리에 연이어 박혔다.
그리고 미노타우로스 두 마리가 뒤에서 덮쳐 놈의 배를 난도질했다.
화살도 날아오고, 온몸을 난자당한 괴수는 더는 버티지 못하고, 앞으로 쓰러졌다.
“조심해! 또 온다!”
“막아!”
하지만 쉴 순 없었다.
사마귀 형 괴수 푸스카는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
지금 이곳엔 국가 헌터원 소속 100여 명의 헌터들과 유일하게 헌터 협회에 들지 않고, 대한민국 10위안에 랭크되어 있는 혜성 길드의 헌터 300여 명이 괴수와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A등급 헌터들이야 어떻게든 피하고, 막는다고 하지만, B등급 이하의 헌터들은 계속 숫자가 줄고 있었다.
그때였다.
키가 큰 헌터 하나가 게이트 안으로 들어오면서 손을 뻗었다.
“중력장!”
그의 손끝에서 시작된 무형의 기운이 괴수의 머리를 향했다.
그 순간.
괴수의 머리가 일그러지기 시작하더니, 눈과 코, 귀, 입에서 푸른 피를 토해내더니.
빠직!
머리통이 깨졌다.
“모두 힘을 내라!”
사내는 헌터들을 몰아붙이고 있는 두 마리의 A급 괴수에게 달려가 양손을 뻗었다.
“중력장!”
퍼컥! 퍽!
양쪽에 있던 두 마리 사마귀 괴수의 다리가 일그러지더니 터져버렸다.
사마귀들은 중심을 잃고 쓰러졌고, 헌터들이 그 위를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와! 이철용이다!”
“정말? SS급 헌터 이철용이란 말이야?”
헌터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국가 헌터원의 최고 고수이자, 헌터원에서 유일한 SS급 헌터.
그의 등장에 헌터들의 사기는 하늘을 찔렀다.
“어서 공격해!”
“이철용을 따르자!”
이철용이 거대한 괴수 사이를 다니며 다리를 집중적으로 공격했고, 사마귀 괴수들은 균형을 잃고 쓰러졌다.
그러자 헌터들이 달려들어 마무리했다.
겨우 뜨거운 차 한잔 마실 시간에 십여 마리의 푸스카가 쓰러졌다.
“와아아! 괴수를 잡았다!”
헌터들의 환호성이 컸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이었다.
“저기 괴수가 온다!”
이번엔 반대편 언덕 위에서 새까맣게 닭대가리 괴수 잘루스(D)가 몰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로 닭대가리를 잡아먹으며 검치호랑이 괴수 마카이로(B) 수백 마리가 몰려오고 있었다.
쿠쿠쿠쿠!
땅이 울렸다.
엄청난 숫자의 괴수들!
이것이 A등급 게이트의 무서움이었다.
헌터들이 기가 질린 표정으로 주춤하자, 이철용이 손을 들고 앞으로 나섰다.
“물러서지 마라!”
그가 앞으로 달리며 바닥을 향해 손을 뻗었다.
“중력장!”
펑! 펑!
대기가 찢어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공간이 일그러졌다.
이철용은 그 공간을 밟고 올라섰다.
“오!”
“저건! 공간 밟기다!”
S급 헌터 시절 이철용의 장기 기술이었다.
워낙 유명한 헌터였기에 기술 이름과 펼쳐지는 모습은 알고 있었지만, 그 원리를 아는 사람은 그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그저 그가 기술을 펼칠 때면 항상 “중력장”이라고 소리를 질렀기에 중력을 이용한 기술이라고 막연히 생각할 뿐이었다.
이철용이 그가 만든 일그러진 공간을 밟고 높이 올라서더니 두 손을 몰려오는 괴수를 향해 뻗었다.
“대중력장!”
쩌저저저저적!
괴수들 머리 위쪽으로 엄청난 크기의 공간이 일그러졌다.
그리고 이철용이 손을 아래로 내렸다.
콰콰콰콰콰쾅!
공간이 아래로 폭사하면서 엄청난 굉음이 퍼졌다.
그리고.
“꾸에에엑!!”
대지를 울리는 커다란 괴성과 함께, 아래에 깔린 괴수가 모두 압사했다.
한 번에 수백 마리가 죽자, 언덕을 뒤덮으며 몰려오던 닭대가리 괴수들이 방향을 틀었다.
눈앞에 인간 헌터를 두려워함이다.
“모두 공격하라! 인류를 구해라!”
이철용이 손을 뻗으며 명령했다.
그러자.
“우와와와와!”
“괴수 새끼들 다 죽여!”
그 순간 이철용의 몸에서 빛이 나는 것 같았다.
헌터들이 몰려가 괴수들을 사냥하기 시작했다.
“허! 꼭 우리 대장 같지 않아?”
정기용이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아니, 우리 대장보다 훨씬 세겠는데.”
“그럴 리가 없어요.”
수진이가 고개를 흔들었다.
“나는 아직 태준 오빠가 진 것을 본 적이 없어요.”
“에이, 그건 저렇게 강한 헌터를 만나지 못해서 그런 거겠지. 저 사람이 금방 괴수 잡는 거 못 봤어?”
이수호가 나섰다.
“그거야 이철용이 SS급 헌터니까 그런 거겠죠. 우리 형이 S급만 돼도 저 사람을 이길 겁니다.”
“과연 그럴까?”
정기용이 고개를 저었다.
“지금 누구 편을 드는 거예요?”
한수진이 앙칼지게 물었다.
“편을 드는 게 아니라 현실을 직시하자는 거지. 저 사람이 강한 건 다들 봤잖아.”
“그래도 오빠가 이길 거에요.”
“에이, 아무리 그래도 지금 당장 싸우면 태준씨라도 힘들걸.”
“아니라니까요!”
“둘 다 그만들 해!”
윤상희가 나섰다.
“그런 쓸데없는 생각 말고, 괴수나 잡아.”
“그럽시다.”
정기용이 검을 들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최한별은 살짝 한숨을 쉬었다.
‘태준씨 없이 이 팀이 얼마나 버틸까...’
다섯 명의 헌터들이 B등급 괴수 마카이로 무리를 향해 달렸다.
그리고 하늘 위에서 이철용이 태준의 팀이 사냥하는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
“누가 내 이야기를 하나?”
귀가 간지러웠다.
태준은 절벽 위에서 체력을 보충하고 있었다.
이중으로 된 울타리가 산 중턱에 쳐지고, 그 정 가운데 새끼 블랙 드라칸이 묶여 있었다.
새끼라고 우습게 볼 수 없는 것이 조금 전 방심한 B급 헌터 한 명이 그 앞을 지나가다 잡아 먹혔다.
‘대체 괴수를 어떻게 잡으려고 하는 거지?’
날개 달린 괴수를 땅으로 유인하는 거야 새끼를 잡아 왔으니 가능할 것 같았다. 하지만 땅으로 내려온 그 거대한 놈을 어떻게 사냥할지는 감이 오지 않았다.
자신이 직접 본 블랙 드라칸은 A급 괴수를 이라이즈를 단번에 낚아채 간 무시무시한 놈이었다.
‘김상엽이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어.’
A급 헌터와 B급 헌터를 합쳐 아직 수십 명이나 있었기에 S급 괴수를 쉽게 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클리어 조건이 S급 괴수 하나만 죽이면 된다는 것은 그만큼 그 괴수를 잡기 힘들다는 뜻이기도 했다.
전에 연희에게 듣기론 보통은 A에서 F등급까지 수천, 수만 마리의 괴수를 잡고, 마지막에 S급 괴수를 잡으면 클리어하는 게이트가 대부분이라 했다.
그리고 어떤 S급 괴수는 자신이 수 일 동안이나 수십 번이나 싸워서 겨우 물리친 놈도 있다고 들었다.
괴수와의 싸움을 머릿속에 떠올릴 때였다.
거대한 어둠이 그 일대를 스쳐 지나갔다.
‘왔다!’
거대한 놈은 울타리가 쳐진 지역을 뱅뱅 돌고 있었다.
둥지에 있어야 할 새끼가 엄한 곳에서 울고 있었으니, 어미는 얼마나 황당할까?
공중을 몇 번이나 돌았지만, 주변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괴수가 서서히 고도를 낮추고, 거대한 날개를 펄럭거리며 땅으로 내려왔다.
블랙 드라칸은 울타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착지했고, 새끼를 향해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쿠아아아아아!”
괴수가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숲이 들썩이고, 주변에 있던 괴수들이 달아났다.
쿵! 쿵! 쿵!
블랙 드라칸, 괴조가 울타리를 넘어 새끼에게 다가갔다.
새끼가 묶여 있는 쇠사슬과 이상한 밧줄을 이빨로 뜯었다.
툭!
탱탱한 밧줄이 끊어졌다.
그러자,
쾅! 우르르르!
굉음과 함께 주변 100여 미터가 땅속으로 꺼졌다.
블랙 드라칸은 새끼와 함께 땅속으로 들어갔다.
“모두! 총공격!”
헌터들이 숲과 바위 뒤에서 튀어나와 마법과 화살, 총알을 난사하기 시작했고, 근접 계열 헌터들은 거대한 바위를 쉴 새 없이 구멍으로 던졌다.
그리고 김상엽이 자신의 기술을 펼쳤다.
그는 염력을 이용해 거대하고 뾰족한 통나무를 들어 구멍 속으로 떨어뜨렸다.
“쉬지 마라, 클리어 알람이 울릴 때까지 계속 공격해라!”
그 시각 절벽 위에서 나태준이 그의 기술을 눈여겨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