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살자-80화 (80/149)

# 80

80. A등급 게이트(6).

김상엽은 강남길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무슨 소리지 나태준을 죽인다고?”

“아쉽지만, 그럴 생각이야.”

“크큭, 그놈이 고작 나를 잡기 위한 미끼였다고?”

김상엽은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자신이 본 나태준은 이런 일에 쓰고, 버릴 정도의 인물이 아니었다.

살라딘 길드원들이 그에게 마흔 명 가까이 당했다.

당할 땐 비열하고 더러운 놈이라 욕했지만, 그 솜씨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뛰어난 인물을 죽인다는 말이 강남길의 입에서 튀어나오자, 이건 거상 길드장인 이태성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 아님을 직감했다.

“네놈의 판단이겠지?”

“뭐?”

“나태준을 죽인다는 거 순전히 네놈의 판단일 거야. 안 그래?”

“후후, 왜 그렇게 생각하지?”

강남길은 말을 하면서 부하 셋을 김상엽의 퇴로로 보냈다.

이번엔 반드시 놈을 잡을 생각이었다.

김상엽은 벌써 두 번이나 포위망을 뚫고 달아났다.

그의 염력은 A급 헌터 조차 물러서게 만들고, 바위까지 날아오게 할 정도로 강력했다.

“그야 자신보다 뛰어난 사냥개가 나타났으니까.”

“하하하, 이거 너무 정확해 부인하지 못하겠군.”

강남길은 자신의 마음을 들켰지만, 기분 좋게 웃고 있었다.

“길드장은 그놈을 이용해 너희 살라딘 길드보다 더 큰 것을 잡으려 하지, 하지만 그건 안될 말이야. 그렇게 되면 내 존재가 너무 하찮아 보이잖아. S급 헌터가 돼서 이제 큰 활약을 하기 시작했는데 말이지. 게다가 김서라, 그년이 나태준에게 구함을 받고 길드원들에게 떠들면서 그놈의 평만이 너무 올랐어. 사실 한두 번 정도 더 쓰다가 폐기 처분할 생각이었는데...”

강남길 역시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입맛을 다셨다.

김상엽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물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인걸? 네놈이 아무리 S급 헌터라고 해도 나태준은 만만한 놈이 아니던데. 어떻게 처리할 생각이지? 길드원들도 지켜보고 있을 텐데?”

“크큭! 곧 죽을 놈이 궁금한 것도 많네. 여기 있는 일곱 명, 모두 내 사단이야. 이태성도 아니고 나에게만 충성하는 자들이지. 이 정도면 나태준을 잡기에 충분해.”

“뭐? 넌 그놈을 너무 모르고 있어. 십중팔구 당하는 건 네놈들일 거야.”

“후후, 아무리 그놈이 강해도 우린 일곱이야. 게다가 나는 S등급 헌터라고. 그리고 놈은 우릴 같은 편이라고 생각해. 그러니 방심한 틈을 타서 소리소문없이 죽일 거야.”

“멍청하긴, 그놈은 방심 같은 거 하지 않아. 같은 편이면서 그걸 몰라?”

“같은 편이니까 당연히 방심하는 거야.”

김상엽이 고개를 흔들었다.

“들었지? 이놈들은 너도 죽일 생각이야.”

“뭐?”

김상엽이 자신들의 뒤쪽을 보고 말을 하고 있었다.

“우습군. 그런 식으로 우리 시선을 빼앗고 또 달아날 생각인가?”

김상엽이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휴! 정말 저놈은 인정할 수밖에 없군.”

김상엽이 계속 알 수 없는 소리를 했다.

푹!

“크억!”

강남길과 포위한 헌터들이 등 뒤에서 들린 신음에 소름이 돋았다.

고개를 돌리자, 복면한 헌터의 배 앞으로 시퍼런 칼이 튀어나와 있었다.

배가 뚫린 이는 강남길에게 포섭당한 살라딘 길드의 암살자 헌터였다.

배를 뚫은 칼이 뽑히자, 복면 헌터가 앞으로 쓰러졌다.

그 뒤로 백정의 칼과 갈고리를 든 사내가 붉은 눈을 번뜩이고 있었다.

“나, 나태준?”

어둠 속에 그의 모습은 도살자 그 자체였다.

“언제부터 거기 있었지?”

“처음부터. 남의 이야기를 엿듣는 게 취미라...”

“그, 그게 들어봐. 지금 한 말은 모두 저놈을 방심시키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이야. 진심이 아니라고.”

“훗. S급 헌터가 말이 많군.”

“제길, 이렇게 된 거 두 놈 다 죽여!”

나태준 바로 옆에 있던 헌터가 검을 찔러왔다.

하지만.

“큭!”

자신의 몸이 갑자기 말을 듣지 않았다.

김상엽이 염력을 쓴 것이다.

촤악!

덕분에 헌터는 검 한번 제대로 휘둘러보지 못하고, 나태준의 칼에 머리가 떨어졌다.

김상엽 뒤에 있던 헌터가 달려들어 김상엽의 등을 찔렀다.

그는 앞으로 쓰러졌다.

그 사이 나태준은 또 다른 헌터에게 갈고리를 던졌다.

“으악!”

파지지지직!

전격 마법사가 비명을 지르고 뒤로 쓰러지면서 마법을 난사했다.

“크윽!”

“뭐야? 왜 우리에게...”

다리에 걸린 갈고리가 당겨진 것이다.

마법사가 공포에 질려 사방으로 전격 마법을 날렸다.

그의 전격은 적과 아군을 구별하지 못했다.

서걱!

“크아아악!”

마법사의 발목이 뎅강 잘려나갔다.

그의 마법 공격은 뛰어났지만, 신체는 태준의 날카로운 갈고리를 버티지 못했다.

잘린 다리에서 피가 뿜어지자, 마법사는 공황에 빠져 더욱 강렬한 마법을 쏘아댔다.

퍽!

결국, 강남길이 달려들어 방패로 머리를 때려 쓰러트렸다.

“저놈을 죽여!”

나태준은 이미 숲으로 달리고 있었다.

이제 남은 헌터는 강남길을 포함해 넷.

숲에 다다르자, 태준이 몸을 돌렸다.

“죽어!”

화륵! 화르르르!

태준을 향해 불타는 주먹이 휘둘러졌다.

권법가 헌터는 불타는 강철 장갑을 착용하고, 연타기술을 선보이고 있었다.

태준은 칼과 갈고리로 막았다.

차창창창!

저 주먹에 한 대라도 맞는다면, 윤상희의 화염의 도끼처럼 거센 불꽃이 태준을 덮을 것이다.

“뭐해? 협공해!”

강남길의 명령에 나머지 두 헌터도 달려들었다.

1대3의 대결.

검을 든 샤먼 헌터와 도끼를 든 전사 계열의 헌터까지 세 사람의 협공은 무시무시했다.

게다가 평소 합을 잘 맞춘 이들이라 나태준을 점점 몰아붙였다.

강남길은 검과 방패를 들고 뒤에서 조용히 태준의 빈틈을 찾고 있었다.

“으아!”

콰앙!

전사가 휘두른 도끼가 거대한 나무를 일격에 박살 냈다.

도끼에 엄청난 힘이 깃들어 있는 것이, 힘 관련 아이템이 한둘이 아닌 것 같았다.

“죽어!”

퍼퍼퍼퍽!

주먹 한번을 뻗었을 뿐인데, 나무에 네 개의 탄 자국이 생겼다.

불타는 헌터의 주먹은 엄청난 스피드로 태준을 몰아붙였다.

게다가 날카로운 검을 든 샤먼까지 불쑥불쑥 검을 찔러오니, 방어하는 것만으로도 벅차 보였다.

“응?”

갑자기 강남길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모두 숲에서 나와라!”

“네?”

칠흑 같은 어둠.

달이 구름에 완전히 가려졌다.

게다가 이곳은 숲.

순간 헌터의 뛰어난 시력으로도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촤악!

“크아아아악!”

권법가의 불타는 팔이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백정의 칼에 팔꿈치까지 잘린 것이다.

오른팔이 잘린 그는 비명을 지르며 숲 밖으로 뛰쳐나갔다.

동료들도 권법가의 불타는 팔을 보고서 밖으로 달렸다.

그렇게 모두 빠르게 숲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촤르르르! 턱!

“큭!”

밖으로 나와 안심하던 샤먼 헌터의 어깨에 뭔가 날카로운 것이 걸렸다.

갈고리!

그 날카로운 것이 당겨지자, 샤먼 헌터가 뒤로 넘어졌다.

그리고.

“으아아아!”

숲으로 끌려들어 갔다.

도끼를 든 헌터가 달려가 봤지만, 이미 비명이 끊겼다.

“따라 들어가지 마라!”

강남길의 명령에 뒤로 물러섰다.

“저놈은 어떻게 저런 어둠 속에서도 볼 수 있는 겁니까?”

도끼를 든 헌터도 살짝 겁에 질려 있었는지 목소리가 떨렸다.

“뭔가 아이템이나 스킬이 있겠지.”

이럴 때 전격 마법사가 있었다면, 번개로 주변을 환하게 밝힐 수도 있었을 것이다.

“괜찮아?”

괜찮을 리가 있겠는가?

팔이 잘린 권법가는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침까지 흘리고 있었다.

“빠, 빨리 팔을 찾지 못하면, 영원히 외팔이가 될 겁니다.”

지금이라도 팔을 찾아서 베이스 캠프나 게이트 밖으로 돌아가면 치료사가 있었기에 적은 확률이지만, 팔을 붙일 수 있었다.

그때였다.

구름이 흘러가 달이 모습을 보였다.

그러자, 나무 사이로 달빛이 비쳤다.

“팔을 찾으러 가야겠습니다.”

“안돼!”

권법가를 말렸지만, 그는 막무가내로 들어갔다.

“제가 돕겠습니다.”

평소 친분이 두터운 두 사람이었기에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하지만 강남길은 들어가지 않았다.

달 주위에 구름이 많았기에 언제 어둠이 덮일지 몰랐다.

숲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놈의 함정에 걸리는 짓이었다.

“으아아! 죽어!”

쾅! 쾅! 쾅!

나무에 구멍이 뚫리며 탄 냄새가 진동했다.

하나의 팔로 어둠 속에 숨어있을 태준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두 팔을 쓸 때보다 오히려 하나만 쓰자 그 위력이 증가했다.

도끼를 든 전사는 엄청난 괴력을 발휘하며, 주변의 나무를 아예 부숴버리고 있었다.

곧 큰 나무 옆에서 권법가가 자신의 잘린 팔을 발견했다.

“찾았다!”

권법가가 머리를 숙이는 그 순간 위에서 갈고리가 날아와 턱에 박혔다.

“컥!”

쇠사슬이 당겨지자, 권법가는 나무 위로 사라졌다.

마치 공포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어, 어디 갔어?”

도끼를 든 동료가 권법가를 찾았지만, 그는 어디에도 없었다.

“이 새끼! 내가 죽여주마!”

헌터가 폭주했다.

도끼를 휘둘러 나무를 닥치는 대로 베고 부숴버렸다.

하지만 나태준은 이미 그곳에 없었다.

헌터가 한참을 휘두르다가 힘이 빠졌는지, 밖으로 뛰쳐나갔다.

숲 밖으로 거의 나올 때였다.

콰앙!

큰 소리와 함께 커다란 나무가 쓰러지며 자신을 덮쳤다.

“어딜!”

콰직!

헌터는 도끼를 휘둘러 덮쳐오는 나무를 박살 냈다.

한데 그 순간 나무 뒤에서 빛이 번쩍였다.

“커...커헉!”

백정의 칼이 그의 목을 스쳐 지나갔다.

쿵!

헌터가 도끼를 떨어트리며 앞으로 쓰러졌다.

나태준이 앞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둘만 남자 적막감에 휩싸였다.

“강남길, 싸울 셈인가?”

나태준의 물음에 강남길이 검을 겨누고 방패를 몸 뒤로 보냈다.

“물론이다. 나를 앞에 놈들과 같다고 생각지 마라!”

패애앵!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방패가 빠르게 날아왔다.

급하게 백정의 칼을 올려 막았다.

카앙! 캉! 캉!

방패가 미친 듯이 회전하며 태준을 압박했다.

‘큭! 대단한 힘이다.’

난폭한 디울리스(A)의 팔찌(유니크)를 사용 중임에도 팔목과 팔꿈치가 찌릿찌릿하게 울렸다.

태준이 갈고리를 올려치자, 방패는 옆으로 튕겼다.

사실 진짜 놀란 것은 그다음이었다.

옆으로 날아간 방패가 공중에서 방향을 바꿔 강남길의 손으로 날아갔다.

척!

“귀환의 룬을 박았군.”

“호! 제법 안목은 있군.”

방패가 귀환하는 속도가 자신의 갈고리보다 빨랐다.

그렇다면, 유니크급이 아니라, 레전더리급 귀환의 룬이 박혀 있을 가능성이 컸다.

그의 손에 들린 검은 글라디우스(Gladius), 근접전투에 특화된 무기로 손잡이까지 90cm가 넘지 않았다.

저 검도 보통 검은 아닐 것이다.

최소 유니크 등급, 강남길이 S등급 헌터가 되었으니 이태성이 레전더리 아이템을 사줬을지도 모른다.

“후후. S급 헌터가 되고, 처음으로 온 힘을 다해 싸워보겠군.”

“이상한 일이군. 난 매번 온 힘을 다해 싸우는데.”

“뭐? 네놈의 주둥이를 찢어주지.”

강남길이 검을 겨눴다.

상대는 S급 헌터, 역시 쉽게 볼 인물은 아니었다.

그의 몸에서 뿜어지는 강력한 투기가 느껴졌다.

하지만 보아온 그는 게이트 공략은 뒷전이었고, S급 헌터가 된 지 겨우 4개월 남짓.

이길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야!”

강남길이 방패를 던졌다.

그리고 동시에 검을 겨누며 달려들었다.

매섭게 회전하며 날아온 방패를 막자, 그의 검이 찔러졌다.

갈고리를 아래로 휘둘러 막았다.

[흉포한 에이션트 마그투스의 각반을 사용합니다.]

거센 바람 소리와 함께 앞발을 놈에게 휘둘렀다.

그는 몸을 틀며 피하고, 주먹을 내 가슴을 향해 뻗었다.

파앙

“크윽!”

숨이 막혔다.

놈이 휘두른 주먹에 어느새 방패가 날아와 붙어 있었다.

칼의 면으로 막긴 했지만, 충격이 상당했다.

귀환의 룬을 사용하면 방패가 날아오는 것뿐만 아니라, 몸에서 방패가 절대 떨어지지 않는 것 같았다.

그 순간 놈의 검이 아래에서 위로 휘둘렸다.

짧은 궤적과 빠른 속도.

뒤로 물러서면서 갈고리로 검을 밀어냈다.

그러자 다시 방패가 날아온다.

강남길이 방패와 글라디우스를 번갈아가며 휘두르자, 속절없이 뒤로 밀렸다.

둘 다 엄청난 힘이 실려 있었기에 막지 않을 수 없었다.

팡! 캉!

“조금 전에 그 자신감은 어디 갔을까? 크크큭!”

강남길은 자신감에 넘쳤다.

막상 태준과 대결하자, 별거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죽어! 죽으란 말이야!”

글라디우스가 갑자기 눈앞에서 흔들렸다.

그리고 검이 순간적으로 파도처럼 물결쳐 보였다.

역시 그의 검도 평범한 것은 아니었다.

샤악! 샥!

연이은 공격에 어깨와 팔, 허벅지와 옆구리까지 붉은 줄이 그어졌다.

검은 슈트 사이로 피가 배어 나왔고, 핏방울이 아래쪽으로 떨어졌다.

“무방비에 있는 놈들은 쉽게 죽여놓고선 정면 대결은 형편없군. 어디 이걸 받아봐라!”

몸까지 실어 강하게 휘둘러지는 방패를 칼과 갈고리를 교차해 막았다.

파앙! 치이익!

뒤로 4미터나 밀려서 겨우 멈춰섰다.

“크크큭! 내 방패 공격에 오금이 저리지?”

나태준이 무심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조금 전부터 공격 패턴이 반복되던데, 이제 더 보여 줄 건 없나?”

“뭐? 건방진 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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