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3
83. 내 식구를 건들지 마라(2)!
달린다.
방금 김서라의 전화를 받았다.
그녀의 목소리는 떨렸고, 최한별이 죽을지 모른다는 말을 했다.
그 순간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달리고 있었다.
A급 게이트에서 나오고, 살라딘 길드와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임영호와의 대결에서도 나는 살아남았고, 여의도의 작은 오피스텔에서 다음 A급 게이트 공략을 준비하며 체력을 비축하고 있었다.
그런데...
‘최한별, 그녀를 지켜야 한다.’
연희를 지키지 못했다.
함께 게이트로 들어가지 못해서 지키지 못했다는 것은 변명에 불과했다. 그녀가 걱정됐다면, 어떻게 해서든지 함께 S급 게이트에 들어가야 했다.
그녀 혼자 보냈기에 비열한 자들에게 당한 것이다.
더는 자신의 지인, 아니 식구가 그런 꼴을 당하게 내버려 둘 순 없었다.
이를 깨물었다.
순식간에 원효대교를 건너 용산으로 달렸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오늘과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게 하려고 팀원들까지 모두 연락을 끊고, 혼자 나온 것인데...
그런데 결국 일이 벌어졌다.
‘제발, 살아만 있어라.’
거상 길드의 건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입구에 길드 헌터들이 지키고 있었다.
“비켜!”
“죄송합니다. 들어갈 수...”
빠각!
태준의 주먹에 헌터가 날아가 벽에 부딪혔다.
인벤토리에서 백정의 칼을 꺼냈다.
“비켜! 아니면 모두 죽는다!”
“헉!”
태준의 서슬 퍼런 모습에 헌터들이 주춤거리며 길을 열었다.
그들은 왜 나태준이 달려왔는지 모르고 있었다.
순식간에 계단을 올랐다.
그리고 맨 꼭대기 층의 이태성 사무실의 문을 향했다.
[흉포한 에이션트 마그투스 각반을 사용합니다.]
콰앙!
태준의 발길질에 문이 완전히 산산조각이 났다.
“헛!”
“나태준, 네가 여길 어떻게?”
태준의 등장에 이태성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분명 태준이 묵는 오피스텔 1층 로비에 사람을 심어 두었고, 그가 나가고 들어가는 것을 24시간 감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태준은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5층에서 뛰어내러 달려왔기에 보지 못했고, 연락이 닿지 않았다.
“꺼져!”
태준이 몸을 날리며 달려들었다.
이미 축 늘어진 최한별의 멱살을 잡고 막 강철 주먹을 날리려던 윤중석은 당황했다.
최한별을 놓고, 나태준을 향해 주먹을 강하게 휘둘렀다.
“광기의 주먹!”
권투사의 빠른 주먹보다 2배나 빠른 주먹이 날아갔다.
흥분한 그를 쓰러트리면, 이태성의 눈에 들어 단숨에 이인자로 오를 수도 있음이다.
퍼억!
“어억!”
하지만 커다란 발이 먼저 윤중석의 배에 적중했다.
윤중석은 순간 눈이 튀어나올 것 같은 충격에 정신을 잃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태준의 공격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벽에 부딪혀 바닥에 쓰러진 그를 향해 무자비한 발길질이 이어졌다.
쾅! 쾅! 쾅!
태준의 흉포한 발이 그를 걷어차자, 온몸의 뼈란 뼈는 모두 박살 났다.
“그만!”
이태성이 소리를 쳤다.
태준이 발길을 멈추고, 최한별을 살폈다.
그녀는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고, 모두 그녀가 흘린 피였다.
그녀의 코에 손을 가져갔다.
숨소리가 얕고 약하다.
그는 겨우 죽지 않고 숨만 쉬고 있었다.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군. 최한별은 네가 알고 있는 옛 동료가 아니야. 그녀는 국가 헌터원의 첩자야.”
이태성은 침을 삼키며 말을 이었다.
“내 말 믿어. 그년은 너를 다시 국가 헌터원 쪽으로 빼돌리려고 우리를 찾아왔어. 이건 최규환과 이철용이 시킨 일이지. 내 말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최한별이 눈앞에서 저들에게 당했던 모습만 떠올랐다.
“왜지?”
태준의 낮게 깔린 음성.
듣는이들이 순간 소름이 돋을 정도로 분노를 강하게 억제하고 있었다.
“말했잖아. 저년이 이철용, 최규환의 첩자라고.”
태준이 백정의 칼을 들고 몸을 돌렸다.
“이유를 말하라고, 씨발 것들아!”
이미 분노에 눈이 뒤집혔다.
“왜? 왜 그녀를 이렇게 만들었지? 왜 내 식구를 이렇게 만든 거냐고?”
이태성이 아무리 말해도 태준은 들리지 않았다.
“안 되겠다! 놈을 막아!”
이태성의 명령에 헌터들이 태준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가 밖으로 몸을 빼면서 소리쳤다.
“나태준이 우리를 배신했다! 놈을 죽이는 자에게 전설급 아이템을 주겠다!”
이태성은 계단을 내려가고 건물 안에 있던 거상의 헌터들은 반대로 올라가고 있었다.
나태준을 죽이면 레전더리급 아이템을 준다!
이건 일확천금이나 마찬가지였다.
헌터들이 우르르 이태성의 사무실로 들어갈 때였다.
콰앙!
안에서 사람 몸뚱어리가 총알처럼 튀어나왔다.
“헉! 박영배가 죽었어.”
거상에게 가장 강력한 마법사가 죽었다.
그것도 두 다리가 잘린 상태였다.
“으아아아악! 그, 그만!”
안에서 비명이 들렸다.
이건 이태성의 새로운 오른팔인 차인성의 비명이었다.
그는 강남길과 라이벌이었다가 그가 죽자, 그의 자리에 앉은 사람으로 이태성의 최측근이었다.
우두두둑! 빠각!
“커걱!”
뼈가 부러지고, 목이 꺾이는 끔찍한 소리가 밖에까지 들리자, 헌터들이 감히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그리고 안에서 나태준이 나왔다.
한 손엔 백정의 칼을 다른 손엔 갈고리를 들었다.
그래도 한때나마 같은 소속의 헌터들이었다.
태준은 그들에게 바로 손을 쓰진 않았다.
“어떻게 하지?”
“뭘 어떡해, 배신자라고 하잖아. 그리고 저놈을 죽이면 레전더리 아이템을 얻을 수 있어.”
“하지만 나태준이잖아, 저 괴물을 우리가 어떻게 죽여?”
“맞아,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자살행위야.”
그때였다.
뒤에서 한 헌터가 소리쳤다.
“길드장께서 저놈을 죽이는 헌터에게 레전더리 아이템을 세 개 주시기로 하셨다!”
“뭐? 세 개?”
각자의 휴대폰에 단체 문자가 찍혔다.
“우린 숫자가 많잖아.”
“맞아, 아무리 나태준이라고 해도, 혼자서 이 많은 숫자를 어쩌겠어?”
안에서 최한별의 상태를 보고 있던 김서라는 치를 떨었다.
방에 있는 길드원들을 말리려고 뒤늦게 들어왔지만, 그들은 막무가내였다. 그리고 지금 밖에서 아이템에 눈이 먼 헌터들의 계속된 비명에 귀를 막았다.
아무리 팔자가 핀다지만, 목숨보다 좋을까?
태준의 공포를 뒤늦게 깨닫고 도망치는 헌터에 태준의 뒤를 노리고 공격하는 암살자들까지 서로가 뒤엉키고, 좁은 통로에서 혼전이 이어졌다.
갑자기 문밖이 조용해지자, 김서라가 최한별을 안아 들었다.
빨리 치료하지 못한다면 그녀는 죽을 것이다.
복도로 나오자, 피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아, 어리석은 사람들!”
복도와 계단에 동료들의 시체가 널려있었다.
나태준은 경고를 했지만, 그들은 다 합치면 수천억 원이나 되는 레전더리 아이템 3개에 목숨을 팔았다.
계단을 내려오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고향 후배가 죽어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눈도 감지 못하고 죽었다.
누가 먼저 A급 헌터가 되는지 내기하자고 했던 그녀였다.
김서라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죽음이었다.
계단 끝에 내려오자, 태준이 칼을 들고 거친 숨을 쉬고 있었다.
“고맙습니다. 이제 이리 주십시오.”
평소 자신에게 반말하던 그가 존댓말을 했다.
“그녀가 여자친군가요?”
“아닙니다. 한집에 사는 식구입니다.”
태준이 건물 밖으로 나섰다.
“같이 갑시다.”
“아니오. 전 여기가 집입니다.”
김서라는 피비린내 나는 이곳에 남겠다고 했다.
좋든 싫든, 이곳은 그녀의 헌터 삶이 남아 있는 곳이었다.
그랬기에 떠날 수 없었다.
태준이 최한별을 안고 서울역으로 달렸다.
주변에 있던 헌터들이 거상 길드의 건물로 모여들었다.
하지만 곧 헌터 협회에서 사람이 나와 모든 것을 통제했다.
***
“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초주검이 되어 있는 최한별과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나태준.
두 사람의 등장에 윤상희는 눈이 뒤집힐 정도로 놀랐다.
“어서 눕혀!”
윤상희는 최한별의 옷을 벗기고, 목욕탕에 눕혔다.
먼저 물을 채우고, 각종 체력 회복 아이템을 물속에 넣었다.
나태준이 없으니까, 각종 부상이 많아서 큰돈을 주고 장만한 아이템들이었다.
그리고 나태준이 인벤토리에서 괴수의 녹색 피를 꺼내 그녀에게 억지로 먹였다.
“그건 무슨 피야?”
“피스토마의 피에요.”
피스토마는 재생력이 아주 강력한 A급 괴수로 놈의 피를 마시면 신체 재생 능력이 올라간다.
“잘 보살펴 주세요.”
“어디가?”
“이번엔 금방 올 거예요.”
태준은 다시 용산으로 달려갔다.
잠시 후 수진이가 간단한 음식을 사서 돌아왔다.
수진이는 최한별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헉! 어쩌다 이런 거죠?”
“설명하자면 길어.”
윤상희가 이제야 최한별의 호흡이 조금 안정되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휴, 그보다 수호는 어디 있어?”
윤상희가 함께 나간 수호를 찾았다.
“체력 단련한다며 창수 오빠네 가게로 갔어요.”
“아쉽네. 조금만 기다리지, 태준씨 돌아왔다.”
“네? 오빠가요! 어디 있어요?”
그 시각 태준은 이태성을 찾아 나섰다.
거상 길드의 다른 지부도 찾았고, 여기저기 그가 있을 만한 곳을 뒤졌으나,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김서라도 연락을 받지 않았다.
마치 거상 길드가 통째로 사라진 것 같았다.
이태성을 찾을 수 없자, 다시 펜트하우스로 돌아왔다.
***
태준이 다시 돌아오자, 말볼이 미친 듯이 좋아했다.
하지만 최한별의 몸 상태가 중요했기에 욕실로 먼저 향했다.
“어때요?”
“이제 괜찮아. 치료사도 방금 왔다 갔는데, 위험한 고비는 넘겼데. 그런데 어떤 죽일 놈들 짓이야? 뼈가 열여섯 군데나 부러졌데.”
나태준이 입술을 깨물었다.
“제가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급한 연락을 받고 팀원들이 모두 모였다.
창수가 김성하와 애들을 데리고 펜트하우스로 돌아왔다.
팀원들이 게이트로 들어간 기간에는 창수가 말볼과 애들을 돌보고 있었다.
다들 태준이 돌아왔지만, 반가운 티를 내지 못했다.
최한별의 부상 때문이었다.
그녀를 방으로 옮겼다.
“내가 먼저 보고 있을 테니까, 다들 나가 있어.”
곤히 자는 것이, 이제야 혈색이 돌아왔다.
윤상희가 그녀를 지켜보기로 하고, 다들 거실로 나갔다.
“다들 미안해. 내가 너무 늦게왔지?”
“아니에요. 돌아와서 좋아요.”
수진이가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다들 태준을 반겼다.
특히 말볼은 미친 듯이 몸을 비비고, 태준의 얼굴에 침을 바르기 바빴다.
“이놈 못 본 사이에 너무 잘생겨졌는데?”
“그래요? 우린 잘 모르겠던데.”
실제로 그랬다.
주름졌던 얼굴이 펴지고, 두 팔까지 총 여섯 개였던 다리도 두 개는 퇴화하고 네 개로 줄어있었다.
큰 변화가 느껴지는 것은 말볼만이 아니었다.
다들 큰 성장을 한 것이 느껴졌다.
“정기용씨와 이수경씨가 안 보이네.”
수호가 머뭇거리며 다른 동료들의 눈치를 봤다.
이수호가 정기용하고 그래도 제일 친했었다.
“그게 정기용씨는 이철용에게 갔습니다.”
“그렇게 됐군.”
태준이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그도 이철용의 등장을 알고 있었다.
S급 게이트가 발생한 이후, 이철용은 국가 헌터원의 원장이 되었고,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군부대와 정치권의 힘을 모두 결집하고 헌터들을 적극적으로 모집하기 시작했다.
“수경 언니는 지금 B급 게이트를 공략 중이에요.”
수진이가 대답했다.
이수경은 팀원들보다 등급이 낮았기에 그녀도 나름 혼자서 열심히 따라붙고 있었다.
“다들 헌터 등급은?”
수진이가 고개를 숙였다.
“저만 빼고, 다들 A급이 됐어요.”
한수진이 가장 느렸다.
어찌 보면 다른 맴버들보다 경험치를 적게 먹어서인 것 같았다.
그래도 윤상희와 최한별, 이수호는 A급 헌터가 됐다.
정기용도 이번에 게이트를 공략하면서 A등급으로 올랐기에 다들 빠른 성장을 보인 것이다.
그가 이철용에게 붙은 것은 아쉽지만, 원망하진 않았다.
태준은 오늘 낮에 거상 길드에서 있었던 일을 팀원들에게 설명했다.
그리고 자신이 지난 6개월 동안 무엇을 했는지 간략하게 설명했다.
방문이 열렸다.
“한별이가 깨어났어.”
우르르 방으로 몰려갔다.
“좀 어때?”
“으으. 미안해요. 나 때문에...”
겨우 의식을 찾은 최한별의 첫마디는 미안하다는 말이었다.
창백해진 피부에 입술이 다 터져있는 그녀를 보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런 말 하지 말고, 어서 몸조리나 잘해. 곧 게이트에 들어가야지.”
최한별이 어이없는 미소를 지었다.
6개월만에 만나자마자, 또 게이트 이야기라니...
하긴 이게 나태준이란 사람이었지.
그가 옆에 있자, 왠지 가슴이 뛰면서도 안정감이 느껴졌다.
“그런데 이제 어떡해요? 우리가 들어갈 게이트가 없잖아요.”
최한별이 힘없이 물었다.
그때 창수가 문밖에서 말했다.
“참! 아직 말 못한 게 있어.”
다들 시선을 옮겼다.
“기태와 내가 게이트를 찾아내는 레이더를 만들었어.”
“어? 게이트를 찾아내?”
“그래 기태가 등급별로 게이트 파장을 잡는 법을 알려줘서 내가 통신망하고 호환되는 레이더를 한번 만들어봤어.”
기태가 나섰다.
“제가 통신망으로 게이트 고유 파장을 전국적으로 쏘면, 게이트가 발생할 지점에서 동기화가 되어 파장이 울리는 원리를 이용했어요.”
기태의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아듣는 것은 창수밖에 없었다.
“기태가 그런 것도 할 수 있었어?”
“네, 창수 삼촌하고 연구하다 보니, 얼마 전에 등급이 올라서 게이트 파장을 쏘아내는 스킬도 생겼어요.”
“너도 헌터였구나.”
“제가 말 안 했나요?”
창수 빼고는 사실 기태가 헌터인 것을 정확히 몰랐다.
“지금 헌터 협회 홈페이지에 공개된 게이트의 위치와 이 레이더의 위치를 비교했더니 거의 동일해. 물론 공개 안 된 것까지 모두 찾아낼 수 있지.”
최한별이 창수의 말에 이태성에게 들은 말이 떠올랐다.
“참. 태준 오빠, 헌터 협회에서도 게이트를 찾는 방법이 따로 있는 것 같아요.”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야?”
“이태성이 하는 말이 신귀족들이 자신을 죽이지 못할 거라고 했어요. 그 이유가 자신이 게이트가 어디서 뜨는지 미리 아는 방법이 있다고 하던데요.”
“설마, 기태랑 같은 능력자가 또 있는 건가?”
“저도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윤상희가 말했다.
“일단은 게이트가 발생할 때 헌터 협회나 국가 헌터원보다 더 빨리 게이트를 찾아내서 공략하면 되는 거 아닌가?”
헌터법에 따르면, 모든 헌터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게이트를 공략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24시간 이내에 게이트에 들어가는 것은 헌터 협회나 국가 헌터원의 허가가 필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