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살자-85화 (85/149)

# 85

85. 내 식구를 건들지 마라(4)!

태준 일행은 게이트가 발생하길 기다렸다.

게이트 발생과 동시에 기태가 레이더로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헌터 협회 게시판에 나와 있는 게이트 위치와 국가 헌터원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게이트 위치를 제외하면, 그 나머지는 모두 이태성이 챙긴 불법 게이트란 말이었다.

게이트를 전부 다 찾을 필요도 없었다. 규모가 큰 B급과 A급 게이트만 따로 찾아서 가로채서 공략하다 보면 이태성은 버티지 못할 것이다.

B급 게이트는 하나에 50억에서 200억에 거래됐지만, A급 게이트는 1,000억에서 2,000억 사이에 거래됐고, 그 숫자가 몇 개 되지 않았기에 한두 개만 가로채도 엄청난 손해를 보는 것이다.

사실 헌터 협회를 장악하고 있는 3인방도 이태성이 게이트를 가로채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모른척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태성의 주요 고객은 대형 길드나 대기업들이었다.

“절대 촌놈처럼 주변 두리번거리지 말고.”

“알았어요.”

기태가 신이 난 것 같았다.

다른 헌터들은 이미 한 번씩 갔다 왔지만, 기태는 처음이었다.

“수진아, 절대 기태를 놓치면 안 된다.”

“걱정하지 마요. 옆에 꼭 붙어 있을 테니까.”

오랜만에 식구(?)들이 모두 외출했다.

그들이 찾은 장소는 강남, 지하 헌터 시장이었다.

사실 며칠 전에도 왔지만, 항상 새로운 것이 넘치는 곳이었기에 다들 들뜬 기분이었다.

“나는 더 좋은 도끼가 없어도 괜찮은데...”

윤상희가 웃으며 태준을 쳐다봤다.

“A급 헌터가 됐으니까, 레전더리 도끼 하나쯤은 있어야죠.”

태준은 잘 알고 있었다.

A급 헌터라도 레전더리 아이템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실력은 천지 차이였다. 자신과 싸웠던 대부분의 A급 헌터들은 유니크 급 장비만 차고 있었기에 실력을 다 발휘하지 못했다.

“그리고 온 김에 수호의 소환수도 살 테니까. 너무 부담 느끼지 마요.”

“어? 그럼 한별 언니는?”

수진이가 자기들만 레전더리 활을 받은 게 미안했는지, 최한별을 바라보았다.

“미안하지만 나도 태준 오빠에게 받았어.”

최한별이 백색의 반지를 내밀었다.

“그거 레전더리 급이야?”

“물론이지.”

태준이 블랙 드라칸(S)을 잡고 게이트 클리어 보상으로 받은 얼음 폭풍의 반지였다.

[얼음 폭풍의 반지(레전더리) - 차가운 북풍을 일으키는 거인 보레아스의 입김이 담긴 반지.

반지를 착용한 얼음 계열의 헌터는 아이스 사이클론, 얼어붙은 입김, 아이스 필드 스킬을 사용할 수 있다.

얼음 내성 +50, 냉기 공격 + 50%]

“언제 받았어?”

“방금 집에서 나서기 전에.”

밖으로 나가기 전에 태준이 최한별을 따로 불러 아이템을 전해주었다.

태준이 힘들게 괴수를 잡고 받은 보상이었기에 한별은 더욱 귀중하게 느껴졌다.

“잠깐, 기다려봐.”

태준이 중절모자를 쓴 사람에게 다가가 출입 카드를 보이자, 사내가 엘리베이터를 가리켰다.

일행이 모두 엘리베이터에 탔고, 문이 닫히자 그들 앞에 이글거리는 포탈이 생겼다.

“기태야, 이게 뭔지 알아보겠어?”

“게이트 파장하고 같은데요.”

기태는 신기한 듯 포털을 만져봤다.

“같아? 그럼 이것도 게이트란 말이야?”

“네, 게이트 파장의 크기만 다르지, 똑같은 거예요.”

신기한 일이었다.

포탈로 들어가자, 지하 헌터 시장 1층이 나왔다.

“바로 지하 2층으로 가지.”

지하 2층으로 가는 포털 앞에 도착하자, 기태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왜 그러니 기태야?”

“게이트 안에 또 다른 게이트가 있다니 신기하네요.”

“이런 게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수십 개가 더 있어.”

“어 그래요?”

기태가 뭔가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통행 카드는?”

황금색 카드를 보여주자, 문지기가 켈베로스를 뒤로 물렸다.

“수호, 저런 건 소환 못 해?”

무시무시한 켈베로스를 보며 윤상희가 수호에게 물었다.

“네, 저건 언데드 계열이에요. 최상위 네크로맨서들이 소환하는 거죠.”

“아쉽네. 고놈 참 세게 생겼는데.”

이수호는 사실 엘프를 소환하고 싶었다.

그것이 꿈이기도 했고, 외로울 땐 여자 친구 역할도 할 수 있었기에 태준도 적극적으로 장려했었다.

하지만 최근에 생각을 바꿨다.

불을 뿜는 거대한 괴수와 하늘을 나는 블랙 드라칸 같은 S급 괴수 놈들을 상대하려면, 엘프는 뭔가 부족해 보였다.

백색의 마녀의 화이트 드래곤 기가테스 같은 강력한 몬스터를 소환하던가, 아니면 엄청난 숫자의 군단을 소환하는 아이템이나 스킬이 필요했다.

포탈에서 나오자마자 팀원들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소설이나 동화에서 보던 엘프 마을 같은 분위에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수진아, 기태 잘 보라니까.”

“아, 예.”

한번 와본 곳이었지만, 수진이는 여전히 정신없었다.

결국, 기태는 윤상희에게 맡겼다.

“먼저 괜찮은 소환수가 있는지 가보자.”

소환수 가게를 먼저 찾았다.

가게 주인인 흑인은 한번 거래했던 태준을 단번에 알아봤다.

“아이고, 손님 또 오셨구먼. 오늘은 뭘 찾으십니까?”

“레전더리 급 소환수를 찾습니다.”

“레전더리 급이라... 누가 쓸 겁니까?”

태준이 이수호를 지목했다.

“헌터 등급은?”

“A등급입니다.”

“아직 레전더리 급 소환수를 부리기엔 능력이 좀... 뭐 나야 팔면 좋긴 하지만.”

“뭐가 있소.”

“드래곤부터 시작해 트윈 해드 오우거나 하이엘프, 우르크 오크도 있습니다.”

“우르크 오크가 레전더리 급이라고요?”

“물론입니다. 한번 소환하면 그 숫자가 소환술사의 능력에 따라 수십에서 수백까지 뽑을 수 있지요.”

“아, 그래서 레전더리 급이로구나.”

이수호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드래곤은 어떤 놈이 있습니까?”

“드래곤이요?”

흑인 상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블루탈리스하고, 카올렌이 있습니다만.”

“어떤 놈들이지요?”

“블루탈리스는 블루 드래곤이고, 카올렌은 블랙 드래곤입니다. 둘 다 최상급 드래곤은 아니지만, 술자에 따라 소환수는 능력이 변하는 법이라, 어느 정도 위력을 발휘할지는 나도 모르겠습니다. 가격은 둘 다 천억입니다.”

가격은 생각보다 비싸진 않았다.

최민지의 드래곤들에 비하면 약한 드래곤들이지만, 키우기 나름이었다.

“결정했어?”

“카올렌으로 하겠습니다.”

“블랙 드래곤이라, 잘 고르셨습니다. 제대로 소환만 된다면 지독한 독브레스를 뿜어내지요.”

흑인 상인이 태준을 바라보았다.

상인의 감으로 돈은 이 사람이 낼 것을 알고 있었다.

“아이템으로 지급해도 되겠죠.”

“물론입니다.”

태준이 인벤토리에서 유니크 아이템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허! 상당하군요.”

“태준아, 그만 꺼내도 되겠다.”

옆에서 창수가 브레이크를 걸었다.

“네? 아직 멀었는데요.”

“이 아이템 시세대로 팔면 1,138억인데 부족합니까?”

흑인 상인이 창수를 쳐다보았다.

“휴, 남창수 헌터께서 그렇다면 그런 거겠죠.”

물론 시세대로 팔 때 이야기였다.

“더 필요한 것은 없으십니까?”

“네.”

태준 일행이 가게를 나서자, 주변 상가의 주인들이 모두 나와서 자기들 가게 물건을 홍보했다.

그들은 레전더리 아이템을 단번에 구매한 큰손이었다.

도끼 전문 상점을 찾았다.

“도끼 좀 보여주시오.”

“레전더리 급으로 보여드릴까요?”

“물론입니다.”

상인이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좋아했다.

도끼까지 돈 대신 아이템으로 구매했다.

모두 살라딘 길드원들이 쓰던 유니크 급 장비들이었다.

“태준씨 것도 사야 하는 거 아냐?”

“전 이미 있습니다. 그만 돌아갈까요.”

일행이 걸음을 옮겼다.

“아! 잠깐 포탈에서 기다려. 뭐 좀 살 게 있어서.”

“알았어. 빨리 와.”

태준이 혼자 아이템 상점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잠시 후에 돌아왔다.

“이제 든든한데.”

태준 팀원들의 장비가 레전더리 급으로 올라갔다.

아직은 하나뿐이었지만, 이것이 시작이었다.

태준 자신은 이미 레전더리 아이템이 여러 개 있었고, 포정의 칼만 봉인이 풀린다면, 더는 바랄 것이 없었다.

***

게이트가 발생했다.

연일 뉴스에서 괴수의 출몰을 보도했고, 국가 헌터원과 군인들이 게이트로 출동했다.

“기태야 부탁해!”

기태가 레이더를 이용해 게이트의 위치를 찾아냈다.

그리고 헌터 협회와 국가 헌터원에 등록되지 않은 게이트로 출동했다.

“헌터들이 지키고 있겠지?”

“물론이야. A급 헌터들이 지키고 있을 테니까. 다들 긴장해.”

***

[A등급 게이트 동두천]

과거 미군 부대가 주둔했던 땅에 A등급 게이트가 발생했다.

“거기에 설치해!”

거대한 A급 게이트 주변에 바리케이드가 설치되고 있었다.

이곳에서 A급 괴수 한 마리라도 밖으로 나간다면, 이 게이트는 발각되는 것이기에 상당히 긴장하고 있었다.

“제길, 나태준 그 새끼 때문에 이게 무슨 꼴이야.”

“왜 그래?”

“철원 여관에서 일주일이나 처박혀 있었다고, 이러려고 내가 A급 헌터가 된 줄 알아.”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하지만 어쩌겠어. 대장이 하라면 해야지.”

헌터들이 짜증을 내고 있었다.

잠적하라는 대장의 문자에 다들 조용히 살고 있었다. 화려한 삶을 살던 헌터들에게는 그게 고문이나 마찬가지였다.

“나태준, 그놈만 죽이면 되는 거 아닌가?”

“너 그날 거기 없었지?”

“그날?”

“나태준이 우리 길드 공격한 날 말이야.”

“난 그날 헌터 협회에 있었어.”

“그러니까 그런 소리를 하지, 그날 죽은 A급 헌터가 마흔이고, B급 헌터가 예순이 넘어.”

“미쳤군. 그 정도면 S급 헌터지. 누가 A급이라고 믿겠어.”

생생한 목격담을 들려준 이는, 그날 나태준을 피해 도망친 헌터였다.

“젠장, 그럼 앞으로도 계속 그놈을 피해 다녀야 한단 말이야?”

“걱정하지 마!”

이곳의 책임자이자, A급 헌터인 공태석이 두 헌터에게 다가왔다.

“대장이 곧 해결할 거야. 우리 대장, 가진 게 돈밖에 없는 사람이잖아. 세상에 돈으로 안 되는 일이 어디 있어.”

“하긴 그러겠죠.”

부웅.

고급 벤 한 대가 게이트로 곧장 다가오고 있었다.

“저건 뭐야?”

“아직 도착 안 한 헌터가 있나?”

“눈에 띄지 말라고 했는데, 어떤 새끼야.”

차는 곧장 헌터들을 향했다.

그리고.

차 안에서 다섯 사람이 내렸다.

그리고 눈에 익은 헌터 하나가 칼과 갈고리를 들고 다가왔다.

“나태준?”

“나, 나태준이다!”

A등급 헌터가 열이나 있었고, B등급 헌터도 이십여 명이 있었지만, 누구도 나태준과 싸울 마음이 없었다.

게다가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으헉!”

쾅! 콰앙!

수진이가 쏜 화살이 날아가 바리케이드 대신 세워 둔 버스를 날려버렸다.

엄청난 화염이 치솟자, 위장막 밖으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도망치는 놈들은 놔두고, 주변을 정리해!”

헌터들은 나태준의 등장에 혼비백산해 사방으로 달아났다.

처음부터 싸울 마음은 없었다.

그리고 그 소식은 이태성에게 흘러갔다.

***

“뭐? 나태준?”

“네. 분명 나태준이었습니다.”

“그놈이 또 우리 게이트를 찾아냈단 말이야?”

이태성은 치밀어 오르는 짜증에 인상을 잔뜩 구겼다.

부하들은 조용히 대장의 눈치만 봤다.

“아무리 그래도 A급 게이트를 버리고 왔단 말이야?”

“나태준의 실력을 아시지 않습니까. 게다가 놈은 이제 혼자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데 놈이 어떻게 알고 우리가 확보한 A급 게이트를 계속 공격하는 거지?”

“그건, 저도 잘...”

“첩자가 있나?”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게이트 발생 하루 만에 가장 중요한 A급 게이트가 털렸고, B급 게이트가 여섯, 게다가 이번엔 두 달 동안이나 감춰놓았던 A급 게이트까지 털렸다.

이태성이 이를 악물었다.

“아무래도 결판을 내야겠어.”

“나태준을 제거하실 생각이십니까?”

“그놈, A등급 게이트로 들어갔다고 했지?”

“네. 팀과 함께 게이트로 들어가는 것을 멀리서 봤습니다.”

이태성이 한 손으로 턱을 매만졌다.

“너, 지금 당장 헌터 협회에 전화해서 그곳 게이트 확보하라고 해. 그리고 우리가 들어간다고 전하고, 근처에 누구도 접근시키지 말라고 해.”

“네, 알겠습니다.”

명령을 받은 헌터가 급하게 밖으로 나갔다.

한 헌터가 눈치를 보며 말했다.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일본 쪽 애들 연락되지?”

모여 있는 헌터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네, 연락은 됩니다.”

“돈은 얼마든지 준다고 하고, A급으로 50명만 요청해.”

“50명이나요?”

“그래, 그리고 우리 애들 전부 모아. A급부터 C급 헌터들까지 모조리 긁어서 게이트 앞에 집결시켜, 이번에 모이지 않는 놈들은 영원히 제명 시킨다고 하고.”

“네, 알겠습니다.”

이태성은 더는 끌려다닐 수 없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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