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살자-86화 (86/149)

# 86

86. 헌터, 이름을 날리다(1).

[고요한 늪(A등급) - 고요해 보이는 겉모습에 속지 마세요. 늪에서 당신을 노리는 것들은 무자비하고, 잔인하며, 강력합니다.]

[게이트 클리어 조건 : 늪의 지배자 린드부름(S)을 죽이시오.]

[게이트 클리어 보상 - ?]

[린드부름(S등급) - 뱀과 드래곤을 교미시켜 놓은 듯한 모습, 몸길이 100미터에 퇴화한 네 개의 작은 다리는 악어를 연상시킨다. 물속에서 엄청난 속도를 내고, 긴 꼬리 끝엔 철퇴를 연상시키는 뾰족한 바늘이 있는데 바늘에 찔리면 몸이 마비된다.

입에서 지독한 진한 녹색의 독가스를 뿜어내며, 그 가스에 노출되면 살이 녹을 정도다.

온종일 늪에 살며, 밤에만 땅 위로 올라온다.]

“윽! 이거 쉽지 않겠는데!”

게이트에 들어오자마자, 지독한 습기와 더위에 윤상희가 인상을 찡그렸다.

“괴수 잡기도 전에 탈진해 쓰러지겠다.”

“킁킁! 켁케!”

말볼 역시, 더위를 참지 못하고 긴 혓바닥을 내밀며 연식 헉헉거렸다.

“괴수 설명 한번 클릭해 봐요. 뭔가 엄청 강해 보이는데.”

수진이가 린드부름의 설명을 보자, 고개를 흔들었다.

일행이 주변을 살폈다.

한쪽엔 우거진 밀림이 있었고, 한쪽은 끝을 알 수 없는 거대한 늪지대가 펼쳐져 있었다.

“주변에 괴수는 없는 거지?”

“네, 생각보다 조용하네요.”

A급 게이트치고는 너무 조용했다.

마치 거대한 정글이 잠을 자는 것 같았다.

태준이 말했다.

“린드부름이 밤에 나온다고 했으니, 일단은 은신할 만한 곳을 먼저 찾아보자.”

“게이트 주변은 안 되겠지?”

윤상희의 물음에 태준이 손을 흔들었다.

“이태성도 이제 한계에 도달했을 겁니다. 마지막 A급 게이트까지 빼앗겼으니, 헌터들을 이끌고 들어올 가능성이 커요.”

“휴! 드디어 헌터들과 싸움인가.”

대범한 윤상희도 잔뜩 긴장한 표정이었다.

태준이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다들, 이런 일에 말려들게 해서 미안해.”

“그게 무슨 말이야. 미안하다니! 대장 일이 우리 일이고, 우리 팀원들의 일이 곧 내 일이야.”

“상희 언니 말이 맞아요. 그리고 이건 한별 언니를 죽이려고 한 놈들에게 복수하는 거야. 태준 오빠만의 일이 아니라고!”

한수진도 발끈했다.

순간 너무 자기 입장만 생각한 것 같아 미안해졌다.

“후후, 그렇게 생각해 주니 고맙다.”

팀원들은 모두 자기 일처럼 여겼다.

윤상희가 말했다.

“앞으로 미안하다는 말 하면 다시는 태준씨 안 볼 거야.”

“하하! 알았어요. 미안하단 말 취소.”

지금 이들은 자신이 보살펴야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함께 가는 동료들이었고, 조금은 자신도 기댈 수 있을 만한 식구였다.

“얼음 계단!”

조금 떨어진 곳에서 최한별이 늪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늪에서 물이 딸려 올라와 얼음 계단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태준이 다가와 물었다.

“어? 뭐하는 거야?”

“정찰요.”

순식간에 엄청난 높이의 계단을 만들자, 다들 얼이 빠진 느낌이었다.

“아! 시원해.”

수진이가 얼음 기둥을 몸에 밀착했다.

“히히! 한별 언니가 있으니까 다행이다.”

최한별 때문에 잠시나마 더위를 식힐 수 있었다.

“뭐해요. 올라가 봐야죠.”

한별이와 계단을 올랐다.

“이렇게 큰 계단을 계속 유지할 수도 있는 거야?”

“물론이죠. 앞으로 더 큰 능력을 볼 텐데, 벌써 놀라면 곤란해요.”

“기대하지.”

이태성에게 빼앗은 첫 번째 A급 게이트는 자신들이 직접 공략하지 않고, 국가 헌터원에 넘겼고, B급 게이트는 순식간에 클리어했기에 아직 최한별의 진짜 실력을 볼 기회가 없었다.

자신이 준 얼음 폭풍의 반지가 그녀의 능력을 올려준 것은 확실했고, 그 레전더리 아이템이 헌터들과의 싸움에서 어떤 위력을 발휘할지 기대가 됐다.

“저기 봐.”

최한별이 바라보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사원인가?”

“한두 개가 아닌데.”

계단을 더 오르자, 밀림 속에 수십, 수백 개의 건축물이 보였다.

마치 고대의 유적지 같은 모습이었다.

“저기가 좋겠다.”

“저도 저기가 좋을 것 같아요.”

얼음 계단을 내려오자, 높다란 계단이 순식간에 물로 변했다.

“좋은 곳을 발견했어. 그리 가자.”

이동하는 사이에 정글에 사는 B급 괴수 포로수스 수백 마리가 튀어나왔고, 일행은 어렵지 않게 처리했다.

그런데 이수호가 여전히 드래곤이 아닌, 미노타우로스를 소환한 것이다.

“아직 드래곤은 소환하지 못하는 거야?”

이수호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실망하지 마, 아직 시간은 많으니까 천천히 시도해봐.”

“미안해 형.”

“미안하긴 식구들끼리는 그런 말 하는 거 아니다.”

이수호는 미노타우로스들을 귀환시켰다.

그리고 틈날 때마다 블랙 드래곤 소환을 시도했다.

그러나 번번이 실패했다.

분명 블랙 드래곤 카올렌 소환룬을 배웠고, 스킬 창에 떡하니 카올렌 소환이라고 적혀 있었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소환 주문을 외우면 공허한 바람만이 휘몰아칠 뿐 블랙 드래곤은 보이지 않았다.

소환술사들은 마법사들처럼 마나로 소환수를 소환하거나 부리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 클래스는 다른 헌터들에게 없는 소환된 몬스터와 공감할 수 있는 감응(感應)력이라는 수치가 따로 있었다.

이수호의 감응력 수치는 블랙 드래곤을 불러낼 정도에 높았고, 그의 소환수 조정 스킬들과 교감 능력은 웬만한 A급 헌터들보다 높았으니, 카올렌이 한 번에 소환될 줄 믿었지만, 실상은 그러지 못했다.

“여기 무슨 앙코르와트인가? 꼭 거기 같은데요?”

수진이가 밀림 사이사이에 높은 건물들을 보고는 신기한 표정을 지었다.

윤상희 역시 신기한 광경에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러게 무슨 잉카의 고대 도시 같아.”

“밀림 속에 잠들어 있는 고대 도시라..., 인디아나 존스 영화처럼 무슨 보물이라도 숨겨져 있지 않을까요?”

“이 상황에 보물이 들어와? 난 오늘 밤 잠자리가 벌써 걱정되는데.”

무시무시한 게이트 모기와 쥐, 독충, 독사 같은 것들이 가득한 정글이었다.

정글 벌레는 남자들도 참기 힘든데, 여자들은 오죽할까.

게다가 출몰하는 괴수들과 S급 괴수 린드부름까지 잡아야 한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헌터들과 치열하게 싸워야 하기에 한가하게 보물 타령이나 할 순 없었다.

태준이 한마디 했다.

“주변 지형을 잘 살펴. 이곳이 격전지가 될 거 같으니까.”

“네.”

최한별이 바닥을 유심히 살폈다.

“바닥이 축축한 것이 조금 이상해요.”

“그러게 늪도 아닌데 왜 물에 젖어 있는 거지?”

“주변에 물이 많으면 제 마법은 강해지니까 좋긴 한데, 혹시 모르니 좀 알아봐야겠어요.”

“그래.”

“게르르르!”

갑자기 말볼이 으르렁거리더니 달리기 시작했다.

“어? 말볼.”

“뭐해, 어서 따라붙어.”

일행이 말볼을 따라 달렸다.

이는 말볼이 무언가를 찾았을 때 반응이었다.

한참을 달리자, 밀림 속 거대 도시 중앙에 있는 가장 높고 커다란 건물로 들어갔다.

“어 여긴?”

“왜?”

“옛날에 게이트에서 말볼초 찾았던 거 기억해요?”

“물론이지. 내 아들의 생명을 구한 일인데.”

“그때 그 신전하고 구조가 비슷해요.”

“그런가?”

안으로 들어오자, 뚫려 있는 천장에서 빛이 들어오고 있었고, 수백 가닥의 선들이 벽에서부터 중앙에 있는 캡슐로 이어져 있었다.

그 안에서 말볼이 풀을 입에 물고 달려왔다.

“말볼, 말볼초를 발견했구나!”

말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역시나 기특한 녀석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말볼초를 발견했다.

말볼이 없었다면, 수많은 사람이 엄청난 치료비를 감당하지 못하고, 게이트병으로 죽었을 것이다.

S급 괴수 블랙 드라칸의 고기 한 덩어리를 상으로 던져줬다.

괴수 고기를 맛있게 씹고 있는 말볼의 눈동자가 순간 붉은색으로 변한 것은 아무도 보지 못했다.

“우와 여기 상당히 많은데.”

“일단 모두 뽑아. 게이트병을 치료하는데 특효약이니까.”

최한별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게 게이트병의 특효약이라고?”

“그래, 말볼이 발견해서 말볼초라고 지었고, 특허는 태준씨가 가지고 있어.”

“아! 국가 헌터원에서 특효약을 발견했다고 들었는데. 이제 보니...”

“그 녀석들은 아무것도 한 게 없어, 태준씨가 싸게 넘겨서 놈들이 약으로 만들어 보급한 거야.”

최한별은 풀을 뜯으면서 힐끔힐끔 태준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태준은 훨씬 대단한 사람이었다.

“베이스 캠프는 여기가 좋겠어.”

“나도 여기가 마음에 들어요.”

밖과 다르게 이 안쪽은 상당히 시원하고 쾌적했다.

태준이 허락하자, 윤상희와 한수진이 요리도구와 침구류를 꺼내 정리하기 시작했고, 최한별은 꼭대기에 올라가 얼음 사다리를 만들어 주변을 경계했다.

“수호야, 넌 나와 함께 주변 지리를 살펴보자.”

“예.”

이수호의 어깨가 축 늘어진 것이 힘이 없어 보였다.

역시나 블랙 드래곤을 소환하지 못하는 것을 계속 마음에 두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나마 국가 헌터원 원장인 이철용에게 마음이 흔들린 것 때문에 태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지금 옆에서 나란히 걷고 있는 태준이 아니었으니, 고아인 자신은 지금도 홉고블린들과 공사판을 구르고 있을 것이다.

“형.”

“왜?”

“그냥.”

“싱겁긴.”

그때였다.

E급 괴수 바이퍼가 독니를 벌리며 풀숲에서 튀어나왔다.

“조심해!”

태준이 수호를 밀치고, 단칼에 머리를 잘라버렸다.

투둑.

“휴! 독이 있는 괴수는 정말 무서워.”

이수호가 말하면서 미노타우로스를 뽑았다.

그 역시 웬만한 B급 괴수까지는 소환수 없이도 상대할 정도로 육체적인 능력을 키웠기에 웬만한 괴수는 상관없었지만, 독을 가진 놈들은 스쳐도 중독되기 때문에 안전하게 소환수를 이용했다.

태준은 바이퍼 배를 가르고, 독과 간을 챙겼다.

“독은 뭐하려고요?”

“쓸데가 있을지 모르니까. 내 인벤토리엔 수십 가지의 독과 해독제가 있지.”

“아.”

괴수의 독을 채취하는 것은 어찌 보면 괴수 백정의 특수 스킬이나 마찬가지였다.

누가 괴수를 해부해 독을 빼내고, 그 몸속에서 해독제를 찾을 수 있겠는가.

다시 주변을 살피며 걸음을 옮겼다.

태준이 물었다.

“참, 수호야. 독에 관해서도 공부해야 하는 거 아냐?”

“응? 왜?”

“그 블랙 드래곤의 특기가 독 브레스라며?”

“맞아.”

“나중에 드래곤을 소환하고, 독 브레스를 뿜었을 때, 네가 당하면 어쩌려고?”

“어?”

이수호가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태준이 이야기를 계속했다.

“내가 소환사와 소환수의 관계는 잘 모르지만, 독을 쓰는 소환수를 부리려면 최소한 너도 독에 대해 기본적인 것은 알아야 하지 않을까?”

“형! 그러고 보니 그런 이야기를 어디서 들은 거 같아.”

이수호의 머리가 뭔가 떠올랐다.

“맞다! 백색 마녀 최민지는 화이트 드래곤의 냉기를 버티기 위해 얼음 내성을 길렀다고 했어.”

“그래서?”

“혹시 내가 독 관련 스킬이나 독에 대한 기본이 전혀 없어서 소환에 응하지 않은 것은 아닐까?”

소환자와 소환수의 관계는 그들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이자, 감응이었기에 다른 클래스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태준의 말에 이수호는 뭔가 힌트를 찾은 것 같았다.

“아무래도 독에 내성을 기르거나 독 관련 아이템을 알아봐야겠어.”

“그렇게 이것저것 해보는 것은 좋은 거지, 그리고 독 내성이라면 지금 당장 내가 도와줄 수 있어. 대신 고통이 조금 뒤따르지만...”

“좋아. 열심히 해 볼게.”

태준이 웃고 있었다.

그 순간 이수호는 자신이 겪게 될 끔찍한 고통을 예감하지 못했다.

***

“으아아아아!”

일행이 머무는 사원 전체를 울리는 비명에 주변에 괴수들까지 모여들고 있었다.

덕분에 수진이는 건물 위에서 화살을 쏘고, 윤상희와 최한별은 아래쪽에서 괴수를 잡아 경험치를 올릴 수 있었다.

“형! 해...독제를.”

“아니, 조금 더 참아. 그래야 독 내성이 길러지지.”

“으으윽!”

이수호는 엄청난 땀을 흘리고, 온몸을 미친 듯이 떨었다.

괴수 독이란 것이 워낙 치명적이고 고통스러운 것이어서 중독되어 죽기 전에 고통을 참지 못하고 죽는 경우도 허다했다.

A급 독수련자 칭호를 받은 태준은 괴수 독에 관해서는 전문가였다.

“어때? 독 내성이 조금 올랐나?”

“으으! 독 내성 +10이라고 되어 있는데?”

“아직 멀었네. 내가 볼 땐 최소 30은 돼야 할 거야”

“30? 그렇게나 높게?”

F급 독수련자의 독 내성이 +30이었다.

물론 이것은 괴수 백정의 기준이었고, 다른 계열은 어느 정도인지는 알 수 없었다.

“자, 이번엔 조금 센 놈으로 해보자.”

“뭐? 지금까지 한 건?”

“이건 F급 괴수의 독이야. 이제 E급 괴수의 독으로 올려야지.”

이수호가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태준은 E급 괴수 바이퍼의 독을 단 한 번에 이겨내고 F급 독 수련자가 되었다.

하지만 이수호는 벌써 수십 번이나 독을 주입하고 해독하는 과정을 겪었음에도 독 내성이 겨우 +10밖에 되지 않았으니, 태준이 특별한 건지, 수호가 느린 건지는 알 수 없었다.

“크허허허헉!”

거의 한나절이 지나도록 독 내성을 키웠다.

수호의 얼굴빛은 흙빛이 되었고, 눈 주변이 퀭한 것이 누가 봐도 병자처럼 보였다.

“자, 다시 시작할까.”

“혀, 형! 저 독 내성 30 됐어요.”

그때 윤상희가 들어오면서 말했다.

“오늘은 그만해. 그러다 사람 잡겠어.”

“태준 오빠 기준에 맞추지 마요, 다른 사람들은 큰일 날 수도 있어.”

최한별도 윤상희랑 같은 생각이었다.

그녀는 이제 오빠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아닙니다. 더 할 수 있어요. 일단 소환을 한번 시도해 보고, 계속하죠.”

이수호가 비틀거리며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그는 이를 악물며 소환을 하려 했다.

하지만 윤상희가 다가가 말렸다.

“아니야! 저녁 먹고 해. 그러다 쓰러지겠어.”

“그래 수호야. 저녁 먹고 하자.”

강한 소환수를 불러내고 싶은 것이 소환술사의 마음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태준이 지켜보고 있었기에 더 열심히 하고 싶었다.

“그래, 일단 기운을 차리고 계속하자.”

태준까지 그렇게 말하자, 이수호도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동료들 말처럼 기운을 먼저 차릴 때였다.

“그런데 사원 주변에 유난히 괴수가 많은 거 같아.”

“그러게 이 주변이 지대가 높아서 그런지, 저녁이 되니까 괴수들이 더 많이 모이는 거 같아.”

“경험치 쌓이고 좋지 뭐.”

천장에서 수진이가 밧줄을 타고 내려오며 말했다.

“여긴 건물도 튼튼하고 입구가 하나라 지키긴 좋은 거 같아.”

“어여, 밥부터 먹어.”

윤상희가 맛있게 차린 식사를 시작했다.

이수호에게는 특별히 괴수 고기 하나를 꺼내주었다.

체력을 회복하고, 피를 맑게 해주는 마그투스(A)의 고기였다.

“이제 시도해봐야겠어요.”

괴수 고기 때문인지, 이수호의 혈색이 돌아왔다.

“소환, 카올렌!”

평소와 다르게 주문까지 크게 외쳤다.

이수호 앞으로 공간이 일그러지더니 거센 바람이 휘몰아쳤다.

그 순간 주변이 어두워지면서 뭔가 다른 것이 느껴졌다.

“왜 그러지?”

수호가 갑자기 일그러진 공간을 응시하더니 뭔가 입 모양으로 말을 하고 있었다.

다른 것들을 소환할 때는 그냥 주문을 외치면 정말 마법처럼 소환수가 튀어나왔었는데, 지금은 뭔가 달랐다.

윤상희가 걱정돼 다가가려 할 때였다.

“잠깐, 왠지 그냥 놔둬야 할 것 같아요.”

태준이 말렸다.

그가 보기엔 이수호는 몸을 떨면서도 필사적으로 대화를 이어나가려는 것 같았다.

“저거 소환수와 교감하는 건가?”

최한별도 소환술사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지금이 중요한 고비 같아. 일단은 수호를 믿고 조금 더 기다려보자.”

“알았어.”

그렇게 십여 분이 흘렀을 때였다.

쿵! 쿵!

갑자기 공간을 찢으며, 시커먼 물체가 먼저 두 발을 내뻗었다.

잠시 후.

주변이 환해지면서 그 검고 커다란 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쿠아아아아아!”

검은 드래곤이 엄청난 굉음을 입에서 뿜어냈다.

S급 괴수 블랙 드라칸보다는 조금 작은 크기였고, A급 괴수 드래이크보다는 조금 큰 크기였다.

백색의 마녀 최민지의 화이트 드래곤인 기가테스에 비하면 절반 크기였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것은 분명 드래곤이었다.

그것도 악독하기로 유명한 블랙 드래곤.

“헉헉!”

이수호가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태준이 물었다.

“괜찮아?”

“혀, 형! 저 성공했어요.”

수호는 그 순간 태준을 보며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이를 악물고 독 내성을 올려 드디어 블랙 드래곤을 소환한 것이다.

[카올렌 - 어느 판타지 세계에 악명을 떨쳤던 블랙 드래곤.

독과 산성 브레스를 동시에 뿜어내고, 악취가 가득한 늪이나 눅눅한 동굴에 산다.

거의 모든 독에 대해 면역이 있고, 독을 다루지 못하는 소환술사는 소환하지 못한다.

자신의 강함을 강조하는 다른 드래곤과 다르게 체격이 작고, 브레스의 강도가 약하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교활하고, 상당히 잔혹한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인간을 매우 싫어해 교감을 맺기가 힘들고, 다루기가 어렵다.]

블랙 드래곤의 커다란 포효에 늪의 지배자 린드부름(lindwurm)이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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