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살자-89화 (89/149)

# 89

89. 헌터, 이름을 날리다(4).

“으악!”

“크아악!”

갑자기 늪 여기저기에서 동료들의 비명이 끊이지 않았다.

“대체 무슨 일이야?”

“놈이 늪 속에 있습니다.”

“사람이 어떻게 물속에서 20분을 넘게 있을 수 있단 말이냐?”

“물속에서 숨을 쉴 수 있는 아이템을 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늪은 시커멓고, 점성이 높아 헤엄을 치기에도 적합하지 않았다.

그러나 또다시 비명이 들리고, 동료 헌터가 하나씩 사라졌다.

“제길, 모두 한곳에 모아라!”

“모두 모여라!”

“불을 밝혀라!”

주변에 흩어졌던 헌터들이 모였고, 렌턴을 밝혔다.

50명이 넘었던 숫자가 40명으로 줄어 있었다. 벌써 십여 명이 놈에게 당한 것이다.

리더인 료스케가 말했다.

“마법사용을 허가한다. 그리고 각자 스킬을 모두 사용해도 된다.”

각자의 클래스를 숨겨왔던 암살자들도 이번만큼은 자신의 온 실력을 다 발휘해야 했다.

“저기, 뭔가 움직였다!”

“죽어!”

파지지지지직!

마법사의 전격이 나무에 적중하며, 주변 일대가 대낮처럼 환해졌다.

하지만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저기다!”

늪에서 뭔가 꿈틀거렸다.

파지지직!

전격이 폭발하며 물기둥이 치솟았다.

“리자드맨 가라!”

소환자의 명을 받은 리자드맨 여섯 마리가 늪으로 따라 들어갔다.

“왜 이렇게 조용하지?”

늪에서 최고의 위력을 자랑하는 소환수 리자드맨이 돌아오지 않았다.

무거운 침묵이 헌터들을 맴돌았다.

“아무래도 늪에서 나가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맞습니다. 놈은 이곳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불리합니다.”

그렇게 느껴졌을 것이다.

하지만 태준, 역시 이곳은 처음이었다.

암무트의 고기를 먹고, 그 괴수처럼 숨을 오래 참을 수 있었고, 늪에서 무언가 움직일 때마다 생기는 파장을 피부로 느끼며 적을 찾을 수 있었다. 태준은 지금 암무트의 본능적인 움직임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으헉! 사람 살...”

헌터 하나가 늪으로 끌려들어 갔다.

“공격!”

화살과 불마법, 전격마법이 동시에 날아갔지만, 동료는 사라지고 잔잔한 늪만 남아 있었다.

“쉿! 저기다.”

한 헌터가 조용히 늪을 가리켰다.

“나태준이 온다.”

료스케는 작은 목소리로 지시를 내렸다.

“이번엔 실수 없이 모두 한꺼번에 덮친다.”

늪 한쪽에서 물결이 일렁이더니 그들에게 곧장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무기를 쥐고 달려들 준비를 했다.

그런데 갑자기 일행 앞 5m 지점에서 물결이 사라졌다.

그리고.

부글부글!

늪 위로 큰 거품이 올라오고 있었다.

“뭐지?”

“개새끼, 우리를 가지고 놀고 있군.”

더는 이곳에 있어서는 답이 없었다.

료스케가 결심을 내렸다.

“아무래도 이곳에서 철수하는 것이...”

콰직!

리더인 료스케가 눈앞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 초록색 눈을 깜빡거리는 거대한 괴수의 머리가 헌터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너무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이라 헌터들의 뇌가 일순간 멈춘 것 같았다.

“악! 괴수다!”

“린드부름이다!”

“흩어져!”

멀찍한 곳에서 머리를 내밀고 호흡을 고르고 있는 태준은 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린드부름이 이곳에 온 것을 가장 먼저 감지했다.

늪에서 이렇게 소란을 피웠으니, 린드부름이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그럼 여긴 놈에게 잠시 맡기고 돌아가 볼까.’

태준은 늪으로 다시 슬며시 미끄러졌다.

처음부터 그들을 늪으로 유인한 것은 이것을 위한 것이었다.

다수를 상대함에, 하나씩 전부를 상대하기보단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을 사용해, 서로 싸우게 하는 것이 효과적이었다.

그리고 게이트 보스인 린드부름은 마지막에 잡아도 되는 일이었다.

***

밀림의 버려진 사원들.

중앙에 가장 큰 건물 앞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궁수들은 저격수를 공격하고, 소환수들은 블랙 드래곤에게 집중 공격해!”

이태성의 측근들이 싸움을 이끌었다.

그들은 길드의 지휘관들답게 전투 경험이 많았다.

“수진아! 원거리 놈들을 처리해!”

윤상희의 외침에 한수진이 뒤쪽에 자리를 잡은 헌터들에게 끊임없이 화살을 쏘았다.

수진이는 높은 곳에 있었고, 다른 이들은 모두 아래쪽에 있었기에 저격하기엔 딱 맞는 조건이었다.

물론 헌터들의 화살이 날아오지 않을 때 이야기였다.

타타타탕! 퍼엉!

아래쪽에서 쏜 화살과 총알이 건물에 박히자, 불꽃을 일으키며 사원에 구멍이 생겼다.

A급 헌터들의 화살과 마력 소총의 위력은 상당했다.

그나마 마법사들의 사정거리가 짧았기에 다행이었지, 아니었다면 수진이는 진작 당했을 것이다.

“쿠아아아아!”

블랙 드래곤 카올렌이 몰려드는 소환 몬스터들을 물고 할퀴며 싸우고 있었고, 수진이에게 향하는 길은 이수호가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이수호의 신체적인 능력은 A급 전사 계열을 상대하긴 부족했다.

밀려오는 헌터들을 막을 수 없자, 점점 뒤로 밀렸다.

'태준씨는 아직인가?'

윤상희는 A급 헌터 이상의 몫을 다하고 있었지만, 점점 힘에 부치고 있었다.

태준이 밀림에서 돌아올 시간이 되었는데, 아직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큭!”

날카로운 창두가 윤상희의 어깨를 스쳤다.

갑자기 눈앞에서 창날이 세 갈래로 갈라지는 공격이었기에, 급소를 노리는 두 개는 겨우 막았지만, 마지막 하나는 놓쳤다.

“이런 개색!”

윤상희가 눈이 뒤집히며 도끼 대가리를 밀었다.

창을 든 헌터는 창대를 펴서 막았다.

탱앵!

파괴의 날에 파워 글러브, 거기에 그녀의 힘까지 더해지자, 헌터가 버티지 못하고 뒤로 밀렸다.

그 순간 윤상희가 달려들며 도끼를 휘둘렀다.

쩌억!

“커헉!”

헌터의 창을 부러트리고, 두개골에 도끼가 박혔다.

사내는 지금 상황을 믿지 못하겠다는 눈을 하며 뒤로 쓰러졌다.

촤악!

“으악!”

등 뒤로 엄청난 타는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뒤에서 한 검사가 윤상희의 등을 향해 검을 그은 것이다.

그녀가 자세를 낮추며 뒤로 도끼를 휘둘렀다.

퍼걱!

검을 든 사내는 발목이 잘리며 옆으로 쓰러졌다.

- 흉포한 마그투스의 각반(유니크)을 사용합니다.

퍼걱!

윤상희는 태준에게 받은 마그투스의 각반을 사용해 쓰러진 헌터의 얼굴을 걷어찼다.

헌터는 목이 뒤로 꺾이며, 죽었다.

“다들 위로 올라가!”

사방에서 적들이 몰려오자, 더는 버틸 수 없다고 생각해 뒤로 물러섰다.

사원은 피라미드와 비슷한 건물 구조로 헌터라면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었다.

“쿠아아악!”

블랙 드래곤의 고통에 찬 괴성이 울렸다.

수호가 열심히 그를 불렀지만, 카올렌은 움직일 수 없었다.

“카올렌! 카올렌, 위로 올라와!”

카올렌의 위로 트롤 두 마리가 올라타 몽둥이를 휘둘렀고, 다리마다 육중한 오우거들이 매달렸다.

꼬리와 날개는 돌골렘들이 달라붙어 꼼짝을 할 수가 없었다.

“수호야. 뒤로 물러서!”

윤상희가 수호 앞을 막으며 밀려드는 헌터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제길, 너무 많아!”

그녀의 손에 죽은 A급 헌터가 벌써 십여 명이 넘었다.

그 아래 등급은 더 말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이젠 부상도 있었고, 체력적으로 한계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나마 싸울수록 파괴의 날에 피가 묻으면서 도끼질하는 속도는 여전히 빨랐다.

하지만 그것 역시 그녀의 체력을 빠르게 좀먹는 것이었다.

윤상희 뒤로 수십 명의 헌터가 떼로 몰려왔다.

곧 뒤를 잡힐 것 같았다.

“언니, 비켜!”

수진이가 윤상희를 향해 화살을 겨누고 있었다.

그 모습에 윤상희가 엎드렸다.

“용의 격노!”

그녀의 활에서 용의 격노(Wrath of Dragon) 스킬이 발동됐다.

피이이이잉!

큰 소리와 함께 화살이 쏘아지자, 반탄력에 의해 한수진의 몸이 뒤로 날아가 부딪혔다.

그와 동시에 드래곤의 머리 형상이 담긴 화살이 날아갔다.

끼아아아아아!

“헉! 피해라!”

아래쪽에서 지휘관들이 소리쳤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굉음을 낸 화살이 윤상희의 머리를 위를 지나 뒤에 따라오던 헌터들에게 적중했다.

쩌어어어엉!

파파파팟!

“크악!”

“아악!”

공기가 찢어지는 굉음과 함께 폭발이 일어났고, 십여 명의 헌터가 쓰러져 비명을 질렀다.

이 기술은 바람 폭탄의 최상위 버전으로 압축 공기가 터지면서 바람이 칼날처럼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것으로 동시에 여럿을 타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기술을 쓴 수진이는 마력을 한번에 쓰며 기절했다.

“수호야! 수진이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가!”

“네!”

수호가 먼저 달렸고, 윤상희는 뒤를 막으며 꼭대기로 올라갔다.

출입구는 이미 막아놓은 상태라 유일한 출구는 천장에 뚫려 있는 구멍이었다.

정상에 도착하자, 두 사람은 밧줄을 타고 안으로 들어갔고, 윤상희는 꼭대기에서 달려드는 헌터들과 싸웠다.

수호의 블랙 드래곤은 몸을 웅크린 채 몬스터들에게 집단린치를 당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꼭 수호 같이 느껴졌다.

그럼에도 귀환하지 않고 버티는 것이 용했다.

힐끔힐끔 먼 곳을 보던 윤상희의 표정이 갑자기 밝아졌다.

“미친년 웃어?”

마주 보며 도끼를 휘두르던 헌터는 어이가 없었다.

“죽어!”

“꺼져!”

부아아앙!

위에서 내려친 헌터의 도끼!

아래에서 위로 올려친 도끼질!

피를 잔뜩 머금은 “파괴의 날”은 상대의 도끼보다 빨랐고, 그 가속도는 무시무시했다.

쩍!

“내...내가 빠...빨랐는데.”

먼저 휘둘렀다고 도달하는 시간까지 빠른 것은 아니다.

사내의 중요한 곳에서부터 얼굴까지 붉은색 긴 줄이 이어졌다.

헌터는 몸이 갈라지며 피를 뿜어내고, 건물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그녀의 눈에 저 멀리 번쩍이는 칼과 갈고리를 들고 달려오는 사내가 선명하게 보였다.

‘조금 더 늦었으면 정말 극적일 뻔했어.’

그녀는 몰려드는 헌터들을 피해 구멍 안으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헌터들이 그녀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수호야! 태준씨가 왔어. 조금만 더 버텨!”

“네!”

아래로 내려온 헌터들은 한쪽 통로를 막고 있는 윤상희에게 달려들었다.

수호는 바로 뒤에서 수진이를 지키고 있었다.

하나의 목이 500억이었으니, 헌터들은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게다가 두 사람의 몸엔 상처가 가득했으니,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다.

뚝뚝.

윤상희의 찢어진 이마에서 피가 눈썹을 타고 떨어졌다.

- 광전사 스킬이 활성화되었습니다.

‘뭐?’

자신이 흘린 피가 도끼에 흘러들자, 광전사 스킬을 쓸 수 있었다.

상태창으로 본 도끼 설명엔 그런 말이 나와 있지 않았기에 왜 스킬이 활성화가 되지 않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젠 그 뜻을 알았다.

피를 흘리지 않는 자는 광전사가 될 수 없다는 말이었다.

‘태준씨가 올 때까지 버틸 수 있을까? 아님 스킬을 써볼까?’

솔직히 피도 많이 흘렸고, 체력적으로 한계에 다다랐다.

하지만, 도끼의 위력으로 조금은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원 안에 서른 명의 헌터가 있었다.

더는 구멍으로 들어오는 헌터가 없는 것으로 보아 태준의 등장 때문에 헌터들을 뒤로 돌렸을 것이다.

“죽어!”

펑! 화르르르!

커다란 불덩이가 날아와 터지자, 윤상희가 도끼로 막았다.

하지만 힘에서 밀리며 뒤로 나가떨어졌다.

쿵!

“크윽!”

쓰러진 윤상희가 입에서 피를 토해냈다.

“쿨럭!”

“상희 누나, 괜찮아요?”

이수호가 달려왔다.

그녀의 상처는 심각해 보였다.

하지만 덕분에 입구가 화염에 막혔다.

“윽, 괜찮아.”

치이이익!

얼음 마법사들이 불을 향해 얼음 마법을 시전하자, 불길이 차츰 사그라졌다.

“으으, 저리 비켜봐!”

윤상희가 이수호를 밀치고 힘겹게 일어났다.

‘태준씨가 올 때까지 버티려면 아무래도 써야겠어.’

그녀가 광전사 스킬을 선택했다.

그 순간 심장까지 타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크...으아아아!”

불길이 줄어들자, 통로로 뛰어들려 했던 헌터들이 엄청난 비명에 멈칫했다.

“뭐, 뭐야?”

“사람이 타고 있어!”

그리고 안에서 시뻘건 불길에 휩싸인 여전사가 커다란 도끼를 들고 걸어 나왔다.

“피를 원하는가?”

웅웅!

마치 그녀의 손에든 도끼가 대답하듯이 울렸다.

그리고 광전사가 달려들었다.

“끼아아아!”

도끼에 잘린 한 헌터의 머리가 굴러오자, 화염을 던졌던 여자 마법사가 놀라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자신을 놀라게 한 광전사에게 화염을 쏘았다.

“죽어!”

윤상희는 피하지 않았다.

도끼로 얼굴을 가리곤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다.

불길 사이로 휘둘린 파괴의 날이 비명을 지른 여 마법사의 머리통을 갈랐다.

마법사가 죽자, 윤상희를 두르고 있던 마법의 불꽃도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미친! 불도 두려워하지 않아?”

“과...광전사다!”

그녀의 눈빛을 본 헌터들이 순간 오금이 저렸다.

“뭐해! 한꺼번에 달려들어! 500억 안 벌 거야?”

A등급 헌터가 지시하자, 헌터들이 그녀를 공격했다.

윤상희의 온몸은 지금 피범벅이었다.

그럼에도 눈빛은 불타고 있었다.

숫자가 많다고 상대를 몰아붙이는 것은 아니었다.

찔러지는 검과 창, 마법과 화살을 광전사가 된 윤상희는 치명상만 피하고, 나머지 공격은 몸으로 받아내며 착실히 한 명씩 저세상으로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상처를 입을 때마다 그녀의 몸놀림은 더욱 빨라지고 흉포화되고 있었다.

“으윽! 저...저리가!”

윤상희의 도끼에 검이 박살 난 헌터는 두려움에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하지만 윤상희는 먹이를 낚아채는 늑대처럼 달려들어 사내의 가슴을 향해 도끼를 찍었다.

“으아악!”

쩍! 쩍!

또 한 명이 죽었다.

아직 이 안에 이십여 명이나 되는 헌터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윤상희와의 싸움에 기가 질렸다.

윤상희가 밖에서 싸우는 사이 A급 헌터 하나가 윤상희를 피해 통로로 들어갔다.

그곳에 있는 두 헌터를 노리고 있었다.

“크큭! 쓰러진 계집과 소환사라. 내게 800억이 떨어졌군.”

이수호가 창을 겨눴다.

하지만 A급 전사 헌터에게 검으로 상대가 될 리가 없었다.

퍼억!

“크헉!”

발길질에 내장이 끊어지는 고통이 밀려왔다.

이수호는 바닥을 굴렀다.

“밖에 있는 드래곤이 왜 저렇게 병신 같나 했더니, 이제야 알겠군.”

푹!

헌터의 검이 수호의 어깨를 찔렀다.

“크악! 그, 그만...”

“그만? 미친놈, 네놈들 때문에 내 친구가 여섯이나 죽었어!”

퍼억!

헌터의 주먹에 이수호가 바닥을 굴렀다.

“네놈도 똑같은 고통을 느껴봐야지. 저년을 죽이고 나서 너도 천천히 죽여주마.”

사내는 서슬 퍼런 칼을 가지고 한수진에게 향했다.

“아, 안돼!”

순간 짜증이 밀려왔다.

아직 좋아한다고 고백 조차 못했다.

아니 따뜻한 말한마디 하지 못햇다.

수진이가 죽을 위험에 처해 있었다.

지금 이 순간 자신 말고는 누구도 도와줄 수 없었다.

이 상황, 이런 거지 같은 상황까지 가지 않을 수 있었다.

자신의 드래곤이 조금만 더 강했다면, 하늘을 날고 독 브레스를 날렸다면 시간을 더 벌 수 있었고, 자신이 조금 더 강했으면 윤상희와 헌터들을 입구에서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 모든 상황이 자신이 약해서 생긴 것 같았다.

그러자 마음속 깊은 곳에서 짜증과 함께 거센 분노가 치밀기 시작했다.

“멈춰!”

“쿠아아아아아!”

건물 밖에서 드래곤의 포효가 울렸다.

그러자 한수진에게 향하던 헌터가 움찔했다.

“너도 분노하고 있는 거냐?”

“뭐?”

이수호가 혼잣말을 하며 천천히 일어났다.

“너무 답답해 참을 수가 없어! 난 왜 약한 거지? 난 왜 모질지 못할까?”

쿵! 쿵! 쿵!

갑자기 사원 건물 전체가 울리기 시작했다.

“뭐, 뭐야?"

“저런 거지 같은 놈이 수진이를 죽이게 내버려 둘 거야?”

“이 미친 새끼가. 먼저 죽여주지.”

사내가 시퍼런 검을 들고 이수호에 달려들었다.

그 순간.

콰앙!

통로 천장에서 시커먼 발이 뚫고 나와 달려들던 헌터를 움켜쥐었다.

“으헉! 이 도마뱀 새끼 죽어!”

헌터가 검으로 드래곤의 발을 내려찍었다.

피가 흐르고, 살점이 뜯겨 나갔다.

하지만 분노한 드래곤은 손을 놓지 않았다.

아니 분노에 휩싸여 오히려 더 욱 힘을 주었다.

“그만 죽어!”

“으아아악!”

시커먼 드래곤의 발톱이 헌터의 몸을 뚫고, 뼈를 으스러트렸다.

퍼걱!

엄청난 악력에 헌터의 몸이 터져버렸다.

그리고.

드래곤의 입에서 진한 녹색의 브레스가 헌터들을 향해 쏘아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