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1
91. 헌터, 이름을 날리다(6).
“얼음 장벽!”
최한별이 자신의 앞을 두꺼운 얼음벽으로 막아 버렸다.
그러자 잠시 숨을 고를 수 있었다.
“끄아아아!”
팍! 파팟!
하지만 용아병(Spartoi)들이 장벽 안쪽 땅 위로 솟아올랐다.
그들은 얼음 장벽을 기어올라 넘어가거나 멀리 돌아갈 필요가 없었다.
땅속으로 사라지고, 땅 위로 올라가는 것은 용아병의 장기.
얼음 장벽이야 땅속으로 넘어가면 됐다.
“제길, 뼈다귀 놈들!”
“크크큭! 그만 포기하지그래?”
얼음 장벽 반대편에서 이태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쯤이면 나태준도 이미 죽었을 거야.”
“멍청한 새끼, 태준 오빠가 너 같은 줄 알아?”
“나 같았으면 오래 살았겠지. 그놈은 불나방 같은 놈이라 오래 살지 못해.”
“웃기지 마! 그전에 네놈부터 죽여주지.”
최한별이 앞으로 달렸다.
“얼음창!”
양손에 얼음창을 들고 용아병을 공격했다.
파직!
얼음창이 깨지며 용아병 둘이 박살 났다.
그러자 다른 용아병이 검을 휘둘렀다.
한별은 몸을 회전하면서 검을 피하고 손을 뻗었다.
“아이스 에로우!”
퍼걱!
손에서 나간 얼음 화살이 용아병의 두개골에 박혔다.
하지만 놈은 죽지 않고 다시 달려들었다.
“아이스 블라스트!”
파파팟팟팟!
바닥에서 얼음 창이 솟아오르며 최한별 앞에 있는 용아병 셋을 박살 냈다.
“헉헉!”
숨이 턱까지 찼다.
지금까지 잡은 용아병의 숫자가 수백 마리는 될 것이다.
하지만 사방에서 달려드는 용아병의 숫자는 좀처럼 줄지 않았다.
“얼음 계단!”
장벽 앞으로 얼음 계단을 만들어 올라갔다.
그러자 용아병들도 계단을 따라 오르기 시작했다.
꼭대기에 오르자 최한별은 얼음 장벽 반대편을 향해 뛰어들었다.
그리고 손을 뻗었다.
“사라져!”
후두두두둑!
얼음 계단이 녹으면서 그 위에 있던 십여 용아병들이 바닥에 곤두박질쳤다.
바닥에 떨어진 용아병들은 뼈가 섞이며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한별은 그사이 얼음 장벽을 미끄러지며 이태성을 향해 얼음창을 겨눴다.
방금 만든 얼음 장벽은 용아병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은 것이 아니라, 안으로 들어온 용아병이 쉽게 나가지 못하게 막은 것이다.
그리고 이 작전은 성공했다.
지금 눈앞에서 이태성이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 보였다.
“죽어!”
손에서 시작된 두 개의 얼음창이 이태성을 향해 찔러졌다.
쇄에엑!
파팟!
거대한 낫이 휘둘리며 얼음창이 박살 났다.
‘제길, 이렇게 쉽게 끝날 리가 없지.“
이태성의 앞을 막은 것은 지옥의 뱃사공 카론이었다.
놈이 거대한 낫을 겨눴다.
“크큭! 네년은 참 속이기 쉽네, 내가 용아병 하나만 있을 줄 알았어?”
이태성이 웃으며 최한별을 도발했다.
용아병들이 다시 땅속으로 들어가 반대편으로 솟아올랐다.
이제 앞뒤로 적을 맞이했다.
“뭐해? 어서 공격해야지. 내 부하들이 돌아오기 전에 최선을 다해야 할걸.”
최한별이 입술을 깨물었다.
놈이 자신을 농락하는 것 같았다.
수십 마리나 되는 용아병을 거의 쓰러트리면 놈은 또다시 수십 마리를 소환했다.
문제는 그 횟수가 벌써 일곱 번이 넘었다.
아무리 S급 네크로맨서라도 마나가 한계가 있을 것인데, 놈은 정말 쉬지 않고 소환을 했다.
하지만 자신도 마나는 뒤지지 않았다.
태준에게 받은 마나 반지(유니크)와 마력 목걸이(유니크)도 있었고, 얼음 폭풍의 반지(레전더리)도 있었다.
‘아무래도 얼음 폭풍의 반지를 써야겠어.’
마력을 많이 소모했기에 정말 급할 때 사용할 생각이었지만, 더는 시간을 끌 수 없었다.
이태성의 말을 듣자, 태준과 일행이 걱정이었다.
800명이나 되는 헌터들과 싸워야 하는 일이었다.
거기에 자신까지 빠졌으니, 틀림없이 고전하고 있었을 것이다.
“아이스 블라스트!”
카론을 향해 얼음 뿔과 냉기가 솟아올랐다.
수십 개의 뿔이 카론을 찔렀다.
하지만 카론은 공중으로 떠오르며 얼음과 냉기를 단숨에 피해 냈다.
그리곤 거대한 낫을 휘두르며 한별에게 달려들었다.
그와 동시에 용아병들도 검과 방패를 들고 한별을 공격했다.
앞뒤로 적을 맞이해, 큰 위기가 찾아왔다.
하지만 그순간 최한별은 웃음을 지으며 손을 들었다.
“아이스 사이클론(Cyclone)!”
그녀가 주문을 외치자, 그녀 주변으로 거센 회오리가 발생하더니, 무서운 얼음 태풍이 휘몰아쳤다.
그녀의 최고의 스킬, 얼음 폭풍의 반지(레전더리)의 최고 스킬을 시전한 것이다.
얼음 덩어리와 살갗을 저미는 차디찬 서리 바람이 그녀를 중심으로 주변으로 빠르게 퍼져갔다.
“케겍!”
“끄아아악!”
용아병들이 회오리에 휘말렸고, 카론 역시 뒤로 물러서다가 태풍에 빨려 들어갔다.
베이스 캠프의 집기들과 바리케이트, 천막, 텐트, 모래, 돌까지 커다란 얼음 태풍에 휩싸였다.
한참을 커지던 격렬한 회오리가 잦아들기 시작했다.
이태성의 용아병과 지옥의 뱃사공 카론, 베이스 캠프가 모두 사라졌다.
“크윽!”
갑자기 최한별이 한쪽 무릎을 꿇었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마나와 기력을 소모했다.
그녀는 이제 일어설 힘 조자 없었다.
“어떻게 네놈은 멀쩡하지?”
하지만 이태성은 멀쩡했다.
200, 300키로미터가 넘는 바리케이드들도 날아가 박살이 났다.
이태성은 전사 클래스도 아니었고, 체력적으로 가장 약한 네크로맨서였으니, 이 아이스 사이클론을 버틸 순 없었을 것이다.
“그거야 네년의 폭풍에 휘말리지 않았으니까. 그렇지.”
베이스 캠프가 엉망이 된 모습을 보고 이태성이 입술을 실룩거리며 말했다.
“젠장, 내 안전장치들이...”
“윽! 무슨 말이냐?”
“마나 회복 장치와 각종 마법 보호 장치들을 베이스 캠프 곳곳에 숨겨 놓았는데, 네년이 다 박살 내 버렸어.”
“으, 어쩐지 마나가 끝도 없이 나오더라니.”
“뭐, 이제 상관없나? 나태준은 죽었을 테고, 네년도 끝났으니까.”
최한별이 웃었다.
“난 아직 끝나지 않았어.”
최한별이 얼음 방패 하나와 얼음 창 하나를 뽑아냈다.
지금 그녀의 마력으로는 이것이 전부였다.
“크큭! 눈물겹군.”
이태성이 용아병을 소환했다.
그런데 아홉 마리밖에 뽑지 않았다.
자신도 이제 마나를 회복하지 못했기에 혹시나 모를 상황에 대비해 마나를 아껴야 했다.
“저년을 죽여라!”
아홉 마리의 용아병들이 최한별에게 달려갔다.
최한별 역시 이태성을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얼마 가지 못하고 용아병들의 방패에 막혔다.
“받아라!”
빠직!
최한별의 얼음창에 가운데를 막고 있던 용아병 하나가 박살 났다.
그리곤 그녀가 갑자기 몸을 숙였다.
“배낭?”
그 순간 이태성의 눈에 그녀의 등에 배낭이 보였다.
그리고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이 연출됐다.
배낭에서 검은 인형이 쏜살같이 튀어나갔다.
“뭐, 뭐야! 막아!”
그가 소리쳤지만, 이미 말볼은 용아병들을 지나 이태성에게 달려들었다.
“크앙!”
촤악!
“으악!”
말볼이 날카로운 발톱으로 인정사정없이 이태성의 얼굴을 공격했다.
이태성의 얼굴과 팔은 순식간에 뜯겨 나가고 피를 철철 흘리며 쓰러졌다.
“크악! 그...그만.”
가장 가까이 있던 용아병이 달려왔다.
그리고 주인의 몸에 올라탄 말볼을 향해 검을 찔렀다.
푹!
“으아아악!”
하지만 비명은 이태성이 질렀다.
말볼이 옆으로 피한 것이다.
그리고 검은 이태성의 오른쪽 가슴을 찔렀다.
말볼이 떨어지자, 이태성이 손을 뻗으며 외쳤다.
“나를 부축해!”
그가 용아병의 부축을 받고 피투성이가 된 몸을 일으켰다.
그 순간 말볼이 달려와 다리를 물었다.
“크헉!”
종아리 살점이 파이고, 이태성이 휘청이며 다시 쓰러졌다.
그리고 말볼이 먹이를 노리는 늑대처럼 이태성의 등을 타고 목을 물었다.
이번엔 충격이 컸는지, 이태성은 게거품을 물고 용아병들은 사라졌다.
“그...그만. 사...살려줘.”
이태성이 피를 철철 흘리고 있었다.
“말볼, 그만해!”
말볼이 최한별의 말에 뒤로 물러섰다.
“으윽! 씨발, 내가 그 작전에 당하다니.”
이태성은 몸을 돌려 대자로 누워 가쁜 숨을 내뱉었다.
그의 피가 바닥에 흥건했다.
지금 작전은 골렘 마스터 서윤아를 잡았을 때, 벌였던 작전으로 그때는 이수경이 등에 배낭을 배고, 말볼을 숨겼고, 이번엔 최한별이 배낭에 말볼을 숨긴 것의 차이였다.
“복수는 내가 한다!”
차차차차창!
최한별이 마지막 마나를 모아 얼음창 하나를 뽑았다.
그리고 이태성에게 다가갔다.
태준이 아니었다면, 자신은 이미 죽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일을 시킨 놈이 눈 앞에 있었다.
이제 자기 손으로 그 복수를 할 수 있었다.
그때였다.
“게르르르!”
말볼이 갑자기 최한별의 앞을 막아서더니 허공을 향해 으르렁댔다.
“호! 내 기척을 단번에 알아채다니 보통 괴수는 아니군.”
어둠 속에서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말볼이 붉은 눈을 하며 잔뜩 경계했다.
“누, 누구냐?”
최한별이 얼음 방패로 몸을 가리며 물었다.
“최한별이라고 했나? 이태성을 쓰러트리다니, 대단한 실력이야.”
“대단한 건 나도 인정하지.”
사내의 뒤쪽으로 여자 하나와 사내 하나가 더 합류했다.
그들은 모두 셋이었다.
“우린 헌터 협회에서 나왔다.”
“헌터 협회에서?”
이 순간 최한별은 저들의 의도를 고민하고 있었다.
이태성의 부하인지 아니면 또 다른 적인지.
“그래서 무슨 상관이지?”
“거기 있는 이태성은 우리가 데려간다.”
“뭐?”
이태성이 목덜미를 잡고 피를 막으며 겨우 상체를 일으켰다.
“쿨럭! 이 새끼들, 너희는 누구야?”
고개를 들고 세 사람을 확인하자, 이태성이 인상을 찡그렸다.
“너희가 어째서 함께 있는 거지? 그것도 내 게이트에서?”
체격이 좋은 사내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정말 몰라서 물어?”
“곧 있으면 내 부하들이 이곳으로 온다. 허튼짓하지 말고 꺼져.”
“호호호, 목숨을 구해줬더니, 기껏 한다는 말이 꺼지라고? 역시 이태성이야.”
날카롭게 생긴 여자가, 허리춤에 있는 검을 뽑으며 다가왔다.
그러자 최한별이 앉아 있던 이태성 앞을 막아섰다.
“이놈은 내가 죽일 것이다! 아무도 데려가지 못해.”
“뭐?”
세 헌터가 서로를 보았다.
“죽여야겠지?”
“우리가 이태성을 데려간 걸 알릴 필요는 없지.”
최한별의 등골이 오싹했다.
눈앞에 헌터들의 기세가 이태성보다 훨씬 강했기 때문이었다.
‘제길, 하나를 상대하는 것도 힘들었는데, 셋이라니...’
마력이 조금은 회복이 됐다지만, 기껏해야 아이스 블라스트를 한번 시전할 정도였다.
“저항할 생각이군.”
“상당한 미인인데, 그냥 죽이기엔 좀 아까워.”
호리호리한 사내가 입을 열자, 함께 있던 여자 헌터가 표독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사내새끼들이란... 저년은 내가 죽일 거야.”
그때였다.
“모두 물러서!”
세 사람의 시선이 일제히 다가오는 사내를 향했다.
“나태준?”
세 사람 중에 덩치가 큰 사내가 단번에 나태준을 알아봤다.
“노득천, 오랜만이군.”
“동창회에서 만났으니, 2년 만인가?”
“그래, 여긴 무슨 일이지? 김상국이 심부름을 보냈나?”
노득천이 인상을 구겼다.
태준의 말처럼 그는 김상국이 보낸 것이고, 그의 부하였다.
하지만 같은 동창에게 그런 말을 듣자, 은근히 자존심이 상했다.
나태준이 최한별 옆으로 섰다.
그러자 말볼도 나태준 옆으로 섰다.
“이제 3대3인가?”
“비키는 게 좋을 텐데, 이태성은 우리가 데려간다.”
“나태준, 겨우 저런 새끼 때문에 목숨 걸고 싸울 셈이야?”
노득천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그리고 너 혼자 우리 셋을 당해낼 순 없어. 그냥 포기해!”
그때였다.
휘이잉!
커다란 날갯짓을 하며, 시커먼 드래곤 한 마리가 내려왔다.
그리고 등에서 이수호와 한수진, 윤상희가 내려왔다.
“쿠아아아아!”
블랙 드래곤 카올렌이 세 사람을 향해 포효했다.
“혼자라니, 이제 우리 팀 숫자가 더 많아졌는데.”
태준의 말에 세 헌터가 인상을 찡그렸다.
“다들 부상이 심한 것 같은데, 무리하지 마.”
“무리라니, 전투는 하면 할수록 느는 거야.”
“카악, 퉤!”
윤상희가 피가 섞인 침을 내뱉으며 파괴의 날을 어깨에 올리며 말했다.
“대장, 덩치 큰 놈은 내가 맡지.”
태준이 웃으며, 세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러는 너희는 왜 저놈을 데려가려 하는 거지?”
“우리는 그저 명령에 따를 뿐이야.”
“후후, 내가 맞춰볼까? 이태성이 죽으면 지금처럼 게이트를 다량으로 확보할 수 없으니까 그런 거지?”
세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호리호리한 사내가 입을 열었다.
“알고 있다면 이야기가 쉽겠군. 헌터 협회와 전면전을 벌일 생각이 아니라면, 순순히 물러서지.”
“헌터 협회라 그런 거로 날 협박하려고? 너는 누구 부하지?”
“도경수 헌터다.”
“그럼 여자는 최민지 부하겠군.”
“그렇다.”
태준의 말대로였다.
그들은 이태성을 은밀히 미행하며, 그가 어떻게 게이트를 확보하는지 알아보는 특명을 받은 자들이었다.
하지만 이태성이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기 때문에 목숨을 걸고서라도 그를 지켜야 했다.
“큭, 크크큭!”
이태성이 온몸에 피를 흘리며 실성한 사람처럼 웃었다.
“나를 원하는 새끼들이 많군. 누가 나를 차지할지 정하고 빨리 치료나 해달라고.”
이태성은 여유가 있었다.
나태준과 그 팀원들이 여기에 있다는 것은 부하들이 전부 당했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나태준도 자신을 죽이지 못할 것이다.
그럼 헌터 협회와 전면전을 벌여야 할 텐데, 그건 곧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헌터 협회는 더더욱 게이트 때문에 자신을 죽이지 못할 것이니, 부하들이 다 죽었어도 언제든 제기할 수 있었다.
이태성이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태준, 똥고집 그만 부리고, 나를 저놈들에게 보내. 팀원들을 다 죽일 셈이야?”
이태성이 비릿한 웃음을 흘렸다.
놈은 다시 자신과 팀원들을 노릴 것이고, 그가 사라지지 않는 한 오늘과 같은 상황은 또다시 반복될 것이다.
“이태성, 잠깐 이야기 좀 하자.”
태준이 팀원들 뒤쪽에서 이태성과 조용히 이야기하고 있었다.
갑자기 태준이 귀를 이태성에게 대더니, 큰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니까 게이트를 그런 방법으로 찾는단 말이지.”
모두의 시선이 태준을 향했다.
“뭐?”
이태성이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자신은 조금 전에 아무말도 한 적이 없었다.
그때였다.
태준이 고개를 끄덕이자, 최한별이 달려들어 이태성의 옆구리에 얼음창을 찔렀다.
“복수다!”
푸욱!
“커헉!”
이태성은 지금 상황이 믿을 수 없다는 눈빛을 하고는 뒤로 쓰러졌다.
“이태성!”
“그를 구해!”
뒤에 있던 세 헌터들은 갑자기 벌어진 일에 놀라며, 이태성을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나태준이 그 앞을 막아섰다.
“기다려! 이제 게이트를 찾는 방법은 나만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