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살자-93화 (93/149)

# 93

93. 헌터 이름을 날리다(8).

화룡 헬라카스.

태어날 땐 머리가 둘이었다.

불의 용 헬라카스와 폭풍의 용 아바렌.

머리가 둘인 용은 세상을 자유로이 날아다니며 세상을 불태우고 폭풍으로 휩쓸었다.

이 드래곤은 머리가 두 개인 만큼 세상에 적수가 없었다.

인간들은 이 용들 때문에 세상이 멸망할 것을 우려해 신들에게 처치해달라고 빌었다.

하지만 신들조차 이 드래곤을 막을 순 없었다.

벌써 여러 신이 그들과 싸웠지만, 모두 죽었다.

그리고 어느 날 지혜의 여신이 두 드래곤을 해치우기 위해 밤에 둥지를 찾았다.

하지만 그들은 밤에 잠을 잘 때도 하나는 늘 깨어 있었기에 죽일 수가 없었다.

그때 여신이 헬라카스에게 속삭였다.

‘폭풍의 용 아바렌이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용이라고 떠들고 다닌다.’

그러자 헬라카스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자신의 화염은 아직껏 적수를 찾지 못했고, 많은 인간 영웅과 신들까지도 죽였다. 그런데 자신의 몸에 달린 놈이 최고라고 떠든다니까, 화가 난 것이다.

결국 헬라카스는 아바렌이 잠든 틈을 타 그의 머리를 먹어버렸다.

하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그의 힘은 절반으로 줄어들었고, 지혜를 담당한 아바렌에 사라지자, 폭주하기 시작했다.

헬라카스는 오로지 분노와 파괴밖에 모르는 광룡이 된 것이다.

화룡은 세상을 불태웠고, 폭주했다.

그러자 다시 지혜의 여신이 나섰다.

그녀는 지혜의 여신이자, 잠의 여신이기도 했다.

여신이 자장가를 불렀고, 힘이 절반으로 줄어든 헬라카스는 잠을 이겨낼 수 없었다.

그리고 지하 아주 깊은 곳에서 잠을 자기 시작했다.

세상 사람들은 헬라카스가 깨어나는 날. 세상은 다시 불바다에 휩싸일 거라고 말했다.

머리 하나가 없는 기괴하게 생긴 붉은 용!

그 헬라카스의 형상이 말볼의 위에 생겼다.

“게르르르!”

“크르르르!”

말볼이자 헬라카스가 동시에 으르렁거렸다.

늪을 향해 움직였던 린드부름은 화룡 헬라카스의 등장에 순간 걸음을 멈췄다.

헬라카스의 본체는 자신보다 작았지만, 이글거리는 불의 형상이 너무 강렬했다.

그리고 뒤에서 블랙 드래곤 카올렌이 따라붙었다.

앞뒤로 강력하고 커다란 존재에게 포위당한 것이다.

“놈이 늪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막아!”

린드부름은 방향을 살짝 틀어 달렸다.

그러자 시뻘건 눈빛을 반짝이며 말볼이 달렸다.

쿵! 쿵! 쿵!

가벼운 말볼이 뛰고 있음에도 헬라카스의 형상이 밟은 자리는 움푹 파였고, 뜨거운 열기에 식물들이 타들어 갔다.

“얼음 장벽!”

린드부름 앞으로 얼음 장벽이 다시 세워졌고, 놈이 몸을 다시 돌리자, 헬라카스의 형상이 린드부름을 덮쳤다.

콰앙!

치이이익!

“끼이이이아!”

놈의 피부에 헬라카스의 형상이 부딪히자, 살이 타는 냄새가 나면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말볼은 사정없이 발톱으로 린드부름을 공격했다.

이는 단순한 발톱이 아니었다.

헬라카스의 샤먼이 깃든 발톱이었기에 그 뜨거운 열기에 린드부름의 비늘이 녹고 살이 갈라졌다.

“쿠아아아!”

콰직!

그리고 뒤에서 카올렌이 덮쳐 꼬리를 물었다.

린드부름의 최대의 무기는 독가스와 꼬리였다.

이를 봉쇄하면 땅에서는 더는 힘을 쓸 수 없었다.

린드부름이 늪으로 가기 위해 힘겹게 발을 내디뎠다.

최한별이 다시 다리를 얼렸지만, 놈이 힘으로 부수며 한발한발 늪으로 향했다

“말볼 놈의 목을 노려!”

말귀를 알아들었을까?

말볼이 린드부름의 등위로 뛰어오르더니, 달려가 목덜미를 물었다.

작은 입으로 물었지만, 거대한 화룡의 형상 역시 목을 물고 늘어지자, 놈이 살이 타는 고통에 심음을 질렀다.

“으아아아아!”

나태준이 포효했다.

[도살자의 포효(lv3)가 발동됩니다.]

상처 입은 린드부름은 또다른 포효가 들리자, 공포에 질렸다.

걸음이 느려지고, 상처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그리고 옆으로 태준이 달렸다.

“도살(屠殺)!”

말볼이 발톱으로 만든 상처에 칼을 쑤셔 박았고, 백정 스킬로 괴수의 옆구리를 사정없이 베고 찔렀다.

“허! 세상에 완전 괴물들의 싸움이구나!”

최한별은 놀란 입을 벌리며, 감탄했다.

그녀는 지금 린드부름의 걸음을 늦추는 것이 다였다.

태준의 난도질에 두꺼운 살이 뚫리며 드디어 내장이 보였다.

“도대관(導大窾)!”

남은 마나를 전부 쏟아부어 도대관 스킬과 난도 스킬을 난사했다.

놈의 내장에는 온통 구멍이 뚫렸고, 뚫린 구멍에서 녹색 피와 알 수 없는 액체가 쉴 새 없이 흘러나왔다.

그 순간 태준은 인벤토리에서 병을 찾았다.

린드부름의 피를 받기 위함이었다.

살아 있는 상태에서 받은 피는 죽은 다음에 받은 것보다 훨씬 강력한 흡혈(吸血) 효과가 발생해 피의 탐욕 스킬이 더욱 강해진다.

피를 담아내고, 갈고리와 칼을 들고 놈의 뱃속을 더욱 휘저었다.

그러자.

“끼아아아아악!”

쿠웅!

린드부름의 머리가 땅에 닿았다.

놈은 늪을 겨우 1미터 앞에 남기고 쓰러졌다.

[린드부름(S)을 죽였습니다.]

[게이트를 클리어했습니다. 이 게이트는 72시간 후에 소멸합니다. 남은 시간 - 71:59:59]

[보상으로 최상급 바람의 정령소환 룬(레전더리)을 얻었습니다.]

게이트 클리어 알람이 떴다.

태준이 급하게 인벤토리를 확인해봤다.

다행히 아이템이 들어와 있었다.

‘가만 말볼이 이것도 먹었으면 최상급 바람의 정령도 소환하는 거 아냐?’

설마하며, 고개를 흔들고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게르르르!”

린드부름을 죽였음에도 말볼이 화룡 헬라카스와 접신된 상태였다.

게다가 태준에게까지 이빨을 드러냈다.

“말볼, 그만 돌아와!”

순간 화룡의 난폭함에 지배될 수 있다는 연희의 말이 떠올랐다.

“크왕!”

“제길!”

말볼이 작은 입으로 린드부름의 목을 뜯어 먹고 있었다.

팀원들이 모였다.

“어떻게 하지? 저대로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이수호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최한별이 고개를 흔들었다.

“하지만 안 돌아올 수도 있잖아.”

게다가 뜨거운 열기 때문에 가까이 갈 수도 없었다.

“카올렌을 보내 진정시킬까?”

“아니 내가 할게.”

“응? 형이?”

태준이 칼과 갈고리를 넣고, 인벤토리에서 고기를 한 덩어리 꺼내 씹었다.

“섭취(攝取)!”

화염에 강하고 불을 뿜는 A등급 괴수 오라흐(Orah)의 고기를 씹었다.

온몸이 화염 내성이 올라간 상태로 천천히 말볼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모든 열기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치이익!

화룡 헬라카스에게 손을 대자, 뜨거운 열기가 휘감았다.

하지만 참고 앞으로 걸었다.

“크윽!”

아주 천천히 말볼이 놀라지 않게 다가갔다.

이미 태준의 옷은 모두 타버렸고, 실오라기 하나 남지 않았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괴수 고기를 씹고 있는 말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말볼, 나야. 날 모르겠어.”

으르렁거리던 말볼이 점점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말볼의 눈빛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고기 하나 줄까?”

인벤토리에서 입에서 얼음을 뿜어내는 차가운 성질의 블랙 드라칸(S)의 고기를 꺼냈다.

그 사이 말볼을 덮고 있던 화룡의 기운이 사라졌다.

고기를 내밀었지만, 말볼은 고기를 먹지 않고 태준에게 붙어 몸을 비볐다.

놈도 미안한 모양이었다.

“얼음 장벽!”

태준과 말볼 주위로 작은 얼음벽이 세워졌다.

뜨거워졌을 태준을 식히는 것이었다.

그 이후로 태준은 한참이나 말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말볼과의 인연이 벌써 2년이다.

몸집은 훨씬 커졌고, 얼굴은 몰라보게 매끈하게 변했지만, 여전히 말볼이었다.

“이젠 배낭에 넣어 다니기도 힘들겠다.”

“맞아. 이태성과 싸우는 것보다 말볼을 등에 메고 다니는 게 더 힘들었어.”

최한별이 말했다.

“그런데 오빤, 괜찮아?”

“그래 머리카락이 좀 그을린 정도야.”

태준이 여유롭게 웃었다.

하지만 조금만 더 열기에 노출됐더라면 태준도 위험했을 것이다.

“이걸 어쩌나 슈트가 다 떨어졌네.”

인벤토리에 창수가 만들어준 슈트가 전부 떨어졌다.

어쩔 수 없이 검은색 체육복을 입었다.

“이제 돌아갈 거야?”

“그래야지. 먼저 이 고기부터 해체하고.”

거대한 린드부름의 고기를 해체했다.

A등급이 되면서 인벤토리 슬롯이 4배로 늘어 4톤이 넘는 물품을 보관할 수 있었다.

보통 A등급 헌터의 인벤토리 최대 무게가 100kg에서 200kg 정도였으니, 최대 20배나 되는 저장 공간이었다.

이는 괴수 백정이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괴수를 다 해체하고 상태창을 열었다.

[나태준]

- A등급

- 체력 : 1004

- 마나량 : 14(92)

- 클래스 : 괴수 백정, 도살자.

- 특성 : 관찰(lv8), 도살(lv9). 해체(lv17), 감식(lv6).

- 특기 : 비대각(批大卻). 도대관(導大窾). 난도(亂刀)(lv7).

- 각성 : 할야(割也), 절야(折也), 흡혈(吸血), 섭취(攝取), 재생(再生), 포효(咆哮), 지경긍경지(技經肯綮之).

- 도살자 업적 : F등급 도살자, E등급 도살자, D등급 도살자, C등급 도살자. B등급 도살자. 독 수련자(A).

* 흉포한 에이션트 마그투스의 각반(레전더리) - 사용 중지.

* 난폭한 디울리스의 팔찌(유니크) - 사용 중지.

* 그림자 반지(유니크) - 사용 중지.

* 체력 회복의 반지(유니크) - 사용 중.

* 마나 회복의 반지(유니크) - 사용 중.

* 녹음의 링(유니크) - 사용 중지.

그리고 A등급이 되면서 생긴 각성 스킬 지경긍경지(技經肯綮之).

아직은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 길이 없었다.

괴수를 잡을 때 발동하면 될 줄 알고 외쳐보기도 하고, 상태창에서 눌러보기도 했지만, 발동하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었다.

각성 스킬 중에서 재생(再生) 스킬을 아직 한 번도 써본 적이 없었다.

다른 스킬들은 모두 익숙해졌지만, 두 가지는 아직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S등급 헌터가 되기 위해서는 왠지 저 두 개의 스킬을 꼭 써야 할 것 같았다.

“이제 끝났다.”

“허! 그 고기가 전부 들어갔어?”

“그래 언제든지 괴수 고기 먹고 싶으면 말해.”

최한별이 인상을 찡그렸다.

***

“준비됐어?”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베이스 캠프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니 이 게이트에는 더는 살아 있는 인간은 없을 것이다.

그래도 지난 사흘 동안 체력을 많이 회복했기에 태준과 팀원들은 쌩쌩한 편이었다.

“휴! 이 도끼가 좀 더 익숙해지면 좋았을 텐데.”

윤상희는 파괴의 날을 만지작거렸다.

“혹시나 전투 중에 내가 또 이상해지면, 알지?”

“네, 뒤통수를 후려치죠.”

“쩝.”

게이트밖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나가자마자 헌터 협회 헌터들이 공격을 퍼부을지도 몰랐고, 지독한 전투가 벌어질 수도 있었다.

“수호야!”

“네! 준비됐어.”

블랙 드래곤 카올렌이 입구에 섰다.

지름이 200미터나 되는 게이트였지만, 카올렌이 검은 날개를 활짝 펴자, 그리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가자!”

몸빵용으로 카올렌이 먼저 밖으로 나갔고, 뒤를 이어 태준과 팀원들이 일제히 몸을 날렸다.

“쿠아아아아!”

밖으로 나오자마자 블랙 드래곤이 포효했다.

“응?”

“이게 대체?”

수천?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게이트 주변에 모여 있었다.

그리고.

펑! 펑! 찰칵! 찰칵!

플래시가 사방에서 터지고, 수십 대의 방송국 카메라에 일제히 빨간불이 들어왔다.

“와아아아!”

“영웅들이다!”

시민들과 헌터들이 열렬히 환호했다.

“태준씨,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글쎄요.”

팀원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그 순간에도 태준은 주변을 살폈다.

군인들과 헌터들이 사방에 쫙 깔려있었고, 노득천과 헌터 협회의 사람들도 있었고, 국가 헌터원의 이철용과 최규환의 모습도 보였다.

- 드디어 A급 게이트를 클리어한 영웅들이 나왔습니다.

전국 생방송으로 TV 방송사들이 앞다퉈 그들의 모습을 송출했다.

- 이들 다섯 명은 갑자기 생긴 A등급 게이트로 뛰어들어가 동두천 시민들과 주변 연천, 포천, 양주, 의정부 시민들을 보호하고, 게이트를 클리어하여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구했습니다.

- 아! 저기 대통령께서 도착하셨습니다.

검은색 리무진이 경호 헌터들과 함께 게이트 앞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헌터 협회 관계자들과 정치인들, 국가 헌터원과 각 관계 장관들까지 모두 게이트 앞으로 이동했다.

‘김상국, 네놈도 왔구나.’

최민지와 도경수는 보이지 않았지만, 김상국이 헌터 협회 대표로 와 있었다.

이런 일을 벌인 것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국가 헌터원의 이철용과 최규환일 것이다.

엄청난 환호와 환대가 이어졌다.

대통령 표창과 시민들의 환호, 방송사 인터뷰와 각종 준비한 행사가 모두 끝났다.

“오랜만이군. 나태준, 잠깐 이야기 좀 할까?”

헌터 협회의 김상국과 노득천이 먼저 다가왔다.

“아니, 나와 먼저 이야기해야지. 상국이 너보다 내가 먼저 왔잖아.”

이철용이 압도적인 포스를 풍기며 최규환과 옆으로 다가왔다.

어색한 만남.

서로 간에 어색한 기류와 일촉즉발의 기운이 뿜어졌다.

김상국이 말했다.

“무슨 소린지 모르겠군. 이 게이트는 우리 헌터 협회에서 먼저 발견한 거야?”

“그럴 리가 있나. 이건 나태준이 발견해 클리어한 거로 알고 있는데, 벌써 이 행사의 의도를 잊어버렸나 보지?”

이철용의 말에 김상국이 인상을 찡그렸다.

“아무튼, 내가 먼저 말을 시켰으니까. 기다리라고.”

“웃기는 소리. 너는 아침에 왔고, 나는 새벽에 왔으니까. 네가 기다려야지.”

“뭐? 지금 해보자는 거야?”

“그러면 누가 무서워할 줄 알고? 그리고 시작하면 네놈이 가장 먼저 죽을 거야.”

“내 그림자를 너무 무시하는군.”

“그까짓 놈들.”

두 사람의 신경전이 대단했다.

“야! 두 사람 다 시끄럽고. 나 지금 피곤하니까, 저기 내 비서와 스케줄 잡아서 하나씩 찾아와.”

“뭐?”

태준이 이수경을 향해 손짓하자, 그녀가 다가왔다.

B급 게이트에서 나오자마자, 팀원들이 걱정돼서 달려와 주변에서 기다린 그녀였다.

“수경씨, 나 피곤해서 한 사흘은 잘 테니까. 그 이후로 스케줄 잡아.”

“알겠습니다. 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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