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살자-94화 (94/149)

# 94

94. 이태성의 비밀.

‘이태성, 이놈은 대체 뭐하는 새끼였을까?’

국가 헌터원 대표로 온 최규환에게 들은 말은 조금 충격적이었다.

“그러니까 A급 게이트와 B급 게이트를 너희에게도 넘겼단 말이지.”

“그래, 우린 합당한 대가를 지급했고.”

머리가 살짝 아파졌다.

이태성은 적과 아군의 구별이 없었다.

한마디로 팔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팔았다.

생각해 보니, 초등학교 때도 누나 팬티와 브래지어도 훔쳐다 판 놈이었으니, 그러고도 남을 놈이었다.

지난 5년간 가장 많은 게이트를 소모하는 헌터 협회에 65%를 넘겼고, 30%는 국가 헌터원에 넘겼다. 그리고 나머지 5%는 불법 게이트로 팔거나 자신과 팀원들이 공략해 돈을 모으는 수법을 썼다.

‘그런데 어떤 방법으로 게이트 위치를 알아냈을까?’

눈앞에서 최규환이 열심히 떠들고 있었지만, 그것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기태와 같은 특별한 능력이 있는 헌터가 또 있을까?

솔직히 그건 아닌 거 같았다.

기태는 게이트에서 태어난 아이였다.

그것도 두 부모가 동시에 각성했고, 게이트 안에서 상당히 오랜 시간 생존했었다.

그런 아이가 또 있을까?

대답은 거의 불가능하다였다.

그럼 어떻게 위치를 알아냈을까?

“나태준, 지금 내 말을 듣고 있는 거야?”

“어? 어디까지 이야기했지?”

“그러니까 우리에게 지금보다 더 많은 게이트를 넘겨달란 말이야. 돈은 충분히 낼 테니까.”

“글쎄, 그건 좀 생각해봐야겠는데.”

최규환이 인상을 찡그렸다.

“우리가 그동안 너에게 해준 것을 잊었어? 게이트를 공짜로 넘겨주고, 장비와 인력까지 지원까지 해줬지. 그 은혜를 이런 식으로 갚는 거야?”

최규환을 향해 피식 한번 웃어줬다.

“말은 바로 해야지. 나 때문에 국가 헌터원이 본 이득이 훨씬 더 컸잖아.”

“뭐?”

“게이트병을 치료할 약을 넘겨줘서 헌터들과 국민들의 지지를 끌어냈고, 슈퍼 루키가 국가 헌터원에서 나왔다는 기사로 각성자가 몰렸고, S급 게이트가 발생할 것도 미리 말해줬고, 또...”

“그만해. 무슨 말인지 알아.”

최규환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물러날 생각은 없었다.

“생각해봐. 지금 헌터 협회 그 새끼들은 너를 탐탁지 않아 할 거야. 안정적인 물량을 공급받다가 갑자기 공급자가 바뀌었으니, 너를 잡아다가 게이트 위치를 찾는 방법을 알아내기 위해 고문할 수도 있어.”

“뭐,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지금처럼 똑같은 물량을 같은 가격에 제공하면 조용할 수도 있지. 참, 한가지 궁금한 것이 있어.”

최규환이 상체를 살짝 뒤로 물러섰다.

나태준은 항상 저 말 뒤에 곤란한 질문을 했기 때문이다.

“너희는 어떻게 이태성의 비밀을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움직인 거지?”

최규환이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거상 길드에 심어 놓은 첩자가 있어. 이번에 너와 함께 게이트에도 들어갔고.”

‘역시 몰래 엿듣고 있던 놈이 있었어.’

역시나 자신의 예상이 맞았다.

여기저기 배신자와 지저분한 놈들 천지였다.

그리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녹음의 링”처럼 남의 말을 몰래 들을 수 있는 아이템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그래서 게이트 안에서는 한시도 방심할 수 없는 것이다.

최규환이 계속 설득을 했지만, 태준은 기존의 공급량을 조정할 생각이 없었다.

그러자,

“잘 들어 네가 협조하지 않으면, 우리 측에서 너를 제거하자는 말이 나올 수도 있어. 너를 죽이면 정치권과 군부대, 경찰을 장악하고 있는 우리가 헌터 협회보다 게이트를 찾는 확률이 훨씬 높아지거든.”

최규환은 태준을 협박했다.

하지만 태준은 표정에 변화가 없었다.

“뭐, 마음대로 해. 누가 오던 얼마든지 상대해주지.”

“이태성을 죽였다고 우리를 너무 우습게 보는군.”

“그럴 리가 있겠어? 난 상황을 믿는 거야.”

“상황이라니?”

“게이트 위치를 곧바로 발견하지 못하면 어렵게 회복한 국가 헌터원의 이미지가 바닥으로 떨어질 텐데. 그런 무리수를 둘 정도로 바보는 아니잖아.”

최규환이 인상을 팍 찡그렸다.

태준의 말이 맞았다.

게이트 위치를 특정하지 못하면, 매번 게이트가 발생할 때마다 경찰과 군부대를 총동원해야 했고, 게이트를 빨리 찾는다고 해도 그것을 지키고 공략할 헌터가 터무니 없이 부족했다.

그럼 게이트에서 괴수가 튀어나오고, 사람들이 죽는다.

국민 여론은 순식간에 나빠질 것이고, 사람들은 국가 헌터원과 헌터 협회를 동시에 원망할 것이다.

두 군데 다 이미지가 떨어지면 더 큰 손해를 보는 것은 국가 헌터원이 몇 배는 더 커졌다.

정권교체와 책임자 처벌의 목소리가 커질 것이고, 신뢰도는 바닥으로 떨어질 것이다.

하지만 헌터 협회는 사정이 다르다.

시국이 어려워지면 어려워질수록 사람들은 영웅을 기다리는 법이었다. 그때 헌터 협회의 옛 영웅들이 나서서 다시 괴수를 잡고, 헌터들을 대량 투입해 질서를 잡고 안정화하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헌터 협회를 다시 지지할 것이고, 그들의 세력은 더욱 견고해질 것이다.

그것이 헌터 숫자를 배 이상 확보한 헌터 협회의 힘이었다.

“지금 너희 수준으로는 발생한 게이트들의 절반을 소화하기도 힘들잖아. 그러니 그런 어쭙잖은 협박은 그만두는 게 좋을걸.”

“제길...”

최규환이 인상을 찡그렸다.

“많이 달라는 것도 아니잖아. 10% 정도만 우리 쪽에 밀어줘도 되잖아. 아니면 헌터 협회 놈들이 커지는 것을 견제할 방법이 없어.”

“그게 무슨 말이지?”

“최민지가 미국으로 갔어. 그곳을 장악하고 있는 일본 헌터들을 숙청하고 자기 발아래에 두고 있지. 그리고 도경수는 유럽의 나라들을 하나씩 장악하고 있고.”

태준의 표정이 변했다.

이번에 들은 이야기는 상당히 심각한 것이었다.

“그놈들이 그곳에서 자리를 잡게 되면, 우리 힘으로는 셋 중의 하나를 상대하기도 힘들 거야. 그럼 균형이 깨져.”

태준이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앞으로 1년이다.

연희를 구하기 위해 남은 시간이...

그 시간 동안은 헌터 협회와 국가 헌터원이 서로 견제하며 균형을 맞추고 있는 것이 유리했다.

게이트는 1년에 많게는 7, 8차례 발생했고, 적으면 3, 4번 정도 발생했다. 작년까진 발생 횟수가 꾸준히 늘어나더니, S등급 게이트가 발생하고 나서는 오히려 그 주기가 느려졌다.

하지만 높은 등급의 게이트 숫자는 오히려 몇 배나 많아졌기에 헌터들이 게이트를 지키거나 공략하기엔 더 힘들어졌다.

그러니 앞으로 몇 번만 게이트를 분배하면, 1년은 금방 지나갈 것이다.

“좋아, 10%는 불가능하고, 5% 늘려주지. 대신.”

“대신?”

“조금 전에 말했던 헌터 협회의 정보를 알아내는 데로 내게 넘기는 거야. 그리고 이 조건은 앞으로 1년간 유지하고, 1년 후에는 다시 상황을 봐서 협상하지.”

최규환이 살짝 안도의 눈빛을 보였다.

5%는 적은 양이 아니었다.

헌터 협회의 양을 줄일 순 없었다.

대신 이태성이 원래 불법 게이트로 팔거나 자신이 공략하는 5%를 국가 헌터원에 내줄 생각이었다.

어차피 자신들은 A등급 게이트 몇 개만 확보하면 되는 일이었다.

협상이 끝나고 나가는 최규환은 나름 만족한 표정이었다.

“이수경씨 다음은?”

“오늘은 끝났고, 내일 헌터 협회 사람들과 약속을 잡았습니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군.”

다음날 헌터 협회에선 동두천 게이트에 봤던 노득천과 최민지의 부하인 이가희, 도경수의 부하인 남궁민철이 대표로 왔다.

그들과의 협상은 길지 않았다.

기존과 같은 65%, 그리고 1년 후에 재협상.

그들도 지금은 외부로 세력을 넓히고 있었기에 적당히 타협하고 1년 후를 기약할 생각인 것 같았다.

***

혼자서 지하 헌터 시장을 찾았다.

‘왜 나를 보자고 한 것일까?’

지하 헌터 시장의 지배자이자, 성주인 최강해의 부하들이 자신을 찾았다.

2층 포탈 앞에 도착하자, 한 미모의 여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반갑습니다. 강세영입니다.”

“나태준입니다.”

“저를 따라오십시오.”

전에 자신을 안내했던 사내는 보이지 않았고, 강세영의 안내로 최강해의 성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시오. 나태준 헌터.”

“오랜만에 보는군요.”

최강해가 자신을 맞이했다.

그는 늘 중년의 고독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급한 일이라고요?”

내 말에 최강해는 인상을 살짝 찡그렸다.

“나태준, 당신에게 놀랐소.”

“...”

놀랐다고? 무슨 말을 하는 걸까?

“솔직히 게이트에서 나오면 곧바로 나를 먼저 찾아올 줄 알았소. 그런데 나를 제외하고 국가 헌터원과 거래하고, 어젠 헌터 협회와 거래를 끝냈소.”

거래? 게이트를 말하는 건가?

헌터 협회와 국가 헌터원하고의 거래라면 게이트밖에 없었다.

“그리고 오늘도 나를 찾지 않는다니, 그 배포에 놀랐소. 내가 게이트 정보를 제공하지 않으면 어쩌려고 그러셨소?”

그런 건가...

이자가 이태성에게 게이트를 소개했고, 이태성은 단지 중개인이나 하수인일 뿐이란 말인가.

궁금한 점이 풀려서 기분이 좋았지만, 뭔가 머리가 삐쭉삐쭉 서는 느낌이었다.

이 대화를 주도하기 위해서는 방금 이 사실을 알았다는 것을 모르게 해야 했다.

“어차피 새로 중개인이 필요할 거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비밀은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은 거지요.”

최강해가 피식 웃었다.

“내가 마음이 변해 직접 게이트 장사에 나설 수도 있지 않겠소?”

“전면으로 나서기 싫어하시니, 이태성을 내세우신 거겠죠. 아닙니까?”

“후후. 그래, 몇 %를 원하시오?”

최강해는 지금 거래를 하고 있었다.

“5%만 더 주십시오.”

“일은 내가 다 하는데, 5%를 더 받겠다?”

“싫으시면 다른 중개인을 구하시면 됩니다. 저는 완전히 손을 떼지요.”

그런데 이자는 어떻게 게이트 위치를 아는 거지?

문뜩 또 다른 의문이 들었다.

이자도 게이트 파장을 읽는 건가?

최강해는 지하 헌터 시장을 오가는 포털을 만들 수 있었다. 기태에게 듣기론 포탈이 게이트와 똑같은 원리라고 했으니, 그럴 가능성도 있었다.

내 제안에 최강해가 고민하고 있었다.

이 거대한 엘프 성과 모르긴 몰라도 각종 레전더리 아이템을 수십 개 이상 가지고 있을 그였다. 게다가 이곳 지하 상점들에서 받는 수수료 또한 엄청날 텐데, 돈에 대한 욕심은 정말 끝이 없는 것 같았다.

“참, 대답을 듣기 전에 그 전에 하나 물어도 되겠습니까?”

“좋소. 물어보시오.”

“게이트 반지라고 들어보셨습니까?”

최강해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번에 이연희 헌터가 S급 게이트를 클리어하고 보상으로 나온 반지가 게이트 반지라고 들었소. 그리고 레전더리 급도 아니고 최초의 신 급 아이템이라더군.”

“잘 알고 계시군요. 그 게이트 반지에 대해 알고 있는걸 듣고 싶습니다. 그럼 5%는 없는 이야기로 하고, 전과 같은 수수료로 받겠습니다.”

“그런데, 그걸 왜 내게 묻는 것이오?”

“게이트가 소멸하는 그때 연희가 이곳 지하 헌터 시장으로 들어오는 포탈과 비슷한 붉은 색 포탈을 만들어 피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니 최강해 성주께서 뭔가 알고 계시지 않겠습니까?”

최강해의 눈빛이 살짝 흔들리는 것 같았다.

“확실한 것이오? 붉은색 포탈을 만들었다고?”

“그렇습니다. 김득구가 직접 봤다고 했습니다.”

최강해가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이연희 헌터가 죽지 않고, 아직 살아 있을 가능성이 크군.”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사실 S급 게이트에서 혼자 생존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오. 하지만 포털을 만들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는 것은 다른 차원으로 피했다는 뜻이니 살아 있을 가능성이 크오.”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최강해의 입에서 그 말을 듣자, 정말 연희가 살아 있을 것 같았다.

“성주께서도 게이트 반지를 가지고 계시는군요.”

“물론이오. 그러니 이런 공간을 유지할 수 있는 거지.”

그는 사실대로 말했다.

뭔가 큰 비밀이 풀린 느낌이 들었다.

“그럼 게이트 발생정보는 어떻게 받으면 됩니까?”

“그건 이태성에게 못 들었군.”

“네, 성주님께서 게이트를 소개한다는 것만 듣고, 긴 이야기를 나누진 못했으니까요.”

“우리가 알아서 헌터 협회와 국가 헌터원에 위치 정보를 보냈소. 이태성은 그냥 가만히 앉아서 돈만 받고 수수료를 챙겼지.”

자신이 나서서 분배해 줄 필요도 없었다.

그냥 수수료만 받으면 되는 일이었고, 자신들은 조용히 게이트만 공략하면 끝나는 일이었다.

구체적인 협상을 하다가 갑자기 최강해가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혹시 S급 게이트에 관심이 있소?”

“S급이요? 용산에 발생한 것 말입니까?”

“아니. 한달 후 부산 앞바다에 발생할 게이트를 말하는 것이오.”

“네? 부산에 S급 게이트가 발생하는 겁니까?”

최강해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태준이 눈빛을 반짝였다.

연희와 헌터들이 S급 게이트를 클리어하기 위해 들어갔고, 많은 헌터가 죽었지만, 생존한 헌터들은 모두 등급이 올라서 나왔다. 그들 말로는 경험치가 기존 게이트보다 높았고, 높은 등급의 괴수가 끊임없이 나오기 때문에 파티 사냥하기에 최고의 조건이었다.

이건 단숨에 등급을 올릴 기회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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