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살자-95화 (95/149)

# 95

95. 은혜는 반드시 갚는다(1).

‘S급 게이트라...’

지하 헌터 시장을 나서는 내내 고민을 하고 있었다.

솔직히 욕심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혼자 먹긴 너무 크다.

1년 전 용산에 발생한 첫 S등급 게이트의 경우 220명이 넘는 A급 헌터들과 S급 헌터 열넷이 공략에 참여했고, 게이트에서 쏟아져 나온 괴수를 잡기 위해 수만 명의 헌터와 군인들이 동원됐었다.

‘그때 참 지독했었지.’

그 치열한 전투를 떠올리자, 벌써 코앞에 피비린내가 풍기는 것 같았다.

두 달, 그 긴 시간 동안 끝없이 몰려오는 괴수들을 막았고, 결국 연희와 공략팀이 게이트를 클리어했다.

그때 연희가 게이트에서 나왔다면, 지금쯤 함께 게이트를 공략하며, 지냈을 텐데...

‘개새끼들!’

자신도 모르게 주먹이 쥐어졌다.

최민지와 도경수.

분명 두 사람이 연희를 공격했을 것이다.

아니면 죽었다고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었겠지.

그런데 왜 그랬는지 그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연희가 너무 강해서인가? 아니면 자신들의 일에 방해가 된 건가?

자신에게 누구도 넘보지 못할 강한 힘이 있다면, 당장에라도 그들을 찾아가 멱살을 잡고 물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은 아직 약하다.

개개인 하나의 힘을 넘어섬이 아니다.

어떠한 힘이나 단체에도 굴복하지 않을 만한 힘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팀원들 역시 스스로 몸을 지키기엔 아직 부족하게 여겨졌다.

‘누구도 넘보지 못할 강한 힘을 얻어야 해.’

이번이 그 첫 번째 기회였다.

그리고 팀원들 역시 S등급 헌터로 함께 올라서야 했다.

문제는 S급 게이트에서 싸워야 할 인원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

“태준아, 큰일 났어!”

집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창수가 큰 목소리를 냈다.

“뭔데 그래?”

“기, 기태가 그러는데, 부산에...”

“S등급 게이트가 생길 거라고?”

“어?”

“에?”

거실에 있던 팀원들이 전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알았어?”

“정확히 부산과 대마도 사이에 생길 거야. 그리고 우리가 그 게이트를 공략할 거야.”

“뭐?”

“뭐요?”

태준의 말에 한 번도 토를 달지 않았던 팀원들이 갑자기 말이 많아졌다.

“우리 힘으론 절대 안 돼요.”

“맞아, 이건 A급 게이트가 아니라 S등급 게이트야. 불가능해.”

서울역 앞에서 지독한 괴수 웨이브를 함께 막았던 최한별도 고개를 흔들었다.

“태준 오빠 말이라면 무조건 따르겠지만 이건 아닌 거 같아. 그리고 게이트에서 쏟아져 나오는 괴수들은 또 어떻게 할 거야.”

“맞아. 그것도 큰 문제잖아.”

태준은 가만히 듣다가 입을 열었다.

“그건 걱정하지 마, 수영을 못하는 괴수들은 익사할 테고, 초기에 육지로 올라오는 놈들만 잘 막으면 곧 헌터들이 몰려올 테니까. 그리고 전과 다르게 등급이 높은 헌터들이 많으니까, 어렵지 않게 막을 거야. 문제는 우리가 S등급 게이트에 들어가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가 문제야.”

“그게 무슨 말이야 얼마나 버틸 수 있을 지라니? S등급 게이트가 발생하면 헌터 협회와 국가 헌터원, 그리고 대한민국에 수많은 길드와 헌터들이 떼로 몰려들 거야. 우리만 들어갈 리가 없잖아.”

최한별이 말에 윤상희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한별이 말이 맞아. 아주 치열한 진흙탕 싸움이 될걸. 전에 S등급 게이트에 들어간 헌터들이 모두 등급이 올라서 나왔잖아. 그러니 이번엔 최소 B급 이상의 헌터들이 있는 길드는 무조건 달려들거야.”

태준이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이번엔 전과 상황이 달라. 헌터 협회도 바로 들어가긴 힘들 거야. 전에는 S등급 게이트 공략하려고 준비한 시간이 상당했기에 바로 들어갈 수 있었지만, 이번엔 발생 후에야 알아챌 거야. 그럼 그제야 공략 팀을 소집하고 장비와 물자도 준비해야 하기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거야. 알다시피 이건 A등급 게이트가 아니라 S등급 게이트니까. 그리고 이번엔 S등급 게이트가 발생할 때, 다른 게이트들도 동시에 발생할 거야. 그럼 게이트를 확보하기 위해 헌터들을 보낼 테니까, S등급 게이트에 보낼 헌터를 모집하는 것도 쉽지 않을걸.”

태준은 이미 세부 계획이나 다음 상황들까지 예측하고 있었다.

윤상희가 말했다.

“바다 위에 게이트로 들어가려면, 보트나 헬기가 필요하겠네.”

“큰 요트를 하나 사면되죠. 그리고 창수와 성하씨가 요트에서 대기하면 되고.”

창수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여러모로 너무 위험한 작전이야. 팀원들 숫자도 너무 부족하고.”

“그건 맞아. 대신 적어도 일주일에서 열흘은 다른 헌터들 상관없이 우리끼리 사냥할 수 있을 거야. 문제는 우리가 그 시간을 버틸 수 있지가 걱정이지. 잘못하면 오히려 우리가 괴수들에게 먹힐 거야.”

“하지만 버티기만 한다면 빠르게 S등급으로 오를 수도 있겠네.”

최한별이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소수 정예라 괴수들에게 거릴 위험도 적을 거고.”

“그리고 나중에 헌터들이 몰려 들어오면, 그때 힘을 합쳐서 게이트를 클리어하면 돼.”

“대체, 이런 정보는 어디서 얻은 거야?”

물어본 창수뿐만 아니라 다른 동료들도 그것이 궁금했다.

“최강해! 지하 헌터 시장의 최강해에게 들은 거야.”

창수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그자를 신뢰할 수 있을까?”

태준은 지하 헌터 시장에서 있었던 일들을 팀원들에게 말했고, 이태성이 단순한 게이트 브로커였다는 것을 알려줬다.

그리고 이태성이 받은 조건과 같은 조건으로 태준이 게이트 중개를 맡았다고 말했다.

“그런 일이 있었군.”

“그러니 당분간은 최강해와 같이 일을 할 거야.”

사실 게이트 중개를 직접 해서 모든 이익을 통째로 먹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최강해와 이권을 놓고 싸우는 일이었고, 잘못하면 기태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그땐 헌터 협회나 국가 헌터원이 기태를 확보하기 위해 어떤 짓을 벌일지 몰랐다.

그리고 태준과 팀원에겐 돈이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에게는 이번 동두천 A등급 게이트에서 죽은 헌터들에게 수거한 유니크 아이템이 수백 점이나 있었고, 이태성과 측근들이 가지고 있던 레전더리 아이템까지 십여 개나 있었다.

그것들을 팔면 웬만한 레전더리 장비는 충분히 맞출 수 있었다.

지금 이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1년 안에 강해질 수 있는 게이트였다.

“아! 그리고, 드디어 완성됐다.”

창수가 뿌듯한 표정으로 옆에 있는 기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뭘 말하는 거야?”

“게이트 안에서 사용할 수 있는 무전기.”

“그게 정말 가능해?”

“기태가 있었기에 가능했지. 배터리 대신 A급 푸른 마석이 필요하고, 한 번에 1년 정도 사용할 수 있어. 최대 무전 거리는 3km고.”

“3km! 이야, 정말 대단한데.”

“맞아요. 이건 정말 세기의 발명품이야.”

게이트에선 전자기기가 말을 듣지 않는다.

그랬기에 떨어져 있는 동료들과 연락이 되지 않았기에 서로 멀리 떨어져 있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제 3km라고는 하지만 작전 반경이 엄청나게 넓어졌으니, 여려가지 전술을 펼칠 수도 있었다.

“그리고 다들 고유의 파장을 입력해 다른 사람이 사용하지 못하게 락(lock)도 걸어 놨으니까 안심하고.”

“와! 정말 대단하다!”

팀원들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다음엔 무전 거리가 더 긴 거로 만들어 볼게.”

“지금도 충분해!”

“그리고 나 고백할 게 있어.”

“고백이라니?”

다들 쑥스러워하는 창수를 바라보았다.

“나 S등급으로 올랐어.”

“뭐?”

“기태와 이번에 게이트 관련 장비를 만들면서 나도 모르게 경험치가 많이 쌓였나 봐.”

팀원 중에서 최초로 S급 헌터가 나왔다.

모두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도구 계열에서는 최초인가?”

“아니 내가 쉰 사이에 A급 한 명이 S급 헌터가 됐다는 말을 들었어.”

“그럼 2번째네. 축하해.”

“축하해요. 창수씨!”

“축하해. 창수 삼촌!”

기태까지 축하해 주자, 창수는 가슴이 벅찬 느낌까지 받았다.

지금 눈앞에 있는 태준과 동료들이 없었다면, 자신은 여전히 폐인의 몸으로 사랑하는 성하를 피해 다니기만 했을 것이다.

“제수씨도 축하해요. 이제 고생 끝났네.”

김성하에게도 잊지 않고, 인사를 했다.

그녀는 태준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여 답례했다.

그가 아니었다면, 창수를 찾지 못했을 것이고, 찾았더라도 또 어딘가로 도망쳤을 것이다.

창수가 큰 소리로 말했다.

“자! 그런 의미로 무기나 장비를 모두 내게 맡겨. 내가 밤을 새워서라도 모두 업그레이드해줄게.”

“저도 오빠 옆에서 열심히 도울게요.”

두 사람은 뭔가 단단히 결심한 모양이었다.

태준은 그 모습을 보고 흐뭇하게 웃었다.

“좋아. 업그레이드에 필요한 룬이나 장비가 있으면 말해, 레전더리 급이라도 당장 사올게.”

“물론 많이 필요할 거야. 체력이나 마나 회복에 관련된 룬은 기본적으로 무조건 많이 필요하고, 바람의 룬이나, 가속의 룬, 민첩의 룬, 정신의 룬...”

“야야, 그냥 적어줘. 내가 지하 헌터 시장을 다 뒤져서라도 사올게.”

“알았다.”

최한별이 물었다.

“그럼 우리는 뭘 하지?”

“뭘 하긴 단련해야지.”

윤상희가 대답했다.

태준이 마지막으로 다짐했다.

“앞으로 한 달이야. 그 기간에 단단히 준비해서 다들 S등급 헌터로 올라서자고.”

“좋아!”

“오! S급이라니, 생각만 해도 떨려요.”

수진이가 몸을 살짝 떨었다.

팀원들은 벌써 주먹을 불끈 쥐었다.

S급, 생각만 해도 대단한 것이었다.

모든 헌터의 꿈은 S등급 헌터가 되는 것이었다.

지금이야 새롭게 SS등급 헌터가 생겼지만, 아직 그 숫자가 얼마 되지 않았기에 S등급까지만 해도 헌터 사회에서는 최상위권이었다.

사실 지금 A급 헌터가 된 것도 아직 실감 나지 않았지만, 태준과 함께라면 왠지 S등급도 가능할 것 같았다.

그렇게 팀원들은 마음을 단단히 먹고, S등급 게이트 공략을 준비했다.

***

“그러니까 너도 김서라의 행방을 모른다는 말인가?”

“그래, 모른다.”

눈치를 보면서 대답한 사내는 거상 길드의 A급 헌터 표지훈.

그는 운이 나쁘게 지하 헌터 시장의 술집에 숨어 있다가 나태준에게 잡혔다.

김서라는 거상 길드장인 이태성이 죽고, 길드가 공중분해 됐음에도 어디 있는지 알 길이 없었다. 처음엔 며칠 지나면 나타날 줄 알았지만, 그녀의 행방은 아무도 몰랐다. 그랬기에 최한별과 함께 찾아 나섰다.

“한별아, 모른다는데?”

“그럼 내가 물어볼게.”

“또, 어쩌려고?”

최한별은 냉혹한 얼음의 마법사답게 차가운 바람을 일으키며 표지훈에게 다가갔다.

김서라는 최한별에게는 생명의 은인이었다.

그녀가 그때 태준에게 전화하지 않았다면, 이태성 패거리에게 끔찍한 꼴을 당하고 죽었을 것이다. 그랬기에 누구보다 김서라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태준 역시 김서라를 거상 길드에 놔두고 나온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고, 그녀가 안전한 것을 봐야 마음이 놓일 것 같았다.

“헌터라서 웬만한 고문엔 꿈쩍도 하지 않을 거야. 얼어붙은 손길.”

최한별의 손에서 냉기가 풀풀 흘러나왔다.

나태준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지 마, 이번에 또 죽이면 난 책임 못 진다.”

“걱정하지 마. 몇 번 해봤다고 이젠 숙달됐어. 팔과 다리만 자르면 죽지는 않을 거야.”

두 사람의 대화에 표지훈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뭐...뭐 하는 거야?”

최한별이 다가오자, 표지훈은 극도의 공포심에 움직이려 발버둥 쳤지만, 나태준에게 붙잡혀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최한별이 표지훈의 팔을 잡으려 하자,

“그냥 말할게.”

“한별아, 그만해. 말한다잖아.”

최한별이 아쉬운 표정으로 입맛을 다셨다.

“어서 말해! 거짓말이면 네놈의 거시기를 얼려버리고 부숴주지.”

“크윽! 대신 나를 여기서 봤다고 하면 절대 안 돼.”

표지훈이 몸을 크게 떨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신화 길드야. 거기서 헌터들이 나와서 거상 길드의 건물과 자료, 모든 것을 접수하고, 싹 다 털어갔어. 그리고 조사를 한다며 남아 있는 헌터들까지 모두 끌고 갔어.”

‘뭐, 상국이가?’

이태성의 비밀을 캐내기 위해 거상의 헌터들을 잡아간 것 같았다.

“나도 끌려갈까 봐, 이리 숨은 거라고. 제발 내가 여기 있다고 말하지 마. 그놈들에게 끌려가면, 무슨 꼴을 당할지 몰라.”

“거짓말 아니지?”

“내가 거짓말할 일이 없잖아.”

최한별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태준을 봤다.

“어떡하지?”

“어떡하긴, 가서 알아봐야지.”

“신화 길드에 가려고?”

“그래. 가서 물어보자.”

신화 길드.

대한민국 최고의 길드이자, 최대 규모의 길드.

길드원이 2만 명에 달하고, 가장 많은 A등급 헌터를 보유했고, S등급 헌터 열다섯, SS등급 헌터 두 명을 보유한 그야말로 단일 길드로는 최강의 전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 신화 길드의 돔형 건물 앞에 태준과 한별이 들어갔다.

“어서 오십시오. 무슨 일을 도와 드릴까요?”

“김상국을 만나고 싶습니다.”

“네?”

“김상국 길드장을 만나고 싶다고 했습니다.”

나태준은 최대한 점잖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 길드장님과 약속이 되어 있으십니까?”

“아니요. 나태준이 왔다고 하면, 내려올 겁니다.”

“네?”

로비에 여직원이 곤란한 표정을 짓자, 경비 헌터들이 다가왔다.

그들은 입구에서 들어올 때부터 태준과 한별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태준은 검은색 슈트가 다 떨어졌기에 검은색 아다다스 체육복을 입고 있었고, 한별은 한겨울임에도 흰색 반팔 티와 청바지를 입고 있었기에 주목을 받고 있었다.

“이 사람들이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길드장님을 찾아?”

한 헌터가 태준의 어깨를 잡아당겼다.

그 순간.

“으헉!”

콰앙!

바닥에 쓰러진 헌터가 입에 거품을 물로 쓰러졌다.

“내 몸에 손대지 마.”

“입구가 공격받았다. 비상이다!”

“경비대 출동하라!”

순식간에 수십 명의 경비 헌터들이 태준과 한별을 포위했고, 로비를 오가는 수많은 헌터도 그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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