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7
97. 은혜는 반드시 갚는다(3).
“내가 그 두 사람을 죽일 거야.”
김상국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지금 태준이 하는 말은 매우 위험한 발언이었다.
그가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유가 뭐지?”
“그들이 연희를 죽였어.”
“뭐?”
“두 사람이 SS급 괴수를 상대하는 연희를 뒤에서 공격했어. 그리고 연희는 게이트에서 나오지 못했지.”
그 순간 김상국이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이놈도 알고 있었나?
아니면 같이 계획한 것인가?
태준이 그의 표정을 살폈다.
김상국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 그럴 리가... 두 사람이 연희를 공격할 리가 없잖아?”
“S급 게이트에서 나온 날 네가 내게 말했지, 최민지가 마지막까지 연희와 함께 있었다고.”
“그건 확실해. 최민지와 도경수가 가장 늦게 신전을 나왔다고, 연희는 죽었다고 했어.”
“아니 연희는 게이트가 닫히기 전까지 죽지 않았어. 김득구가 마지막에 연희가 게이트를 향해 달려오는 모습을 봤어.”
“설마?”
김상국이 입술을 깨물었다.
“최민지가 거짓말을 한 거지. 그리고 연희는 이미 신전이 무너지기 훨씬 전에 SS급 괴수를 몰아쳐 치명상까지 입혔다고 했어. 그런데 괴수의 마지막 일격에 당했을까?”
“그러고 보니 이상한데, 우리한테는 신전이 무너져서 보스와 함께 묻혔다고 했는데...”
김상국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것 봐, 틀림없어 그 둘이 연희를 공격한 거야.”
“하지만 두 사람이 그럴 이유가 없잖아?”
“그건 모르는 거지.”
나태준의 표정이 무섭게 변했다.
김상국이 그런 태준을 보며 비릿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그런데 그들을 너무 우습게 보는 거 아냐? 둘 다 SS급 헌터라는 걸 잊었어? 하나는 세계 최고의 헌터고.”
“나도 알아. 하지만 언젠간 내가 넘어설 거야. 그리고 그땐...”
태준에게서 강한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S급 헌터인 김상국이 그것을 모를 리 없었다.
“나는 도저히 그놈들을 용서할 수가 없어.”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김상국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
“그런데 답변이 이상한데, 거상을 돌려주면 뭘 줄 건지 물었는데, 두 사람의 목숨이라니? 그럼 내가 최민지와 도경수를 죽이고 싶어 한다는 거야?”
“아닌가? 그럼 내가 사람을 잘 못 찾아왔군.”
태준이 몸을 돌리자, 김상국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태준아, 잠깐 기다려봐.”
띠!
인터폰을 눌렀다.
- 네, 길드장님.
“최비서, 헌터 협회에서 조사하고 있는 거상 길드원들 있지.”
- 네.
“그 헌터들하고, 거상 길드에서 압류한 아이템과 물건, 건물 소유권까지 나태준 헌터가 찾아가면 모두 넘겨줘.”
- 네, 알겠습니다.
태준이 고개를 돌리자, 김상국이 웃으며 다가왔다.
“자, 이제 내가 원하는 대로 해결됐지.”
“고맙군.”
“그리고 오늘 이야기는 못들을 걸로 할게. 그 두 사람과 관계에 금이 갈 수 있으니까.”
김상국의 머릿속에 어떤 계산이 숨어 있는지, 그는 갑자기 순순히 태준이 원하는 것을 들어줬다.
“생각해 보면 너와 연희, 그리고 최민지는 인연이 참 깊어.”
“최민지는 악연이지.”
“하지만 네 등에 난 상처 때문에 연희가 너를 좋아하게 된 거니까. 꼭 나쁜 것만은 아니지.”
그날을 떠올리자, 등에 상처가 쑤시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최민지, 연희의 얼굴을 샤프로 공격하고, 그것을 몸으로 막은 나는 열흘이나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내 볼일은 끝났으니까. 오늘은 그만 돌아가지.”
“자주 연락해. 내가 도울 일이 있으면, 뭐든지 말하고.”
김상국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은 없어. 하지만 조만간 정보가 많이 필요할 거야.”
태준이 몸을 돌려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었다.
***
두 사람은 그 길로 헌터 협회로 갔다.
그곳에서 거상 길드의 모든 것을 인계받았다.
그리고 김서라를 기다렸다.
“허! 지독한 새끼들.”
최한별이 다가오는 헌터들의 상태를 보고는 인상을 찡그렸다.
고문을 받았는지, 그들의 겉모습은 많이 상했다.
그리고 거의 마지막에 김서라가 모습을 보였다.
“고, 고맙습니다.”
김서라가 당장에 쓰러질 것 같은 몸으로 고개를 숙였다.
“고생했어.”
“고생했습니다.”
최한별은 무사히 풀려난 김서라를 보자, 이제야 은혜를 갚은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저희를 구해 주셨다고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거상의 헌터들이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그들은 자신들을 구해 준 것이 나태준이란 것을 다 알고 있었다. 아마도 김상국이 풀어주며, 말해줬을 것이다.
나태준이 그들을 무서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모두 들어라. 너희가 전에 나를 죽이려 했던 것은 이태성의 명령 때문이란 것을 잘 알고 있다. 앞으로 그 일로 너희를 괴롭힐 생각은 없다. 이제부터는 자유의 몸이다. 그러니 여기서 각자 갈 길로 흩어지자.”
“저, 거상 길드는 이제 어찌 되는 겁니까?”
한 A급 헌터가 물었다.
거상 길드는 그래도 그들에겐 짧게는 몇 년, 길게는 10년 이상 몸담은 길드였기에 앞으로 어떻게 될지 궁금한 것이었다.
“길드 재산과 운영, 모든 것은 내가 이어받았고, 앞으로 어떻게 할지는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
태준은 마지막 말을 하고, 그 길로 용산역 뒤에 있는 거상 길드 건물로 향했다.
***
[거상 길드]
그곳엔 이미 연락을 받은 윤상희와 이수호, 한수진이 기다리고 있었다.
“태준 대장,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어쩌다 보니, 일이 커졌네요.”
“일이 커진 정도가 아니잖아. 거상 길드를 접수했다니?”
“그냥 건물 몇 개 얻은 거로 생각하면 됩니다.”
윤상희는 아직도 태준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한수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럼 건물주가 된 거야?”
“뭐, 비슷한 거지.”
거상 길드의 건물과 땅, 훈련장, 그리고 각 지방의 사무실까지 모두 나태준 이름으로 되어 있었다.
“한별이는?”
“김서라씨 데리고 병원으로 갔어.”
“이렇게 된 거 길드를 아예 키우는 건 어때?”
윤상희의 말에 태준이 피식 웃었다.
“이제 신입 길드원 받아서 언제 키워요.”
“하긴. 그건 그렇네.”
똑똑.
갑자기 문이 열리며, 최한별이 김서라를 데리고 들어왔다.
“뭐야? 왜 병원에 안 가고?”
“그게 곤란한 일이 생겼어.”
“곤란한 일이라니?”
김서라가 힘겹게 말했다.
“저, 염치없는 건 아는데, 우리를 길드원으로 받아 주면 안 돼요? 솔직히 받아 주는 데도 없고, 다른 데서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아서요.”
“뭐, 김서라씨라면 당연히 받아들이죠.”
태준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녀는 최한별의 생명도 살렸고, 나태준을 도와줬으니 믿을 만한 사람이었고, 팀원 하나 들이는 거야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저, 그리고. 이 헌터들도...”
김서라가 말을 하면서 문을 열었다.
그러자,
“저희를 받아 주십시오!”
문밖 복도와 계단까지 헌터들이 가득 모여 있었다.
김서라가 다시 말을 이었다.
“모두 거상과 살라딘 길드에 있던 헌터들이에요. 다들 갈 데가 없어요. 제발 받아 주세요.”
“받아 주십시오!”
헌터들은 김서라가 태준과 친한 것을 알고는 그녀에게 연락해 길드에 다시 받아 달라고 부탁했다.
김서라, 역시 이곳을 떠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이곳은 그녀에게 집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태준이 자신들을 조건 없이 구해 주고, 자유까지 주자, 모두 그의 배포에 놀랐고, 뛰어난 실력까지 갖추고 있었으니, 길드장으로 최고라 생각했다.
태준은 순간 고민했다.
사실 일이 여기까지 진행될지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저 김서라를 구하는데, 그녀 혼자만 구하면 나중에 타겟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거상 길드원 전체를 풀어주라고 한 것인데, 그것이 뜻대로 쉽게 이루어졌다.
“태준 대장, 어떻게 할 거야?”
윤상희가 웃으며 물었다.
태준이 고민하다 결정을 내렸다.
“일단은 받아들이기로 하지. 대신 길드 수칙하고, 길드 이름하고 모두 바꾸고 난 다음에 받을 거야.”
“고, 고마워요.”
김서라가 눈물을 글썽이며 태준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리곤 뒤를 돌아보았다.
“길드장님께서 허락하신답니다!”
“감사합니다!”
“와아아아!”
허락이 떨어지자, 헌터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그들은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
부모 잃은 아기새나 다름없는 신세였고, 다른 둥지로 간다고 해도 텃새 때문에 기를 제대로 펴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원래 자신들이 있던 곳이었고, 새로운 대장인 나태준은 유명인사에 이태성보다 강하고 게이트도 그대로 독점으로 운영하고 있었고, 헌터 협회에서 자신들을 빼낼 정도로 큰 영향력도 있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앞으로 게이트를 공략함에도 이곳에 남아 있는 것이 훨씬 유리했다.
졸지에 A등급 헌터 50여 명과 B급 헌터 90여 명, 그리고 그 이하 등급 헌터까지 500여 명의 길드원이 생겼다.
그리고 헌터 협회를 피해 숨어 있던 길드원들까지 속속들이 다시 합류했다.
팀원들만 모인 자리에서 윤상희가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크! 이거 좋은 일이지?”
“길드원이 생겼다고 해도 우리 계획은 달라진 것이 없어요. 당분간 김서라에게 길드 운영을 맡겼으니, 우린 S등급 게이트에 들어가는 것만 신경 쓰면 됩니다.”
“그거야 당연하지. 그래도 길드 건물도 생기고, 헌터들도 많이 늘었으니 기분이 좋네.”
수진이도 기분이 좋은지 연신 웃고 있었다.
“참, 길드 이름 어떻게 할 거예요?”
“그러게 길드 이름부터 정해야지.”
“태준 길드 어때요?”
수호가 조심스럽게 말을 했다.
그러자 태준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건, 너무 노골적이다.”
“그런가?”
수호가 뒷머리를 긁었다.
수진이가 말했다.
“불사조 길드는 어때요? 게이트에서 불사조처럼 살아 돌아오라는 뜻으로...”
하지만 뭔가 와 닿지 않는지 호응이 없었다.
윤상희가 입을 열었다.
“태준씨 별명으로 짓는 거 어떨까?”
“내 별명? 그게 뭔데?”
태준은 자신의 별명도 모르고 있었다.
그러자, 팀원들이 일제히 말했다.
“도살자!”
“뭐?”
최한별이 고개를 끄덕였다.
“도살자라, 괜찮은 거 같은데. 아주 강해 보이고.”
“나도 찬성이오!”
한수진이 찬성하며 손을 들었다.
이수호도 슬그머니 손을 들어 찬성했다.
“도살자 길드라. 나도 좋아, 그걸로 하자.”
태준이 최종적으로 허락했다.
“그리고 이왕 만든 거 앞으로 잘 키워보자!”
그날 헌터 협회에 등록된 거상 길드는 이름이 사라지고, 대신 도살자 길드가 새롭게 등록됐다.
도살자 길드는 단숨에 대한민국 길드 순위 9위에 올라섰고, 전국 대도시에 사무실을 오픈했다.
그리고.
“김상국이 축하 화환을 보냈다고?”
“네. 헌터 협회에서 100개나 왔어요. 그리고 국가 헌터원에서도 50개를 보냈고요.”
태준은 웃고 있었고, 김서라는 곤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걸 다 어떻게 하죠?”
“그냥 어디 구석에 처박아둬.”
“그래도 돼요?”
“물론.”
김서라는 도살자 길드의 부 길드 마스터를 맡았고, 태준을 대신해 길드의 운영을 도맡아 하고 있었다. 다른 A급 헌터들이 돕긴 했지만, 처리할 일이 너무 많았기에 매일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아 그리고, 헌터 협회에서 압수해간 거상 길드의 자금과 이태성의 개인 자금까지 모두 돌려줬어요. 그래서 일단, 길드장님 명의의 통장으로 옮겨 놨습니다.”
“그래?”
태준이 속으로 웃었다.
김상국이 노골적으로 도살자 길드를 밀어주고 있었다.
이는 나중에 최민지나 도경수를 제거할 때, 이용하려는 계산이 깔려있을 것이다.
김상국은 나태준이 원하는 것이 두 사람에게 복수하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태성이 그동안 얼마나 돈을 많이 숨겨 놓았는지, 길드 운영 자금이 아주 넘쳤다.
***
“모두 준비됐지?”
“오케이.”
“네!”
다들 창수와 김성하가 업그레이드해준 장비를 점검하고 있었다.
이제 나흘 후면 부산에 S등급 게이트와 전국에 수백 개의 게이트가 발생할 시간이었다.
“저도 함께 들어가겠습니다.”
모두의 시선이 김서라에게 향했다.
“그럼 길드는 누가 지키고?”
“어차피 길드원 모두 부산으로 내려가 게이트에서 나온 괴수를 막을 거잖아요. 그러니까 저도 함께 들어가겠습니다.”
“아주 위험한 일이야.”
“저도 알아요. 하지만 부 길드 마스터의 헌터 등급이 B등급이잖아요. 이것 가지고는 길드원들을 볼 체면이 서지 않아요. 그러니 저도 이번에 함께 들어가서 헌터 등급을 최대로 올리고 싶어요.”
김서라는 결연한 눈빛을 보였다.
“길드원들은 입단속은 잘 시켰지?”
“물론입니다.”
“좋아, 그럼 같이 들어가지.”
“감사해요!”
최한별이 갑자기 인벤토리에서 활을 하나 꺼냈다.
“짠, 이건 선물입니다.”
“무슨 활이에요?”
활을 받아든 김서라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천공의 활? 이거 레전더리 활이잖아요.”
“고마움의 표시로 하나 샀어요.”
“하지만 이 비싼걸.”
“우리는 돈이 필요 없어요.”
최한별의 말에 팀원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태준이 알아서 아이템을 사주고 업그레이드해주기 때문에 따로 돈 들어갈 데가 없었다.
그렇게 김서라까지 모두 업그레이드된 장비를 가지고 부산으로 향했다.
***
[부산 앞바다]
S등급 게이트 발생 당일이었다.
요트를 타고 게이트가 생기길 기다리고 있었다.
다들 업그레이드된 아이템과 새로운 아이템을 점검하고 있었고, 긴장한 모습이었다.
기태가 말했다.
“저기 전방에 게이트 파장이 커지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