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
100. 부산 S등급 게이트(3).
뼈를 맞추는 고통.
헌터라면 어느 정도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태준이 하는 재구성은 완전히 뼈를 뒤틀고, 근육을 찢고, 힘줄까지 변형하는 그야말로 다시 태어나는 고통이 뒤따른다.
말볼이 귀를 쫑긋 세워 이빨을 드러냈다.
“게르르르!”
“에이션트 마그투스가 온다!”
겨우 5분이나 쉬었을까?
동족의 죽어가는 울음을 들었는지, 보통 에이션트 마그투스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놈이 숲에서 튀어나왔다.
“내가 처리할 테니까, 다들 좀 쉬지.”
태준이 몸을 풀었다.
그리고 바람처럼 달렸다.
다들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각반과 팔찌까지 모두 벗었던데, 괜찮을까?”
최한별이 오랜만에 태준을 보고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헌터 등급이 오를수록 오히려 그에 맞는 강력한 아이템이 더 필요한 법이었다. 그런데 태준은 반대로 레전더리 아이템을 모두 벗어 버렸으니,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기우였다.
쩌엉!
숲을 울릴 만큼 엄청난 타격음이 울렸다.
“쿠아아아!”
거대한 에이션트 마그투스가 괴성을 지르며 뒤로 쓰러졌다.
쿠웅!
태준의 발길질에 S급 괴수가 쓰러진 것이다.
그리고 거대한 괴수의 해체쇼가 벌어졌다.
“난도(亂刀)질!”
백정의 칼로 괴수의 다리를 난도질했다.
순식간에 마그투스의 두 다리가 뼈만 남았다.
그리고 태준이 그 괴수 고기를 거침없이 입으로 가져갔다.
“섭취(攝取)!”
에이션트 마그투스가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리며 몸을 돌려 달아나려 했다.
하지만 태준은 그냥 보내지 않았다.
자신의 힘을 확인하고 싶었다.
콰직!
“꾸아아아!”
팔이 기형적으로 꺾였다.
놈은 이제 두 다리와 한쪽 팔까지 잃고, 하나의 팔로 기어가고 있었다.
다들 두 눈을 뜨고 바라보고 있었지만, 믿을 순 없었다.
괴수란 목숨이 다하는 그 순간까지 인간을 공격한다.
그랬기에 괴수가 아니던가.
하지만 지금 에이션트 마그투스는 공포에 질린 눈을 하고 있었다.
“흡혈(吸血)!”
백정의 칼이 기어가는 마그투스의 목을 향해 휘둘리자,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고, 태준은 그 피를 온몸으로 느끼며 마시기 시작했다.
[피의 탐욕(lv5) 스킬이 발동됐습니다.]
[피의 탐욕(lv5) - 스킬이 발동되면, 눈동자가 붉은색으로 변하며 끝없이 피를 갈구하는 몸으로 변한다.
마시는 괴수 피의 종류에 따라 수초에서 수 분간 괴수의 특성이 몸속에 녹아 들어간다. 스킬 레벨이 오를수록 동기화율이 올라간다.]
눈앞에 인간에게 달아나고 싶은 에이션트 마그투스는 거친 숨을 쉬며 마지막 비명을 질렀다.
“크어어어억!”
그때였다.
동족의 비명을 듣고 도움을 주기 위해 달려오던 에이션트 마그투스가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이는 동족의 유일한 경계신호!
이곳에 최상의 포식자인 브라키페르마(SS)가 나타났을 때만 우는 울음이었다.
그들이 갑자기 몸을 돌리더니 숲으로 사라졌다.
이곳은 그들의 영역이었지만, 새로운 포식자의 등장에 몸을 숨긴 것이다.
“세상에! 이건 차원이 다른데.”
윤상희가 입을 벌렸다.
헌터가 괴수를 죽이기 위해 온 힘을 다하는 그런 인간의 모습이 아니었다.
마치 사자가 얼룩말을 사냥하는 모습이랄까?
“허! 태준 오빠가 또 강해졌네.”
최한별 역시 질린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마그투스는 맹수에 목을 물린 얼룩말처럼 자신의 피를 마시고, 몸을 해체하는 태준의 모습을 보며 서서히 죽어갔다.
태준은 괴수가 죽자, 자신의 상태창을 열었다.
[나태준]
- A등급
- 체력 : 1219
- 마나량 : 92(103)
- 클래스 : 괴수 백정, 도살자.
- 특성 : 관찰(lv9), 도살(lv10). 해체(lv19), 감식(lv7).
- 특기 : 비대각(批大卻). 도대관(導大窾). 난도(亂刀)(lv9)
- 각성 : 할야(割也), 절야(折也), 흡혈(吸血), 섭취(攝取), 재생(再生), 포효(咆哮), 지경긍경지(技經肯綮之).
- 도살자 업적 : F등급 도살자, E등급 도살자, D등급 도살자, C등급 도살자. B등급 도살자. 독 수련자(A).
* 체력 회복의 반지(레전더리) - 사용 중.
* 마나 회복의 반지(레전더리) - 사용 중.
* 녹음의 링(유니크) - 사용 중지.
- 흡혈(吸血) 실행 : 피의 탐욕(lv5) 발동 중.
- 섭취(攝取) 실행 : 고기 치유(lv5) 발동 중.
S등급 게이트는 경험치가 2배 이상이다.
스킬 경험치도 2배였기에 스킬 레벨이 빠르게 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몸을 재구성하기 전엔 체력이 1,100대였는데, 재구성하고 난 후에 지금 체력은 1,200을 넘어섰다.
단지 재생 스킬로 몸을 재구성을 했을 뿐인데, 100이란 엄청난 체력 수치가 늘어난 것이다.
체력이란 힘과 민첩, 회복력, 공격력, 방어력 등의 수치를 종합한 것으로 강함의 절대기준은 될 수 없었지만, 높으면 높을수록 강하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것이었다.
지금 태준은 힘만으로 S급 괴수에 필적하고, 빠른 스피드에 엄청난 회복력과 괴수를 도살하는 강력한 공격력, 웬만한 공격엔 상처조차 생기지 않는 방어력을 가지고 있었다.
마그투스의 피와 고기를 챙기고 돌아오는 태준을 향해 수진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오빠! S급 된 거 아니에요?”
“축하해! 또 한 단계 성장했네.”
팀원들이 태준을 축하했다.
윤상희가 진지하게 물었다.
“방금 그 뼈를 다시 맞추는 것 때문에 강해진 거야?”
“네, 말해줬잖아요. 할 때는 조금 아프지만, 다시 태어나는 느낌이 듭니다. 그리고 체력 수치가 100이나 올랐죠.”
“100? 정말이야?”
팀원들의 눈빛이 반짝였다.
“자, 이제 좀 한가해졌으니까, 시작할까요.”
윤상희는 자신을 바라보는 나태준의 눈을 보자, 머리털이 삐쭉 서는 느낌이 들었다.
“왜? 왜? 나부터야?”
“장유유서죠, 그리고 근접 공격을 하는 사람부터 해야죠.”
태준은 가지런히 누워있는 윤상희의 팔을 자세히 살폈다.
균형이 안 맞는 것은 둘째치고, 비틀리고 기형적으로 발달한 곳이 너무 많았다.
“이거 틀어져도 너무 많이 틀어졌는데. 억지로 근력을 늘리려고 했죠?”
“그거야 당연하지. 전사 계열 헌터는 근력이 생명이니까.”
그녀가 슬슬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럼 나도 무지하게 아프겠지?”
“뭐, 조금이요.”
태준은 대수롭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그녀의 팔을 잡아당겼다.
또각!
“으아아아아아아!”
뼈가 부러졌다.
“으헉! 왜? 뼈를 부, 부러트린 거야?”
윤상희는 말을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너무 어긋나 있어서 일단 부러트리고, 다시 붙이는 게 나아서요.”
“뭐? 그런 말은 없었잔...”
바직!
“으아아아악!”
윤상희가 비명을 지르거나 말거나, 태준의 손놀림이 바빠졌다.
“한별아, 수진아. 움직이지 못하게 단단히 붙잡아.”
“알았어!”
처음 자신의 근골을 재구성할 때는 손에 익지 않았기에 제법 시간이 걸렸으나, 이제는 요령이 생겼다.
뼈를 한 번에 다 뽑지 않고, 하나씩 맞출 수 있었다.
근육도 찢어 맞추고, 힘줄까지 잡아당겨 이상적이고 균형잡힌 힘을 줄 수 있게 재구성했다.
최한별이 얼굴이 하얗게 질린 표정으로 말했다.
“헉! 상희 언니 기절했는데?”
“뭐? 이제 겨우 팔 하나 맞췄는데...”
팔 하나를 맞추는데, 1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문제는 회복이었다.
태준이야 괴수 고기를 먹고 곧바로 회복했지만, 윤상희는 아무리 레전더리 회복 아이템이 있어도 적어도 하루는 쉬어야 뼈가 붙고 근육이 제자리를 잡을 것이다.
“아무래도 하루에 한 명 밖에 못하겠네. 일단 물을 부어 깨워. 나머지 팔하고 다리도 맞춰야 하니까.”
광전사 되기 위해 온몸이 불에 타는 듯한 고통을 견딘 그녀였다.
지금 뼈를 맞추는 고통은 그 독하디독한 윤상희가 기절할 정도였다.
그녀의 상태를 바라본 팀원들은 몸을 떨었다.
하지만 체력이 한꺼번에 100이상 높게 상승했기에 안 받을 수도 없었다.
그날부터 매일 밤 숲에선 괴상하고 처절한 비명이 들렸다.
얼마나 끔찍했는지, 괴수들조차 접근하지 않았다는 후문이 있었다.
***
부산 S등급 게이트 발생 열흘 후.
“게이트 의료팀과 장비팀이 이제 막 도착했습니다.”
“헌터들은?”
“그것이 부산 방어선에 투입됐습니다.”
“뭐?”
국가 헌터원 박하림 단장은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S급 괴수들까지 해운대에 상륙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었다고 합니다.”
“으으!”
국가 헌터원들은 국가 기관이었다.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지키지 못한다면, 지탄을 받을 것이고, 어렵게 올린 이미지를 한 번에 말아먹을 수 있었다.
“그냥 저희끼리 들어가시죠.”
“맞습니다. 이러다 신화 길드가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헌터들이 게이트에 들어가자고, 조르고 있었다.
하지만 박하림은 고개를 흔들었다.
“자네들은 S급 게이트의 무서움을 몰라서 그래. 이 정도 숫자론 아무것도 못 해.”
박하림은 이곳에서 유일하게 S등급이었고, S급 게이트를 공략해본 유일한 사람이었다.
이곳에 모인 A급 헌터는 30명, B급 헌터 55명이었다.
이 정도 화력으론 S등급 게이트에서 하루도 버티지 못한다.
반면에 바다 위 커다란 바지선에서 공략을 준비하고 있는 신화 길드 헌터들은 S급이 다섯에 A급만 50명이 넘었다.
“어! 저들이 움직입니다.”
보트들이 달라 붙어 헌터들을 태운 바지선을 게이트 쪽으로 이동시키고 있었다.
박하림 단장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어떻게 헌터 협회도 아니고, 신화 길드보다도 늦는단 말인가.’
저 인원이 모두 등급이 오른다면, 이미 무너진 균형은 더욱 벌어질 것이다.
그리고 저건 1차 공략 팀이었다.
곧 최민지의 드래곤 길드와 도경수의 하세신 길드가 더해진 2차 공략 팀도 게이트로 진입할 예정이라 들었다.
그에 반해 자신들은 이철용이 오기 전에 게이트에 들어갈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우리도 진입하죠.”
정기용이 말했다.
“이 인원으론 무리야.”
“저도 알고 있습니다. 일단 한쪽 구석에서 자리를 잡고 접근하는 괴수들만 처리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 접근하는 괴수가 한두 마리가 아니란 말이야.”
“신화 길드 공략팀이 주변 괴수들을 끌어모을 것이 아닙니까?”
“응?”
정기용과 박하림 단장의 시선은 바지선에 타고 있는 신화 길드원들을 향하고 있었다.
“저들이 들어가고 우리는 반나절 정도 있다가 들어가는 겁니다. 그럼 서로 겹치지도 않고, 게이트 주변의 괴수들은 저들에게 몰릴 겁니다.”
박하림이 정기용의 말에 눈을 가늘게 떴다.
“이번 기회가 지나가면, 이철용 원장님께서 오시기 전엔 들어가지도 못할 겁니다.”
박하림이 입술을 깨물었다.
“좋아. 헌터들을 준비시켜. 우리도 진입한다.”
“어서 움직여라! 게이트로 들어간다.”
국가 헌터원 헌터들도 게이트 진입을 준비했다.
***
“모두 진입 준비!”
대만 헌터 타룬 메이의 명령에 헌터들이 게이트로 뛰어들 준비를 했다.
“바지선을 가까이 대라!”
바지선과 게이트와의 거리는 겨우 3미터.
“S등급 헌터들부터 진입!”
“진입!”
체계적인 훈련을 받은 신화 길드 헌터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S등급 헌터들이 가장 먼저 들어가고, 그다음으로 A등급 헌터들과 B등급 헌터들이 들어갔다. 마지막으로 의료팀과 장비팀, 식사와 부식을 담당하는 조리팀까지 들어갔다.
“주변을 경계하라!”
“전투 대형으로!”
어마어마한 크기의 게이트!
주변의 괴수들은 불을 향해 달려드는 나방처럼 게이트를 향해 달려든다.
그랬기에 게이트 주변엔 늘 괴수가 많이 몰려 있었다.
그런데...
“뭐지?”
“허! 괴수가?”
헌터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사납게 달려드는 괴수를 상대하려 했는데, 눈 앞에 펼쳐진 장면은 전혀 뜻밖이었다.
“저거 뼈가 아닙니까?”
거대한 A급 괴수 오라흐의 뼈와 드레이크의 뼈, 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괴수들의 뼈가 평원 가득 널려있었다.
공략팀 부대장인 S급 헌터 지상억이 물었다.
“누가 이런 걸까요?”
“나태준, 이 새끼가...”
타룬 메이가 입술을 깨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