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1
101. 부산 S등급 게이트(4).
타룬 메이가 이를 악물었다.
S급 게이트로 먼저 들어간 것은 나태준과 그의 팀원들밖에 없었다.
그런데 열흘 만에 게이트 주변을 벌써 초토화해 놓았다.
그들의 처음 계획은 게이트 앞에 베이스 캠프를 차려놓고, 주변 괴수를 잡으며 경험치를 쌓고, 2차 공략팀과 합류해 보스급 괴수를 잡아 게이트를 클리어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주변에 괴수가 괴멸했기에 당장 여기서 할 일이 없었다.
“이제 어떻게 할까요?”
“제길.”
부 대장인 지상억의 물음에 타룬 메이가 고민에 빠졌다.
괴수를 찾아 떠날 것이냐? 아니면 이곳에 남아 처음 계획대로 다음팀을 기다리느냐?
고민을 길었지만, 결정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김영운, 너는 그리폰을 타고 주변을 살피며, 괴수 뼈나 사체가 어디로 이어져 있는지 확인해라!”
“네!”
A급 헌터 김영운이 그리폰을 타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나머진 계속 앞으로 나간다.”
신화 길드 공략팀은 평원을 지나 거대한 강을 향해 전진했다.
자신들은 등급을 올리기 위해 게이트에 들어왔으니, 괴수를 먼저 찾아야 했다.
***
그리고 반나절 후.
박하림이 이끄는 국가 헌터원의 공략팀이 들어왔다.
그들의 표정 역시 신화 길드 공략팀과 다름없었다.
“신화 길드 놈들이 벌써 싹 쓸어 갔군.”
박하림의 표정이 좋진 않았다.
“아닙니다. 이건 그들이 한 것이 아닙니다.”
“그래?”
정기용이 괴수들의 뼈와 사체를 보며 말했다.
“살점은 사라지고, 피가 바짝 말라 있습니다. 이미 죽은 지 오래된 것들입니다.”
“그럼 나태준이 했단 말인가?”
“그럴 겁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심한데? 정보원들의 보고에는 나태준과 게이트로 들어간 인원이 10명이 안 된다고 들었는데, 열흘 만에 이렇게 만들 수 있단 말인가?”
정기용이 입술을 깨물며 대답했다.
“나태준과 팀원들이라면 가능합니다. 그들은 불가능을 모르거든요.”
“뭐?”
“아, 아닙니다.”
“제길, 척후병을 주변으로 보내고, 괴수가 있는 곳을 찾는다.”
국가 헌터원 공략팀도 괴수를 찾아 움직였다.
***
신화 길드와 국가 헌터원의 헌터들도 각자 자리를 잡고 괴수를 사냥하기 시작했고, 태준팀은 점점 더 깊은 산맥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들은 게이트 주변 평야의 괴수를 초토화했고, 에이션트 마그투스의 숲과 안개 늪의 괴수들까지 씨를 말렸고, 이젠 산맥의 괴수와 싸우고 있었다.
“태준 오빠! 이거 그놈 발자국 맞는 거 같지?”
최한별이 물음에 팀원들이 달려왔다.
태준이 바닥에 움푹 파인 발자국을 바라보았다.
“그런 거 같은데, 생각보다 더 크네.”
발자국의 크기가 웬만한 집터보다 더 컸다.
발자국이 이 정도면 그 몸체는 얼마 클지 바로 상상하기 힘들 정도였다.
“정말 움직이는 산이라 불릴 만하겠는데.”
“놈이 크긴 하지만 이 넓은 산맥에서 어떻게 찾지?”
“그건 걱정하지 마. 우리에겐 이놈이 있으니까!”
태준이 손짓하자, 말볼이 달려왔다.
“말볼, 이놈의 냄새를 맡아.”
“킁끙!”
말볼이 코를 벌렁이며 브라키페르마의 냄새를 맡는 사이에 태준은 녹음의 링을 켜고 주변 숲을 살폈다.
이 근처엔 놈이 없었다.
“게르르르!”
말볼이 산맥 위를 향해 달렸다.
“모두 따라가!”
팀원들이 따라 달렸고, 곧 거대한 동굴 앞에 멈춰섰다.
말이 동굴이지 S등급 게이트가 눈앞에 있는 것 같았다.
이곳 티베리안 차원은 지구와 비교해 뭐든지 다 컸다.
나무만 봐도 수배에서 수십 배나 컸으니, 이곳에 사는 괴수들이 왜 다 큰 것인지 알 것 같았다.
“이 안으로 들어갔단 말이야?”
말볼이 끙끙댔다.
평소 같으면 녀석이 먼저 달려들어 갔을 텐데.
이곳은 왠지 말볼도 들어가기 싫어하는 눈치였다.
“지금 보스를 쫓아갈 거야? 아니면 괴수를 더 잡을 거야?”
눈이 벌건 윤상희가 말했다.
그녀는 지금 핏빛 광전사가 된 상태였다.
하지만 뭔가 달라 보였다.
전엔 광전사가 되면 이성을 잃었는데, 지금은 자연스럽게 말하는 것이 자신을 완전히 억제하는 분위기였다.
“아직 S급으로 오르지 못한 사람이 누구지?”
김서라와 이수경이 손을 들었다.
그리고 나태준 자신밖에 없었다.
이미 능력치는 다른 S급 헌터를 한참 웃돌았지만, 어쩐 일인지 헌터 등급은 여전히 A급이었다. 그에 반해 다른 헌터들은 S등급 게이트 공략 열흘 만에 대부분 S급으로 올라섰다.
기간은 짧았지만, 그들이 잡은 괴수의 숫자는 어마어마했다.
가장 먼저 S등급으로 오른 것은 최한별이었고, 다음으로 윤상희, 이수호, 순서였고, 어제 한수진이 S등급으로 올랐으니, 하루 이틀만 더 괴수를 잡는다면 이수경이나 김서라도 S등급을 노려볼 만했다.
문제는 태준 자신이었다.
“일단 두 사람까지 전부 S등급으로 오르면, 그때 안으로 진입하자.”
“알았어!”
이곳에 온 목적은 게이트를 클리어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팀원들의 헌터 등급을 올리고 강해지기 위해서 온 것이었기에 모두 S등급이 되기 전까진 괴수 사냥을 중지할 수 없었다.
그리고 자신도 역시나 등급을 올려야 했다.
“쿠아아아아!”
위잉!
갑자기 이수호의 블랙 드래곤 카올렌이 커다란 날개를 펴더니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카올렌은 머리에 뿔이 생겼고, 크기도 1.5배나 더 커졌다.
아직 최민지의 드래곤 기가테스나 볼테우스보다는 3분의 2 수준이었지만, S급 괴수를 혼자 잡을 정도로 강해졌다.
“갑자기 어딜 날아가는 거지?”
수진이가 묻자, 수호가 친절하게 대답했다.
“카올렌이 하늘에서 괴수를 본 것 같아.”
두 사람은 최근 한 조가 되어 괴수를 사냥했기에 더욱 친밀해졌다.
이수호가 S등급이 되자 소환수 카올렌이 곧바로 성장했고, 이제는 A등급 정도 괴수는 아무 때나 혼자 알아서 사냥할 정도였다.
잠시 후 카올렌이 일행을 향해 내려왔다.
“어? 그리폰인데?”
카올렌의 발엔 그리폰이 한 마리 잡혀 왔다.
아직 살아 있는 놈이 발톱을 벗어나라고 꿈틀거렸다.
하지만 아무리 부리로 쪼아대도 날개를 펄럭거려도 드래곤의 발을 벗어나진 못했다.
“다른 헌터들이 들어온 것 같은데.”
괴수도 아니고 소환수가 카올렌에게 잡혀 왔으니 당연했다.
“헌터 협회일까? 아니면 국가 헌터원?”
“뭐 어디든 상관없지, 이제는...”
태준은 그들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자신의 계획대로 팀원들이 S등급에 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보다 다른 헌터들은 생각보다 너무 늦게 들어왔다.
아마도 이번에 생성된 게이트의 등급이 전체적으로 높았고, A등급 게이트 숫자가 많이 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일단 다 함께 움직이는 것은 비효율적이니까. 이번에도 조를 나누지.”
윤상희, 이수경, 김서라가 한팀이 됐고, 최한별과 한수진, 말볼이 한팀이 되어 사냥을 시작했다.
그리고 태준은 수호와 함께 카올렌의 등에 올라탔다.
“우린 놈들의 동향을 파악하고 올 테니까. 내일 이 자리에 모여.”
“알았어.”
***
“헉헉!”
정기용과 두 사내가 평야를 달렸다.
“크윽!”
피를 흘린 사내가 바닥에 쓰러졌다.
“일어나!”
“커헉! 더는 뛸 수가 없습니다.”
“안돼! 놈들이 온단 말이야.”
신화 길드의 헌터들이 그들의 뒤를 바짝 따라오고 있었다.
정기용이 입술을 깨물었다.
“내가 막고 있을 테니, 두 사람은 어서 베이스 캠프로 돌아가!”
“하, 하지만...”
“강인아, 어서!”
“큭! 팀장님, 조금만 버티십시오. 가서 헌터들을 데려오겠습니다.”
한 사내가 피를 흘리는 사내를 부축하고 국가 헌터원의 베이스 캠프가 있는 쪽으로 움직였다.
‘제길, 너무 방심했어.’
“갈라졌던 두 개의 영혼이여, 원래 하나였던 내 몸에 강림하소서.”
정기용이 푸른 눈빛을 번쩍이며, 몸을 떨었다.
곧 오딘의 아들, 비다르가 녹색의 반투명한 형체로 거대한 검을 들고 정기용 주변에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아직 접신한 샤먼이 너무 어색했다.
달아나는 팀원들을 보며 정기용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나태준, 이런 기분이었나?’
리더가 된다는 거,
팀장이 된다는 거.
쉬운 것이 아니었다.
늘 앞장서고, 늘 팀원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자리.
그 자리를 나태준은 누구보다 훌륭히 해냈다.
그리고 자신은 태준이 없었다면, 이 자리에 서 있지도 못했을 것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이유는 알 길이 없었다.
태준은 팀원들에게 피해가 갈까 봐, 홀로 게이트로 들어갔다.
그리고 남겨진 팀원들은 그런 태준을 기다리며, 열심히 게이트를 공략했다.
‘그때부터였구나.’
다른 팀원들은 실력이 눈에 띄게 올랐지만, 이상하게 자신만은 늘 제자리였다.
그렇다고 샤먼 접신에 실패한 것도 아니었다.
자신만 뒤처지기 시작했고, 그것은 점점 자신감을 상실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누구에게 물어볼 사람도 없었다.
그때부터 맹목적으로 게이트에 들어갔고, 그때 이철용을 만났다.
이철용은 늘 화려한 기술로 괴수들을 죽였고, SS등급의 헌터답게 카리스마가 넘쳤다.
그리고 높은 등급의 헌터로 키워주겠다며, 자신과 몇몇 헌터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이철용이 괴수를 거의 잡고, 남은 헌터들이 달려들어 마무리하는 방법으로 빠르게 경험치를 올렸고, 자신 역시 조금씩 경험치가 늘어 A등급 헌터가 됐다.
하지만 여전히 강해졌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때 돌아가야 했어.’
후회가 밀려왔다.
전설급 샤먼을 받기 전에 태준과 팀원들에게 돌아가야 했다.
하지만 이젠 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왔다.
몇 명 안 되지만, 자신의 팀원들이 생겼고 그들을 지켜야 하는 것이 나태준이 보여줬던 리더의 모습이었기에 끝까지 책임을 질 수밖에 없었다.
“후후, 도망가길 포기한 거냐?”
신화 길드의 헌터들이 몰려왔다.
정기용이 그들에게 검을 겨눴다.
“비겁한 놈들, 더는 못 간다! 덤벼라!”
신화 길드의 S급 헌터 이형규가 비릿한 웃음을 흘렸다.
“이를 어쩐다. 이미 늦었는데.”
“뭐?”
비명이 늘렸다.
그리고 괴성도.
“으아아!”
“쿠에에에엑!”
“크악! 팀장님!”
뒤를 돌아보자, 거대한 갈색 드래곤 한 마리가 땅 위로 솟아올라 달아나던 두 헌터를 이빨과 발톱으로 찢어발기고 있었다.
“아, 안돼!”
정기용이 몸을 돌려 달렸다.
하지만 대지 드래곤은 이미 두 A급 헌터의 시체를 집어삼키고, 정기용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놈은 인간을 먹는 사악한 드래곤이었다.
“죽어!”
콰앙!
드래곤의 힘에 밀려 샤먼 비다르와 정기용의 몸이 공중으로 튕겨 바닥에 떨어졌다.
“크윽!”
입에서 피를 한 움큼 토해냈다.
그 때문에 샤먼 비다르가 접신이 강제로 풀렸다.
아직 비다르와 완벽한 접신을 할 수 없었던 정기용은 이제 죽은 목숨이었다.
“병신, 게이트 안에서 그렇게 소수로 다니면, 죽여 달라는 말인지 모르는 거야? 이리와 마콜레움!”
이형규가 자신의 드래곤을 불렀다.
[마콜레움 - 대지 드래곤.
날개가 없는 대신 흙을 파낼 수 있는 거대한 팔이 등에 달려 있다.
그 때문에 엄청난 속도로 땅속으로 이동할 수 있고, 육중한 꼬리를 내려치면 작은 지진까지 일으킬 수 있는 괴물이다.
놈이 살던 세상에선 인간을 사냥하며 잡아 먹는 드래곤으로 악명이 자자했다.]
그 거대한 놈을 향해 정기용이 몸을 일으켰다.
그리곤 연속으로 접신을 실행했다.
“나와라, 조자룡!”
붉은 눈을 번쩍이며, 조자룡이 접신 됐다.
마지막은 역시 무신 조자룡과 함께해야 할 것 같았다.
태준이 아니었다면, 영원히 게이트에서 쓸 수 없었던 조자룡.
태준과 수많은 괴수를 죽이며 함께 했던 날들이 떠올랐다.
조자룡과 정기용의 정신이 하나의 몸에 스며들었다.
‘너도 대장이 보고 싶은 것이냐?’
죽음의 순간.
이게 마지막이란 생각이 들자, 조자룡의 생각이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왔다.
그런데.
“주군이 오셨다.”
“뭐?”
“주군을 위하여, 검을 들어라!”
몸속에서 엄청난 기세가 뿜어지며, 조자룡이 청홍검을 들었다.
정기용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기세가 커진 것도 놀랍지만, 나태준을 떠난 후에 여태껏 단 한 번도 조자룡이 스스로 입을 연 적이 없었다.
그리고 자신의 몸을 덮고 있던 조자룡의 푸른 기운이 점점 커지기 시작하더니, 전설급 샤먼인 비다르만큼 커졌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정기용은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에 크게 당황했다.
그때 자신의 머리 위로 거대한 그림자가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