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2
102. 부산 S등급 게이트(5).
“뭐지?”
머리 위 태양 때문에 그림자의 종류를 볼 수 없었다.
드레이크나 되겠지.
당장 문제는 눈앞에 달려오는 거대한 대지 드래곤이었다.
한발, 한발 내디딜 때마다 땅이 파이고, 작은 바위는 흔적도 없이 부서진다.
‘그냥 죽어줄 생각은 없다!’
조자룡의 기운이 커진 것 때문일까?
몸속 깊은 곳에서 힘이 넘치고, 용기가 생겼다.
그 옛날 당양 장판(長阪)에서 기억이 떠올랐다.
조조의 수천 호표기와 수많은 병사, 그 틈을 뚫고 주군의 부인과 그 아들을 보호하며 달려드는 적들을 베고 또 벴다.
수많은 전장에서 뼈가 굵은 내가 저따위 괴물에게 무릎을 꿇을 순 없지 않은가.
검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내가 무쌍 조자룡이다!”
기다리지 않았다.
거침없이 앞으로 달렸다.
한발 한발을 내밀 때마다 자신을 둘러싼 조자룡의 반투명한 푸른빛은 더욱 진해지고, 검은 더욱 예리해진다.
“쿠아아아아!”
달려오던 거대한 놈이 자신을 향해 앞발을 휘두른다.
콰앙!
땅이 움푹 파이고,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하지만 그런 것에 맞을 내가 아니다.
옆으로 몸을 굴렸다.
그리고.
온 힘을 다해 놈의 옆구리를 향해 몸을 날렸다.
다다닥! 쿠웅!
그 육중한 드래곤이 몸을 휘청이며, 옆으로 밀려났다.
‘이게 조자룡의 힘인가?’
달려들어 검을 내려쳤다.
그러자 거대한 조자룡의 형상 역시 검을 휘두른다.
퍼걱!
둔탁한 소리와 함께 드래곤의 다리에 작렬했다.
“쿠엑!”
놈이 괴로운지 옆으로 두어 걸음이나 물러섰다.
그리고 이어진 놈의 브레스!
“꾸아아아아!”
파파파파팟!
거대한 압축 음파가 뿜어지자, 그 앞으로 땅이 갈라졌다.
대지 드래곤의 장기인 음파 브레스.
지진이 난 것처럼 바닥이 솟아오르고, 갈라지며 바위와 나무까지 모두 음파 진동에 가루가 된다.
‘이건 위험하다!’
몸을 날려 정면으로 뿜어지는 음파 브레스는 막았으나, 위에서 쏟아지는 흙과 자갈은 피하지 못했다.
우르르르!
“크아!”
흙을 뚫고 위로 기어 올라왔다.
이 정도에 쓰러질 자룡이 아니다.
“놈을 죽여라!”
검을 든 헌터들이 뒤에서 달려들고, 앞에선 대지 드래곤 마콜레움이 달려왔다.
몸을 돌렸다.
저승길 선물로 드래곤보단 헌터가 우선이었다.
드래곤이야 다시 소환하면 그만이었으니까.
그때였다.
‘뭐지? 블랙 드래곤?’
커다란 날개를 펄럭이며 검은 드래곤 한 마리가 창처럼 아래로 내려꽂혔다.
쾅아앙!
콰직!
거대한 검은 앞발로 마콜레움의 목과 등을 누르고, 얼굴을 향해 입을 벌렸다.
“쿠아아아아!”
진한 녹색의 브레스가 마콜레움의 얼굴에 쏟아졌다.
‘카올렌!’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저건 이수호의 소환 드래곤 카올렌이었다.
몸을 돌려 수호를 찾아보려 했다.
카올렌이 이곳에 있다는 것은 수호가 근처에 있다는 말.
하지만 그럴 틈은 없었다.
검이 날아온다.
카앙!
검을 든 헌터와 조우했다.
그리고 검은빛을 뿜어내는 도롱뇽같이 생긴 샤먼을 접신한 사내가 창을 들고 달려왔다.
피슉!
창이 찔러지자, 도롱뇽의 혓바닥이 날아왔다.
본능적으로 저것에 맞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검을 휘둘러 창을 막았다.
거대한 도마뱀과 조자룡의 싸움이벌어졌다.
하나는 영웅급 샤먼이었고, 적은 레전더리 샤먼이었다.
그리고.
“도움이 필요해요?”
어느새 뒤에 접근한 사내.
기이한 한 자루 칼을 들고, 웃음을 짓고 있다.
“뭐해? 말만 말고 도와줘!”
태준이다!
그가 옆에 서 있었다.
그의 도움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그리워하던 태준이 옆에 모습을 드러내자, 심장이 뛰고, 가슴이 설렌다.
“주군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적을 죽여라!”
싸우는 순간에도 조자룡은 명령을 받고 싶었나보다.
“충(忠)!”
정기용의 샤먼 조자룡이 도롱뇽 샤먼에게 달려들었고, 나태준은 달려오는 헌터를 향해 칼을 휘둘렀다.
“절야(折也)!”
서걱!
“크아!”
검을 든 헌터의 팔이 허공으로 날아갔다.
헌터는 너무나 깔끔하게 잘린 자신의 팔이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것을 보고는 패닉에 빠졌다.
“나, 나태준이다!”
신화 길드의 본관 로비 난동 사건을 모르는 신화 길드원은 없을 것이다.
태풍이 쓸고 간 것처럼 유리가 박살 나고, 바닥과 천장이 파였다.
엘스컬레이터는 엿가락처럼 휘었고, 기둥과 조각들은 파괴되어 가루가 되었다.
그것도 실력으론 신화 길드 3번째이자, 지금 이 S급 게이트의 공략팀장인 타룬 메이와 대등하게 싸운 흔적이었다.
“어쩌지?”
헌터들이 검을 집어 먹었다.
“그래도 한 놈이잖아!”
“한꺼번에 덮치면 못 죽일 것도 없지!”
“하지만 길드장에게 혼날 텐데?”
“씨발! 죽는 것보다야 낫겠지!”
태준은 절대 건드려서는 안되는 인물.
하지만 그냥 죽는 것 보다는 죽이는게 낫지 않겠는가.
달려드는 헌터들은 S등급 게이트에서 지난 이틀간 괴수를 잡아 경험치도 많이 올랐고, 스킬 레벨도 올랐기에 용기가 생겼다.
단, 그들은 나태준이 이곳에서 열흘 이상을 지났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아이스 블라스트!”
뒤에 있던 얼음 마법사가 땅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얼음뿔과 냉기가 땅 위에서 솟아올랐다.
태준이 얼음뿔을 칼로 잘라버렸다.
하지만 냉기가 양다리를 감싸며 두꺼운 얼음으로 덮였다.
“지금이다!”
“쳐라!”
“죽여!”
나태준이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한별이보다 한참 못한 실력이군.’
태준을 향해 헌터의 검이 수직으로 휘둘렸다.
“달빛 가르기!”
푸른 빛이 번쩍이며 대상을 양분하는 달빛 검술을 쓰는 검사들의 필살기!
빛을 보는 순간,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빠른 쾌검이었다.
“됐다!”
분명 자신의 검은 상대를 그었다.
아니 그렇게 생각했다.
상대는 몸을 90도로 꺾어 아래에서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어?”
칼이 번쩍였다.
검사는 몸이 둘로 나뉘며 쓰러졌다.
비명조차 없었다.
아니 베었다는 것을 느끼기도 전에 죽었다.
억울하진 않을 것이다.
죽기 전에 진정한 쾌검을 봤으니.
“뒤를 공격해!”
뒤란 것은 두 다리를 완벽하게 묶었을 때를 말한다.
태준이 다리 힘으로 얼음을 부숴버리고 몸을 돌리자, 창으로 등을 찌르던 헌터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것이 끝이었다.
태준은 칼로 헌터의 목을 긋고, 얼음 마법사를 향해 달렸다.
동료의 머리가 바닥을 뒹굴고 도살자가 달려오자, 얼음 마법사는 당황했다.
“얼음 장벽! 얼음 장벽!”
당황해 손을 위로 허우적거리며 거대한 얼음 장벽을 그 앞에 세웠다.
“휴우!”
그제야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쩌저적!
얼음에 금이 가고,
콰앙!
도살자의 칼이 불쑥 튀어나왔다.
“커헉!”
칼이 자신의 배를 뚫었다.
“으...으악!”
“오지마!”
순식간에 A급 헌터들이 사라졌다.
과거에도 그러했거늘, 지금의 태준에게 상대가 되겠는가.
태준은 달아나는 헌터들까지 모두 죽였다.
지금 여기에 유일한 S급 헌터인 이형규 역시 지금 상황을 믿을 수 없었다.
블랙 드래곤 카올렌이 대지 드래곤 마콜레움의 등에 달린 팔을 통째로 뽑아버렸다.
“쿠아아아!”
그리고 날카로운 발톱으로 목을 할퀴고, 강제로 입을 벌려 그 안에 독 브레스를 쳐넣었다.
그러자, 마콜레움이 버티지 못하고 강제 귀환했다.
이형규는 바로 드래곤을 소환할 감응력이 부족했다.
어쩔 수 없이 도망쳐야 했다.
그런데.
“헉! 누, 누구냐?”
“우리 형을 괴롭히고 그냥 가려고?”
이수호, 그가 무서운 표정을 지으며 이형규 앞을 막아섰다.
수호가 검을 들고 달려들었다.
이형규 역시 S급 헌터 그냥 당할 수는 없었다.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 들었다.
“검은 반월!”
이형규가 검을 휘두르자, 검 끝에서 검은색 검기가 쏘아졌다.
이수호는 그것을 피하지 않았다.
카앙!
검을 휘둘러 날아오는 검은 반월을 쳐냈다.
그리고 이형규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큭! 어, 어떻게?”
이수호가 자신의 검을 집어넣었다.
그러자 이형규가 바닥에 쓰러졌다.
“우리 식구를 건드는 놈을 용서할 순 없지.”
이수호가 잔인한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그 뒤로 카올렌이 내려앉았다.
그 둘은 점점 서로 닮고 있었다.
수호의 검은 질풍의 검.
[질풍의 검(레전더리) - 검 끝에서 응축된 강한 바람이 뻗어 나와 모든 것을 베어버린다.
검을 들면, 스킬 질풍가도를 쓸 수 있다.]
그리고 그의 신체적 능력은 태준에게 몸을 재구성을 받은 후 A급 헌터와 비슷한 능력을 발휘했다.
레전더리 소환수와 A급 검사의 실력이 더해지자, 그는 그 자체로 S급 헌터가 된 것이다.
그 시각 조자룡의 검이 거대한 도롱뇽의 샤먼을 몰아쳤다.
정기용은 지금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었다.
태준과 수호와 함께 전투하고 있는 것 자체가 꿈만 같았다.
서로의 등을 지켜준다.
목숨을 맡긴다. 바로 이것이었다.
언제나 태준과 동료들이 등을 지키고 있었기에 자신 역시 온몸을 다해 싸울 수 있었던 것이다.
쉐에엑!
찔러지는 창을 피하고 몸을 날려 검을 휘둘렀다.
“크윽!”
검에 다리를 베인 상대가 쓰러지자, 그 뒤를 덮쳤다.
조자룡의 검이 도롱뇽의 등을 찔렀다.
푹!
“커헉!”
헌터의 등이 뚫리며, 샤먼의 형상이 사라졌다.
영웅급 샤먼으로 전설급 샤먼을 죽인 것이다.
이는 어린아이가 어른을 이긴 것과 같은 일이었다.
“형!”
이수호가 정기용에게 달려갔다.
둘이 서로를 부둥켜 안았다.
한때 정기용과 이수호는 단짝이었다.
서로 의지하며 버틴 시간이 1년이 넘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마음으로 느끼고 있었다.
돌아와서 고맙다고...
태준이 다가오며 말했다.
“미안해. 많이 서운했지?”
떠난 건 자신인데 태준은 오히려 사과했다.
“아니야. 기다리지 못하고, 떠난 내가 미안하지.”
“마음이 떠난 적이 없으니, 떠난 게 아니라 잠시 나갔다가 온 겁니다.”
그 말을 들은 정기용의 눈이 글썽거렸다.
“나. 다, 다시 합류할 수 있을까?”
“다시 말하지만, 떠난 적이 없으니 여전히 우리 팀입니다.”
“고마워.”
미안한 감정, 보고 싶던 감정이 몰려왔다.
그리고 태준과 수호와 함께하고 있으니, 집에 돌아온 듯한 포근함이 느껴졌다.
“일단 이 일을 헌터원 측에 알리고, 이철용에게 말하고 돌아갈게.”
“그래요. 그럼.”
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기용은 팀원들이 전부 죽었기에 아쉬움이 가득했다.
정기용과 그의 팀이 괴수를 잡고 있는데, 신화 길드원들이 갑자기 공격한 것이다.
S등급 게이트라 용산 게이트처럼 서로 힘을 합쳐 게이트를 클리어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들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그런데 어떻게 조자룡 샤먼이 레전더리 샤먼처럼 크기가 커진 거야?”
수호가 궁금해 물었다.
“그건 나도 잘 모르겠어.”
“진화한 건 아닐까?”
태준이 말했다.
“수호의 블랙 드래곤도 처음엔 지금처럼 크지도 않았고, 브레스도 약했지, 하지만 수호가 등급이 오르자, 카올렌도 진화했잖아. 영웅급 샤먼도 진화하면 전설급이 될 수도 있지.”
“정말, 그런 걸까?
아직 헌터들의 비밀이 전부 다 밝혀진 것이 아니었다.
생각해보면 그냥 맹목적으로 받아들였지, 왜 헌터가 생겼는지, 왜 이런 클래스와 특별한 능력들이 생겼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참, 이거 써요.”
태준이 인벤토리에서 창 한 자루를 꺼냈다.
그러자 정기용이 손이 떨렸다.
“설마 이건?”
“만나면 주려고 샀습니다.”
[애각창(레전더리 급) - 조운이 사용했다는 창.
“천하에 대적할 자가 없다”라는 의미로 조운이 애각(涯角)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창대가 굵고, 무거우며, 창날이 유난히 길다.
찌르기와 베기에 능하고, 전체 길이가 3미터에 달한다.
강하게 휘두르면 창대가 울리며 늑대 울음소리를 낸다.
들고 있는 것만으로 상처 회복의 효과가 있다.]
청홍검에 이어 자신의 옛 창을 잡은 조자룡 샤먼은 몸을 떨고 있었다.
사실 “조자룡 헌 창 쓰듯 한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조자룡은 창술의 달인이었다.
검술도 능했지만, 창이 주 무기였으니 그 실력은 더 늘어날 것이다.
“고맙습니다. 주군. 열심을 다하겠습니다.”
사내다운 목소리, 이건 조자룡이 대답한 것이었다.
그제야 정기용도 느끼고 있었다.
왜 조자룡의 샤먼이 게이트에서 제대로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는지...
그는 자신이 인정한 주군인 태준이 없이는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정기용은 팀원들이 모두 S등급으로 올랐다는 이야기에 자신도 더 노력할 것을 다짐하며, 베이스 캠프로 돌아갔다.
***
이틀 후.
게이트 입구가 소란스러웠다.
“모두 정렬하라!”
본진이나 다름없는 국가 헌터원의 헌터들이 게이트 안으로 진입했다.
그리고 그가 왔다.
최민지, 김득구 다음으로 세계 헌터 순위 3위에 올라와 있는 인물.
국가 헌터원의 원장이자, 반 헌터 협회의 수장.
SS급 헌터 이철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