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3
103. 부산 S등급 게이트(6).
이철용이 S급 헌터들과 A급 헌터, B급 헌터들을 최대한 끌어모아 왔다.
그 숫자가 200명이 조금 넘었다.
그는 이번에 국가 헌터원의 질을 끌어올리기 위해 다른 모든 게이트를 공략하지 않고, 그저 지키기만 하는 상태로 남겨두고 뛰어난 헌터들을 끌어모은 것이다.
헌터 숫자를 늘려 균형을 맞추는 것은 이미 격차가 많이 벌어져 불가능해 보였고, 높은 등급의 헌터 숫자를 늘려 최대한 차이를 줄일 생각이었다.
그가 만약 부산에 S등급 게이트가 뜨는 정보를 알았다면, 중국에 A급 게이트를 공략하러 가지 않고, 헌터들을 모아 첫날 들어왔을 것이다.
2차 공략팀은 박하림이 이끄는 1차 공략팀과 합류했다.
“아무래도 나태준을 만나봐야겠어.”
이철용의 말에 박하림이 만류했다.
“게이트 안이 오히려 귀가 많아.”
“태준이 그놈은 이번에 S등급 게이트가 발생할 것을 미리 알았어. 그러니 부산으로 먼저 내려왔겠지. 만약 우리에게 먼저 알려줬다면, 지금쯤 여기 있는 모든 헌터가 등급이 올랐을 거야.”
“그렇다고 헌터 협회 측에 알린 것도 아니잖아.”
“그건 그렇지만, 그놈이 지금 상황을 제대로 모르는 것 같아. 이대로 놔두면 헌터 협회 놈들을 막을 길이 없어.”
박하림이 철용의 말을 듣고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여기 게이트에서 일이 생겼어.”
“일이라니?”
“헌터 협회 놈들이 정기용팀을 공격했어. 그래서 정기용을 빼고 나머지 헌터들이 모두 죽었어.”
이철용이 주먹을 쥐었다.
“이 새끼들이 게이트 안이라고 지금 우리를 우습게 봤군.”
“그런데 공격한 놈들 역시 모두죽었어.”
“뭐?”
이철용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가 복수한 건가?”
“아니 나태준이야, 그놈이 S급 헌터인 이형규와 A급 헌터 여덟을 죽였어.”
“우리를 도와줬단 말이네.”
“아니 정기용을 도와준 거야.”
“정기용은 지금 어디 있지?”
“괴수를 잡으러 갔으니, 곧 돌아올 거야.”
잠시 후 정기용이 돌아왔다.
그는 이철용을 보자마자, 본론을 꺼냈다.
“무슨 말이지? 나태준에게 돌아가겠다고?”
이철용이 도끼눈을 뜨고 정기용을 바라보았다.
“이제 내 자리로 돌아가겠습니다.”
“그동안 내가 섭섭하게 해줬나?”
“그건 아닙니다. 죽은 팀원들도 저도 모두 원장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럼 왜 간다는 거지?”
“제게 어울리는 곳은 이곳이 아니라, 나태준 헌터 옆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정기용이 국가 헌터원에서 받았던 반지와 아이템을 내밀었다.
“전설급 샤먼 값은 이 게이트를 나가서 드리겠습니다.”
“이건 일방적인 통보로군.”
“죄송합니다.”
이철용은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은 분명 정기용에게 잘해주었다.
경험치를 올릴 수 있게 도와줬을 뿐만 아니라, 유니크와 레전더리 급 아이템까지 밀어주었다.
이건 나태준도 해주지 못한 것이었고, 그를 A등급까지 올렸는데 왜 다시 돌아간다는 것인지? 그것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 그의 팀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최규환의 이야기를 듣고 처음에는 평범한 헌터들로 생각했다.
하지만 태준의 팀원들은 모두 1, 2년 만에 B등급을 찍은 보기 드문 헌터들이었다.
그들을 잘만 키우면 자신에게 큰 도움이 될 것 같아, 게이트를 적극적으로 소개해주기도 하고, 함께 A등급 게이트도 공략하면서 자신의 강함과 지도력도 보여주었다.
그런데 정기용을 빼고선 아무도 자신에게 오지 않았고, 어디로 갔는 지도 모르는 나태준을 기다렸다.
‘왜지?’
갑자기 찾아온 침묵.
이철용은 계속해서 머리를 굴리고 굴렸지만,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비단 이번 일뿐만 아니었다.
그날!
귀족들을 처단하던 그 날 일이 떠올랐다.
처음 창수에게 귀족들이 자신들을 죽인다는 그 이야기를 듣고, 6학년 3반 동창들을 모아 반란 계획을 세운 것은 자신이었다.
그리고 헌터 협회를 가장 먼저 장악한 것도 자신이었고, 제일 큰 세력을 가지고 있었다.
최규환과 박하림, 노병원, 강민경.
자신을 따르는 동창이 넷이나 있었고, 다른 이들은 뿔뿔이 흩어져있었다.
그 당시 헌터 협회에서 가장 큰 불멸 길드를 손에 넣었고, 헌터 협회와 모든 것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런데 다른 동창들이 모두 자신에게 반기를 들며, 각자 세력을 키우더니 급기야 싸움이 벌어졌다.
스물이 넘는 동창과 싸움에서 겨우 다섯이 이길 순 없었다.
결국, 자신과 자신을 따르던 불멸 길드는 헌터 협회를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때 연희와 창수를 죽이지 않은 것이 문제였나?’
모두 그것을 원했다.
창수는 헌터 협회장의 딸인 김성하를 죽이지 말라고 빌었다.
결국, 화염의 마법사이자, 도경수와 한패인 김미영의 화염이 날아갔고, 창수는 김성하 대신에 꺼지지 않는 불길에 휩싸였다.
두 다리가 녹고, 살이 타들어 갔다.
하지만 창수는 끝까지 자신이 대신해 불타 죽을 테니, 김성하를 살려달라고 했다.
그때 나선 것이 연희였다.
‘생각해보니, 그때부터 연희에게 원한이 있었나?’
연희가 창수의 몸에 붙은 불을 끄고, 모두를 향해 그만하라고 했다.
동창들은 김성하를 살리려 하는 두 사람을 죽이길 원했다.
하지만 자신은 그들을 살려둬야 한다고 생각했다.
특히 연희는 국민 영웅으로 그녀를 대체할 만한 사람이 없었다.
그녀가 죽으면 많은 사람이 의문을 가질 것이고, 자신들의 짓이 알려지면, 모든 헌터와 국민들로부터 외면을 받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들을 살려두자고 결정하고 자신을 따르는 헌터들과 동창들을 막아섰다.
이철용이 입술을 깨물었다.
‘역시, 그때 죽였어야 했나...’
후회가 밀려왔다.
분명 초반엔 자신이 선두였고, 동창들은 자신을 따르는 것 같았다.
그랬기에 실력은 연희가 가장 뛰어났지만, 실속은 자신이 차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뭐가 부족했을까?
이철용이 정기용을 바라보았다.
태준의 무엇이 정기용을 저리도 깊게 사로잡았을까?
갑자기 그것이 궁금했다.
“좋아, 간다면 보내주지. 대신 조건이 있네. 나를 나태준과 일대일로 만나게 해주게.”
“그건 제가 결정할 문제가 아닙니다. 그 말을 그대로 전해드릴 순 있습니다.”
“좋아. 그렇게 하게.”
정기용은 미련 없이 캠프를 나가 숲으로 향했다.
만약 가는 도중에 S급 괴수라도 만난다면, 목숨이 위태할 것이다.
그럼에도 거침없이 움직였다.
“우리는 전투를 준비한다. 이제부터 전력을 다해 괴수를 죽이고, 게이트를 공략한다.”
이철용은 지금 서두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게이트 밖에서는 매우 큰 규모의 공략팀이 대기 중이었다.
헌터 협회에서 300명이나 되는 헌터들을 모았다.
작년 S급 게이트는 클리어하기 위해 200여 명이 동원됐고, 2달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모두 등급이 올랐다.
그랬으니, 그들도 자신처럼 많은 숫자의 헌터들을 데리고 들어가 경험치를 쌓으려는 것이었다.
그러니 하루라도 빨리 자신이 게이트를 클리어해, 헌터 협회 헌터들이 등급을 올리기 전에 게이트를 소멸시켜야 했다.
***
헌터 협회의 2차 공략팀이 도착했다.
예상보다 훨씬 많은 400여 명의 헌터가 참여했다.
그리고 신화 길드의 SS급 헌터인 이지은과 도경수의 부하인 SS급 김미영, 최민지의 부하인 SS급 헥토르가 게이트로 들어왔다.
그들이 게이트로 들어온 것을 보고, 다음날 이철용은 태준을 만나고 있었다.
“나를 보자고 했다고.”
“이렇게 둘이 만나 이야기하는 것은 처음이지?”
“그래.”
이철용이 태준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이야기를 꺼냈다.
“S급 게이트가 발생할 것을 미리 알았다고?”
“나도 며칠 전에야 알았어.”
“다른 곳은 몰라도 우리에겐 미리 알려줘야 하지 않아?”
“왜 그래야지?”
“우린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지켜야 하는 국가 기관이잖아.”
“그거야 모든 헌터의 기본 의미지. 너무 걱정하지는 마. 도살자 길드하고 블리자드 길드가 그 국민을 지키고 있으니까.”
사실 태준의 말처럼 초기에 해안으로 몰려온 괴수들은 두 길드의 헌터들이 막아준 덕분에 거의 피해를 보지 않았다.
아이러니한 것은 도살자 길드는 헌터 협회에 등록되어 있고, 블리자드 길드는 국가 헌터원에 등록한 길드라는 점이었다. 태준은 양쪽의 길드를 하나씩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도 미리 알려줬더라면, 우리 국가 헌터원의 헌터들이 경험치를 많이 올렸을 거잖아.”
“그래서?”
“넌 지금 우리 헌터 세계의 실정을 너무 모르고 있어.”
“글쎄? 규환이에게 많은 정보를 얻고 있는데, 뭘 모른다는 거지?”
“헌터 협회 놈들 말이야. 그놈들이 커지면 커질수록 우린 놈들을 견제할 수 없어. 이러다가 저들이 무슨 짓이라도 벌리면 막을 수 없을지도 몰라.”
“그렇다고 너희가 권력을 잡는다고 해서 더 좋아질 것도 아닐 텐데?”
“아니 우린 최소한 헌터들의 뒤를 치진 않아.”
이철용은 이번에 정기용과 팀원들의 이야기를 꺼냈다.
헌터 협회에 제일 큰 신화 길드원들이 괴수를 사냥하는 그들을 공격했으니, 비겁한 짓이었다.
“그리고 연희를 공격한 것도 그놈들 짓이잖아.”
연희 이야기에 태준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계속해봐.”
“그놈들 그날, 그 일이 있고 난 뒤부터 연희를 죽일 생각이었을 거야. 그리고 이전 S등급 게이트에서 기회를 잡은 거고.”
이철용은 그날의 이야기를 태준에게 했다.
창수가 김미영의 화염 마법에 몸이 탄 이야기, 연희가 두 사람의 목숨을 구해준 이야기 등등.
“창수를 저렇게 만든 것이 미영이라고?”
“그래 지금은 도경수 밑에 있지.”
하센신 길드의 김미영, SS등급의 마법사.
작염(灼炎)의 마법사라 불리는 그녀는 도경수의 오른팔이었다.
이철용은 일부러 창수 이야기를 꺼냈다.
태준이 창수와 각별한 사이란 것을 알고 하는 말이었다.
어째거나 자신은 연희와 창수를 공격하지 않았고, 두 사람의 죽음을 막기까지 한 것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게 원하는 것이 뭐야?”
“하나는 S등급 게이트가 앞으로 발생할 때 미리 알려달라는 거고, 또 하나는 동맹이야.”
“동맹?”
“지금 이 게이트로 들어온 헌터 협회 놈들의 숫자가 너무 많아.”
“그들도 너희처럼 헌터 등급을 올리려 하겠지.“
“그래 맞아. 문제는 그들의 전력만 가지고도 이 게이트를 클리어할 수 있다는 거지. 그러니 우리가 방해처럼 보일 거야. 그리고 그들은 SS급 헌터가 셋이야. 보다시피 우린 나 하나고 말이지.”
어차피 S등급이나, A등급 헌터들은 눈앞에 SS급인 이철용을 상대할 수 없었다.
SS등급은 SS등급만이 적수가 될 수 있었고, 저들은 그런 자들이 셋이나 있었다.
“그러니 위급한 순간엔 힘을 합치자는 건가?”
“맞아. 최소한 이 게이트를 나가는 순간까진 동맹을 맺자는 거지. 서로의 안전을 위해서.”
“거절하지.”
“뭐? 왜지? 너희에게는 나쁠 것 없는 제안인데?”
“나를 막아서는 자들이라면, 누구라도 가만둘 순 없지. 하지만 나와 내 팀이 알아서 할 거야. 우린 다른 곳과 연계할 생각이 없어.”
이해할 수 없는 발언이었다.
강력한 하나의 적을 두고 힘이 약한 두 곳이 합치는 게 합리적이었다. 그것도 영구적인 것이 아니라, 이곳 게이트 안에서만 맺는 임시적인 동맹이 아니던가.
이해하지 못한 자신의 마음을 잃었는가?
태준이 그 이유를 말했다.
“우린 누구의 도움 없이 스스로 여기까지 왔어.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빠르게 성장했지. 너도 스스로 더 강해지는 방법을 찾아. 네가 최민지를 꺾고 세계 최강이 된다면, 네 부하의 실력도 올라갈 것이고, 누구도 너희를 무시하지 못할 거야.”
“세계 최강이라...”
“난 누구보다 강해질 거야. 그리고 연희를 함정에 빠트린 놈들을 찾아갈 거야. 그게 지금의 내 목표야.”
이철용이 피식 웃었다.
그 목표가 세계 최고의 헌터가 되는 거였다.
그리고 그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한 여자 때문이었다.
자신처럼 대한민국을 장악하고, 모든 헌터들을 장악하려는 거창하고 화려한 목표가 아니었다.
“무슨 말인지 알았다. 그럼 누가 먼저 이 게이트를 클리어할지 경쟁하게 되겠군.”
“경쟁이야말로, 훌륭한 자극제가 되지.”
“좋아, 기대하지.”
이철용이 웃으며 물러섰다.
이 순간 그동안 나태준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의 생각을 조금을 읽을 수 있었다.
‘그래도 당분간은 도움이 되겠어.’
그리고 이철용이 피식 웃었다.
어차피 게이트 클리어 싸움은 헌터 협회나 자신들의 싸움이었다.
수백의 헌터와 열 명도 안 되는 헌터팀과 싸움이 되겠는가.
***
태준과 팀원들은 산맥에서, 국가 헌터원은 산맥을 끼고 우측으로 이동하며 괴수를 잡았고, 헌터 협회는 좌측으로 이동하며 괴수를 사냥했다.
태준이 이 게이트에 들어온 지도 어느덧 20일이 지났다.
팀원들은 모두 S급 헌터가 됐다.
B등급이었던 이수경과 김서라까지 S등급이 됐다는 것은 엄청난 숫자의 괴수를 잡았다는 소리였고, 이곳의 경험치가 상당하다는 소리이기도 했다.
하지만 태준은 무슨 일인지 아직도 A등급에 머물고 있었다.
웬일인지 등급이 오를수록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거 같았다.
S급 전사 계열인 윤상희의 체력은 900대였고, 자신은 1,300이 넘어갔다. 괴수 백정 계열의 S등급은 체력만 가지고 등급이 올라가는 것은 아닌것 같았다.
그리고 스스로 뭔가 느끼고 있었다.
SS등급 괴수를 잡으면 자신의 헌터 등급도 오를 것 같다.
왠지 모르겠지만, 이놈은 꼭 자신이 잡아야 했다.
그래야 뭔가 커다란 것을 얻고 깨우칠 것 같았다.
“우리끼리 브라키페르마를 잡으러 간다.”
“응?”
한참 사냥하던 모두의 시선이 태준을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