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살자-106화 (106/149)

# 106

106. 나는 괴수 백정이다(1)!

눈앞에 거대한 브라키페르마(SS)는 티베리안 차원을 다스리는 신, 카라차크라의 애완동물이다.

다리 하나가 웬만한 빌딩보다 크고, 8개의 다리로 움직임에 방해될 것은 없었다. 등에 수천 개의 촉수는 다른 것들의 접근을 원천 차단하며, 거대한 이빨과 몸 앞과 옆에 난 자잘하고 날카로운 손가락 같은 수 많은 촉수로 땅을 팔 수도 있다.

놈이 지나면 그곳이 길이 된다.

그 초거대 괴수와 인간 헌터들의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다.

생존을 위해 싸우는 것이니, 서로 목숨을 걸었다.

태준은 소형 브라키페르마(A)의 고기 먹고, 피를 마셔 그들의 습성을 알아냈다.

소형 브라키페르마는 전투에서 죽은 동료 괴수와 인간 헌터, 또는 다른 종류의 괴수 사체를 끌고 본체로 향한다.

배속으로 들어가서 어미의 생산 기관에 가져온 먹이를 투하하면, 오래지 않아 소형 브라키페르마가 태어나는 것이다.

새로 태어난 브라키페르마는 그 모습이 전부 달랐다. 흡수한 괴수나 인간의 모양이 조금씩 섞여 더 괴기스러웠다.

한마디로 저 초거대 괴수의 몸은 A급 괴수를 찍어내는 공장과도 같았다.

“저놈의 뱃속으로 들어가서 생산 기반을 파괴해야 해. 아니면 작은놈들만 상대하다가 모두 죽어갈 뿐이야.”

태준의 말에 팀원들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어떻게 저 배속으로 들어간다는 말이야? 대장 눈엔 저 입구에서 쏟아지는 괴수들이 보이지 않아?”

“맞아. 들어가기도 전에 괴수들에게 당할걸.”

팀원들의 걱정은 하나였다.

괴수의 중요한 생산시설이 있는 곳이니만큼 방비가 철저했다.

일단 계속해서 괴수가 아래로 쏟아졌고, 그 옆으론 괴수들의 자원으로 쓸 괴수를 끌고 올라갔다.

그리고 위쪽 공간엔 수백 개의 촉수가 꿈틀거리며 올라오는 괴수들과 먹이를 검열하고 있었고, 구멍 양옆에는 이빨 같은 것들이 잔뜩 솟아있어 틈이 없었다.

수백, 수천, 어쩌면 수만 년 이상 진화해온 놈이었다. 자신의 유일한 약점을 보완하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다른 사람은 불가능하겠지만, 난 할 수 있어.”

“뭐?”

아무리 태준이라고 해도, 아니 SS급 헌터라고 해도 저 안으로 무턱대고 들어갈 순 없었다.

“일단 내가 신호를 보내면, 구멍으로 날 데리러 와!”

“신호는 어떻게 보낼 건데?”

“괴수의 움직임을 보면 알 거야.”

“그래, 알았어.”

태준은 방금 잡아 온 소형 브라키페르마의 몸체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등을 파서 괴수의 몸속으로 들어갔다.

소형 브라키페르마는 몸체의 길이가 6미터에 달했고, 어미와 다르게 여섯 개의 다리를 가지고 있었다.

“대체, 뭘 하려는 걸까?”

한별의 말에 다들 대답이 없었다.

그것은 아무도 태준이 하려는 것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때였다.

끼이익!

“헉! 괴수가 살았다!”

팀원들이 모두 놀란 표정을 지었다.

괴수가 움직였기 때문이었다.

태준이 괴수의 몸 위로 머리를 내밀었다.

“내가 움직인 거야. 어때?”

팀원들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 그게 가능하단 말이야.”

“놈들의 구조를 알면 어렵진 않아.”

태준은 놈들의 힘줄과 근육을 잡아당겨 괴수를 움직였다.

하지만 움직였다고 해서 다가 아니었다.

태준은 이 괴수들의 습성을 알고 있었다.

“시간이 없어. 이놈이 부패 되기 전에 가봐야 해.”

“조심해 오빠!”

수진이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형! 이따가봐.”

태준은 팀원들을 한번 쓱 쳐다보더니, 자신이 들어간 구멍을 껍데기로 막았다.

그리고.

착착착착!

부지런히 여섯 개의 다리를 움직이며, 괴수와 인간이 싸우고 있는 전장으로 달려갔다.

“생각보다 빠른데.”

“그러게, 근데 대체 태준씨는 어떤 사람일까? 참 알 수 없단 말이야.”

윤상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가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당연했다.

어느 인간이 괴수의 몸속으로 들어가서 괴수를 움직일 수 있단 말인가?

태준이 아니라면 그 누구도 이런 작전을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러나 아직 마지막 단계가 남았다.

구멍에는 수많은 촉수가 동족과 적을 구분하고 있었다.

그곳을 통과할 수 있는지가 성공의 열쇠였다.

“크헉!”

괴수의 이빨에 배가 뚫린 헌터가 앞으로 꼬꾸라졌다.

헌터는 가쁜 숨을 몰아쉬다 그대로 쓰러졌다.

그러자 소형 브라키페르마들이 달려왔다.

퍽! 퍼퍽!

한 놈이 다른 놈들을 발로 밀치고 때려가며, 시체를 확보했다.

그리고 그 인간 시체를 입에 물고는 거대한 어미에게 향했다.

그것은 태준이 안에 들어있는 괴수였다.

‘이제부터 힘든 시간이군.’

평지를 걷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진짜 난관은 거대한 다리를 오르는 것이다.

먹이를 문 다른 괴수들처럼 맨 뒤에 있는 거대한 다리에 도착했다. 다른 놈들은 모두 빠르게 다리를 타고 오르고 있었는데 태준은 그러지 못했다.

소형 브라키페르마의 발에는 날카로운 돌기가 있어 천장에서도 떨어지지 않았다. 문제는 다리를 움직일 수 있었지만, 이미 죽은 놈의 다리에서 돌기를 솟아나게 하는 것은 태준도 할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태준은 괴수의 아랫부분에 구멍을 뚫었다.

그리고, 직접 양팔을 이용해 괴수의 다리를 오르기 시작했다.

무게가 어마어마했다.

괴수의 무게는 족히 10톤은 넘었지만, 체력이 1,300이 넘는 태준에게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다른 놈들보다 속도는 느리지만, 꾸준히 어미의 다리를 타고 오르자, 곧 놈의 배에 뚫린 구멍 아래에 겨우 도착했다.

“쿠에에엑!”

옆으로 거대한 놈을 끌고 올라가는 소형 브라키페르마들이 보였다.

거대한 놈은 S급 괴수인 칸이다.

S급 괴수도 이놈들에게는 단지 먹이일 뿐이었다.

자신들이 몸체보다 수십 배나 큰 놈을 여럿이서 합심해 끌고 올라갔다.

이놈이라면 소형 브라키페르마를 수십 마리는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머리를 살짝 내밀어 입구 쪽을 바라보았다.

천장에서 내려온 촉수들이 먹이의 상태뿐만 아니라, 먹이를 끌고 온 괴수들까지 모두 검사하고 있었다.

죽지 않은 먹이는 안으로 가져갈 수 없다는 뜻이었다.

“섭취(攝取)!”

손을 뻗어 브라키페르마의 고기를 씹었다.

그리고 인벤토리에서 브라키페르마의 피를 꺼내 마셨다.

“흡혈(吸血)!”

이제 마지막 단계였다.

괴수의 장점을 흡수하고 사용하기 위한 이 두 가지 스킬이 이런 식으로 활용될지는 태준 자신도 몰랐다.

괴수의 습성이 온몸에 퍼지며, 스스로 자신은 인간이 아닌 브라키페르마라고 최면을 걸었다.

“가자!”

괴수의 몸을 움직여 촉수 앞으로 향했다.

스타워즈 영화에서 본 것 같다.

우주선의 격납고처럼 생긴 입구에 도착했다.

이곳에 도착하면 소형 브라키페르마는 움직이지 않았다. 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본능으로 알고 있었다.

곧 천장에서 수십 개의 촉수가 다가왔다.

자신도 모르게 숨을 멈췄다.

촉수가 먹이와 괴수의 몸을 자세히 살폈다.

‘제길, 반응이 다르다.’

앞선 놈들은 쉽게 통과됐지만, 자신의 검사 시간은 길어졌다.

그러더니 다른 소형 브라키페르마가 다가와 내 먹이를 가지고 들어갔다.

그리고.

푹! 푸푹!

태준은 느낄 수 있었다.

괴수의 뇌를 향해 뾰족한 것들이 여러 번 찍혔다.

그건 촉수에서 나온 칼날같은 바늘이었다.

몸이 약해졌거나 부상이 심한 것들 역시 어미의 생산공장으로 향해 다시 태어나게 하는 것이다.

숨을 멈추고 몸을 움직이지 않았다.

죽은 척했다.

그러자, 곧 또 다른 브라키페르마가 다가와 이놈을 끌고 갔다.

‘일단은 안으로 들어왔다.’

이 방법이 통할 줄 알았다면, 그냥 A급 괴수의 몸속에 숨어 있을걸. 잠깐 후회했다.

머리만 밖으로 빼내 주변을 살폈다.

앞쪽으로 거대한 S급 괴수 칸이 분해되고 있었다.

어미의 공장으로 들어가기엔 칸이 너무 컸다.

그리고 반대편에선 기괴한 모양의 소형 브라키페르마가 탄생하고 있었다.

‘정말 재활용이 끝장이군.’

큰 괴수를 분해하는 동안 괴수의 배를 뚫고, 밖으로 나와 무작정 달려 한쪽 벽으로 바짝 붙었다.

내부는 기본적으로 어두웠지만, 움직이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이제 남은 것은 이 괴수의 약점을 찾아 공격하는 것이었다.

먼저 벽처럼 보이는 놈의 살점을 파서 씹어 먹었다.

“섭취(攝取)!”

뭔가 보일 줄 알았지만, 그저 공허한 배고픔과 끝없는 움직임뿐이었다.

이놈은 생각이란 게 없나?

이 공허함은 수십 만 년, 어쩌면 더 오래 살아남은 괴수의 마음일 것이다.

놈은 정말 끝없이 이 티베리안 차원에서 살아온 것 같았다.

괴수의 뱃속을 다니며, 여기저기 살폈다.

하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놈을 쓰러트려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뭔가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이놈을 죽여야 여기서 나갈 수 있고, 나도 S급 헌터로 거듭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야 앞으로 더 나갈 수 있고, SS급 게이트에 갇힌 연희를 구할 수도 있지 않은가.

어떻게든 괴수를 죽여야 했다.

놈을 어떻게 죽일 수 있을까를 한참 동안 고민하다가 갑자기 그것이 발동됐다.

[도살자(屠殺者)의 눈이 발동됐습니다.]

괴수 백정의 스킬이 발동됐다.

스스로 컨트롤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괴수를 정말 죽이고 싶을 때만 발동된다.

‘보인다!’

놈의 몸속 구조.

한쪽 벽을 수십 미터를 파고 들어가야 중요 장기나 핏줄이 있었다.

하지만 미세한 신경들이 사방에 펼쳐져 있었기에 아무 데나 파고 들어가다간 얼마 있지 않아 놈에게 들키고 만다. 그랬다가는 괴수들이 전부 내게 몰려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할 수도 있었다.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렸다. 천장과 입구, 그리고 먹이를 먹는 거대한 구덩이까지.

‘저기다!’

괴수의 살을 파지 않고, 놈의 내장으로 가는 길!

죽은 먹이가 새로운 브라키페르마로 태어나는 공장 같은 저 구덩이 맨 아래쪽을 뚫고 가면 멀지 않은 곳에 놈의 심장이 있었다.

아무리 엄청난 괴수라지만, 심장을 뚫고 내장을 난자하면 놈 역시 버티지 못할 것이다.

놈의 진짜 뱃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아 조금은 떨렸다. 하지만 그 방법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태준은 이를 악물고 달렸다.

갑자기 인간이 나타나 달리자, 괴수들이 일제히 자신을 공격했다.

“비켜!”

괴수의 공격을 피해 몸을 날리고 구르며, 드디어 시뻘건 구덩이 속으로 몸을 날렸다.

풍덩!

끈적끈적한 것이 온몸을 휘감았다.

옆쪽으로 이름 모를 괴수의 잘린 사체와 인간의 시체가 보였다.

‘어?’

몸이 나른하다.

뭔가 따뜻하면서도 포근하다.

마치 엄마 배 속에 있는 느낌이 들었다.

졸리고 무기력하다.

나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

“태준아! 학교 가야지.”

“응? 어, 엄마?”

나를 깨우는 손길.

돌아가신 지 16년, 아니지 이제 17년이 지났다.

그럼에도 언제나 그리워한 그 손길.

“어서 씻고, 아침 먹어.”

“정말 엄마 맞아?”

“뭐?”

엄마를 안았다.

포근하다.

엄마의 살 냄새.

이건 가짜가 아니다.

좋다.

“어서 씻으라니까. 학교 늦겠다.”

“엄마,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안 돼?”

어리광을 부린다.

“아니, 얘가? 무슨 나쁜 꿈을 꿨니?”

“응. 게이트가 나타나서 아파트가 무너지고, 괴수가 튀어나와 사람들을 막 죽였어.”

“그거 꿈이야. 이제 엄마랑 있으니까. 괜찮아.”

엄마가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방문이 열렸다.

“오빠 뭐하는 거야? 다 커서 엄마 찌찌 먹게?”

어린 여동생이 나를 물끄러미 올려다본다.

작고 귀엽다.

“태준아, 어서 와라. 국 식겠다.”

아버지는 벌써 식사를 하고 계신다.

이 모든 것이 익숙하다.

그런가?

나는 꿈을 꾸고 있었던 거구나.

그 꿈이 너무 생생해 진짜라고 믿고 있다니.

찬물로 세수하고, 식탁 앞에 앉았다.

콩나물국, 김, 콩자반, 김치, 오징어 채.

모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다.

갑자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 녀석, 왜 울어?”

“그, 그게 너무 좋아서요.”

너무 소중한 일상이다.

“태준아! 학교 가자.”

이 목소리 연희다!

후다닥 가방을 챙겼다.

괜히 가슴이 설렌다.

연희를 기다리게 하면 안 되지.

“아빠, 엄마.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길 조심하고.”

괜스레 문 옆에 가만히 서 있는 동생의 볼을 꼬집었다.

“오빠. 학교 다녀올게.”

“빠빠. 당겨와.”

문을 열었다.

“연희야!”

그런데...

연희가 슬픈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태준아, 나 언제 구해줄 거야?”

“뭐?”

갑자기 검은 게이트가 나타나며 연희를 집어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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