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9
109. 복수는 시작됐다(2).
카올렌을 타고 거대한 동굴을 날아가고 있었다.
태준이 눈을 감고 게이트 보스를 잡을 때를 떠올렸다.
SS급 괴수 브라키페르마의 괴수 재생산 구덩이에 빠지고, 꿈을 꿨을 때였다.
공허함의 늪에 빠진 것처럼 나른하고, 끝없이 추락하는 느낌이 들었다.
솔직히 그땐 이대로 영원히 잠들 줄 알았다.
하지만 결국 탈출했고, 그 일이 있고 난 후에 메시지가 뜨고, 몸에 감각이 매우 좋아짐을 느꼈다.
[강력한 공허의 독과 몽환의 독을 이겨냈습니다. 독 저항력이 올랐습니다.]
[독 수련자(S)의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독 수련자(S) - S등급 이하의 괴수 독은 당신에게 전혀 타격을 주지 못합니다.]
[당신의 감각이 좋아집니다.]
[칼끝에 촉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가장 큰 변화는 징그럽게 오르지 않던 감식(lv8) 스킬이 단번에 5레벨이나 오른 것이다.
모든 괴수 백정의 스킬이 레벨 10을 넘어서자, 지경긍경지(技經肯綮之) 스킬이 활성화되었고, 드디어 헌터 등급이 한 단계 올랐다.
지경긍경지는 패시브 스킬이었다.
그리고 브라키페르마(SS)의 심장을 터트리고, 주변의 핏줄을 모두 끊어버리고, 장기를 모두 무자비하게 칼로 그어 버리자, 또 다른 메시지가 떴다.
[당신의 잔인함에 SS급 괴수가 당신을 꺼립니다.]
[괴수 학살자(S)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괴수 학살자의 체취가 풍겨 S급 이하의 괴수가 당신을 두려워합니다. 공포 +50]
[공포 상태가 된 괴수는 행동력 -50이 되며, 상처를 입으면 상태에 이상에 빠질 확률이 50% 올라갑니다.]
기억을 떠올리며, 상태창을 열었다.
[나태준]
- S등급
- 체력 : 1459
- 마나량 : 102(113)
- 클래스 : 괴수 백정, 도살자(屠殺者).
- 특성 : 관찰(lv10), 도살(lv10). 해체(lv20), 감식(lv13).
- 특기 : 비대각(批大卻). 도대관(導大窾). 난도(亂刀)(lv10)
- 각성 : 할야(割也), 절야(折也), 흡혈(吸血), 섭취(攝取), 재생(再生), 포효(咆哮).
- 도살자 업적 : 괴수 학살자(S), 독 수련자(S).
- 패시브 스킬 : 지경긍경지(技經肯綮之) 발동 중.
드디어 헌터 등급이 S등급이 되었다.
처음 각성해 헌터가 된 태준의 목표.
연희와 같은 S등급 헌터가 되는 것이 그의 목표였고, 그것은 연희와 동등해진다는 의미였다.
그래야만 그녀에게 마음을 고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땐 아주 단순하고 헌터답지 않았던 이 목표.
지금은 S등급이 되어 하나를 이루었지만, 그 대상인 연희가 없었다.
그리고 연희는 지금 SS등급. 어쩌면 더 등급이 올랐을 수도 있었다.
게이트에서 살아 있다면...
특이한 것은 F부터 A급까지 괴수 도살자란 업적이 전부 사라지고, 괴수 학살자란 S급 업적 하나만 남았다.
그리고 독 수련자 업적 역시 S등급으로 올랐다.
태준이 자신의 손가락에 낀 반지를 보았다.
[고대 군주의 인장(신급) - 정복왕 라인하르트의 인장(믿음의 반지라 불린다.)
전쟁의 여신 아테네의 축복이 깃들었다.
젊은 라인하르트는 셋째 왕자였지만, 형들을 물리치고 왕이 되었다. 그리고 주변 왕국을 점령했고, 대륙을 평정해 대제국을 건설했다.
그에게는 그를 따르는 수많은 기사와 병사들이 있었고, 부하들은 모두 왕에게 충성했다.
그들은 왕의 인장을 보며, 충성심을 다짐했고, 전장에서 절대 물러서지 않았다고 전해졌다.
여신의 축복 효과 - 왕을 따르는 자들의 주요 능력 15% 증가. 단 시야에서 사라지면 효과는 사라진다.
획득 시 바로 각인되며, 양도할 수 없다.]
이 반지를 차고만 있다면, 자신을 진심으로 따르는 자들은 능력이 올라간다. 물론 믿는 자가 없다면, 아무 소용없는 반지였다.
한마디로 10명이든 100명, 1,000명이든 누구든 태준을 믿고 따른다면 본래의 능력보다 15%나 강해진다는 것이었다.
그랬기에 지금 태준과 함께 있는 팀원들은 모두 자신감이 넘쳤다.
***
패애앵!
화살이 날아가 다가오는 드레이크의 날개에 박혔다.
그리고 또 다른 화살이 날아가 휘청이는 놈의 목에 박혔다.
“징글징글하네.”
화살을 쏜 수진이와 김서라가 어깨와 팔을 풀고 있었다.
그들이 브라키페르마의 구덩이를 나오자, 괴수들이 사방에서 달려들었다.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었다.
한마디로 지옥의 아수라가 펼쳐져 있었다.
과거에 용산 게이트에서도 게이트를 클리어하고 더 많은 괴수가 튀어나온 것과 같았다.
천적이 사라지자, 그 밑에 괴수들이 활개를 치는 것이다.
하늘엔 드레이크(A)나 블랙 드라칸(S), 화이트 드라칸(S) 같은 괴수가 날아다녔고, 땅에는 B급 이상의 온갖 괴수들이 몰려나왔다.
“저기다!”
태준이 소리쳤다.
어마어마한 불꽃이 피어오른 곳이었다.
“수호야 저쪽으로 방향을 틀어.”
카올렌이 방향을 틀었다.
“난 정말 김미영과 하세신 길드팀이 SS급 괴수를 죽였다는 걸, 다른 헌터들이 믿을진 몰랐어.”
최한별이 말했다.
“괴수는 죽었고, 8명인 우리 팀이 죽였을 가능성보단 90명이 넘는 하세신 길드가 죽였다고 믿는 것이 훨씬 이성적인 판단이니까.”
“그보다 저들의 믿음이 종이처럼 가볍고, 유리처럼 깨지기 쉽네.”
한별이의 말처럼 저들은 지금 서로 필요하기 때문에 뭉쳐있는 것이지, 만약 누가 신급 아이템을 차지하고 힘이 강해진다면, 더는 연합이 필요 없을 것이다.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서로 괴수를 잡기 위해 치고받고 싸우다가 누구에게 신급 아이템이 흘러 들어갔는지 모르는 혼란 상태에서 자신이 막타를 치는 것이었다.
다들 그것을 노렸다.
그렇게 되면 서로 의심은 할수 있지만, 확신은 할 수 없었기에 아슬아슬한 동맹 상태는 계속 유지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물 건너갔고, 헌터 협회에게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펼쳐졌다.
헌터들의 개인 인벤토리를 확인할 수 있는 아이템이 있다면, 그 또한 신급 아이템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아이템은 없었고, 본인이 아니면 인벤토리 내에 물건을 절대 확인하지 못했다.
물론 인벤토리가 아닌 손에 차고 있을 경우 반지를 빼앗아 들면 그 정보를 확인할 수 있었다.
다만 각인된 경우 다른 사람에게는 전혀 쓸모없는 아이템이 된다.
“저기 불꽃을 따라가!”
“김미영인가?”
“맞아.”
태준이 따라가고 있는 건, 숲에서 가끔 치솟아 오르는 거대한 불꽃이었다.
저런 불꽃을 낼 수 있는 자는 김미영밖에 없었다.
‘네가 창수를 산채로 불태워 죽이려 했겠다.’
사실 지금은 복수의 의미보다는 도경수의 세력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한 계책이었다.
저들이 서로 반목하면 할수록 자신에게는 이득이었고, 다음에 연희를 구하러 SS급 게이트에 들어갈 때 조금이라도 유리해진다.
하지만 김미영을 떠올리자, 왠지 모르게 창수의 없어진 두 다리와 팔, 그리고 온몸의 화상 자국이 떠올랐다.
그 고통이 얼마나 심했을까...
‘너는 반드시 내가 잡는다!’
정기용이 입을 열었다.
“대장, 추격자가 너무 많은데.”
“그러게 너무 정신없다.”
거대한 나무 사이에 괴수들도 사방에서 달려들고 있었고, 헌터 협회의 헌터들과 국가 헌터원의 별동대도 김미영을 잡기 위해 몰려들었기에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그러자 애꿎은 하세신 길드원들만 쓰러져갔다.
태준이 입술을 깨물었다.
“아무래도 난 이곳에서 내려야겠어. 다른 사람들은 게이트 입구에서 괴수를 잡으며 기다려.”
“무슨 소리야. 같이 움직여야지.”
“저길 봐. 누가 적인지 아군인지 전혀 분간이 안 돼. 우리끼리 서로를 지켜줄 수가 없잖아.”
태준팀의 강점은 서로를 지켜주는 끈끈한 유대감이었다.
하지만 지금 추격전은 너무 빠르고,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며, 적과 아군의 구분이 쉽지 않았다.
하늘로 이동한다면, 한나절이면 게이트 입구에 도달했다.
하지만 땅으로 이동하다간 하루 이상, 어쩌면 더 거릴지도 모를 정도로 아래쪽은 아비규환이었다.
정기용이 단호하게 말했다.
“대장을 놔두고 가는 건 한 번이면 족해. 나도 함께 내려가겠어.”
“맞아. 아래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상할 수 없잖아.”
윤상희도 따로 행동하는 건, 반대했다.
“좋아. 그럼 이렇게 하지. 내가 아래서 내려가서 김미영과 하세신 길드원들을 추격하면서 숫자를 줄일게. 다른 사람들은 위에서 카올렌을 타고 따라와서 김미영이 가는 방향을 알려주고, 내가 위급할 땐 도와주는 거야. 어때?”
“음, 난 좋은 거 같아. 팀원들이 뿔뿔이 흩어질 염려도 없고, 우리가 위에서 엄호해 줄 수도 있으니까.”
이수호의 말이었다.
그제야 정기용도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리고, 김미영이 어디로 가는지 확인해서 내게 알려줘!”
“좋아! 내가 확인해서 활을 쏴줄게.”
한수진이 말했다.
“태준 팀장, 조심해!”
최한별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걱정하지 마. SS급 괴수를 잡은 나야.”
태준이 자신감있는 웃음을 지었다.
“그럼 나중에 봐.”
그리고 카올렌의 등에서 뛰어내렸다.
“헉!”
“뭐야? 태준씨, 하늘을 나는 스킬이 있었어?”
“그럴 리가 없는데.”
그들은 엄청난 속도로 땅으로 떨어지는 태준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헛, 말볼!”
말볼이 태준의 뒤를 따라 내려가는 것이 보였다.
“어떻게 하지?”
태준이 말볼을 발견했다.
가까이 다가가 말볼을 한 손으로 안고, 인벤토리에서 갈고리 가방을 꺼내 등에 멨다.
그리고 거대한 나무를 향해 갈고리를 던져 속도를 줄이곤 땅으로 뛰어내렸다.
도살자와 사냥개가 치열한 추격장 한가운데 내려앉았다.
“위에! 일곱 시 방향!”
화이트 드라칸 한 무리가 카올렌을 발견하고 급강하하고 있었다.
“위는 우리가 맡을게. 다른 사람들은 태준 오빠를 살펴!”
두 궁수들이 공중을 향해 화살을 쏘기 시작했고, 최한별이 얼음의 화살을 날렸다.
하늘도 안전지대는 아니었다.
아래에서 이동중인 헌터들 중에서도 하늘을 나는 그리폰이나 독수리, 와이번을 소환하는 헌터들도 있었다. 하지만 공중에서 S급 괴수와 홀로 싸우는 것은 결코 좋은 방법이 아니었다.
태준은 인벤토리에서 괴수 고기를 꺼냈다.
B급 괴수 마카이로, 거대 검치호랑이의 고기였다.
이놈은 육상에서 엄청난 속도로 달릴 수 있었고, 탄력이 좋아 나무를 타고, 자신의 몸보다 몇 배나 높은 절벽도 단숨에 타고 오를 수 있는 놈이었다.
“말볼, 바짝 따라와!”
태준이 먼저 달렸다.
다리가 짧은 말볼이었지만, 이놈도 이미 보통 괴수는 아니었다.
“게르르!”
말볼이 커다란 나무를 향해 으르렁댔다.
태준은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백정의 칼을 나무를 향해 휘둘렀다.
“절야(折也)!”
파악!
“크헉!”
신음이 크진 않았다.
거대한 나무에 매달린 암살 헌터가 가슴을 움켜잡으며 앞으로 꼬꾸라졌다.
말볼이 먼저 알아챘지만, 태준 역시 지금 감각은 괴수와 비슷했기에 놈의 매복을 알고 있었다.
이자는 하세신 길드의 헌터로 추격자들을 제거하기 위해 은신해 있었던 것이고, 벌써 2명의 추격자를 저세상으로 보냈다.
“저쪽이다! 쫓아라!”
어디서 나타났는지 드래곤 길드원 둘이 하세신 길드원을 바짝 추격했다.
그런데 이철용이 나무 뒤에서 나타나 추격하는 헌터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중력장!”
그의 손에서 무형의 기운이 뻗어 나갔다.
“크악!”
중력장에 등을 맞은 헌터는 앞으로 꼬꾸라졌고, 옆에서 함께 달리던 헌터는 몸을 돌렸다.
“죽어! 이 새끼야!”
헌터의 손에서 바람의 화살이 날아갔다.
파파파파팍!
한 번에 수십 개의 실프가 바람의 화살이 되어 날아갔다.
그는 S급 정령술사였다.
하지만 맞지 않으면 그만이었다.
이철용이 자신의 몸 앞쪽으로 중력장을 펼치자, 화살들이 방향을 바꿔 사방으로 흩어졌다.
공격해! 실피드!
바람의 상위 정령 다섯 마리가 한꺼번에 생성되더니, 이철용을 향해 매섭게 날아갔다.
그때였다.
“할야(割也)!”
서걱!
나무 옆에서 튀어나온 태준이 백정의 칼을 무심히 휘두르고 지나갔다.
그리고 그 뒤로 사냥개 한 마리가 역시 헌터를 쳐다보지도 않고 스쳐지나갔다.
“뭐지? 커, 커억!”
정령술사는 자신의 목을 잡고 있었다.
그저 목이 따끔거렸을 뿐이었다.
하지만 새어 나오는 피를 도저히 막을 길이 없었다.
헌터는 무릎을 꿇고 앞으로 쓰러졌다.
‘허! 나태준, 저 새끼 언제 저렇게 실력이 늘었지?’
이철용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기껏해야 S급 헌터일 텐데...
방금 S급 정령술사의 목을 그냥 그어버렸다.
이 게이트에서 등급이 오른 헌터였겠지만, 그래도 S급은 S급.
S급 헌터를 스치며 일격에 죽일 수 있다는 건, 평범한 S급 헌터의 실력이 아니었다.
“저기 이철용이 있다! 잡아!”
이지은과 타룬 메이가 신화 길드 헌터들을 이끌고 뒤를 쫓아오다가 이철용을 발견한 것이다.
“이대로 잡혀줄 순 없지.”
이철용이 중력장을 밟고 올라가 거대한 나무 사이로 사라졌다.
난전도 이런 난전이 없었다.
“제길, 이건 드래곤 길드원이야.”
“아무래도 이철용이 김미영이 아니라 그냥 우리 헌터 협회 헌터들을 노리는 것 같습니다.”
“개새끼!”
이지은과 신화 길드원들은 늦게나마 이철용의 의도를 눈치챘다.
“그때 놈들을 죽였어야 했는데.”
“아니야. 이것 봐.”
타룬 메이가 죽은 드래곤 길드원의 상처를 보고 있었다.
“이건 날카로운 칼로 일격에 당한 상처야. 이철용이 아니라 다른 자에게 당한 거야.”
“뭐, S급 정령술사를 단칼에?”
“그것도 뼈는 하나도 다치지 않았고, 기도와 혈관만 잘라냈어.”
“누구지? 헥토르인가?”
“헥토르 손에 달린 검이었다면, 뼈와 함께 목을 전부 다 날려버렸겠지.”
“그럼 그 정도의 실력을 갖춘 자가, 누구지?”
“나태준 밖에 없어.”
타룬 메이가 확신했다.
“그놈이 그런 실력이 될까?”
“분명해, 그놈도 등급이 올랐을 거야.”
타룬 메이는 태준을 높게 평가했지만, 이지은은 그렇지 않았다.
“나태준이든, 이철용이든 보이는 대로 죽이면 된다. 어서 출발해!”
태준의 사냥은 그게 시작이었다.
괴수들이 몰려와도 피하거나 모두 무시하고 달렸다.
그 덕분에 그의 뒤로 괴수들이 추격했다.
아니 일부러 그런 것이다.
괴수를 몰아서 하세신 길드팀의 후미를 쳤다.
“크악!”
헌터 하나가 갈고리에 걸려 뒤로 끌려갔다.
하지만 동료들은 그를 돕지 않았다.
무조건 앞으로 달려야 살 수 있었다.
“괴수다!”
오라흐(A)가 뒤에서 불을 뿜었다.
오라흐 한 무리가 뒤에서 공격하고, 태준은 더 앞으로 달려가 중간에서 갈고리로 한 명씩 끌어와 처리했다.
하세신 길드원들은 암살자들이 많았음에도 어떻게 손쓸 도리가 없었다.
게다가 자신의 우군이었던 신화 길드원들과 드래곤 길드원들까지 공격했으니, 참담한 결과를 맞이했다.
어서 이 사실을 게이트 밖에 있는 도경수에게 알려야 했다.
김미영과 헌터들이 한참을 달려 숲을 벗어났다.
그러나 그곳엔 나태준이 기다리고 있었다.
“큭, 죽일 놈! 거짓말을 하다니!”
김미영이 두 손에 가득 불꽃을 들고 있었다.
그때 나태준은 고기를 씹으며 대답했다.
“난 거짓말을 한 적이 없는데? 내가 괴수를 죽였다고 해도 아무도 믿지 않는 걸 어쩌란 말이지?”
“뭐? 그럼 네놈이 정말 그 괴수를 죽였단 말이냐.”
“거봐, 너도 믿지 않잖아.”
김미영이 뒤쪽에 있던 헌터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모두 흩어져, 게이트를 향해 달린다!”
“넵!”
이건 최후의 명령이었다.
한 명이라도 살아 나가 이 일을 길드장에게 알려야 했다.
헌터들이 사방으로 흩어졌고, 자신은 태준과 거리를 좁혔다.
칼을 든 자와 거리를 좁히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거리를 30미터 이내로 좁혔다.
그리곤 나태준을 향해 손을 뻗었다.
“죽어! 업화의 불꽃!”
화르르르르! 파파파팟!
시뻘건 불의 장벽이 태준을 향해 쏘아졌다.
피할 곳도, 달아날 곳도 없었다.
이대로 그녀 앞에 모든 것을 태울 것이다.
그런데 태준이 갑자기 시야에서 사라졌다.
‘어? 어디로 갔지?’
이곳은 달아날 곳이 없었다.
태준과의 거리는 겨우 30여 미터였고, 주변에 은신하거나 몸을 피할 장소는 애초부터 없었다.
그랬기에 칼을 든 전사를 상대함에도 김미영은 자신감이 넘쳤있었다.
“저기다! 저기 김미영이 있다!”
“제길!”
뒤에서 타룬 메이와 신화 길드의 헌터들이 모습을 보였다.
김미영은 입술을 깨물고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순간 자신의 앞쪽 땅속에서 뭔가 반짝이는 것이 튀어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