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2
112. 암살자 도경수(2).
팀원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최한별이 태준의 말이 이해되지 않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들 하세신 길드의 헌터들을 죽이려고 혈안이잖아. 그런데 우리는 흡수하자고?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면 모를까, 좋은 생각은 아닌 거 같은데.”
웬만하면 태준의 의견에 반대하지 않던 한별이 이번엔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나도 한별이랑 같은 생각이야. 우리 집이나 길드 본부도 감시당하고 있을 텐데, 헌터들을 숨길 때도 없어. 괜히 다른 놈들에게 걸려서 우리만 공공의 적이 될걸.”
윤상희 역시 고개를 흔들었다.
태준이 입을 열었다.
“지하 헌터 시장에 숨기면 돼. 거기라면 헌터 협회나 국가 헌터원의 힘이 미치지 않으니, 그곳으로 하세신 길드원들을 옮기기만 하면 될 거야. 그들이 숨을 장소는 내가 최강해 성주와 이야기할게.”
최한별이 말했다.
“그러니까 옆방에 기절한 놈을 이용해 하세신 길드원들을 피신시켜 그들을 흡수하자는 말인 거 같은데, 하지만 도경수가 곧 올 거야. 저들은 도경수 말을 듣지, 우리 말은 듣지 않을걸.”
“맞아. 우리가 아무리 목숨을 살려줘도 도경수가 돌아오면 그에게 갈 거야.”
“만약, 도경수가 사라진다면?”
“뭐?”
팀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태준을 향했다.
“설마, 도경수를?”
“저들은 도경수를 잡기 위한 미끼가 될 거야.”
“미끼?”
“도경수가 이대로 무너지진 않을 거야. 분명 한국으로 돌아오면 반격을 하겠지. 다들 알겠지만, 도경수는 암살자 클래스 중에서 최고야. 그놈이 마음먹고 숨는다면, 그를 찾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
“아하, 그래서 하세신 길드원들을 우리가 데리고 있으면, 놈이 알아서 찾아올 거다 그 말이지?”
정기용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최한별은 여전히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도경수와 싸우기엔 너무 이르지 않아? 다들 알다시피 그는 세계 헌터 순위 3위에 올라있는 놈이야.”
“그러게 우리가 전부 붙어도 이길 수 없을지 몰라.”
최한별뿐만 아니라 다른 팀원들도 사실 그것이 걱정됐다.
하세신 길드와 엮기면 언젠가 도경수와 부딪혀야 하고, 그땐 대결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너무 걱정하지 마, 아직 내 힘을 다 보인 건 아니니까.”
“뭐라고?”
“그리고 그놈에게는 묻고 싶은 것도 있고, 어차피 언젠가 결판을 내야 할 놈이잖아. 이제 용산에 게이트가 열리기까지 열마 남지 않았어. 그 전에 하나라도 제거해야 연희를 구할 가능성이 커져.”
“그래도 만만치 않을 텐데...”
태준의 머릿속엔 연희를 구해야 한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그리고 도경수가 사라진다면, 하세신 길드원들은 의지할 곳이 사라져. 그렇다고 영원히 지하 헌터 시장에서 살 수도 없을 테니까, 자신들의 목숨을 구해준 우리에게 오지 않겠어?”
“헌터 협회에서 알면 가만있지 않을 텐데.”
“그들은 다른 일로 바쁠 거야.”
“무슨 일?”
신귀족들의 생리, 태준이 그동안 동창들을 겪으며 깨달은 것이 있었었다.
이번 S급 게이트 공략으로 헌터 협회의 고레벨 헌터가 많이 줄었다.
국가 헌터원의 헌터들도 줄었지만, 그 피해는 헌터 협회가 훨씬 컸다. 거기에 헌터 협회의 3대 축이었던 하세신 길드가 사라지면, 더 힘이 줄 것이고 이철용과 국가 헌터원은 이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
쾅! 콰앙!
시뻘건 화염이 뿜어지고, 시커먼 연기가 치솟았다.
“으아악!”
“꺅!”
엄청난 폭발과 함께 사람들의 비명이 들렸다.
이곳은 용산역 앞에 있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스타박스 매장.
근처에 헌터 협회와 수십 개의 길드 사무실이 밀집한 지역으로 헌터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커피숍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곳 일대가 불바다가 되었다.
“저기 안에 사람이 있다!”
“안돼! 지금 안으로 들어가면 다 죽어!”
“진입로 쪽에 물을 더 뿌려!”
소방대원들이 열심히 물을 뿌리고 진화를 하고 있었지만, 이 불꽃은 마법의 불꽃. 쉬 사그라지지 않았다.
구조대원들은 뜨거운 열기 때문에 안에서 사람의 비명이 들렸지만,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발만 동동 굴렀다.
그때였다.
“나와라! 루살카(Rusalka)!”
최상급 물의 정령 루살카가 아름다운 형체를 드러냈다.
높이 5미터에 아름다운 여체의 형상.
엘프가 아름답다고는 하나 루살카를 본 사람들은 단연 최상급 정령이자, 물의 여신을 최고라고 생각했다.
“루살카, 불을 꺼라!”
국가 헌터원 국장 최규환이 소환한 루살카가 거대한 불길 속으로 들어가자, 주변의 불길이 단숨에 사그라들었다.
“소방대원들은 루살카에게 물을 쏴라!”
“네!”
십여 대의 소방차와 소화전에서 쏟아진 물이 물의 정령에게 쏘아지자, 정령의 힘은 더욱 강해졌다.
그제야 거대한 불길이 잡혔다.
“아직 놈이 주변에 있을지 모른다. 샅샅이 뒤져, 놈을 찾아라!”
“예!”
국가 헌터원의 헌터들이 테러를 저지른 범인을 찾기 위해 흩어졌다.
“벌써 일곱 번째입니다.”
“제길, 누가 그걸 몰라?”
강민수 서기관이 뻘쭘한 표정을 지었다.
“피해 상황을 파악하는 데로 보고서 올려.”
“네!”
어젯밤에는 세계 최고의 보안을 자랑하는 헌터 협회 건물 지하 주차장에서 암살 사건이 벌어졌다.
일곱이나 되는 헌터가 죽었고, S급 헌터도 두 명이나 포함되어 있었다.
희생자들은 갑자기 걷다가 목을 움켜잡고 쓰러지거나, 차 안에서 저항 한번 못해보고 독살당했다.
하지만 CCTV엔 아무것도 찍히지 않았고, 범인의 윤곽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다들 누가 범인인지는 잘 알고 있었다.
“도경수, 이 새끼를 어떻게 잡는다...”
국가 헌터원의 헌터들 역시 도경수의 공격대상이었다.
길드 이인자였던 김미영을 이철용이 죽였으니, 그 원한이 헌터 협회의 최민지나 김상국에 비해 낮지 않을 것이다.
며칠 전에는 국회의원이 탄 차량이 올림픽대로에서 칼에 난자당해 세 사람이 죽었고, TV 출연 중이던 S급 헌터가 방송 중에 목이 잘리는 끔찍한 모습이 생중계되기도 했다.
이렇듯 도경수의 보복은 게이트처럼 사회불안을 야기했다.
***
거대한 화이트 드래곤이 헌터 협회 건물에 내려앉았다.
“그 새끼가 어디 숨었는지, 아직도 모른단 말이야?”
백색의 마녀 최민지의 목소리가 커졌다.
김상국은 의자에 앉아 곰곰이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지금 내 말이 안 들리는 거야?”
“좀 조용히 해봐. 생각 중이잖아.”
“뭐? 건방지게!”
최민지가 일어나자, 김상국의 부하들이 일제히 그 앞을 막아섰다.
최민지의 뒤에는 헥토르 한 사람밖에 없었다.
“김상국, 너무 오바하는 거 아냐?”
“아니, 도경수가 언제 내 목을 노리고 올지도 모르는데, 단단히 대비는 해야지.”
“그러게 그 새끼는 왜 건드려서는.”
최민지는 김상국 탓을 하고 있었다.
“말은 똑바로 해야지. 저기 있는 헥토르도 신급 아이템을 가져가기 위해 하세신 길드를 공격했어.”
최민지도 할 말은 없었다.
“그래서 놈이 우리 앞에 나타나기 전까지 대책은 없는 거야?”
“나타나도 문제야. 정정당당하게 싸울 놈이 아니잖아. 불리하면 달아날 텐데. 쉽게 잡히겠어?”
일이 갑자기 어긋나서 그렇지, 도경수는 상대하기 가장 까다로운 타입이었기에 맨 마지막에 도모하고 싶은 놈이었다.
“하세신 길드원들을 족치면 나타나지 않을까?”
“기습 작전 후에 나머진 놈들은 감쪽같이 사라졌어.”
“사라져?”
“어떤 놈들이 빼돌린 거 같아.”
“이철용, 그 새끼겠군.”
최민지가 이빨을 갈았다.
“이참에 그놈들도 갈아버릴까.”
“넌 좀, 신중하게 생각해. 이 상황에 그놈들하고 싸우게 되면 어떤 피해가 갈지 생각해봤어?”
“어떤 피해가 가는데?”
“도심지에서 전쟁이 벌어지는 거야. 네 드래곤들의 브레스에 건물은 박살 날 거고, 헌터들의 싸움에 수많은 사람이 죽을 거라고.”
“뭐, 어때? 건물은 다시 지으면 되고, 사람들은 어차피 넘쳐 나잖아.”
“어?”
김상국은 어이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우리가 사람들을 죽이면 대한민국 국민이 우리를 따를 거라 생각해? 모르긴 몰라도 엄청난 폭동이 일어날 거야.”
“말을 안 들으면 힘으로 누르면 그만이야. 우리가 괴수들로부터 목숨을 지켜주는데, 벌레만도 못한 것들이 감히 대들어?”
최민지의 표정이 진지하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 순간 김상국은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그녀가 헌터 협회까지 장악하면 정말 강력한 폭군이 나올 것이다.
김상국은 자신이 헌터 협회를 장악하면, 국민의 눈을 속이는 정치를 통해 장기집권할 생각이었지, 최민지처럼 무식하게 힘으로 누를 생각은 하지 않았다.
“새로운 게이트가 발생하면, 헌터 협회의 헌터들을 내보내지 말아버려. 그럼 국가 헌터원의 무능함과 우리 헌터들의 귀중함을 알겠지.”
“일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 이철용 그놈이 지난 몇 년간 꾸준히 힘을 키웠어. 국가 헌터원과 전면전을 벌이면 우리 피해도 만만치 않아.”
국가 헌터원이 대한민국 군부대를 장악했기에 수뇌부를 전부 죽이지 않는 한 지속적인 전투는 불가피했다.
“그럼 어떻게 하자는 거야?”
“조금 있으며 나태준이 올 거야.”
“그 새끼는 왜?”
“그놈이 도경수를 잡을 방법을 가지고 있다고 했어.”
“그래?”
최민지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나태준, 그놈이 설치는 것을 언제까지 지켜봐야 하는 거지? 이번에 S등급 게이트가 발생하는 것도 혼자만 알고 있었잖아.”
“태준이를 처리하는 건. 그놈이 게이트를 위치를 어떻게 알아내는지 확인하기 전까진 안돼.”
김상국이 확실하게 선을 그었다.
띠!
- 나태준 헌터가 도착했습니다.
“혼자 왔나?”
- 네.
“올려보내.”
김상국이 어이없는 웃음을 지었다.
“이 새낀, 간도 크네. 도경수가 자신의 목숨을 노릴지도 모르는데 혼자 다니다니.”
김미영을 공격해 가장 먼저 불구로 만든 것이 태준이었다.
그도 도경수의 타겟이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며 나태준이 들어왔다.
“어서 와.”
김상국이 웃는 얼굴로 태준을 맞이했다.
하지만 최민지는 불만이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도경수를 잡을 방법이 있다고?”
그녀는 태준이 오자마자, 본론부터 꺼냈다.
“급하네. 그만큼 놈이 두려운 건가?”
“내가 그딴 놈을 두려워할 것 같아? 쥐새끼처럼 숨어서 귀찮은 것뿐이야.”
김상국이 나섰다.
“그러지 말고 일단 앉지.”
태준이 의자에 앉았다.
그러자 이번엔 김상국이 말했다.
“민지 말처럼 놈이 아주 성가셔, 특히나 헌터나 일반인을 구분하지 않고 테러를 하는 통에 헌터들의 인식까지 나빠지고 있어.”
며칠 전에 스타박스 커피숍에서 폭탄 테러로 죽은 일반인이 100여 명에 달했다.
지나가던 시민들과 스타박스 건물 위 사무실에 근무하던 사람들까지 질식하면서 헌터들보다 더 많은 일반인이 죽었다.
그의 테러와 보복은 점점 도를 넘어서고 있었고, 공공장소와 군부대까지 무차별적인 테러를 감행했다.
“하루빨리 처리해야. 일반인의 피해를 막을 수 있어.”
태준이 속으로 살짝 웃었다.
‘너희들의 피해도 말이지?’
사실 이대로 놔두면 헌터 협회나 국가 헌터원의 피해는 계속 늘 것이다.
이것이 세계 3위의 헌터가 복수에 눈이 멀 때 생기는 현상이었다.
“어떤 방법으로 도경수를 잡겠다는 거야?”
“놈을 유인할 방법이 있어.”
“유인? 어떻게?”
“놈의 하세신 길드원들을 내가 빼돌렸어.”
“뭐?”
김상국과 최민지가 동시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국가 헌터원 쪽에서 벌인 짓이라 생각했는데, 눈앞에 태준이 한 짓이었다.
“어이가 없군. 이 혼란을 틈타 세력을 넓히려 하다니.”
“아니, 그들은 도경수를 유인하는 미끼일 뿐이야.”
“뭐? 그게 무슨 뚱단지...”
“잠깐.”
김상국이 최민지의 말을 막았다.
“계속해봐.”
“너희 방식은 너무 무식하고 비효율적이야. 하세신 길드원들을 전부 죽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야. 그럼 도경수는 악에 받친 암살자가 되겠지. 하지만 하세신 길드원들이 남아 있다면?”
태준의 말에 김상국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재기를 노릴 거다? 그 말인가?”
“그렇지 않겠어? 세력이 있으니까.”
“너는 처음부터 그것을 노렸단 말이야?”
태준이 웃었다.
“그래. 일단 놈의 부하 하나를 풀어줄 거야. 그럼 도경수는 곧 나를 찾아올 거고, 그때 놈을 잡을 생각이지.”
“장소만 알려줘, 놈은 내가 처리하지.”
최민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 그놈은 내가 잡을 거야?”
최민지가 태준을 노려봤다.
“웃기는군. 도경수를 잡겠다고? 네가?”
“왜? 내 실력을 못 믿는 건가?”
김상국이 끼어들었다.
“네가 쓰러트린 김미영과 도경수는 완전히 달라. 그놈이 10배는 더 강할걸.”
“그러겠지.”
하지만 왠지 태준은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뭔가 다른 방법이 있는 건가?”
“김득구.”
“김득구?”
“그 녀석과 함께 도경수를 잡을 거야.”
“네가 김득구를 설득했단 말이야?”
김상국이 최민지를 쳐다보았다.
태준이 홀로 도경수를 상대하겠다면 의심했겠지만, 헌터 순위 2위의 김득구가 끼었다면 그건 다른 문제였다.
다만 김득구는 종잡을 수 없는 사내로. 어쩌면 연희보다 더 끌어들이기 어려운 자였다.
“어떻게 김득구를 끌어들인 거지?”
“그건, 너희들이 알 봐 없고. 도경수를 처리하면 내게 뭘 해줄 거지?”
“뭐?”
나태준은 협상에 들어갔다.
***
도경수가 지하 헌터 시장을 찾았다.
“여기가 분명한 거지?”
“틀림없습니다.”
지하 헌터 시장 외곽에 있는 건물.
7층짜리 큰 건물이었지만, 너무나 조용했다.
도경수는 순식간에 7층 건물 전체를 스캔했다.
그런데 그의 특수 스킬인 아이템 찾기에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어째서 아무도 없는 거지?”
“그럴 리가요. 분명 어제까진 여기에 길드원들이 있었습니다.”
도경수가 한쪽 눈에 차고 있는 스카우터는 창수가 만든 장비로 아이템의 마력을 찾아낼 수 있는 레전더리 룬이 박혀 있었다.
한마디로 장비에 마력이 조금이라도 깃들어 있다면, 그의 스카우터에 위치가 표시가 되는 것이다.
갑자기 도경수가 뒤쪽으로 몸을 돌렸다.
“나태준, 오랜만이군.”
뒤에서 나타난 태준이 웃으며 말했다.
“여긴 무슨 일이지?”
“내 길드원들을 보호하고 있다고 들었다. 그건 감사하게 생각하지, 이제 내가 왔으니 모두 돌려줘야겠어.”
“미안하지만, 그들은 이제 너와 인연을 끊을 거야.”
“그게 무슨 말이지?”
“넌 여기서 죽을 테니까.”
태준이 백정의 칼과 갈고리를 들었다.
도경수가 어이없는 웃음을 흘리더니, 인벤토리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그런데 그의 손엔 아무것도 없었다.
‘저것이군. 보이지 않는 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