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4
114. 귀족(1).
“대장, 축하해!”
“역시 태준씨가 이길 줄 알았어.”
도경수의 목이 잘리자마자, 팀원들이 달려왔다.
윤상희가 물었다.
“어디 다친 데는 없어?”
“없는데요.”
태준은 피 한방울 흘리지 않았다.
“이제 우리 대장이 세계 헌터 순위 3위에 오른 건가?”
“당연하지, 3위를 이겼으니 그 자리는 당연히 대장 차지지.”
수호와 수진이가 기뻐하고 있을 때, 한쪽에 있는 신정필은 아연실색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도무지 이 결과를 믿을 수 없었다.
도경수의 실력을 제대로 본 사람이 없을 정도로 게이트에 들어가서 괴수를 잡을 때도 늘 여유가 넘치고, 그 실력의 끝을 본 적이 없던 대장이었다.
나태준이 강한 것은 알았지만, 그렇다고 상처하나 조차 내지 못하고, 도경수가 죽을 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리고 또 한 사람, 이 대결이 이상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었다.
태준은 앉아서 도경수의 시체를 살폈다.
“대장은 도경수를 죽였는데, 좋지 않아?”
정기용의 물음에 태준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 사람의 시체였고, 머리가 깨끗하게 잘렸다.
그런데 찝찝한 이유는 뭘까?
최한별이 다가와 물었다.
“왜? 뭐가 이상해?”
“너무 쉬워서.”
“그거야 오빠가 강하니까 그렇지.”
“솔직히 나는 내 힘의 반도 쓰지 않았어.”
“뭐?”
태준의 말을 들은 팀원들의 표정이 궁금증으로 바뀌었다.
“분명 도경수의 얼굴이 맞지?”
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17년이나 지났지만, 도경수는 옛날 얼굴이 남아있었다.
무엇보다 그와 오랜 시간 함께 지냈던 신정필이 도경수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고 있었으니, 신분은 확실했다.
그럼에도 쉬 의심을 지울 수 없었다.
“상희씨, 팀원들과 신정필을 데리고, 하세신 길드원들이 있는 곳으로 가 있어요.”
“대장은 같이 안 가?”
“난 저들을 만나고 갈게.”
팀원들의 눈에도 국가 헌터원의 헌터들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그들은 도경수의 시신은 그대로 놔두고 반쯤 얼이 빠져있는 신정필을 데리고 이동했다.
***
최규환은 오자마자 도경수의 시체부터 살폈다.
“도경수가 맞네. 축하해! 이젠 나 같은 건 그냥 단칼에 죽이겠군.”
S급 정령 술사인 최규환은 어쩌면 SS등급의 다른 헌터들보다 까다로운 자였다.
정령 술사는 몬스터를 소환하는 소환 술사나 언데드를 소환하는 네크로맨서와 완전히 달랐다. 둘 다 실체가 있었고, 죽일 수 있었다.
하지만 정령은 그 실체가 귀신과도 같아 자신의 스킬들이 제대로 먹힐지 의문이었다. 물론 정령사를 처리하면 모든 것이 끝나지만.
“도경수의 클래스가 뭐지?”
“뭐? 그거야 당연히 암살자지.”
“확실해?”
“그럼 녀석을 몇 년을 봤는데.”
최규환의 말을 들었음에도 태준은 더욱 의심스러웠다.
자신도 괴수 백정이라는 세상 어디도 없는 클래스지만, 국가 헌터원이나 헌터 협회에 등록된 정보에는 전사 클래스로 되어 있었다.
그냥 본인이 선택하고 테스트를 받으면 클래스가 정해지고, 등급이 정해지는 시스템이었기에 도경수도 특수 클래스일 수도 있었다.
“이제 어쩔 거야?”
“뭘?”
“도경수를 죽였잖아. 그리고 하세신 길드원들을 네가 데리고 있는 것도 알아. 그러니 뭔가 행동하겠지? 대체 원하는 게 뭐야?”
“그걸 알고 싶어?”
“물론이야.”
“일단 도경수의 시신을 수습해줘. DNA 검사 같은 것도 할 수 있으면 해주고.”
“아쉽지만 헌터들의 DNA를 분석할 장비나 기술이 없어. 너도 알다시피 헌터들은 일반인과 전혀 다르거든. 일단 자리를 옮기지? 이철용도 곧 이리 올 거야.”
“좋아, 가지.”
태준과 최규환은 지하 헌터 시장 1층 중심가에 있는 술집으로 장소를 옮겼다.
때마침 이철용도 도착했다.
“말해도 되는 건가?”
이철용의 물음에 최규환이 대답했다.
“방음은 완벽해, 주변에 헌터들도 배치했고.”
이철용이 태준을 바라보았다.
“네가 도경수를 죽였다니 뜻밖인데. 그놈은 내가 죽이려 했는데 말이지.”
“전에 말한 것 같은데. 도경수와 최민지는 내가 처리한다고.”
“그땐 그냥 하는 말인 줄 알았지. A급 헌터가 하는 말을 다 믿을 순 없잖아.”
“그보다 날 왜 보자고 했지?”
태준의 물음에 이철용이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우리와 힘을 합치는 게 어때? 그래서 함께 최민지를 처리하자.”
이철용의 말에 태준은 희미하게 웃었다.
“그럴 능력이 된다고 생각해?”
“물론이야. 이번 게이트에서 드래곤 길드와 신화 길드의 피해가 상대적으로 컸어. 그리고 도경수까지 사라졌잖아. 거기에 하세신 길드를 흡수한 네가 우리와 힘을 합치면, 충분히 상대할 만해.”
“최민지는 누가 상대하고?”
“너와 내가 힘을 합치면, 가능해.”
태준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아니 힘들 거야. 최민지는 이제 SS급 헌터가 아니야. 이미 SSS등급으로 올라섰어. 너도 알고 있을 텐데.”
이철용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알아. 나도 이번에 SSS등급으로 올랐으니까.”
이철용은 마지막에 폭발적으로 밖으로 나가려는 괴수를 잡고 헌터 등급이 올랐다.
이제 SSS등급 헌터는 최민지, 김득구, 이철용까지 세 사람이 되었다.
“그러니 너와 내가 힘을 합치면, 최민지를 잡을 수 있어.”
“최민지의 새로운 스킬을 봤어?”
“스킬이라니?”
“최민지가 S급에서 SS급이 되면서 드래곤 한 마리를 더 소환할 수 있었지. 그럼 SS급에서 SSS급이 됐다면 드래곤이 늘거나 또 다른 강력한 소환수가 늘었을 거야. 그런데 이번 게이트에선 그 모습을 볼 수 없었어.”
이철용 역시 태준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었다.
“너 역시 SSS급이 되면서 강한 스킬이 생겼잖아.”
순간 이철용의 눈빛이 가늘어졌다.
“내가 중력 역전(重力 逆轉) 스킬을 쓰는 것을 봤군.”
“너무 신중하지 못했어. 다른 헌터들이 보고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스킬을 사용했지.”
이철용 역시 등급이 오르면서 새로운 스킬이 생겼다.
그것이 어떻게 활용될지는 사용해봐야 아는 것이다.
이철용은 SSS등급으로 오르는 순간 그것을 참지 못하고, 몰려드는 괴수들에게 단 두 번을 사용해봤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것을 태준이 봤다.
그랬다는 것은 최민지 역시 봤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었다.
“민지라면, 드래곤을 더 뽑겠지?”
“드래곤을 추가로 소환한다면 모르긴 몰라도 지금 있는 두 마리보다 더 강한 놈을 소환할 거야.”
“하지만 그런 드래곤이 있다는 것은 듣지 못했어.”
전설급 드래곤도 강함과 약함이 존재한다.
전설급 무기의 위력이 천차만별이고 전설급 샤먼의 위력 역시 다른 것처럼 소환된 드래곤의 위력은 소환자의 능력 외에 본체 자신의 위력이 전부 달랐다.
이수호의 카올렌은 최민지의 화이트 드래곤 기가테스나 블루 드래곤 볼테우스보다 약했다. 그리고 기가테스도 나중에 소환한 볼테우스보다 크기가 작고 약했다.
“최강해 성주에겐 우리가 모르는 아이템이 많아. 그것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보다 강한 것들이지, 소환수 역시 강하거나 특이한 것들도 많이 있을 거야. 그러니까 최소한 최민지의 새로운 소환수에 대해 알아내야 그녀와 싸울 수 있을 거야.”
“그럼, 그것만 알아내면 힘을 합치겠다는 거야?”
태준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솔직히 지금 저쪽과 싸우면 승산이 없어. 그리고 이기고 지는 것을 떠나 양쪽 다 엄청난 피해를 볼 거야.”
이철용 역시 그것을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헌터 협회의 힘이 지금 약해졌더라도 전면 대결을 벌이면, 국가 헌터원이 이길 가능성은 적었다.
그래도 지금 당장 싸우면 아주 조금이지만, 이길 가능성은 있었다.
하지만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그 격차는 더 벌어질 것이다. 최민지는 일본 헌터들을 정리했기에 머지않아 그쪽 헌터들까지 동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그녀의 독주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없어 보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도경수 세력이 줄어들자, 김상국은 이미 유럽과 중동 쪽에 있던 도경수 라인을 빠르게 포섭하고 있었다.
나태준은 한국에 있던 하세신 길드원들은 구할 수 있었지, 외국에 있는 헌터들까지 신경 쓸 순 없었다.
그것은 신화 길드 역시 시간이 지날수록 그 세력이 급속도로 커질 것이란 뜻이었다.
“그러니, 지금이 마지막 기회일지 몰라.”
이철용의 말을 들은 태준 역시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지금 싸워서 국가 헌터원이 궤멸하고, 헌터 협회가 큰 피해를 본다면, 다가오는 SS급 게이트를 막을 사람이 없었다.
자신은 두 세력의 승패엔 관심이 없었다.
단지 그곳에서 연희를 구하는 것이 유일한 목표였다.
“지금 그것이 문제가 아니야. 서울에 SS급 게이트가 생성될 거야.”
“뭐?”
태준은 결국 알고 있는 것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SS급이라니?”
“말 그대로야. SS급 게이트가 지금 용산을 중심으로 서울 상공에 생성되고 있어.”
듣고 있던 이철용이나 최규환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S등급 게이트가 생긴 것도 엄청난 충격적이었다.
그런데 SS등급이 그것도 서울에 생긴다는데, 믿을 수 없었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이 게이트 생성 정보와 위치를 넘겨주는 태준의 입에서 나온 것이기에,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크, 크기는?”
최규환이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
“예상 크기는 S급 게이트의 10배야.”
“뭐? 그럼 10킬로미터?”
“그것도 용산 때처럼 수직으로 세워진 게이트가 아니라 수평이야. 지름 10km짜리 게이트가 서울 상공을 덮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마, 말도 안 돼. 어떻게 그런 게이트가 생길 수가 있어? 그럼 서울이 아니라 대한민국, 이 세계가 끝장날 수 있다는 거네?”
“물론, 게이트를 클리어하지 못하거나 괴수를 막지 못하면 끝나는 거지.”
“확실해?”
“게이트 크기는 작아지거나 조금 더 커질 수도 있어, 확실한 건 내년 1월 1일에 생성된다는 거야.”
“제길, 몇 달 남지 않았네.”
태준도 믿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S급 게이트를 클리어하고 나오자, 기태가 SS급 게이트의 크기가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니 지금은 헌터 협회와 싸울 때가 아니야. 어떻게든 SS급 게이트를 클리어하고, 괴수를 막아야 해.”
“헌터 협회도 알아?”
“이제 말해줘야지.”
“그들이 믿을까?”
“믿을 거야. 자신들도 죽긴 싫으니...”
태준의 말을 들은 이철용이 눈을 감았다.
복잡해진 머릿속을 정리하는 것이었다.
그가 눈을 뜨며 물었다.
“이 SS급 게이트가 끝이야? 아니면 더 큰 게이트가 나올 수도 있는 거야?”
“그건 나도 몰라. 다만 이번 게이트를 클리어하면 더 큰 것이 나올지, 여기서 멈출지 알 수 있을 것 같아. 분명 한 건 이걸 막지 못하면 우리는 모두 죽을 거라는 거야.”
태준은 연희 이야기는 빼고 모두 사실대로 말했다.
이철용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게이트에 들어가도 문제인데. 그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이번 S급 게이트에서 헌터 협회는 이철용과 국가 헌터원 공략팀에 많이 당했다.
그랬으니, 다음 게이트에서는 반드시 보복하려 들 것이다.
“맞아. 그리고 내가 너희와 힘을 합친다고 해도 세력이 부족할 거야.”
현재 헌터 협회와 국가 헌터원의 힘은 10을 기준으로 볼 때 대략 5대 3 정도로 그 힘을 조금 줄이긴 했다. 거기에 태준이 힘을 합하면 5대 4 정도까지 따라붙을 수 있었다.
“세력이 더 필요해. SS급 게이트에 들어가기 전에 최소한 헌터 협회와 균형을 맞춰야 해.”
“하지만 누구를?”
“귀족들.”
“뭐?”
“그들의 힘을 끌어들이면 최소한 헌터 협회와 비슷한 수준이 될 거야. 그럼 게이트를 클리어할 때나, 클리어하고 나서 싸움이 벌어져도 대등하게 싸울 수 있지.”
이철용과 최규환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인지 알겠군. 일단 우리가 귀족들과 접촉해 보지. 하지만 너무 기대하진 마. 그 늙은이들은 워낙 고집불통이니까.”
“좋아. 일단 나도 아는 귀족이 있으니, 그들과 만나보지. 만약 그들이 합류한다면 나도 너희와 게이트 안에서 동맹을 생각해보지.”
어쩌면 SS급 게이트가 최후의 대결이 될 수도 있었다.
지금 헌터 협회와 국가 헌터원이 공존하기엔 너무 멀리 왔다.
태준은 그 길로 팀원들과 하세신 길드원들이 있는 지하 헌터 시장 2층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