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5
115. 귀족(2).
[지하 헌터 시장 2층]
태준이 피신시킨 하세신 길드원들을 모두 이곳에 있었다.
황금 카드를 가지고 있는 헌터들도 있었지만, 없는 헌터들도 한 달간은 이곳에 머물 수 있게 허락이 떨어졌다. 물론 태준이 모든 비용을 내는 것이었다.
영화에 나올 것 같은 엘프 저택 앞에 하세신 길드원들이 모두 모였다.
“그게 정말입니까? 도경수 길드장이 죽었다는 게?”
“나태준 헌터님, 사실을 말해주십시오.”
이미 신정필에게 어느 정도 이야기를 들은 하세신 길드원들 조금 격양된 목소리로 물었다.
“모두 주목하기 바란다. 두 번 말하지 않을 테니 잘 듣도록.”
태준은 하세신 길드원들에게 반말로 말하기 시작했다.
“하세신 길드는 공식적으로 해산됐다. 헌터 협회와 국가 헌터원에서도 더는 너희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도경수는 방금 나와 대결에서 죽었다.”
헌터들이 크게 쑥덕이기 시작했다.
도경수가 어떤 인물인가?
게이트 발생 초창기부터 강함으론 늘 한 손가락 안에 들었고, 헌터 협회의 3대 축으로 5년 넘게 버텨온 강자였다.
그런 사람이 방금 죽었다.
그것도 눈앞에 나태준에게...
“정당한 대결이었으며, 저기 있는 신정필이 증인이다.”
조금 격양된 반응을 보이는 헌터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길드원은 그저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자신들의 길드장이 죽었음에도 단 한 사람도 원수를 갚겠다고 태준에게 달려드는 짓은 하지 않았다. 자신들이 지금까지 살아있는 것은 나태준 때문이란 걸 다들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 겁니까?”
“여기에 계속 갇혀 살아야 합니까?”
도경수 길드장이 죽은 것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이제 중요한 것은 자신들이 어떻게 될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그것이 문제였다.
“우리 도살자 길드로 들어오고 싶은 사람만 나와 함께 지상으로 올라갈 것이고, 다른 사람들은 각자 제 갈 길을 가길 바란다.”
전에 거상 길드를 통합할 때와 같았다.
절대 강요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드래곤 길드와 신화 길드에서 내린 척살 명령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맞습니다. 이대로 밖으로 나가면 그들의 타겟이 될 겁니다.”
그들이 걱정하는 건 헌터 협회에서 자신들을 죽이지 않을까, 그것이 걱정이었다.
“나는 너희를 이곳으로 빼돌려 목숨을 살렸다. 그것만으로 너희에게 해줄 것은 다 했다고 생각한다. 앞으론 우리 길드원이 아닌 헌터들까지 뒤를 봐줄 생각은 없다. 나와 함께 가고 싶은 자만 따르고 나머진, 알아서 해.”
“제길, 도살자 길드에 들어가면, 척살령을 막아주는 겁니까?”
S급 헌터 신정필이 물었다.
“물론이다. 도살자 길드원을 건드리면 내가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도경수를 이긴 세계 헌터 순위 3위의 말이었다.
전과 달리 묵직한 느낌까지 들었다.
그리고 이미 최민지와 김상국과 거래를 통해 도경수를 자신이 처리할 경우 도살자 길드원으로 들어온 하세신 길드 출신 헌터들은 건들지 않겠다고 약속을 받아 놓은 상태였다.
“나와 함께 지상으로 갈 사람은 내일 이 시간에 포탈 앞으로 모이기 바란다.”
긴 이야기는 필요 없었다.
그리고 사실상 그들에게 선택지는 없었다.
지하 헌터 시장 1층에 머무는 것도 돈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곳은 게이트도 없었기에 돈을 벌 수 없었고, 지금까지 모은 돈이나 아이템을 팔아서 살아야 하는데, 이곳의 물가는 지상보다 몇 배나 비쌌으니,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다.
이야기를 끝낸 태준은 수호와 함께 곧바로 최강해 성주를 찾았다.
당분간 길드도 커질 것이고, SS급 게이트에 들어갈 준비도 해야 하고, 귀족들도 설득해야 하기에 할일이 너무 많았다.
“어서 오시오. 나태준 헌터.”
“저, 최민지가 성주께 소환룬을 사 갔습니까?”
“물론이오. 아주 특별한 것을 사 갔지.”
최강해는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그게 뭔지 알 수 있겠습니까?”
“미안하지만, 그건 불가하오.”
하지만 뭘 사 갔는지 알려주지는 않았다.
태준이 살짝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나도 소환룬이 필요해 왔습니다.”
“금액은 어느 정도를 생각하시오?”
“레전더리 아이템 다섯 개를 드리겠습니다. 그것에 맞는 소환룬을 주십시오.”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수호가 깜짝 놀랐다.
“형! 너무 비싸.”
“가만있어 봐. 최민지의 드래곤을 상대하려면, 보통 소환수로는 안돼.”
“그래도 레전더리 아이템 다섯 개는 좀...”
수호가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최강해가 피식 웃었다.
“결정한 것이오?”
“그렇습니다.”
“먼저 어떤 아이템인지 보여주시오.”
태준은 인벤토리에서 레전더리 아이템 다섯 개를 꺼냈다.
최강해는 아이템을 보더니 상당히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음. 잠시만 기다려보시오.”
최강해가 자신의 인벤토리를 뒤지고 있었다.
“이게 좋겠군.”
소환룬을 내밀었다.
“레드 드래곤 벨록스요. 레드 드래곤은 드래곤 중에서도 최고로 칩니다. 거기에...”
최강해가 벨록스에 대해 설명을 계속 이어갔다.
그러자, 태준은 수호를 쳐다보았다.
소환수에 대해서는 이수호가 훨씬 잘 알고 있었으니, 이것이 적당한 거래인지 확인하는 것이다.
수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탁월한 선택이오. 이놈은 성미가 고약하지만, 아주 강한놈이라 나도 한번 부려보고 싶었던 놈이지.”
그 순간 태준의 눈빛이 살짝 반짝였다.
방금 했던 말로 최강해 역시 헌터고, 소환 술사라는 것을 드러낸 것이었다.
“좋습니다. 그걸로 하지요.”
태준이 수호에게 벨록스 소환룬을 넘겼다.
[벨록스(레전더리급) - 레드 드래곤.
불의 화신이자, 힘의 화신, 모든 드래곤 중에서 가장 큰 체격을 가지고 있었고, 겉모습이 가장 무시무시했다.
입에서 엄청난 열기의 화염 브레스를 뿜어낸다.
단, 소환에 성공하기가 극히 어렵다.]
“그럼 다음에 다시 오겠습니다.”
“살펴가시오.”
태준은 밖으로 나오면서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거대한 SS급 게이트가 서울 상공에 생성 중인데, 최강해가 모르고 있나?
그가 부산에 S급 게이트 생성도 미리 알려줬기에 자신들이 준비하고 들어간 것이다.
이 SS급은 그것에 10배에 달하는 거대한 것인데도 아직 아무런 말을 하고 있지 않았다.
왜지?
언제까지 그것을 숨길 생각인가, 궁금했다.
일단은 자신이 헌터 협회에도 이 사실을 알리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게이트 안에서 치열하게 싸우더라도 그전에 헌터들끼리 피해는 막아야 했다.
그리고 서울을, 대한민국을 지켜야 뒤가 있는 것이다.
“형! 내가 이걸 소환할 수 있을까?”
“너라면 할 수 있을 거야.”
수호는 매우 걱정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최강해가 레드 드래곤 벨록스를 설명하면서 한 말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최민지가 처음에는 이 벨록스를 사려고 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벨록수는 워낙 성미가 고약해 다른 드래곤하고 함께 소환되면, 다른 놈을 공격하고 물어 죽일 수 있다는 이유로 다른 것을 선택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이놈을 소환하면 카올렌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소리였다.
그럼 이수호는 벨록스 소환에 성공해도 여전히 한 마리 밖에 소환수를 다루지 못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소환에 성공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말도 들었다.
잘못하면 레전더리급 아이템 다섯 개를 날릴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일단 해봐. 정 안되면 나중에 다른 놈으로 또 사면되지.”
자신에게 너무 과한 투자였다.
하지만 태준은 자신을 믿고 있었다.
지금 가지고 있는 장비들도 레전더리 급이었고, 카올렌 역시 태준이 사준 것이었다. 이제 레전더리 아이템 다섯 개 값인 벨록스까지 받자,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이놈을 꼭 소환해서 내가 최민지의 드래곤을 상대해야 해.’
이수호가 입술을 깨물며 다짐했다.
다음날.
지하 헌터 시장을 나가는 태준과 팀원들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자신들의 뒤로 천명이 조금 넘는 헌터들이 뒤를 따라왔다.
모두 새로 도살자 길드에 가입할 옛 하세신 길드 헌터들이었다.
이로써 도살자 길드는 단번에 헌터 협회에서 3번째로 큰 길드가 됐다.
***
[헌터 협회]
“호랑이 등에 날개를 달아준 거 아니야?”
인상을 찡그린 최민지의 말에 김상국이 고개를 흔들었다.
“나태준, 그놈은 우리가 아니더라도 날개를 달 놈이었어. 차라리 헌터 협회 소속으로 남아있는 것이 이철용 그놈에게 가는 것보다 백배 나아. 그보다 다 모였다니까 그만 가보지.”
“앞장서.”
문을 열자 회의장에 헌터 협회 이사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이사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한 여자가 손을 들었다.
불꽃 길드의 길드 마스터이자, 신귀족인 최유진이었다.
“SS급 게이트가 열린다는 거 사실이야?”
“그래 그 정보 확실한 거야?”
제로 길드의 노정현도 그것이 가장 궁금했다.
불꽃 길드는 헌터 협회 4위에 랭크되어 있었고, 제로 길드는 5위에 랭크된 길드였다.
김상국이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나태준, 이 새끼. 이 정보를 사방에 다 뿌렸네.’
자신에게만 알려줘도 되는 일이었다.
김상국이 목소리를 가다듬고 대답했다.
“맞아. 내년 1월 1일에 지름 10km짜리 SS급 게이트가 서울 사공에 뜰 거야. 그래서 오늘 급하게 모이라고 한 거야.”
모두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처음 S급 게이트가 발생했을 때도 헌터들의 피해가 컸다.
그런데 이젠 SS급이 발생하고, 그 규모가 10배라는 말에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그렇게 인상 쓰지 마. 우리가 힘을 합치면 SS급 게이트도 충분히 클리어할 수 있어.”
최민지가 자신감을 드러냈다.
김상국이 이어서 말했다.
“문제는 이번에 국가 헌터원에서 총력전을 펼칠 거라는 거야.”
“총력전?”
“S급 게이트를 클리어해서 연속으로 신급 아이템이 나온 건 다들 알 거야. 그런데 이번엔 SS급 게이트야. 이것을 클리어하면 최소한 신급 이상의 아이템이 나올 거고, 어쩌면 그 이상의 아이템이 나올 수도 있어.”
갑자기 헌터 협회 이사들의 표정이 반짝였다.
신급 아이템의 위력을 직접 체감하진 못했지만, 자신이 만약 가지고 있다면, 단숨에 최민지를 넘어서는 최강자의 반열에 오를 수도 있었다.
같은 실력의 헌터가 싸울 때, 유니크 아이템이 아무리 많아도 레전더리 아이템 하나를 가진 헌터가 더 강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놈들이 그것을 차지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일 거란 말이군.”
“맞아. 만약 엄청난 아이템이 나온다면, 그것을 가진 쪽은 어떤 힘을 발휘할지 모르는 거지. 만약 이철용이 그걸 가져간다고 생각해봐. 여기 있는 우리를 가만히 두겠어?”
여기 모여 있는 헌터 협회 이사들은 이철용을 헌터 협회에서 내쫓은 신귀족들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이철용은 이를 갈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어쩌자는 거지?”
최유진의 물음에 최민지가 웃으며 말했다.
“간단해 이번엔 우리 헌터 협회 이사들이 모두 게이트에 들어가 클리어하고, 우리에게 위협이 되는 놈들을 제거하는 거야.”
“뭐? 전면전을 벌이자는 거야?”
“모두 죽이자는 건 아니야. 수뇌부만 사라지면, 나머진 알아서 항복하게 되어 있어.”
김상국이 웃으며 대답했다.
최유진이 살짝 긴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괴수도 괴수지만, 정말 대대적인 전투가 되겠어.”
“그러니 다들 미리 준비하라는 거야. 중, 하급 헌터들은 모두 지상에서 괴수들을 막고, B등급 이상의 헌터들은 전부 게이트로 진입할 거니까 장비도 모두 최고 수준으로 세팅하고 미리 충성심도 점검해.”
헌터 협회의 신귀족들이 단합하고 있었다.
평소엔 잘 어울리지 않은 자들이었지만, 이렇듯 공동의 적이 나타났을 땐 누구보다 잘 뭉치는 자들이었다.
***
[용산 헌터 시장]
오랜만에 이곳을 찾은 태준은 곧장 황노인의 약재상을 찾았다.
“이야! 이게 누구야. 나태준 헌터가 아니신가!”
“오랜만이네요. 영감님.”
“허허, 아무리 사람이 크게 됐다고 해도 그렇게 발길을 뚝 끊으면 섭섭하지.”
“죄송합니다. 일이 바빠서요.”
“오랜만에 온걸 보니 뭐 팔 거라도 있나?”
“그건 아니고 부탁드릴 일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부탁?”
“귀족들을 만나게 해주십시오.”
“뭐?”
황노인의 눈빛이 날카롭게 바뀌었다.
“그게 무슨 소리지?”
“황영감님이 귀족이란 건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다른 귀족들과 만날 자리를 마련해 주십시오.”
“어험, 갑자기 찾아와서 뜬금없는 소릴 하는구먼.”
황노인은 후다닥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태준은 그 자리에서 기다렸다.
한참 후에 황노인이 다시 나왔다.
“허, 아직도 안 갔나?”
“이럴 때가 아닙니다. 머지않아 서울에 SS급 게이트가 뜹니다.”
“뭐?”
황노인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급하게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