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7
117. 레드 드래곤 벨록스.
“정확히 200명을 뽑았습니다!”
도살자 길드의 부길드장 김서라의 목소리는 격양되어 있었다.
그에 반해 나태준은 조금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생각보단 많군.”
“원래 지원자는 다섯 배 이상이었지만, 테스트를 통과한 사람을 일차로 뽑고 나머진 등급과 클래스별로 추린 겁니다.”
“고생했어. 부길드장이 S급 게이트 경험이 있으니까. 그들을 단단히 준비시켜.”
“네네.”
SS급 게이트에 들어갈 인원이 정해졌다.
200명, 모두 B등급 이상이었고, S등급도 20명이 넘었다.
사실 더 뽑을 수 있었지만, 일차 테스트에 탈락한 사람들을 뽑을 순 없었다.
“저...”
“왜?”
“이번에 뽑힌 길드원들이 왜 자신들의 능력이 갑자기 대폭 향상됐는지 알고 싶어 합니다.”
“그냥 아이템 효과라고 설명해. 그리고 뽑히지 않은 헌터들 중에서 테스트를 통과한 헌터들을 등급에 상관없이 길드 요직에 앉혀.”
“네. 당연하지요.”
이번에 도살자 길드에서 실시한 테스트는 길드장과의 개별 면담이었다.
이는 충성심 테스트로 태준과 면담하는 동안 능력치가 오른 헌터들을 따로 선별한 것이다.
이것은 태준이 가지고 있는 고대 군주의 인장(신급) 효과로 태준을 길드장으로 인정하고 명령을 따르는 자들은 능력치가 올라가지만, 그렇지 않은 자들은 변화가 없었기에 충성심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길드의 돈을 전부 털어서라도 무기와 아이템을 세팅해줘.”
“네, 벌써 개인별 특성을 파악해 장비팀에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창수는 제대로 일하는 거 맞아?”
“하하, 그럼요. 남창수 헌터님께서는 세계 유일의 S급 도구 헌터신데요.”
창수는 길드의 장비를 책임지고 있는 팀장이 되었고, 김성하는 장비의 수리를 맡는 CS팀장이 되었다.
똑똑.
외부의 정보 수집을 맡은 이수경이 길드장 사무실로 들어왔다.
“길드장님, 국가 헌터원에서 게이트 진입 인원과 지상 방어팀에 참여할 인원을 알려달라고 요청이 왔습니다.”
이수경은 다른 세력과의 연락이나 길드장의 스케줄 또한 맡고 있었다.
“부길드장이 명단과 인원을 알려줘.”
“네.”
지시를 내린 태준이 이수경에게 물었다.
“국가 헌터원에선 몇 명이나 들어갈 것 같습니까?”
“예상인원은 500명 정도입니다.”
“500이라, 정말 총력전이군. 헌터 협회 쪽에서는 얼마나 들어갈 것 같은가요?”
“아직은 정확한 숫자는 모르지만, 최소 1,000명이 넘을 것은 확실합니다.”
헌터 협회도 이번 게이트에서 사활을 걸고, 뭔가 단단히 벼르고 있는 느낌이었다.
가장 특이한 것은 신귀족이라 불리는 헌터 협회 이사들이 모두 게이트에 들어간다. 그리고 국가 헌터원에 있는 신귀족들도 모두 들어가니, 이번 게이트에선 신귀족들이 모두 출격하는 셈이었다.
“아, 그리고 길드 이전은 내일부터 시작할 겁니다.”
“그건 부길드장이 알아서 해.”
“네.”
도살자 길드는 서울을 떠나 파주 쪽으로 잠시 이전한다.
이는 다른 길드 역시 마찬가지였다.
곧 이곳은 엄청난 격전지가 될 것이고, 괴수와 시가전에 열릴 곳이었다.
아직 한 달여가 남았지만, 사람들은 이미 대피를 서두르고 있었다.
대부분 서울 외곽과 지방에 연고가 있는 사람들은 미리 지방으로 피신했다.
서울 시내 곳곳에 콘크리트 바리케이드가 세워지고, 대괴수 부대와 군부대가 총동원되어 SS등급 게이트 발생에 대비하고 있었다.
도살자 길드가 수비를 맡을 곳은 종로구와 중구였다.
용산구와 마포, 동작, 영등포 쪽은 헌터 숫자가 가장 많은 신화 길드가 맡기로 했고, 드래곤 길드는 강남과 서초, 송파를 맡았다. 그리고 나머지는 국가 헌터원 쪽이 수비를 맡아 단단히 괴수를 막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
[게이트 발생 5일 전]
“백색의 마녀다!”
“조심히 착륙시켜.”
커다란 화이트 드래곤 기가테스가 국가 헌터원 야외에 내려앉았다. 최민지의 첫 드래곤이자, 백색의 마녀라는 그녀의 별명을 만들어준 드래곤이 포효를 했다.
“쿠오오오오오!”
기가테스가 몸을 바짝 엎드리자, 최민지와 헥토르, 드래곤 길드의 수뇌부가 땅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한쪽엔 헌터 협회 이사들과 각 길드장들이 타고 온 최고급 스포츠카와 세단이 줄지어 들어오고 있었다.
오늘은 헌터 협회와 국가 헌터원, 각 길드의 대표가 게이트 발생 전에 최종점검을 하기 위해 국가 헌터원 회의실에 모이기로 한 날이었다.
“이쪽으로 가시죠.”
안내를 받아 최민지와 헌터들이 안으로 들어가는 중이었다.
“최민지, 잠깐 나 좀 볼까?”
김상국이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아무래도 안에 들어가기 전에 우리끼리 입을 맞춰야 하지 않겠어?”
최민지가 다른 드래곤 길드원들을 먼저 들여 보냈다.
“무슨 일인데?”
“헌터는 몇 명이나 준비했어?”
“400명.”
숫자를 들은 김상국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린 500명이야. 다른 길드의 헌터들까지 더하면 우리 쪽은 1,300명 정도가 되지.”
“제법 많네.”
“저놈들에게 그대로 말하진 않겠지? 최소한 삼 분의 일 정도는 숫자를 줄여서 말해.”
“나도 그 정도 눈치는 있어.”
그때였다.
“응? 왜 저러지?”
기가테스가 하늘을 보면서 커다란 이빨을 드러냈다.
드래곤의 반응에 땅에 있던 사람들이 하늘을 쳐다보았다.
“쿠아아아아아!”
하늘 위에서 거대한 것이 포효했다.
그리고 거대하고 붉은 것이 땅을 향해 내려오고 있었다.
“헉! 저건 뭐지?”
“레드 드래곤이다!”
거대한 날개를 펼친 붉은 드래곤이 기가테스 옆으로 내려앉았다.
쿵! 쿵!
“크아앙!”
붉은 드래곤의 거친 날갯짓에 기가테스가 사납게 으르렁댔다.
‘뭐? 기가테스가 두려움을 느껴?’
갑자기 최민지가 도끼눈을 뜨고 레드 드래곤을 노려보았다.
드래곤이 느끼는 감정은 그대로 소환 술사에게 전해지는 법이었다.
지금 기가테스는 오만방자한 드래곤에게 짜증과 동시에 두려운 감정이 피어나고 있었다.
“저게 그 TV에 나온 레드 드래곤스인가?”
“세상에! 기가테스보다 훨씬 큰데.”
땅으로 내려온 드래곤은 이수호의 벨록스였다.
벨록스는 기가테스보다 1.5배 정도 체격이 컸고, 날개를 펼치면 거의 2배 정도 차이가 났다.
벨록스가 고개를 숙이자, 위에서 태준과 도살자 길드원들이 내려왔다.
나태준의 화려한 등장에 최민지와 김상국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여, 오랜만이네.”
멀뚱멀뚱 붉은 드래곤을 보고 있던 최민지는 나태준의 인사도 받지 않고, 그냥 몸을 돌려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김상국은 웃으며 손을 들었다.
“나태준이 오랜만이야. 공략 준비는 잘 되고 있어?”
“물론.”
“어려운 일이나 자금이 필요하면 말해, 우리 헌터 협회에서 최대한 지원해주지.”
“필요하면 그러지.”
살갑게 이야기한 김상국은 연희를 공격하자는 자신의 옛날계획을 도경수가 태준에게 말해 준 것을 아직 알지 못했다.
태준은 겉으론 아무렇지도 않게 김상국을 대했다.
‘김상국, 곧 네놈의 얼굴을 뭉개주지.’
태준이 속으로 이를 갈았다.
국가 헌터원 회의실엔 약 200여 명의 헌터들과 정치인, 장성들과 경찰 관계자들이 모여 있었다.
게이트 공략팀과 지상 방어팀이 모두 모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국가 헌터원장 이철용이 대표로 마이크를 잡았다.
“그럼 먼저 간단한 브리핑을 시작하고 질문을 받겠습니다.”
그는 이번에 있을 SS등급 게이트 공략과 방어에 관해 설명했다.
김상국이 손을 들고 물었다.
“그러니까. 게이트 공략팀을 게이트 발생 이틀 후에 들여보내자는 말입니까?”
“맞습니다.”
“게이트를 하루라도 빨리 클리어하는 게, 더 나을 텐데요.”
“그것도 옳은 말입니다. 하지만 이건 SS급 게이트입니다. 게이트 발생과 동시에 안에서 S급과 SS급 괴수들이 밖으로 나올 겁니다. S급이야 남은 헌터들과 군인들이 총력을 다해 막을 수는 있겠지만, SS급 괴수는 절대 막지 못할 겁니다. 그렇게 되면, 게이트 공략에 성공한다고 해도 지상은 그야말로 초토화가 될 겁니다. 이것은 그 자료입니다.”
시뮬레이션을 통해 SS급 괴수, 하나가 서울을 초토화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겨우 하루였다.
그렇게 되면 대한민국은 천문학적인 손해를 입을 것이고, 그 피해를 복구하는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래서 먼저 게이트 공략팀도 지상 방어팀과 함께 이틀 정도 수비에 참여하고, 그리고 안으로 들어가는 방안이 최선입니다.”
김상국과 헌터 협회 헌터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서울이 초토화되어서는 이곳에 상당한 건물을 소유하고 있는 자신들도 좋은 일은 아니었다.
그렇게 한참을 회의가 진행 중이었다.
쾅!
“나태준, 이게 무슨 짓이지?”
갑자기 최민지가 자리에서 일어서 나태준에게 고함을 질렀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쳇.”
최민지가 창문을 부수고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다른 헌터들도 궁금증에 창밖을 바라보았다.
“크아아아아!”
기가테스가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다.
화이트 드래곤 위에 레드 드래곤이 올라타서 발톱으로 등과 날개를 짓누르고 있었다.
그 모습에 이수호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회의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하지만 한발 늦었다.
막 기가테스가 고개를 위로 들며 입을 벌렸다.
푸아아아아아!
화이트 드래곤의 브레스가 벨록스를 향해 뿜어졌다.
쿠앙! 쾅! 쾅!
엄청난 폭음이 들렸고, 모든 것을 얼려 버리는 백색의 얼음 브레스가 레드 드래곤을 휘감았다.
“쿠오오오오!”
하지만 브레스에 맞은 벨록스는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성난 포효를 하며, 벨록스가 기가테스의 목을 물었다.
콰직!
“크윽!”
기가테스의 고통이 그대로 전해지는지, 최민지가 신음을 흘리며 자신의 뒷목을 잡았다.
“벨록스! 그만해! 그 드래곤을 놔줘!”
이수호가 소리쳤지만, 벨록스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드래곤의 살점을 뜯어 먹었다.
레드 드래곤은 이수호의 말을 듣지 않았다.
최민지의 얼굴이 점점 붉어졌다.
이대로 기가테스가 강제 귀환하면, 좋을 것이 없었다.
“제길, 나와라! 볼테우스!”
최민지 앞으로 블루 드래곤 볼테우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저놈을 죽여!”
볼테우스가 입을 벌리며 벨록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볼테우스는 기가테스보다 덩치고 크고, 브레스도 강력했다. 그래도 덩치는 벨룩스가 머리 하나는 더 컸다.
기가테스는 날개 하나가 찢어지고, 목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고, 벨록스와 볼테우스는 서로 엉켜서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이래도 새로운 소환수를 보이지 않을 건가?’
태준이 속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지금 상황은 일부러 회의가 끝나갈 무렵, 벨록스로 기가테스를 공격시킨 것으로 SSS급 헌터가 된 최민지의 마지막 드래곤을 보고 싶어서였다.
최민지의 불안요소인 마지막 소환수의 정체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했다.
적을 모르고 싸움에 임하는 것보다 아는 것이 백배는 낫지 않겠는가.
사실 이 싸움은 어느 한쪽에서 소환수를 귀환시키면 싸움은 끝나는 것이었다.
어차피 소환수야 죽는 것도 아니고, 다시 소환하면 되는 일이니까.
하지만 이건 자존심의 문제였다.
특히 세계 최고의 헌터인 최민지의 드래곤이 다른 헌터의 드래곤에게 당한다면, 그건 자존심을 떠나 세계 최강의 자리까지 위협을 받는 것이었다.
“이수호의 레드 드래곤이 이기고 있는데!”
“허! 최민지의 드래곤이 밀린단 말이야?”
“이러다가 오늘 세계 1위가 바뀌는 거야?”
바람잡이 헌터들이 큰 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최민지가 입술을 깨물었다.
기가테스는 이미 상처를 많이 입었기에 귀환을 시켰고, 진화한 볼테우스마저 벨록스에게 밀리고 있었다.
소환사의 등급이 떨어졌지만, 워낙 기본적인 힘과 체력이 벨록스가 강력했기에 밀리는 것이다.
“뭐해! 죽이란 말이야!”
소환사의 닦달에 볼테우스가 입을 벌려 전격 브레스를 뿜어냈다.
파지지직! 쿠아아아아!
엄청난 전격과 브레스가 동시에 쏘아졌지만, 벨룩스는 날개를 펄럭이며 위로 솟아올라 피했다. 그러자 그 브레스는 국가 헌터원 건물을 향해 쏘아졌다.
이대로라면 건물은 흔적없이 파괴될 것이고, 등급이 낮은 헌터는 죽을 수도 있었다.
그때 이철용이 앞으로 나섰다.
“굴절(屈折)중력장!”
공간이 일그러지며 크게 왜곡됐다.
그곳에 브레스가 적중하자, 방향을 틀어 하늘로 날아갔다.
“최민지, 그만해 이곳을 다 날려버릴 셈이야?”
이철용도 조금은 성난 얼굴을 보였다.
하지만 최민지는 절대 먼저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먼저 시작한 건 저놈이야! 잡아 볼테우스!”
볼테우스도 하늘 위로 솟아올랐다.
공중에서 거대한 것들이 치고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누가 봐도 볼테우스가 밀리는 것 같았다.
“제길, 나와라. 바잘겟트!”
최민지가 더는 참지 못하고 자신의 마지막 전설급 소환수를 불렀다.
“쿠오옥!”
“쿠아악!”
“크아아아!”
그런데 머리가 셋이다?
골드 드래곤 바잘겟트가 처음으로 헌터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바잘겟트는 머리가 셋이었고, 그 크기는 벨록스보다도 1.5배나 컸다. 워낙 체격이 컸기에 등에 날개가 있지만, 하늘을 날지는 못했다.
대신 세 개의 머리에서 동시에 어마무시한 황금빛 브레스를 뿜었다.
‘이것이었나. 너의 최종 병기가...’
나태준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이로써 상대의 전력을 어느 정도 파악했다.
이제 남은 것은 게이트에 들어가서 연희를 찾는 일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