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4
124. SS등급 게이트 공략(3).
몇몇은 눈을 비비고 있었고, 몇몇은 너무 놀라 경악에 가까운 탄성을 질렀다.
누구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에 뒷걸음질 치고 있었고, 누구는 반가움에 달려갔다.
“여, 연희야!”
“태준이?”
연희가 태준을 보더니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럴 만도 했다. 2년 전 그녀와 헤어졌을 때 태준은 막 B등급 헌터가 됐을 테니까.
2년 만에 최상위 헌터들과 SS등급 게이트에 들어온 것 자체가 기적같은 일이었다.
“네가 여긴 어떻게?”
“너를 찾으러 왔지. 난 네가 반드시 살아 있을 거라고 믿고 있었어.”
“고마워.”
연희의 눈이 촉촉하게 젖어 들었다.
태준의 팀원들도 연희가 살아 있을 가능성이 있었기에 살짝 놀란 정도였지만, 다른 헌터들은 너무 놀라 말문이 막혔다.
헌터들이 웅성거리며 태준과 연희가 있는 쪽으로 모여들었다.
하지만 태준의 팀원들이 그 주변 지키고 있었기에 더 가까이 가진 못했다.
이철용이 다가왔다.
“살아 있었다니, 정말 놀라운걸.”
태준이 눈짓을 하자, 팀원들이 이철용의 길을 열어 주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연희는 이철용의 질문는 듣고는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다른 누군가를 찾는 것이다.
“이 공략팀이 대표가 누구지?”
“뭐?”
“이 SS급 게이트 공략팀의 대표가 누구냐고?”
이철용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나와 최민지, 김상국 그리고 여기 있는 나태준이야.”
마지막에 태준의 이름이 나왔을 때,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뿌듯했다.
“모두 이곳으로 불러줘. 중요한 일이야.”
이철용이 고개를 돌렸다.
“들었지. 최민지, 김상국 잠깐 이리 좀 와봐!”
이철용의 소리를 들었는지, 김상국이 다가왔다.
하지만 최민지는 잔뜩 경계한 채로 헥토르와 드래곤 길드원이 있는 곳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 떨고 있었다.
“이렇게 살아 돌아오다니, 역시 헌터계의 전설 이연희야. 돌아온 걸 축하해!”
김상국이 마음에 없는 말을 쭉 읊었다.
“고마워.”
김상국이야 원래 능청스러운 놈이었지만, 최민지의 반응은 예상외였다.
도도하고, 세상에서 가장 강하다는 자만심이 가득한 그녀가 연희를 보자, 떨고 있었다.
“최민지 뭐하는 거야. 이리와!”
이철용의 외침에도 최민지는 다가오지 않았다.
“그냥 우리가 가자.”
결국, 연희가 세 사람과 함께 최민지에게 다가갔다.
“나와라! 바, 바잘겟트!”
거대한 머리 셋 달린 드래곤이 한쪽에 생성되더니, 급하게 최민지 뒤로 이동했다.
그 과정에서 헌터들이 깔릴뻔하기도 했다.
그녀 옆에는 헥토르가 단단히 지키고 있었고, 공중에는 기가테스와 볼테우스, 두 마리 드래곤이 잔뜩 긴장한 모습으로 날갯짓을 하고 있었다.
“왜 그렇게 떨어?”
이철용이 먼저 입을 열었다.
“넌 몰라도 돼.”
무섭기도 하겠지.
자신이 죽였다고 생각한 연희가 저렇게 멀쩡하게 살아 있으니 얼마나 무섭겠는가.
도경수가 죽었으니, 이연희의 뒤를 공격한 것을 아는 것은 이제 자신과 이연희, 김상국뿐이었다.
이연희는 최민지 뒤에 있는 거대하고 무시무시한 드래곤을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녀는 접신한 샤먼까지 해제하고 최민지에게 다가갔다.
혹시나 몰라서 내가 연희 옆을 따라 걸으며 백정의 칼을 쥐고 있었다.
어떻게 찾은 연희인가.
여차하면 누구든 목을 벨 것이다.
“모두 모인 거야?”
연희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모두 공략팀의 대장들이야.”
“도경수가 보이지 않는데?”
도경수란 이름이 튀어나오자, 김상국과 최민지의 표정은 똥 씹은 얼굴이 됐다.
연희는 도경수가 헌터 협회의 3대 길드장이었기에 당연히 왔을 거라고 생각해 물은 것이다.
그때 이철용이 크게 말했다.
“도경수는 죽었어. 여기 있는 태준이와 대결하다가 최후를 맞았지.”
연희가 슬쩍 나를 보고 웃어 줬다.
그 웃음의 의미가 뭘까?
내가 대단하다는 뜻이겠지?
연희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럼 일단 여기 있는 헌터들을 뒤로 물려.”
“응?”
“그게 무슨 말이야. 눈앞에 보스가 있는데 이대로 물러나라고?”
이철용과 김상국이 연희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여길 오는 동안 헌터들의 피해가 컸어. 다시 괴수들이 몰려나오면 그땐 더 힘들어져.”
“맞아. 지금 저 괴수를 처리하고 게이트를 나가는 게 최선이야.”
이연희가 깊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너희는 저 괴수를 절대 죽이지 못해.”
가만히 듣고 있던 최민지가 코웃음을 날렸다.
“흥, 우리가 못 잡을 것 같아? 난 SSS급 헌터라고, 뒤에 있는 바잘겟트를 보고도 그런 말이 나와?”
떨고 있던 최민지가 어느새 두려움을 극복하고, 가슴을 내밀었다. 사실 연희가 자신과 도경수가 뒤에서 공격한 이야기를 하면 어쩌나 마음을 졸이고 있었다.
하지만 연희는 그 이야기 대신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년이 내가 공격한 걸 모르나?’
최민지는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날 마지막 순간 이연희는 괴수와 엉켜서 싸우고 있었다.
보스급 괴수인 데블로스(SS)는 이미 치명상을 입었기에 신전을 무너트리며 마지막 발악을 하고 있었다.
그때 도경수는 직접 검을 들고 뒤에서 연희를 공격했지만, 자신은 도경수가 뒤로 빠진 틈에 블루 드래곤 볼테우스의 브레스를 쏘았다.
강력한 전격 브레스는 연희와 데블로스를 동시에 휘감았고, 도경수와 자신은 그대로 뛰쳐나왔다.
그리고 신전이 무너졌고, 그 위로 수백 톤의 바위와 흙더미가 쏟아져 연희는 매몰됐다.
연희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너희는 조금 전까지 열다섯 번이나 저 카라차크라와 싸웠어.”
“뭐?”
“어?”
주변에 있던 헌터들이 다들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이제 동굴 입구에 도착한 공략팀에게 보스급 괴수와 열다섯 번이나 싸웠다고 말을 했으니 누가 믿겠는가.
“너 미쳤구나! 게이트에 오래 있더니 정신이 어떻게 된 거지? 우린 방금 도착했다고.”
최민지가 잔뜩 짜증 난 얼굴을 하고 막말을 하고 있었다.
태준이 입을 열었다.
“최민지 말이 맞아. 우린 방금 이곳에 도착했어.”
다른 헌터들까지 연희를 보고 고개를 흔들었다.
“그건 저 괴수의 능력을 몰라서 그래.”
“응?”
“저 괴수는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이 있어.”
“뭐? 그게 무슨 말이야?”
이철용이 물었다.
태준 역시 무슨 말인지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제대로 설명해봐. 괴수가 시간을 되돌린다고?”
“처음엔 큰 피해 없이 괴수를 치명상까지 몰고 갔어. 하지만 그때마다 놈은 시간을 되돌리고, 다시 전투를 벌이며 헌터들의 약점을 하나씩 파악하고, 공격패턴이며, 소환수들의 능력을 파악했어. 그리고 조금 전 열다섯 번째 공격엔 여기 있는 헌터들의 삼 분의 이가 죽은 후에야 겨우 치명상을 입혔어.”
갑자기 헌터들의 표정이 멍해졌다.
믿을 수 없는 말이었다.
어떻게 괴수가 시간을 돌리는 능력이 있단 말인가.
다른 사람 같으면 무시했겠지만, 말을 한 사람이 이연희였다.
여기 있는 대부분 헌터들은 그녀의 말이라면 모두 믿을 것이다.
최민지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물었다.
“괴수가 시간을 돌리는 건 넌 어떻게 알았는데?”
김상국이 나섰다.
“나도 그게 의문인데, 시간을 돌렸다면 너 역시 우리처럼 기억에 없어야 하는 거 아냐?”
“난 이틀 전에 이곳에 도착했고, 솔직히 나 역시 저 녀석과 얼마나 싸웠는지 알 수 없었어.”
연희가 괴수와 싸운 이야기를 했다.
그녀는 SSS급 헌터였다.
SS등급 게이트가 열리고, 그녀는 가장 먼저 BK - 11구역에 도착했다.
혼자였기에 괴수들의 눈을 피해 신속하게 움직였고, 곧바로 이곳 보스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고 했다.
그리고 헌터들이 오기 전에 혼자 괴수를 죽일 생각으로 SSS등급의 괴수인 카라차크라를 공격했다.
그녀는 온 힘을 다해 싸웠다고 했다.
그런데도 놈은 자신의 모든 공격을 와해시키고, 어떤 공격을 하더라도 마치 그곳을 공격할 것을 미리 알기라도 한 것처럼 막아냈다.
점점 힘이 빠지고, 괴수의 공격에 상처를 입을 때였다.
힘을 모아 괴수의 눈을 채찍으로 찔러 눈알을 파냈다.
그리고 사정없이 놈의 몸에 상처를 냈다.
괴수는 괴성을 지르고 고통스러워했고, 치명상을 입혔다.
하지만 연희 역시 더는 버티지 못했다.
뒤쪽으로 괴수들이 몰려와 뒤로 도망갈 길도 없고, 어쩔 수 없이 게이트 반지를 이용해 게이트를 열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
게이트 생성은 그녀의 마나를 많이 소모하기에 정말 급할 때가 아니면 잘 사용하지 않았지만, 목숨보다 중요한 일이 있겠는가.
“그리고 게이트를 닫는 순간 그것을 보았어.”
괴수가 시간을 돌리는 것을.
자신의 형상이 사라지고 괴수에게 입힌 상처가 순식간에 회복되고, 빠진 눈알까지 눈동자에 다시 박히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시간을 되돌리는 것이었다.
그녀가 만든 소형 게이트 안은 이곳과 다른 공간이자, 시간의 흐름이 달랐다. 그랬기에 괴수가 시간을 돌렸어도 그 흐름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괴수는 연희가 다시 나타나지 않자, 이상하게 느끼는 것 같았다고 했다.
만약 연희가 게이트를 만들어 들어가지 않았다면 그녀는 벌써 죽었을 것이다.
시간을 돌리는 놈을 어떻게 이기겠는가.
“그리고 놈의 약점을 찾기 위해 천장 구석에 게이트를 만들고 너희가 괴수와 싸우는 것을 지켜봤어. 하지만 놈은 내 예상대로 큰 위기에 빠지거나 치명상을 입을 때마다 시간을 돌렸고, 내가 몇 번 기습을 해봤지만, 놈은 그것도 미리 알고 있었어.”
“이거 너무 심각한데.”
김상국이 그런 말을 하지 않아도 모두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저 괴수를 죽이지 못하면, 게이트에서 나가지 못한다는 소리인데...”
“우리를 이곳에 붙잡아 두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거 아냐?”
갑자기 최민지가 도끼 눈을 뜨고 이연희를 노려봤다.
“그렇게 자신 있으면 들어가 보던가. 확실한 건 분명 죽을 거야.”
“연희가 그럴 이유가 없잔아.”
태준이 나섰다.
“연희가 우리에게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어. 그렇게 해서 얻는 이득이 없으니까.”
“나를 죽이려고 그러는 것일 수도 있지. 게이트에서 나가지 못하면 기회가 생기니까?”
“연희가 너를 왜 죽이는데? 그럴 만한 이유라도 있어?”
“뭐? 이...이.”
최민지가 갑자기 입을 닫았다.
자기 입으로 연희를 죽이려 했다는 것을 말하겠는가.
“일단 뒤로 물러섰다가 저놈을 처리할 방법을 찾는 게 중요해.”
연희의 말에 헌터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드래곤 길드나 신화 길드, 국가 헌터원의 헌터들까지 연희의 말은 신뢰했기에 아무도 그냥 들어가 괴수와 싸우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이것이 최민지와 김상국이 연희를 두려워하는 이유였다.
“연희야. 그런데 나는 괴수와 싸우지 않았어?”
태준의 물음에 연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열다섯 번이나 우리가 괴수와 싸웠다는데, 연희가 방금 자신을 처음 본 것 같이 행동했기 때문이었다.
“그래 태준이 너는 무슨 일인지, 한 번도 괴수와 싸우지 않았어. 그래서 네가 여기 있는 것을 몰랐어.”
태준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조금 전까지 지상으로 올라갈까 고민했었어. 결국, 올라갔구나.”
“지상으로 왜?”
“보스를 잡아 게이트 클리어하는 일은 내겐 중요하지 않아. 난 여기에 오면 연희 네가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는데, 보이지 않잖아. 그래서 너를 찾으려고 따로 빠질 생각이었어.”
연희가 눈물을 글썽였다.
태준의 진심을 느꼈기에 상당히 감동한 눈치였다.
게이트가 클리어되고 연희를 만나지 못하면 또다시 연희가 게이트에 고립될 수도 있었기에 태준은 카라차크라를 공격하지 못했다. 그랬기에 연희를 찾기 위해 팀원들과 밖으로 나간 것이다.
“그래도 다행이야. 저 괴수가 태준이와 팀원들의 능력은 아직 모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