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5
125. SS등급 게이트 공략(4).
어두운 분위기가 헌터들을 휘감았다.
이는 절망이자, 두려움, 죽음의 공포였다.
여기까지 오는데, 700명이나 되는 헌터가 죽었다.
저 보스급 괴수를 죽이지 못하면, 게이트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 그러면 자신들도 여기서 모두 죽을 것이다.
다들 연희 말을 믿는 눈치였는데, 단 한 사람은 믿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아무래도 나는 직접 공격해봐야겠어.”
최민지였다.
“우리 공략팀이 게이트를 클리어하지.”
연희가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
“마음대로 해. 하지만 길드원들을 공격시키기 전에 반드시 너 혼자 상대해봐.”
“뭐?”
“너도 SSS급 헌터라며, 나도 혼자서 저놈과 싸워봤어.”
최민지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네 드래곤들은 죽어도 다시 소환할 수 있지만, 헌터들은 죽으면 끝이야. 다른 헌터들까지 죽음에 몰지 말란 말이야.”
연희의 말에 최민지의 얼굴이 터질 것처럼 붉어졌다.
이러다 당장 싸움이 날 것 같자, 김상국이 나섰다.
“둘 다 진정 좀 하고. 아무래도 무턱대고 덤비는 것보다는 대책을 마련하고, 움직이는 게 좋아. 연희 말이 사실이면 큰 낭패를 당하는 거잖아.”
분위기를 보고 있던 이철용이 말했다.
“우리 국가 헌터원의 헌터들은 일단 연희 말대로 물러나지.”
“도살자 길드도 물러서겠어.”
태준과 도살자 길드도 물러서겠다고 했다.
그리고 세 사람이 김상국을 바라보자, 그도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공략팀도 잠시 후퇴하기로 하지.”
김상국까지 물러섰다.
그리고 그가 마지막으로 최민지에게 말했다.
“일단 뒤로 물러서자. 그리고 대책을 세워서 다시 오면 되지.”
최민지가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가 자신의 길드원들을 쳐다보았다.
다들 표정에 두려움이 가득했다.
이런 상태로 싸우면 괴수가 시간을 돌리지 않아도 이길 수 없을 것 같았다.
“좋아, 일단 우리도 물러서지. 하지만 다음에 공략할 때 우리가 선두에 설 거야.”
최민지까지 마지못해 참여했다.
“그럼 후퇴는 결정된 것 같군. 근데, 이 많은 인원이 어디로 가지?”
이철용의 물음에 최민지가 말했다.
“조금 전에 괴수를 잡은 그 넓은 공간으로 가자.”
“거긴 안돼!”
이연희가 단호하게 말했다.
“뭐?”
“벌써 열다섯 번이나 공격했는데 다시 공격하지 않으면, 저놈은 그걸 이상하게 여겨서 괴수들을 보낼 거야. 그곳은 안전하지 않아. 내가 안전한 곳을 아니까 나를 따라와.”
“좋아, 연희를 따라가지.”
“나도.”
연희가 헌터들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쾅! 쾅!”
보스가 있는 동굴이 흔들리더니, 먼지가 피어올랐다.
“뭐지?”
“괴수가 움직이는 거야?”
“그럴 리가 없는데.”
잠시 후 먼지 속에서 검은 인형 하나가 달려왔다.
그리곤 이연희처럼 이쪽을 향해 뛰었다.
“어 저건?”
“김득구?”
“어, 떨어진다!”
김득구로 보이는 헌터가 이쪽으로 향했다.
연희에 이어 김득구까지 이젠 놀랍지도 않았다.
하지만 절벽의 거리가 한참 멀어 김득구가 점점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기공포!”
퍼펑!
그의 손에서 거센 바람이 뿜어지더니, 떨어지는 그가 다시 솟아올랐다.
그는 그 이후로도 몇 번이나 허공을 향해 기공포를 쏘고 나서야 건너편에 도달할 수 있었다.
“아 씨발! 저놈 투명망토도 소용없는데.”
다들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태준이 물었다.
“투명망토라니?”
“레전더리급 아이템이야. 최강해 성주한테 비싸게 사온 놈인데 소용없었어. 저 괴수는 이미 내가 어딜 공격할지 알고 있더라고, 그래서 그냥 도망쳤지.”
투명망토의 유일한 단점이 공격하기 직전에 망토를 사용중지하고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보다 김득구! 넌 어떻게 왔어?”
“나? 태준이를 따라왔지.”
“뭐? 그럼 조금 전에 우리가 괴수에게 공격 당할 때 왜 안 도와줬지?”
최민지가 도끼눈을 뜨고 쳐다봤다.
“그야 나 없어도 잘 막아낼 것 같아서.”
“킁.”
어떻게 하다 보니, 지금 이곳에 도하준을 빼고 6학년 3반 동창들이 전부 모였다.
“지금 이럴 때가 아니야. 저놈이 부하 괴수들을 이곳으로 보내기 전에 이동하자.”
다들 연희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한참을 반대쪽으로 걷다가 곧 동굴 사이에 작은 틈이 보였다.
거대한 괴수는 지나가지 못하지만, 인간이라면 대여섯 명이 나란히 걸을 수 있을 정도의 틈이었다.
연희를 따라 다들 그곳으로 들어갔다.
***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한참을 위로 올라갔다.
밖으로 나오자, 세 개의 태양이 머리 위에서 비췄다.
그리고 다시 태양을 향해 한참을 걸었다.
“저기야.”
분화구처럼 생긴 거대한 분지 가운데 수풀이 우거진 곳이 보였다.
“저기라면 이 많은 인원이 들어가도 몸을 숨길 수 있어.”
“일단 가보자.”
헌터들이 연희를 따라 분지로 내려가고, 수풀 사이로 들어갔다.
우거진 나무를 지나 안으로 들어가자, 곧 바위 계곡에서 떨어지는 작은 폭포와 커다란 웅덩이, 그리고 넓은 공간이 나왔다.
“여기야. 여기서 좀 쉬면서 괴수를 공략할 방법을 찾아보자.”
“와! 꽤 괜찮은데.”
연희가 안내한 장소는 정글 가운데 있는 파라다이스 같은 장소였다. 나무 사이로 들어오는 햇볕도 좋았고, 공기도 쾌적하고, 조용했다.
무엇보다 주변에 괴수들이 보이지 않았다.
“원래, 푸스카(A) 무리가 살던 곳이라 다른 괴수들의 접근하지 않은 곳이었어.”
“그럼 푸스카는?”
“모두 내가 몰아냈어.”
A급 괴수가 살던 지역에 다른 S급, SS급 괴수가 없었다는 것은 몇십, 몇백 마리의 단위가 아니라 수천 이상의 괴수 무리가 생활했었을 것이다.
그동안 연희가 이곳에서 어떤 생활을 했을지 궁금해졌다.
“모두 짐을 풀어라! 이곳에서 쉰다.”
헌터들이 다들 짐을 풀고 텐트를 쳤다.
몇몇은 그냥 풀밭에 몸을 뉘었다.
지난 며칠간 정신없는 전투를 벌이고, 계속 쪽잠만 잤기 때문에 다들 체력이 형편없이 떨어져 있었다.
“하늘이 보이는 장소 말고, 나무 밑에서 쉬는 게 좋아.”
연희가 도살자 길드원의 자리를 알려줬다.
가끔 괴수들이 이 위를 날아다니기에 들키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저긴 뭐야?”
“내 집이야. 구멍이 나 있던 것을 내가 개조했지.”
자신들이 쉬고 있는 거대한 나무 위에 구멍이 뚫린 곳이 보였다. 그리고 그 구멍으로 가는 가파른 계단도 있었다.
“그동안 여기서 살았던 거야?”
“그래, 자세한 건 올라가서 말해줄게.”
“우린 여기서 기다릴게.”
최한별이 말하며 다른 팀원들에게 눈치를 줬다.
둘 만의 시간을 갖도록 배려한 것이다.
“아니에요. 같이 올라가죠. 다들 이곳에 대해 궁금하신 점이 많을 텐데.”
“그럼 그럴까.”
윤상희가 최한별을 잡아끌었다.
결국, 정기용을 빼고, 팀원들과 가파른 계단을 올라갔다.
“여기야. 들어와.”
내부는 상당히 넓었다.
워낙 나무가 거대했기에 안으로 10여 미터나 파고들어 갔음에도 나무 중간에 도달하지도 못했다.
“와! 상당히 깔끔해요.”
“그러게 엘프집 같아.”
한수진이 이수호와 집 안 구석구석에 다니며 구경했다.
하지만 태준은 연희가 어떻게 살았는지, 여기 어떻게 오게 됐는지 그것이 가장 궁금했다.
“어떻게 된 거야? 게이트 반지로 피했다는 말을 김득구에게 들었는데.”
“맞아, 그때 SS급 괴수를 죽이고, 이 신급 아이템을 얻었어.”
이연희가 자신의 손에 있는 반지를 보여줬다.
“이걸로 무너진 동굴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어.”
그녀가 주변을 살피며 말을 이었다.
괴수에게 마지막 일격을 가하는 순간 뒤에서 도경수가 투명검을 휘둘렀다고 했다. 하지만 연희는 그 검에 맞지 않았다. 오히려 앞으로 달려 검을 피하고 채찍으로 괴수를 죽였다.
그런데 그때 뒤에서 블루 드래곤의 전격 브레스가 덮쳤고, 몸을 웅크렸다고 했다.
그때 신전이 완전히 무너졌고, 그 위로 엄청난 양의 바위와 토사가 쏟아졌다. 게다가 시간이 흐르자, 자신들이 들어왔던 동굴까지 모두 무너져 내렸다고 했다.
“정신을 차리고 눈을 뜨자, 죽은 괴수가 옆에 있었어. 바위가 덮쳤지만, 죽은 괴수 때문에 오히려 공간이 생겨서 매몰되지 않았어.”
그때 끔찍한 기억이 떠올랐는지 연희도 몸을 살짝 떨었다.
“사실 그땐 꼼짝없이 죽는 줄 알았어.”
아무리 SS등급 헌터였어도 두더지도 아니고 수 킬로미터 땅속에서 위로 올라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리고 공기도 희박했기에 곧 죽을 운명인가 했다.
하지만 그때 신급 아이템이 떠올랐다.
우리에게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았지만, 반지로 게이트를 생성할 수 있다고 했다.
연희는 곧바로 게이트를 생성했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처음엔 들어간 입구는 있었지만, 출구를 찾을 수 없었다고 했다.
그녀가 만든 게이트 안에는 오로지 어둠뿐이었다.
그런데 또 걸을 순 있다고 했다.
그대로 가만있을 수 없어 한참을 걸으며 출구를 찾았다.
그렇게 얼마를 걷자, 다시 상태창에 게이트 반지의 신호가 왔다고 했다.
[이곳에 출구 게이트를 생성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허공에 게이트를 생성하자,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고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게이트를 생성하고 일정 시간이 지나야만 출구를 생성할 수 있었고, 그 만큼 공간도 필요하다고 했다.
일단 밖으로 나오자, 무작정 게이트를 향해 달렸다.
자신이 게이트에서 나온 것이 동굴이 무너지고 겨우 한나절밖에 되지 않았는데, 이미 며칠이 흘렀고, 남은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한 마디로 자신이 만든 게이트 안과 밖은 흐르는 시간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점점 흐려지는 게이트를 향해 달렸지만, 몰려드는 괴수들 때문에 제시간에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그리고 저 멀리 날아가는 드래곤을 향해 소리쳤다. 하지만 최민지의 드래곤은 무심하게 밖으로 나갔다.
이제 S급 게이트 소멸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고, 어떻게 될지 몰라 반지로 게이트를 만들어 그 안으로 들어갔다고 말했다.
“그땐 나도 함께 사라지는 줄 알았어.”
게이트가 소멸하면 자신도 같이 소멸할 것 같았다.
그녀는 자신이 들어간 게이트 문을 닫고, 그곳에서 출구를 생성할 때까지 한참을 기다렸다고 했다.
그리고 출구를 생성하자, 바로 이곳으로 나왔다고 말했다.
“그다음엔 보다시피 이곳에서 괴수를 잡으며 SSS급 헌터가 됐지.”
많은 것이 생략된 이야기였다.
2년간 그녀가 얼마나 고생했을지는 안 봐도 뻔했다.
가장 큰 것은 외로움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게이트 반지에 대해서는 더 자세히 이야기하진 않았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났으니, 게이트 반지를 더 잘 다루겠지만, 어떤 기능을 할 수 있는지는 말하지 않았고, 팀원들도 그것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 대장, 김상국과 이철용이 연희씨를 찾는데.
“알았어. 내려갈게.
아래에 홀로 남아 있던 정기용에게 무전이 온 것이다.
“그건 뭐야?”
“게이트 용 무전기, 창수가 만들어 줬어.”
“아!”
그녀가 창수를 살렸으니, 이 무전기 역시 연희가 없었다면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근데, 벌써 S급 헌터가 된 거야?”
연희의 물음에 태준이 살짝 웃었다.
“아니. SS등급이야.”
“와! 대단하다.”
“별거 아니야. 여기 있는 다른 팀원들도 모두 SS급 헌터인데.”
“정말?”
연희는 정말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태준은 슈퍼 루키라 불리며 급성장한 것을 알고 있었지만, 팀원들까지 모두 SS급 헌터가 됐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
연희와 태준, 최민지, 김상국, 이철용, 김득구 외에도 6학년 3반 신귀족과 SS급 헌터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보스급 괴수를 죽여 어떻게 게이트를 클리어할지, 의논하는 자리였다.
“그러니까 괴수가 시간을 되돌리기 전에 일격에 죽여야 한다는 말이네?”
연희의 말에 김상국이 이마를 매만졌다.
“그게 가능할까?”
“그것 말고는 방법이 없어. 놈이 치명상을 당하거나 위급하면 시간을 돌리니까 우리가 죽을 때까지 영원히 반복될 거야.”
“그 동굴을 무너트리는 건 어때? 놈을 매몰시키는 거야.”
연희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도 죽지 않을 거야. 놈의 몸은 절벽 위까지 연결되어 있어.”
“뭐? 그렇게 크다고?”
“그래, 그리고 절벽 위에는 놈이 알을 낳는 장소가 있어. 나도 멀리서 보기만 했지 가까이 가본 적은 없어. 그곳엔 엄청난 숫자의 괴수들이 지키고 있어서.”
“알이라고?”
“아, 아직 모르고 있구나. 이 카라차크라가 괴수들의 어미야. 이놈이 죽으면 괴수는 더 늘어나지 않아. 그럼 남은 괴수들만 죽이면 인류를 위협하는 것들이 사라지는 셈이지.”
“하지만 이런 놈이 하나가 아닐지도 모르잖아.”
최민지의 말에 연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건 나도 확신할 순 없지만, 이 주변엔 이놈 말고는 다른 놈은 없었어.”
“그건 나중에 생각하고, 어떻게 죽여야 하는지가 문젠데...”
이철용이 인상을 찡그렸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뾰족한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놈이 시간을 되돌리는 횟수에 한계가 있을 수도 있잖아.”
“그럴 수도 있겠지.”
“그냥 계속 공격하다 보면 죽일 수도 있지 않을까?”
“글쎄, 열다섯 번을 공격하면서 헌터들의 삼 분의 이를 잃었으니, 스무 번을 채우지 못하고 전멸할걸.”
이번엔 김상국이 연희를 보며 물었다.
“저놈이 시간을 돌릴 때 특별히 하는 행동이나 움직이는 기관 같은 게 있을까?”
“글쎄, 그것까지는 나도 자세히 보지 못했어.”
“내 생각인데, 만약 우리 뇌처럼 중요한 신체 부위에서 그걸 조절한다면, 그 부분을 먼저 파괴하면 시간을 되돌릴 수 없을지 몰라.”
“근데, 괴수 크기가 워낙 커서 그것을 파악하기도 쉽진 않을 거야.”
다들 괴수를 공략하기 위해 골머리를 앓고 있을 때 태준은 다른 생각에 잠겨 있었다.
‘저 카라차크라(SSS)의 고기나 피를 먹으면, 나도 시간을 되돌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