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6
126. SS등급 게이트 공략(5).
타탁! 탁! 탁!
작은 모닥불 타오르고, 밤이 찾아왔다.
회의는 길었지만, 결론은 도출하지 못했다.
아무래도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이 있는 괴수라 위험을 감지하면 곧바로 과거로 돌아가기에 섣부른 공격은 하지 못함이다.
각자 공략팀별로 저녁을 먹고, 커피 믹스를 타서 마시고 있었다.
“이 맛이 너무 그리웠어.”
연희가 벌써 석 잔째 커피를 홀짝대고 있었다.
“인벤토리에 2만 개쯤 있으니까 천천히 마셔.”
“2만 개?”
연희의 시선이 태준을 향했다.
“길드원들이 몇 명인데 이 정도는 챙겨야지.”
“그게 다 들어가?”
“물론 내 인벤토리 용량이 몇 톤인데.”
“톤이라고?”
연희의 두 눈이 똥그래졌다.
SSS급 헌터인 자신의 인벤토리는 200kg이 조금 넘는다.
이것도 엄청난 양이라고 생각했는데, 태준의 인벤토리가 톤 단위 일 줄은 정말 생각지도 못했다.
윤상희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말도 말아요. 저 인벤토리에 마트가 들어 있다고 생각하면 편해요.”
“마트요?”
“내가 부식담당이지만 저속에 물건이 얼마나 들어 있는지 감히 안 온다니까. 가재도구, 주방기구에 물과 식료품까지 없는 게 없으니까.”
팀원들도 평소 태준의 인벤토리를 블랙홀이라고 부를 정도로 저 속엔 얼마나 많은 물건이 들어 있는지 감을 잡지 못했다.
게다가 인벤토리에서는 음식물이 상하지 않으니, 고기류와 채소에 김치까지 없는 게 없었다.
태준의 최대 장점 중의 하나가 이 엄청난 인벤토리 공간이었다.
“대신 정리하는 시간이 너무 많이 들었어.”
처음엔 마구잡이로 넣다가 언젠가부터는 구역별로 정해서 정리하기 시작하자, 진짜 마트 진열장처럼 인벤토리가 정리되어 있었다.
“이야, 나중에 할 거 없으면 게이트에서 장사해도 굶어 죽지는 않겠다.”
수호의 말에 태준이 웃었다.
“오! 좋은 생각인데, 나중에 여기도 관광지로 만들면 대박 나겠어.”
태준이 말한 것처럼 이곳은 정글 속에 지상낙원처럼 느껴졌다.
괴수만 없다면...
“대장, 농담 그만하고, 괴수를 처리할 방법이나 내놔봐.”
윤상희가 빚쟁이처럼 손을 내밀었다.
“음, 내가 한가지 생각해봤는데, 괴수를 순식간에 얼릴 순 없을까? 여기에 얼음 마법사가 꽤 있잖아. 괴수가 통째로 얼어버리면 시간을 되돌릴 수도 없을 거고.”
태준의 말에 팀원들이 연희를 바라보았다.
자신들이 생각해도 괜찮은 방법 같았다.
하지만 연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게 괴수가 커서 힘들 거야.”
“얼마나 큰데 그래? 여기 있는 한별이는 A급 괴수도 한 번에 얼리는데.”
“그 동굴 입구 봤지? 괴수가 사는.”
“어.”
“그 동굴을 꽉 채웠다고 생각하면 돼, 그리고 위로도 뻗어있고.”
다들 동굴 크기를 가늠해봤다.
“허! 최소 300미터는 넘는다는 소리네.”
“300미터는 무슨 500미터는 될걸.”
절벽 사이의 거리가 떨어져 있었기에 정확한 넓이는 모르겠지만, 엄청 넓다는 것은 다들 알고 있었다.
최한별이 고개를 흔들었다.
“솔직히 너무 커서 힘들어요. 저 같은 SS등급 헌터 10명이 동시에 냉기를 뿜어내도 겨우 아랫부분만 얼 거에요.”
“그럼, 어떤 신체 기관이 과거로 시간을 돌리는 기능을 하는지 그곳을 알아내서 집중해서 얼리면 될 것도 같은데.”
“아니면, 뇌를 얼리면 되지 않을까?”
정기용의 말에 이연희가 살짝 웃었다.
“제가 여러 번 찾아봤는데, 도대체 뇌라고 할 만한 부분이 안보여요. 얼굴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얼굴이 없어요?”
연희가 바닥에 괴수의 형체를 그렸다.
“이건 그냥 덩어리인데?”
“꼭 그렇게 생겼어. 그리고 몸에서 여러 종류의 촉수가 나오는데, 어떤 것은 불을 뿜고, 어떤 것은 얼음, 어떤 것은 전격을 뿜어내지. 또 어떤 것은 검이나 창, 방패처럼 뾰족하거나 단단한 촉수까지 있어서 헌터가 쓸 수 있는 기술은 거의 다 쓸 수 있는 것 같아.”
연희의 말에 팀원들도 고개를 흔들었다.
“이거 약점이 없는데.”
“맞아. 이런 놈을 어떻게 잡아.”
도무지 약점이 없으니 대책을 마련하기 쉽지 않았다.
“일단 전처럼 연희가 게이트에 숨어 있고, 우리가 다시 공격해 보는 건 어떨까?”
“방법이 떠오르지 않으면 그렇게라도 할 수밖에.”
“근데, 연희가 만든 게이트는 몇 명이나 들어갈 수 있어?”
“그게 아직 한 번도 시도해 본 적이 없어서.”
“그럼 이참에 해보자? 여기 사람도 많은데.”
연희가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다들 쉬고 있는데 어떻게 그래. 나중에 도와줘.”
“그럼, 그럴까.”
태준의 시선은 시종일관 연희를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태준과 연희를 번갈아 보는 한별이 있었고, 그런 한별을 보는 윤상희도 있었다.
밤이 깊어가자, 다들 잠자리에 들기 시작했다.
고단한 날이었으니, 잠이 잘 올 것이다.
태준이 연희와 함께 숲을 거닐었다.
“게이트를 클리어하면 어떻게 할 거야?”
“뭘?”
“최민지와 김상국 말이야.”
“상국이는 왜?”
“네가 괴수를 잡고 있을 때 뒤에서 너를 공격하자고 계획한 게 김상국이야. 도경수가 죽기 전에 내게 알려줬어.”
연희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솔직히 잘 모르겠어. 처음엔 나도 죽이고 싶었는데, 여기서 좀 살다 보니까, 복수란 게 의미 없이 느껴지네.”
“용서라도 할 생각이야?”
“글쎄.”
“너는 용서해도 나는 용서할 수 없어. 너를 뒤에서 공격하고 게이트에 버리고 오다니...”
“그래서 나를 위해 도경수와 싸운 거야?”
연희가 태준을 향해 환하게 웃었다.
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놈이 죽었다고는 믿기지 않아.”
“왜? 다들 그렇게 말하던데.”
“너무 쉬웠어. 꼭 어딘가에서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아.”
“그런 말 하니까 살짝 무서운데.”
“걱정하지 마, 내가 지켜줄게.”
“든든한데.”
연희가 흐뭇한 웃음을 짓는다.
태준이가 이처럼 빠르게 성장할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일단 다른 애들 문제는 저 땅속에 있는 카라차크라를 처리하고 생각하자, 지금은 할 일이 많잖아.”
“그래도 조심해, 저번처럼 뒤에서 공격할 수도 있으니까.”
“알았어. 특별히 조심할게.”
“좀 쌀쌀해지네. 돌아가자.”
“그래.”
게이트 안에 살면서 연희의 마음이 많이 누그러진 것 같았다.
하지만 자신은 최민지와 김상국을 절대 용서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들이 가만히 있을 인간들이 아니었다.
***
“이거 너무 안개 같은데.”
“뭐가?”
김상국의 말에 최민지가 물었다.
“지금 상황 말이야. 괴수를 죽일 수도 없고, 게이트 밖으로 나갈 수도 없으니까.”
“괴수는 내가 반드시 죽일 거야.”
“어련하시겠어. 그건 그리고 연희는 어떻게 할 거야?”
연희란 말에 최민지의 얼굴이 붉어졌다.
“연희가 가만히 있진 않을 텐데.”
“상관없어. 난 이제 예전의 최민지가 아니야. 세계 최강이라고.”
최민지는 주먹을 쥐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김상국이 손으로 턱을 매만졌다.
“연희도 예전의 연희가 아니던데. 그 날개 달린 샤먼 못 봤어? 전에 봤던 샤먼이 아니었잖아. 분명 진화하거나 새로운 샤먼을 접신했을 거야. 그럼 공격패턴이나 형태와 능력이 완전히 달라지잖아.”
샤먼 클래스는 어떤 샤먼을 접신했느냐에 따라 그 능력이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정기용의 경우 영웅급 조자룡의 샤먼이 접신되었으니, 대부분의 공격이 검과 창이었다.
진화했다고 하지만 그 외에는 특별한 능력이 없었다.
하지만 레전더리 샤먼의 경우 접신한 샤먼이 고대 신이나 특별한 능력을 지녔을 경우 그 능력을 헌터가 사용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상관없어 바잘겟트의 브레스는 아무도 못 막아.”
최민지도 자신감이 넘치는 표정은 아니었다.
꼭 자기 최면을 거는 느낌이랄까.
그 모습에 김상국이 입술을 깨물었다.
최민지를 이용해 이연희를 처리할 생각이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부족해 보였다.
둘이 싸우다 양패구상을 하는 것이 가장 좋은 시나리오였지만, 지금은 나태준과 이철용까지 있었기에 살아 있는 최민지가 필요했다.
“내일은 괴수를 공격해야겠어. 여기서 죽치고 앉아 있다고 해결책이 나오는 것이 아니잖아.”
“나도 그것엔 동의해. 하지만 네가 꼭 선봉에 설 필요는 없잖아.”
“뭐?”
“연희가 나타나기 전에도 저들과 우리 세력은 크게 차이가 없어 하지만 이젠 우리가 불리해. 그러니까 헌터들을 아껴. 그리고 네 드래곤들도 항상 소환상태를 유지해야 하고.”
최민지가 입술을 깨물었다.
김상국의 말뜻을 알아들었다.
그는 괴수를 잡는 것뿐만 아니라 그 이후에 일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알았어. 그럼 다 함께 공략하는 방향으로 이야기하지.”
선봉은 아니지만, 또 뒤에 남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그러다 덜컥 누가 SSS급 괴수를 죽이고 아이템이라도 챙겨가면, 이곳에 들어온 이유가 사라지는 것이다.
그녀는 특히 연희와 태준을 경계했다.
연희야 누구나 알아주는 강자였고, 태준은 뭔가 목에 걸린 가시처럼 성가셨다.
저번 부산 S등급 게이트에서도 그렇다고 들었다.
얼마 되지 않은 헌터 숫자로 게이트에 먼저 들어가서 팀원들의 등급을 전부 올렸고, 보스가 있는 곳까지 나타났다고 했다.
하지만 정작 전투엔 참여하지 않았고, 뭔가 뭔지 찝찝한 느낌이었다.
***
아침부터 최민지와 김상국이 헌터들을 모았다.
그런데.
“일단 여기서 이야기하는 것보다. 태준이와 도살자 길드가 합류했으니, 괴수와 싸우면서 방법을 찾는 게 어때?”
최민지와 김상국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자신들이 할 이야기를 연희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기 때문이었다.
헌터들이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전처럼 내가 옆에서 지켜보다가 위험할 것 같으면, 미리 나타나서 후퇴시킬게.”
“좋아. 그리고 동굴이 넓으니 한꺼번에 공격하는 게 좋을 것 같아. 화력을 모으면 놈이 시간을 되돌리기도 전에 죽을지도 모르고.”
최민지의 말에 이철용이 말했다.
“그런건 공략팀별로 따로 이야기하고. 그보다 공격은 언제 할 거야?”
“일단 가는 시간이 있으니까. 오늘 밤까진 여기 있고, 밤에 떠나서 내일 아침에 공략하는 게 어때?”
“좋아.”
다들 찬성했다.
평화로운 시간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최대한 잘 먹고, 잘 쉬면서 장비를 정비했다.
그리고 그날 밤.
다들 괴수가 있는 동굴로 향했다.
***
건너편 절벽에 시커먼 동굴이 보였다.
헌터들이 밧줄을 반대편에 고정하고, 건너갈 준비를 끝냈다.
“놈을 죽일 생각보다 약점을 파악하는 게 좋아.”
연희의 말에 최민지가 말했다.
“이왕 공격하는 게 최대한 화력을 집중해야지.”
“그건 민지 말이 맞아. 혹시 알아 놈이 그대로 죽을지.”
이철용이 무슨 일인지 최민지의 말에 찬성했다.
“일단 처음에 강공을 해보고, 놈이 시간을 돌리면 그때 다시 방법을 생각해보지.”
“알았어.”
연희 역시 반대는 하지 않았다.
강하게 밀어붙이다가 약점을 찾을 수도 있을 테니까.
그 순간 태준은 괴수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자, 준비할까.”
드래곤들과 날개 달린 언데드, 소환수들이 소환됐다.
도살자 팀은 벨록스와 마르시아스에 나눠 타고 일부는 밧줄을 타고 건너기로 했다.
태준이 팀원들에게 말했다.
“난 말볼과 따로 할 일이 있으니까, 다들 몸조심해.”
“무슨 일?”
“다들 공격에 집중할 때, 난 저 괴수에게 최대한 접근해 볼게.”
“위험할 텐데...”
최한별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 내가 누구야, 나태준이야. 위험하면 바로 뒤로 빠질게.”
태준은 괜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때 연희의 몸에서 커다란 여신의 형상이 뿜어졌다.
자세히 보니 갑옷을 쓴 여성으로 매우 전투적인 모습이었다.
“그럼 내가 먼저 가서 자리를 잡고 있을게.”
연희는 오늘 철저한 관찰자였다.
괴수의 약점을 파악하는 중요한 임무를 맡았다.
다른 헌터들 역시 그녀를 믿고 있었기에 그녀가 적임자였고, 그녀가 아니면 그 누구도 하지 못할 일이었다.
“태준아 조심해!”
연희가 태준을 향해 손을 흔들고, 윙크를 날렸다.
“너도...”
연희가 동굴을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샤먼의 형상이 날갯짓하자, 반대편까지 무사히 도달했다.
“우리도 가자!”
드래곤들과 날개 달린 것들이 일제히 날아올랐다.
반대편에 착륙할 공간은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