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7
127. SS등급 게이트 공략(6).
동굴은 깊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어둡지도 않았다.
하지만 발걸음이 더딘 것은 그 속에 있는 괴수 중의 괴수 때문이랴.
“저, 저건가?”
최상위 정령 실피드를 앞세운 최규환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거...대하군.”
“제게 카라차크라란 말이지.”
이철용은 양손을 뻗은 채로 눈앞에 괴수를 바라보았다.
여차하면 바로 중력장을 쏟아 부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쿠아아아아!”
“끄아아아악!”
거대한 드래곤과 언데드, 소환수들이 목청껏 포효했다.
그런데 그 소리가 꼭 두려운 적을 만났을 때 내는 경계음과 같았다.
“뭐지? 드래곤들이 두려워한다고?”
최민지가 몸을 떨었다.
드래곤에게 그 두려움이 소환술사에게 그대로 전달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최강의 드래곤이라 자부하는 바잘겟트가 필요 이상으로 꿈틀거렸다.
앞선 수백의 헌터들이 중앙을 중심으로 양 옆으로 길게 늘어서 공격을 준비했다.
그 뒤쪽으론 마법사들과 궁수, 원거리 클래스 헌터들이 거대한 괴수를 겨눴다.
“어쩌지? 어딜 공격해?”
“전부 괴수야, 그냥 앞을 향해 쏘기만 하면 된다.”
헌터들이 당황했다.
크다는 말만 들었지, 동굴 한쪽 벽이 전부 괴수일 줄은 그들도 상상할 수 없었다.
그때였다.
괴수의 가장 앞선 몸통에서 한 쌍의 눈이 떠졌다.
“눈? 저기가 머린가?”
이철용이 중력장을 쏘려는 순간, 괴수의 몸에서 연달아 눈이 떠졌다.
그런데 그 숫자가 너무 많다!
수천, 수만, 수십만 개의 오싹한 눈동자가 헌터들을 노려 본다.
“윽! 징그러워.”
“세상에!”
“저게 지금 날 보고 있어.”
“아니 모두를 지켜보고 있는 거야.”
누구도 놈의 눈길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이런 놈하고 싸웠다는 거야? 연희 혼자?”
김상국의 말에 최민지가 입술을 깨물었다.
“뭘 기다려? 어서 시작하지.”
아직 놈이 어떤 반응도 하지 않았다.
마치 자신들의 공격을 기다리는 것처럼.
후미에 있던 최민지가 전방을 향해 손을 뻗었다.
“바잘겟트! 기가테스! 볼테우스! 저놈을 죽여!”
가장 앞에 있던 세 드래곤이 다섯 개의 브레스를 동시에 뿜어냈다.
“끄아아아아아!”
“쿠아아아아!”
노랗고, 하얗고, 푸르스름한 강력한 브레스가 일제히 쏘아지자, 벨록스나 마르시아스 등 다른 드래곤들도 브레스를 쏘았다.
쾅! 콰콰콰쾅! 화르르르륵!
파지지지지직!
엄청난 화염과 얼음, 산성 가스, 독, 그리고 번쩍이는 전격까지 날아가 괴수의 몸뚱어리에 작렬했다.
피와 살이 있는 놈이라면 반드시 큰 타격을 받았을 것이다.
“우리도 공격한다!”
“모두 쏴라!”
뒤에 있던 마법사들과 궁수들, 원거리 스킬을 가진 헌터들이 일제히 전방을 향해 공격을 쏟아부었다.
“용의 격노!”
“게헤나의 불꽃!”
“파쇄중력장!”
“죽어, 이 새끼야! 아이스 스톰!”
쿠쿠쿠쿠쿠쿠!
헌터들의 공격에 눈앞이 검은 연기와 불꽃으로 일렁였고, 천장에선 바위가 떨어졌다.
이정도 일격이라면 살아남을 수는 없을 터.
어마어마한 일제 공격에 놈은 분명 죽었을 것이다.
“사격중지!”
“모두 대기하라!”
앞쪽에 자욱했던 연기가 빠르게 걷힌다.
어디로 빠지는 것일까?
뒤는 통로였지만, 앞은 막혀 있었다.
“헉! 괴수가 연기를 먹고 있어!”
커다란 촉수가 나와서 검은 연기를 빨아들이고 있었다.
“뭐, 뭐지?”
“실, 실패인가?”
괴수의 앞쪽으로 수백 개의 촉수가 뻗어 나와 방패 모양으로 변해 소환수들과 헌터들의 공격을 막아버렸다.
그런데 대다수의 촉수가 파괴되어 바닥을 뒹굴고 있었고, 바닥에 괴수의 피가 흥건했다.
완벽한 실패는 아니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괴수의 몸에서 또다시 촉수가 뻗어 나오더니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자신의 살덩이와 피까지 모두 가지고 몸속으로 들어갔다.
“뭐지? 재활용하는 건가?”
헌터들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순신간에 눈앞이 치워지고, 또다시 수십만 개의 눈이 헌터들을 노려봤다.
“제길, 이제 어쩌지?”
헌터들이 당황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이제 우리가 나서야 할 때다! 가자!”
“모두 공격하자!”
신화 길드의 SS급 헌터 타룬 메이가 검을 들고 전진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맨 앞에 있던 직접 공격을 하는 전사들과 헌터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마법 공격이 먹히지 않는다면 괴수의 몸뚱어리를 직접 쓸어버릴 수밖에.
“주군을 위하여!”
정기용의 샤먼 조자룡이 더욱 푸른 형체를 드러낸다.
윤상희는 이미 붉어진 눈동자에 한껏 뜨거워진 몸뚱이를 앞세우고 달려들었다.
“파괴의 날이여, 모든 것을 찍어 눌러라!”
서슬 퍼런 도끼가 번쩍인다.
그 순간 괴수의 몸뚱이에서 다시 수백 개의 촉수가 튀어나왔다.
그리고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헌터를 향해 날아갔다.
검은 검으로 창은 창으로 도끼를 든 자에겐 도끼 모양이 되어.
카앙!
“뭐? 막았어?”
파괴의 날이 도끼 같은 촉수에 막히자, 윤상희의 붉은 눈이 의심으로 물들었다.
레전더리급 도끼를 막아냈다.
그것도 자신의 온 힘이 담긴 내려치기를!
하지만 윤상희는 멈추지 않았다
몸을 앞으로 구르더니 촉수의 옆을 향해 파괴의 날을 휘둘렀다.
서걱!
촉수가 잘려 바닥을 뒹굴었다.
그러자 이번엔 도끼 두 자루가 그녀에게 날아왔다.
캉! 카카카캉!
도끼 같은 촉수와 파괴의 날이 불꽃을 튀겼다.
촉수를 베어버리면 그 다음엔 그 두 배의 촉수가 날아왔으니, 그녀는 지금 열덟 개의 촉수와 싸우고 있었다.
옆을 바라보니, 정기용이 검처럼 새긴 촉수 십여 개와 싸우고 있었다.
윤상희가 더욱 힘을 냈다.
“중력장!”
이철용의 중력장이 괴수의 몸뚱이에 작렬했다.
살이 뒤틀리고, 피가 튀었다.
“됐다!”
그 순간 이철용을 향해 두 개의 촉수가 솟아 나더니 입을 벌렸다.
화아아아아!
파파파팍!
시뻘건 불꽃과 함께 손가락만 한 칼날 수십 개가 이철용을 향해 날아갔다.
“헉! 중력 방패!”
급히 손을 회수해 자신의 앞으로 중력장을 펼쳤다.
타타타타타타탕!
칼날이 사방으로 튀었고, 불길이 이철용을 덮쳤다.
“크으윽!”
중력장으로 불길을 막아내고 있었으나, 그 뜨거운 열기가 그를 괴롭혔다.
“어딜! 감히!”
바람의 최상급 정령 실피드가 백색의 반투명 방패로 불길을 막았다.
최규환이 이철용을 도운 것이다.
“고맙다!”
그때 또다른 촉수가 뻗어 나오며 실피드를 향해 입을 벌렸다.
휘이이이잉!
놈의 촉수에서 거센 돌풍이 불었다.
바람은 불과 합쳐져 실피드를 타고 넘어 뒤에 있던 최규환에게 날아갔다.
“조심해!”
화악!
강민경의 발록이 날개를 펼쳐 불꽃을 막아냈다.
“제길, 모두 총공격해!”
“괴수를 죽여라!”
소환수도 날아들고, 뒤에 있던 마법사들과 헌터들도 일제히 달려들었다.
혼전도 이런 혼전이 없었다.
일대 다수였지만, 괴수는 수백 개의 촉수를 이용해 적절히 헌터들의 공격을 막고 있었다.
“게르르릉!”
말볼이 잔뜩 몸을 웅크렸다.
그 등에 타고 있는 태준 역시 상당히 긴장한 상태였다.
인벤토리에서 괴수 고기를 꺼내다 말았다.
괴수의 피 역시 마시지 않았다.
모두 적절하게 사용하면, 큰 도움이 되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는 괴수를 죽이러 가는 것이 아니었다.
“가자! 말볼!”
말볼의 몸 주위로 붉은 드래곤 형상이 피어올랐다.
샤먼으로 접신했지만, 제 주인이 위에 타고 있으니, 최대한 헬라카스 샤먼의 기운을 억누르고 있는 것이다.
땅을 박차고 달리더니, 벽을 향했다.
파파파파팟!
벽을 평지처럼 달린다.
헌터들과 촉수들의 격전지를 지나 괴수를 향한다.
촤릭! 촤릭!
십여 개의 촉수가 날아오는 것이 보였다.
말볼이 몸을 비틀며 땅으로 뛰어들었다.
콰직!
몇몇 촉수는 벽을 뚫었고, 다른 촉수들은 말볼의 뒤를 따라왔다.
“말볼, 놈들을 부탁해!”
몸을 날려 바닥을 굴렀다.
말볼이 날아오는 촉수를 향해 달렸다.
백정의 칼을 들고 달렸다.
그 순간 괴수의 몸에 박힌 수십 개의 눈이 일제히 나를 향했다.
처음 보는 놈이 달려들었으니, 어떻게 막을까 궁리하는 건가?
놈과의 거리는 10여미터.
그때 놈의 몸에서 촉수가 빠르게 날아왔다.
피하지 않았다.
“할야(割也)!”
촉수를 잘라버렸다.
그 순간 나를 향하던 눈동자가 수십 개에서 수백 개가 되었다.
주변에 있던 눈동자들이 일제히 주목함이다.
또 다른 촉수가 날아왔다.
칼을 휘둘렀다.
카앙!
단단하다.
뭔가 종류가 다른 촉수였다.
“절야(折也)!”
뼈를 자른다!
파각!
단단한 촉수가 잘렸다.
놈의 몸체가 가까워졌다.
그러자, 수십 개의 촉수가 일제히 나를 향해 날아왔다.
모두 다 잘라주지.
“난도(亂刀)!”
촤촤촤촤촤촤촤링!
칼이 스치는 곳마다 촉수가 후수수 떨어졌다.
단 한 번 검을 휘두름이 아니다. 수백 개의 눈으로도 따라갈 수 없을 만큼 칼이 빠르게 휘둘리고, 촉수가 한 번에 십여 개가 잘려나갔다.
그때였다. 이번엔 수천 개의 눈동자가 나를 향한다.
이제야 놈이 내 존재에 큰 위협을 느끼는 것 같았다.
다른 헌터들에겐 적절히 대비했지만, 자신과 팀원들의 기술은 아직 파악하지 못했기에 적절한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한 것이 분명했다.
촉수를 자르고 전진하자, 놈의 코앞이다.
놈이 다급한지 주변의 촉수를 모조리 뻗었다.
하지만 이미 내 칼은 괴수의 피부에 닿았다.
‘동도심미(動刀甚微)!’
[동도심미(動刀甚微) - 칼의 움직임이 매우 세미하여 원하는 곳을 긋는다. 상대는 살점이 떨어져 나갔음에도 한동안 그것을 알아채지 못한다.]
괴수의 살을 자르고 그 덩어리를 손에 들었다.
놈은 자신의 살덩이가 잘려나갔는지도 모를 것이다.
몇몇 촉수는 나를 향해 불을 쏘고, 전격을 날리며, 창날이 되어 박힌다.
뒤로 물러섰다.
“섭취(攝取)!”
괴수의 살덩어리를 곧바로 입에 넣었다.
당장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커다란 얼음 덩어리들이 날아와 뒤로 구르며 피하자, 머릿속에 무언가 짜릿한 것들이 요동쳤다.
[동화(同化) 스킬이 발동됩니다.]
SSS급 괴수 카라차크라의 생각과 습성이 고스란히 머리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순간 괴수와 생각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태준은 괴수의 공격을 피하기 시작했다.
창이 날아들어 허공을 찌르고, 괴수가 불을 뿜으면 어느새 아래로 숙이고 접근했고, 화살 같은 작은 암기를 쏘기도했다. 그러나 태준은 그 전에 먼저 행동했다. 놈이 어떻게 나올지 느끼고 있는 것이다.
한참 괴수의 공격을 피했을 때였다.
태준의 시선이 한곳을 응시했다.
천장 위였다.
그 순간 괴수의 수만 개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떨렸다.
그리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
“태준아 조심해!”
연희가 태준을 향해 손을 흔들고, 윙크를 날렸다.
어? 여긴?
조금 전에 자신과 연희가 헤어질 때가 아닌가.
“자, 잠깐!”
연희를 불러세웠다.
“왜 그래?”
이 순간 뭐라 말해야 할까?
저 괴수놈이 방금 시간을 돌렸다고 말하면 최민지나, 이철용이 자신의 능력에 대해서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러니 연희나 다른 헌터들에게도 이 상황을 말할 순 없었다.
자신의 능력을 저들이 알아서 좋을 것이 없었다.
“아, 아니야. 너도 조심해!”
괴수의 고기를 먹은 지금 이순간 태준은 괴수와 동화된 상태였다.
놈이 시간을 돌려도 모든 것이 기억 속에 있었다.
괴수처럼 기억이 남아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카라차크라(SSS)는 이런 식으로 헌터들의 약점이나 특성을 파악하고 있었다.
진짜 무서운 것은 그 약점을 파악해 이제부터 낳는 괴수들에게 인간 헌터들의 약점을 유전자로 새겨놓는다는 것이었다.
지상엔 수백, 수천 마리의 괴수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들을 동원해 헌터들을 죽이진 않았다.
그것은 일부러 인간 헌터들의 약점을 파악하기 위함이었으니, 괴수가 가진 생존 본능은 위대하다고 느낄 정도였다.
‘괴수의 약점이 거기 있었구나.’
마지막 순간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자신이 아니라 괴수가 그 위치를 알려준 것이었다.
카라차크라가 시간을 되돌릴 수 있도록 하는 기관은 동굴 안이 아니라, 지상으로 뻗어지는 몸체 중간에 있었다.
자신이 위협을 받자, 시간을 되돌리는 것을 떠올렸고, 그 순간 태준의 뇌에도 그전에 전달됐다.
그 중추기관은 인간의 뇌에 해당했고, 그것만 파괴하면 놈은 시간을 되돌리지 못한다.
이제 그 뇌를 어떻게 파괴할 것인지 그것을 생각해야 했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놈의 눈을 피할 수 있을까?
그 셀 수 없이 많은 눈을...
일단은 방금 시간을 돌리기 전까지 행동은 비슷하게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야 놈이 의심하지 못할 것이다.
‘괴수의 몸속으로 몰래 들어갈 수만 있다면...’
놈의 저 수 많은 눈을 피할 수 있는 길은 괴수 모르게 몸에 들어가는 길뿐이었다.
그리고 놈이 알아채지 못할 때 중추신경계를 파괴해야 했다.
조용히 팀원들과 벨록스의 등에 탔다.
“수호야. 조금 이따가 내 말대로...”
수호에게 한 가지를 지시하자, 그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