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8
128. SS등급 게이트 공략(7).
순식간에 절벽을 건넜고, 헌터들이 자리를 잡고 SSS괴수를 공략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다들 여전히 긴장한 모습이었다.
태준은 맨 뒷자리에서 말볼과 달려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너 설마? 기억이 남아 있는 거니?”
연희가 다가왔다.
“어?”
“첫 번째 공략과 뭔가 다른데.”
연희가 태준의 행동이 바뀐 것을 바로 알아보았다.
자신의 머리 위에 벨록스가 따라다니고 있었다.
이전 공략에서는 벨록스는 분명 선두에 섰었고, 그녀는 자신처럼 게이트 안에서 지켜봤던 순간의 기억은 남아 있었기에 알아보았다.
“맞아.”
태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이 괴수 고기를 먹으면 괴수의 성향이나 특성을 알 수 있고, 그 능력까지 쓸 수 있다는 말을 했다. 그랬기에 시간을 되돌리기 전의 기억도 함께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연희는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태준의 말을 믿고 있었다.
이번엔 태준이 물었다.
“넌 어떻게 된 거야? 게이트 안에 계속 있는 것이 아니었어? 어떻게 과거로 돌아온 거야?”
“게이트 안에서만 시간의 흐름이 달라서 괴수의 행동을 보았을 뿐이지, 밖으로 나오면 나 역시 시간의 흐름을 따라가. 동시에 두 장소에 존재할 수 없는 것과 같지. 그리고 내가 돌아가지 않으면 갑자기 중간에 내가 사라지는 것이 되니까 헌터들이 내 말을 믿지 않을 거야. 그래서 시간을 돌리자마자 게이트에서 뛰어내렸어.”
솔직히 연희가 하는 말을 전부 다 이해할 수는 없었다.
아니 대부분 이해할 수 없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아직 한번 밖에 공략하지 않았다는 거.
연희에게 이번에 내가 어떻게 괴수를 공략할지 설명했다.
그러자 그녀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너무 위험하잖아. 다른 방법이 있을 거야. 그러니...”
“괜찮아. 전에도 한 번 써먹었던 작전이야.”
거짓말이다.
이 작전은 자신도 처음 사용하는 것으로 괴수에게 들키지 않을지 확신할 수는 없었다.
“이번에도 잘 지켜봐 줘. 내 몸속에 있는 저 괴수의 능력이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지 모르니까.”
“알았어.”
“무슨 일 있으면 무전기로 연락하고.”
“응. 태준아, 조심해.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면, 우리 못다 한 데이트 하자.”
“물론이지, 연희 너와 첫 데이트인데 놓칠 순 없지.”
연희가 피식 웃었다.
“그럼 이따 봐.”
“그래. 약속 꼭 지켜.”
연희는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지, 자꾸 자신을 뒤돌아보았다.
이런 게 헤어지는 연인의 마음인가?
그녀는 다시 천장 구석에 있는 게이트로 들어갔다.
그리고 자신은 말볼과 호흡을 가다듬고 있었다.
쾅! 쾅! 화르르르르! 파지지직!
“화력을 모아라! 공격하라!”
헌터들의 공격이 시작됐다.
천지가 개벽할 정도의 화력이 괴수에게 쏟아졌다.
하지만 여전히 괴수는 촉수 방패로 잘 막아냈다.
그런데 전과 조금 다른 점이 있었다.
전에는 대부분 촉수가 파괴되어 살덩이가 뒹굴었는데. 이번엔 절반 수준이 멀쩡히 남아 있었다.
벌써 전과 달라졌다.
“모두 공격하라!”
“소환수를 앞세워라!”
검과 창을 든 헌터들과 샤먼을 접신한 헌터들이 물밀 듯이 들어가 괴수의 촉수와 싸우기 시작했다.
“말볼, 지금이다! 가자!”
말볼을 타고 빠르게 달렸다.
다시 벽을 타고, 괴수에게 달려들자, 십여 개의 촉수가 날아왔다.
여기까진 비슷했다.
그런데 못 보던 촉수 두 개가 더 삐져나와 있었다.
‘뭔가 대응책을 세웠나?’
일단은 피한다.
“말볼 피해!”
말볼이 벽에서 뛰어내렸다.
날아오던 촉수가 처음과 똑같이 벽을 뚫었다.
그런데, 새로 생긴 촉수에서 화염이 쏟아졌다.
화르르르르!
뜨겁기가 저 지옥의 불길과도 같은 염화의 화염이다.
이 순간 살짝 후회했다.
‘데블로스의 고기를 먹을 걸.’
데블로스의 고기를 먹으면 이 정도의 화염은 버틸 수 있었다.
지금 자신은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하지만 걱정하진 않았다.
말볼이 바닥에 착지하기 직전에 등에서 뛰어내렸다.
뜨거운 화염은 착지한 말볼을 덮쳤다.
보통 헌터였더라면 순식간에 재가 됐을 것이다.
하지만 말볼이 누군가.
“게르르릉!”
말볼의 샤먼인 화룡 헬라카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가뜩이나 붉은 말볼의 털이 더욱 붉어졌다.
“말볼 촉수를 유인해!”
말볼이 촉수를 유인하는 사이에 앞으로 내달렸다.
수천 개의 눈이 일제히 나를 바라보았다.
과거로 돌아가 새로운 방법으로 나를 공격했지만, 나 역시 과거의 기억이 남아 있었기에 놈의 대처에 대해 예상하고 있었다.
다시 앞으로 내달렸다.
‘먼저 놈의 고기를 확보한다.’
자신은 전과 마찬가지로 앞으로 내달렸다.
하지만 놈은 전과 다르게 반응한다.
수십 개의 촉수가 날아오고, 화염 촉수 역시 불을 뿜었다.
‘처음부터 강공을 펼치시겠다.’
빠르게 옆으로 달렸다.
내게 향하던 촉수는 방향을 바꿔 나를 쫓고, 화염은 허공에 쏘아졌다.
이건 예상 못 했는지, 나를 따라 수천 개의 눈동자가 따라다니며 나의 다음 행동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그 사이 헌터들과 괴수의 촉수 대결은 점점 치열해졌다.
그나마 도살자 길드원들은 겨우 두 번을 싸우는 중이었기에 아직까지 헌터들이 촉수들을 밀어붙이고 있었지만, 다른 공략팀의 헌터들은 이미 괴수가 싸워본 경험이 많았기에 적절히 대응하고, 틈틈이 반격까지 하고 있어 불리해 보였다.
갑자기 내 앞으로 수십 개의 촉수가 창날이 되어 튀어나왔다.
그리곤 나를 향해 방향을 틀었다.
슬쩍 위를 쳐다보았다.
벨록스가 보이지 않았다.
아직 때가 아니다.
그때였다.
“꾸아아아아!”
신정필의 마르시아스가 내려오더니, 수십 개의 촉수를 향해 산성 브레스를 뿜어냈다.
순식간에 촉수가 녹아버렸다.
그때였다.
파파파파팍!
이번엔 내가 아닌 마르시아스를 향해 괴수의 몸에서 수십 개의 촉수가 뻗어 나왔고, 마르시아스는 있는 힘을 다해 다시 브레스를 쏘았다.
그런데.
푸푸푸푹!
이번엔 촉수가 브레스에 녹지 않고, 마르시아스를 뚫어 버렸다.
“쿠에에에엑!”
마르시아스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강제 귀환했다.
괴수의 적응력이 너무 빨랐다.
그 사이 태준이 자신을 쫓아오던 촉수를 향해 칼을 휘둘렀다.
‘유인유여(游刃有余)!’
[유인유여(游刃有余) - 칼 놀림이 경지에 달하여 자유롭게 이동하며 전혀 막힘이 없다. 어떤 피부든 칼에 닿기만 하면 결에 따라 벨 수 있다.]
SS급 괴수 백정의 특수 스킬이 발동됐다.
괴수의 촉수가 힘없이 결에 따라 잘리며 바닥을 뒹굴었다.
그 순간 자신을 바라보는 수천 개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느낌이 들었다.
괴수와 거리가 가까울수록 동화가 되는가?
카라차크라(SSS)의 생각과 감정을 더 잘 느낀다.
놈은 지금 당황하고 있었다.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지만, 거리는 여전히 떨어져 있었다.
“고오오오오오오!”
괴수의 몸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태준 앞으로 수백 개의 촉수가 뻗어 나왔다.
그 순간 괴수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무기로 변한 촉수, 화염과 얼음, 전격 마법까지 한 번에 나에게로 쏟아부을 작정이었다.
그때 자신의 머리 위로 검은 그림자가 보였다.
‘지금이다!’
몸을 웅크렸다.
쾅! 쿠억!
레드 드래곤 벨록스가 착륙하면서 태준을 통째로 삼켜버렸다.
그 순간 괴수의 감정이 요동친다.
카라차크라는 이게 무슨 상황인지 알지 못한다.
“쿠아아아아아!”
벨록스가 처음으로 거센 화염을 뿜으며 날아오는 촉수를 녹여 버렸다.
그리고 괴수를 향해 돌진했다.
콰직!
촤악!
벨록스의 커다란 입이 괴수를 물었고 두 개의 발톱은 괴수의 몸뚱어리를 파고들었다.
괴수는 고통스러워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이 정도 공격으로 괴수에게 치명상은 입히진 못한다. 그리고 이전 공격과 다르게 이번엔 거의 피해가 없었다.
푹! 푸푹! 푹
벨록스의 머리와 목에 여러 개의 촉수가 박혔다.
레드 드래곤의 비늘을 교묘하게 파고들기 때문에 버티지 못했다.
“꾸에에에엑!”
벨록스가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렸다.
벨록스의 몸속에서 잔뜩 웅크린 몸을 펼쳤다.
그리고 백정의 칼을 들었다.
‘미안하다! 벨록스!’
백정 스킬이 벨록스의 위벽에 닿았다.
‘비대각(批大卻)!’
위를 가르고 내장을 갈랐다.
‘도대관(導大窾)!’
그리고 뻗어진 칼에 구멍이 뚫렸다.
태준은 그 구멍을 향해 나아갔다.
그리고.
‘동도심미(動刀甚微)!’
날카로운 칼날이 드래곤의 배와 맞닿은 괴수의 몸을 동시에 그었다.
그리고 그 틈으로 태준이 몸을 날렸다.
푸슉!
칼과 손이 하나가 되어 휘둘린다.
손놀림이 근육과 뼈의 결대로 나아가니, 괴수의 살 속을 물결치며 앞으로 나아간다.
이는 지경긍경지(技經肯綮之)의 기술.
그 순간 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 형! 성공했어요? 벨록스가 너무 괴로워해요.
이수호의 무전이었다.
괴수의 배속이었지만, 게이트 파장을 이용한 무전기였기에 그 소리가 생생하게 들렸다.
하지만 괴수의 몸속으로 들어왔기에 입을 열 수 없어, 대답은 하지 못했다.
“쿠아아악!”
벨록스가 마지막 숨을 토하고 강제 귀환했다.
그 순간 수천 개의 눈동자가 다른 목표를 찾아 움직였다.
자신을 놀라게 했던 인간과 레드 드래곤이 사라졌기에 과거로 시간을 돌릴 필요가 없었다.
‘흡혈(吸血)!’
괴수의 피를 마셨다.
‘섭취(攝取)!’
괴수의 살을 씹어먹었다.
그러자 더욱 괴수와 동화됐다.
포근하다.
‘이, 이게 뭐지?’
괴수의 공허함이 밀려온다.
수천, 수만, 수억...
얼마나 오래 존재했던가.
그 셀 수 없는 수많은 억겁의 시간, 이 카라차크라는 존재했고 자유 의지로 살아왔다.
차원과 차원을 넘나들고, 이 우주와 저 우주를 다니면서 유영했고, 그것이 이 괴수에겐 생존의 의미였다.
‘아, 가슴 한쪽이 아파졌다.’
카라차크라는 위대한 존재.
시간과 공간을 지배하는 무형의 존재.
누구는 공허라 불렀고, 누구는 신이라 불렀다.
그런 자신의 한 조각을 티베리안 차원의 인간들이 작은 세포에 넣었다.
티베리안인, 그들은 고도의 과학 문명으로 주변의 행성들까지 모두 지배하는 자들로 카라차크라를 이용해 차원의 문을 열고, 다른 차원까지 지배하려 했다.
그리고 그것은 성공했다.
여러 차원의 게이트를 열었고, 그곳을 정복하며 티베리안인들은 더욱 강성해졌다.
‘더 알고 싶다.’
카라차크라에게 동화된 자신은 그의 공허함을 더 느끼고 싶었다.
그러자, 자신의 몸은 괴수의 중추신경을 항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중심부로 다다갈수록 괴수의 기억과 공허함이 더욱 밀려온다.
여러 차원을 차례로 점령한 티베리안인들이 한가지 간과한 것이 있었다.
차원의 문이 열리며, 마법 세계의 마나가 이쪽 세상으로 흘러들어온 것이었다.
그때 자신도 모르게 카라차크라는 한 단계 진화했다.
공허에 마력이 더해지자, 지능이 생겼고, 단세포에 불과하던 몸체가 점점 진화했다.
티베리안 과학자들이 그 사실을 깨닫고 두려움에 카라차크라를 죽이려 했다.
하지만 카라차크라는 죽일 수 없었다.
이미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을 깨우친 괴수는 공격을 받을 때마다 과거로 시간을 돌려 적절한 대응 방법을 찾아내 티베리안인의 공격을 모두 막아냈고, 점점 진화했다.
그리고 실험실에 있던 온갖 실험체들을 흡수했고, 인간들이 괴수라 부르는 생명체를 낳기 시작했다.
그들은 거대하고 강했으며, 이미 티베리안인들의 무기엔 면역이 있었기에 각종 첨단 무기로도 괴수를 죽이지 못했다.
그리고 전쟁이 벌어졌다.
티베리안인과 카라차크라와의 전쟁.
우주와 다른 차원까지 삼키려 했던 티베리안인이었지만, 그들은 끝내 괴수들을 막지 못했다.
싸움에 패해 저 넓은 우주로 달아나려 했지만, 시간을 돌린 카라차크라가 모든 우주선에 자신의 알을 숨겼고, 부화한 알들은 우주선 내에 있는 티베리안인들을 모두 죽였다.
결국, 극소수의 테베리안들만 자신의 모행성을 탈출할 수 있었다.
지금 이 순간 태준은 카라차크라의 모든 것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카라차크라는 생존을 위해서만 진화해왔고, 지난 수 세기 동안 이곳 행성에 자리를 잡았다.
자신도 모르게 어느덧 카라차크라의 뇌에 해당하는 중추신경에 도달했다.
이곳은 거대하고 신비롭다.
이제 눈앞에 이 신경만 파괴하면 카라차크라는 죽는다.
‘하지만 내가 왜 그래야지? 카라차크라는 잘못한 게 없잖아.’
태준은 칼을 휘두르지 않았다.
아니 점점 괴수에게 녹아 들어가고 있었다.
포근하고 안락하며, 동시에 공허한 느낌까지.
움직이기 싫다.
그냥 이대로 자고 싶었다.
영원히...
- 치치치칙! 태...준아 어디 있어?
연희 목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