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살자-134화 (134/149)

# 134

134. 내가 도살자다(5).

암살자(暗殺者) 또는 어쎄신(assassin), 그들은 사람을 죽인다.

암살은 사람들이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생겨났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오래된 직업이며, 살인청부업자도 암살자에 속한다.

그들은 의뢰나 명령을 받고 비밀리에 사람을 죽이고, 최대한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쿵!

투명한 검이 빠지자, 헥토르가 앞으로 꼬꾸라졌다.

헥토르, 드래곤 길드의 이인자이자, 최민지와 함께 다니며, 그녀를 호위했다.

늘 혹시 있을지 모르는 암살에 대비한 그였지만, 오늘은 자신이 암살자에게 당했다.

“도...도경수? 네가 어떻게...”

헥토르가 입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죽은 것이다.

그 순간 최한별의 표정은 마치 유령을 본 것처럼 창백해졌다.

산 사람이야 두렵지 않았지만, 눈앞에 사람은 분명 태준에게 죽은 사람이었다.

도경수가 검지로 자신의 입을 가리며 말했다.

“쉿! 조용히 하라고, 최민지가 알아채면 안 되니까.”

도경수가 음침한 웃음을 지었다.

암살자의 최대 덕목은 기다림이다.

완벽한 순간이 아니면 절대 나서지 않았고, 심지어 고대에는 화장실에서 보름을 기다린 암살자도 있다고 들었다.

그는 게이트에 들어오고 나서부터 줄 곳 헌터들의 뒤를 따라다녔다. 그러다가 완벽한 기회가 오자, 헥토를 먼저 죽인 것이다.

아무리 방심했다고 하지만, 단 일격에 드래곤 길드의 이인자 헥토르를 죽인 것을 보니 도경수의 실력이 과거 태준과 싸웠던 수준이 아니었다.

최한별 역시 도경수를 한눈에 알아보았다.

“그럼 전에 죽은 건 누구지?”

“흐흐흐, 내가 그걸 알려줄 리가 있겠어?”

도경수의 클래스는 인형사, 또는 인형 술사라고 불렀다.

워낙 희귀한 클래스였고, 높은 등급까지 오른 인형사가 없었기에 도경수를 인형 술사라고 생각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실제로 인형사는 경험치를 얻기가 매우 힘들다. 체력이 강한 것도 아니고, 마법처럼 강력한 한방 공격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인형을 이용해 괴수를 상대하기에 죽을 위험은 적었지만, 인형의 위력은 술자의 사 분의 일 정도로 상당히 약했기에 괴수를 죽이기가 너무 힘들었고, 그렇다 보니 경험치를 얻기도 힘들었다.

장점으로는 여러 개의 인형을 쓸 수 있었기에 괴수를 유인하거나 혼란에 빠트릴 수 있는 장점은 있었다. 하지만 인형에게 능력을 부여한 인형사는 그만큼 약해지기 때문에 죽을 위험도 컸고, 괴수가 한 마리씩 나타나는 경우는 드물었기 때문에 실전에 쓰이기엔 많이 부족한 기술이었다.

도경수도 마찬가지였다.

일반적인 사냥 방법으로는 인형사로 대성할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천운이 있었다. 괴수가 아닌 인간 헌터들을 사냥하며 그 등급을 올릴 수 있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그는 귀족들이 만든 괴물이었다.

초기에 키우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등급이 오르면 새롭고 특이한 스킬들이 많이 생겨났고, 자금까지 확보되자 각가지 힘을 보충할 보조 아이템을 구매했기에 인형사의 약점을 극복하고, 암살에 특화된 헌터로 대성할 수 있었다.

“이제 어찌할 생각이지?”

최한별이 양손에 얼음창을 들고는 잔뜩 경계하며 물었다.

“글쎄, 누구를 죽일지 고민하는 중이야.”

도경수는 한참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이연희와 최민지를 한번 쳐다보고는 최한별을 쳐다보았다.

그 순간 살기가 최한별을 덮쳤다.

“이 정도 거리라면, 너를 먼저 죽여도 저쪽에서는 모르겠군.”

도경수가 투명검을 겨눴다.

그러자 최한별이 잔뜩 긴장해 입술을 깨물었다.

“그때 투명검이 사라졌다고 들었는데, 네놈이 다시 가져갔군.”

“아니, 너는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네 분신은 나와 같아 검도 나눠쓰고, 몸도 나눠쓰지. 한마디로 분신 역시 나의 일부라고 할까?”

도경수가 최한별의 물음에 일일이 대꾸하는 것은 그녀의 뒤를 잡기 위함이다.

지금처럼!

쉐에엑!

한별의 등을 향해 검은 인형이 검을 찔렀다.

“얼음 장벽!”

파파파팍!

하지만 한별은 장벽을 세워 검을 막아냈다.

얼음벽은 일격에 무너졌지만, 그녀는 무사했다.

“호! 마법사치고는 제법 전투 센스가 있네.”

최한별이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이제 보니, 인형을 가지고 놀고 있군.”

최한별의 앞뒤로 도경수가 있었다.

도경수가 순간 둘이 됐다는 말이었다.

“죽이기엔 아까운 미모지만, 네년은 내 훌륭한 인형의 재료가 될 수 있을 거야.”

“뭐?”

스스스슥!

갑자기 쓰러져 있던 헥토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최한별이 입술을 깨물었다.

“네크로맨서였나?”

“크크큭, 나를 죽은 자를 조종하는 것들과 비교하지 마라.”

지이잉!

헥토르의 양손에 칼이 빛을 뿜어냈다.

“헛!”

“내인형은 살아있을 때 사용했던 기술을 온전히 쓸 수 있지.”

네크로맨서는 아무리 죽은 자를 되살려도 살아있을 때의 기술을 쓸 수 없었다.

“가라! 헥토르!”

헥토르가 칼을 휘두르며 최한별을 덮쳤다.

콰지지직!

새롭게 솟아오른 얼음 장벽이 순식간에 뚫리고, 얼음 뿔이 산산이 조각났다.

광선검 같은 그의 칼날은 얼음을 무우처럼 베어버렸다.

“제길!”

최한별이 뒤로 밀렸다.

그녀는 지금 헥토르 하나와 싸웠을 때보다 더 어려운 싸움을 하고 있었다.

뒤에서 노리고 있는 도경수의 인형이 하나 더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인형이 언제 자신을 덮칠지 몰랐기에 신경이 분산되었고, 형편없이 밀리는 것이다.

한별이 무언가를 결심한듯 이를 악물었다.

“모두 한꺼번에 쓸어 버리지! 아이스 사이클론(Cyclone)!”

최한별이 오랜만에 얼음 폭풍의 반지의 위력을 더한 최고의 스킬을 시전했다.

날카로운 얼음 조각들과 살갗을 저미는 차디찬 서리 바람이 그녀를 중심으로 빠르게 퍼져갔다.

휘이이이이잉!

파파파팟!

엄청난 냉기와 얼음 칼날들이 주변을 휩쓸기 시작했다.

건물이 잔해가 날아다니고, 바닥이 파였다.

이는 작은 얼음 회오리 바람이 아니었다.

이것은 거대한 얼음 태풍이었다.

“크윽!”

거센 얼음 회오리에 도경수와 도경수의 인형은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헥토르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빛을 뿜는 칼을 휘두르며, 얼음 폭풍에 맞서며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갔다.

한쪽에서 거대한 얼음 회오리가 피어오르자, 격렬하게 싸우고 있던 이연희와 최민지가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이연희는 살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최한별의 실력을 믿은 것이다.

그에 반해 최민지는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얼음 회오리를 향해 헥토르가 무식하게 전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제길, 위험하다!’

헥토르의 위험을 알았지만, 최민지는 도울 수 없었다.

이연희의 샤먼이 휘두른 채찍에 볼테우스가 적중했기 때문이었다.

“쿠아아아아!”

붉은 화염이 볼테우스를 덮쳤다.

블루 드래곤은 그 뜨거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쳤다.

“바잘겟트! 공격해!”

머리 셋 달린 드래곤이 이연희를 향해 쏘아졌다.

이연희는 채찍을 풀고 몸을 피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콰앙!

“크흑!”

이연희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암흑룡 켄 크라우드의 머리에서 쏘아진 암흑 브레스가 여신의 형상에 적중됐고, 이연희의 옆구리를 스쳤기 때문이었다.

조금만 늦게 피했다면, 그녀의 몸은 암흑물질에 노출되어 녹아내렸을 것이다.

휘이이이잉!

거대한 얼음 회오리가 서서히 걷히기 시작했다.

잔해가 바닥에 떨어졌고, 수많은 얼음 조각이 눈처럼 잘게 부서져 흩날렸다.

주변 건물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바닥엔 아직도 서릿발 같은 냉기가 피어 올랐다.

그리고 최한별 앞으로 헥토르가 서 있었다.

그의 양손에 있던 칼은 빛을 잃었고, 몸은 갈기갈기 찢겼다.

살점이 떨어지고, 뼈가 뚫렸다.

그는 이미 죽었지만, 다시 한번 죽었다.

“큭!”

엄청난 마력을 소모했기에 한별이 갑자기 휘청였다.

튼튼한 체력이 있었기에 버티고 있었지, 마법사가 마력이 떨어지는 건 절대 피해야 할 일이었다.

‘도경수는? 그놈은 어디 갔지?’

도경수가 보이지 않았다.

놈의 시체도 보이지 않았다.

얼음 태풍의 영향으로 주변 수백여 미터는 모두 초토화가 되었다.

그러니 도경수도 피하지 못했을 것이었다.

그런데.

“휴! 이 폭풍에 휘말렸으면 위험했겠어.”

도경수가 멀쩡한 모습으로 구멍에서 걸어 나왔다.

그가 걸어나온 구멍은 BK - 11구역에서 괴수의 본거지까지 항햐는 구멍.

워낙 튼튼하고 구멍이 깊었기에 도경수와 그의 인형은 위기의 순간 그쪽으로 피한 것이다.

“후훗. 마력이 다했군.”

도경수가 투명검을 들고 다가왔다.

“너무 서러워 마! 네년은 내 최고의 인형이 될 거라 자부하지. 흐흐흐.”

무슨 상상을 하는지 도경수는 음침한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최한별은 마지막 남은 마나를 쥐어짜 얼음창 하나를 양손에 쥐었다.

죽어도 그냥 죽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제길, 차이더라도 고백이나 해볼걸.’

태준이 연희를 좋아하는 마음이야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와 함께 다니면서 조금씩 자신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을 멈출 순 없었다.

팀원들을 가족처럼 생각하는 그 마음씨가 좋았다.

늘 앞장서서 괴수를 상대하는 담담하고 강한 모습이 좋았고, 게이트에 갇힌 연희를 구하기 위해 미친 듯이 노력하는 그 모습에 가슴이 아려오기도 했다.

사실 그냥 태준과 함께하는 것 자체가 좋았다.

하지만 태준의 시선은 연희를 향해 있었다. 그 사실에 심장이 저미는 듯 아프고, 괴로웠다.

지금 이 순간은 다시 그를 볼 수 없다는 것에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개새끼, 어서 와! 죽여주지!”

최한별의 한이 서린 모습에 도경수가 잠깐 움질거렸다.

하지만 이내 웃음을 지었다.

“크큭! 발악하는 것을 보니, 살고 싶은가 보군.”

도경수가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그때였다.

“딱 거기까지야!”

익숙한 사내의 음성이 들렸다.

최한별은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절체절명의 순간, 이렇게 멋있게 나타나는 태준을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게르르릉!”

잔뜩 성난 말볼의 등에서 태준이 내려왔다.

“그만 멈추래도.”

그 목소리에 무슨 마력이라도 있는가?

도경수가 전진을 멈추고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태준의 눈을 바라보는 그 순간 온몸의 털이 모두 곤두서는 느낌이 들었다.

“나태준...”

“도경수, 못다 한 결판은 나와 내야지.”

“이 새끼, 내 인형을 죽였다고 기고만장했겠다.”

도경수가 투명검을 태준에게 겨눴다.

그리고 뒤쪽에서 도경수의 인형이 최한별 쪽으로 천천히 움직였다.

도경수는 그동안 나태준에게 졌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앞으로 나서지 않았다.

자신의 복수를 위해서 감내한 것이다.

그때 사라진 자신의 인형은 사 분의 일 정도의 힘만 가지고 있었기에 자신이 진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때와 자신의 격이 달랐다.

최강해 성주에게 산 아이템들로 인형과 본체의 힘이 같아지는 능력이 생겼다. 이제 도경수가 둘이나 있는 셈이었으니, 나태준 정도는 얼마든지 상대할 수 있었다.

“지난 번 복수를 해주지!”

도경수와 도경수의 인형이 양쪽에서 달려들었다.

그 순간 태준의 신형이 흐려졌다.

캉!

태준의 검이 도경수의 투명검을 막아냈다.

그것도 너무나 손쉽게.

푹!

그와 동시에 최한별의 얼음창이 도경수 인형의 배를 뚫어버렸다.

“컥!”

도경수의 인형이 피를 토해냈다.

그런데 앞에서 달려들던 도경수 역시 피를 토하고 있었다.

“쿨럭! 어, 어떻게?”

“어떻게 이곳이 본체인 줄 알았냐고?”

태준의 얼굴에 비릿한 웃음이 흘렀다.

“너처럼 비겁한 술수를 쓰는 자들이 저렇게 대놓고 나서진 않을 것 같아. 그러니까 이쪽이 본체겠지.”

퓨슉!

최한별이 얼음창을 뽑자, 도경수가 힘없이 무릎을 꿇었다.

그는 지금 어이없는 웃음을 지었다.

아니 너무 억울했다.

태준이 자신의 인형을 공격했다면, 인형이 당해도 자신이 뒤에서 공격했을 것이다.

그리고 본체만 당하지 않으면, 얼마든지 달아날 수도 있었고, 또다시 인형을 뽑아낼 수 있었다.

“크왕!”

말볼이 도경수의 진짜 인형의 머리를 뜯어 버렸다.

“고통을 덜어주지.”

서걱!

백정의 칼이 휘둘렸다.

도경수는 진짜로 죽음을 맞이했다.

다시 살아날 지 모르기에 깔끔한 마무리를 한 것이다.

태준을 바라보는 최한별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가 너무 반갑고, 고마웠다.

“자식, 울기는...”

“울긴 누가 울었다고 그래? 여기에 먼지가 많아서 그래.”

한별은 눈물을 훔쳤고, 태준은 고개를 돌려 연희와 최민지가 싸우고 있는 방향을 쳐다보았다.

거대한 바잘겟트가 연신 연희를 공격했고, 볼테우스는 연희의 빈틈을 노리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연희가 불리해 보였다.

말볼이 태준과 한별을 태우고, 연희를 향해 달려갔다.

하지만.

“오지 마! 최민지는 나 혼자 상대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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