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5
135. 세계 최강 헌터는 누구(1)?
태준이 말볼을 멈춰 세웠다.
자신이 최민지를 공격한다면, 드래곤들의 시선은 분산될 것이고, 승리는 확실했다.
하지만 연희는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그 질긴 악연을 끊기 위해 싸우고 있었다.
이연희와 최민지, 그들은 라이벌이었다.
한 사람은 늘 앞서 달려갔고, 다른 하나는 그 뒤에서 죽으라고 쫓아갔다.
그것은 어린 나이에 각성하고 헌터가 되어서도 이어졌다.
그리고 뒤를 따라가던 최민지의 질투는 급기야 연희의 뒤통수를 쳤고, 그녀를 죽이려고 했다.
결국, 그 때문에 연희는 2년이나 이 게이트에서 혼자 살아야 했으니, 그 원한이 깊을 것이다.
하지만.
‘처음엔 최민지를 용서할 생각이었지?’
멀찍이 떨어진 건물 위에서 연희를 바라보는 태준은 그렇게 생각했다.
인간을, 아니 헌터를 죽이지 않기 위해 늘 앞서서 괴수를 잡고, 1위 자리에서 절대 내려오지 않았다. 그것은 자신과 6학년 3반 동창들을 괴물로 만든 헌터 협회의 귀족들을 모두 죽인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그것이 어린 시절 자신이 죽인 헌터들에게 속죄하는 방법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연희도 참을 수 없었다.
또다시 자신을 죽이려는 최민지를 도저히 두고 볼 순 없었을 것이다.
“계속 쏴라! 바잘겟트!”
세 개의 머리에서 시차를 두고 쏘아지는 브레스가 위력적이었다. 저 하나만 저대로 맞는다면, 연희의 발목을 잡고, 승리의 길로 가는 것임을 최민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쉴새 없이 브레스를 쏜다.
“연희 언니가 계속 피하기만 하고 있는데?”
최한별이 걱정 어린 표정을 지었다.
“두 사람의 싸움이 언제부터 계속됐지?”
“적어도 한 시간은 된 거 같아.”
한 시간 전부터 바잘겟트가 쉬지 않고 브레스를 쏘고 있다는 말이었다.
아마도 브레스를 쏘지 못할 때까지 피하고 반격할 생각인 것 같았다.
하지만.
파지지지지직!
위에서 아래로 쏘아지는 블루 드래곤 볼테우스의 전격 브레스가 여신의 날개 형상을 스쳤다.
“큭!”
연희가 공중에서 휘청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한별이는 살짝 탄성을 질렀고, 최민지는 득의에 찬 웃음을 보였다.
“크큭! 이젠 더 피할 곳이 없을 거야. 내 드래곤들이여, 계속 몰아붙여라!”
최민지가 이기고 있는 모습이었지만, 태준은 지금 상황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연희는 날개 달린 여신의 형상을 하고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렇다면 굳이 이곳에서 바잘겟트와 싸울 필요가 없었다. 뒤로 물러서 볼테우스를 유인하거나 뒤로 돌아서 최민지와 바잘겟트를 공격하는 방법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물러서지도 않고, 일부러 드래곤들과 싸우고 있었으니, 너무 무식하고 우직한 방법이었다.
‘왜지?’
연희가 싸우는 모습을 제대로 본 적이 없었기에 그 이유를 몰랐다.
방금도 여신의 형상에 큰 타격을 입었음에도 물러서지 않았다.
게다가 엄청난 숫자의 괴수들이 도시를 완전히 파괴하며 다가오고 있었고, 곧 이곳에 도달할 것이다.
태준은 마음을 졸이며 이 상황을 지켜봤다.
“이제 끝이다! 내가 최강이야!”
쿠아아아아!
화염이 쏟아지고, 시커먼 암흑 브레스가 쏘아졌다.
여신의 형상이 급격히 흔들렸다.
‘큰일이야, 움직임이 둔해졌어.’
태준이 백정의 칼을 들었다.
이대로는 좋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막 앞으로 달려가려는데 한별이가 태준의 팔을 붙잡았다.
“오빠, 저길 봐!”
그 순간 여신의 형상 위로 커다란 은빛 잔이 반짝였다.
최민지 역시 그 잔을 보았다.
잔이 기울어지더니, 여신의 머리와 몸 위로 시뻘건 액체가 쏟아졌다.
푸른 형상이던 여신의 몸이 핏빛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연희의 몸까지 점점 붉은빛에 뒤덮였다.
연희의 입에서 주문 같은 것이 흘러나왔다.
“고통을 이겨낸 프레이야여! 그대의 힘을 보여라!”
프레이야, 그것은 전쟁의 여신 발키리였고, 그녀는 발키리들의 수장이었다.
그녀의 형상, 그것이 핏빛으로 물든 것이다.
갑자기 강대해진 연희의 기세에 최민지가 다급해졌다.
이것은 과거 SS급 보스를 잡을 때도, 그 전에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던 모습이었기에 긴장했다.
“모두 한꺼번에 쏴!”
연희가 갑자기 공중에 멈춘 상태였기에 바잘겟트의 세 드래곤의 입에서 일제히 브레스를 토해냈다.
세 개의 브레스가 앞으로 쏘아지고, 공중에서 서로 섞이며, 무시무시한 하나의 브레스로 묶였다.
뜨겁고, 강대하며, 암흑에 물든 그야말로 세상에 하나뿐인 완벽한 브레스!
그것이 적중했다.
쿠아아아아앙!
바잘겟트의 브레스가 여신을 뒤덮었다.
“크하하하! 죽어라, 죽어!”
최민지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엄청난 열기가 태준이 서 있는 곳까지 뿜어졌다.
최민지는 승리를 자신했다.
그런데 여신을 덮은 브레스가 점점 밀려나더니 갑자기 세 방향으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헉! 설마, 막은 거야?”
지켜보던 최한별이 놀란 눈빛을 보였다.
태준의 입꼬리 역시 살짝 올라갔다.
“그녀의 진짜 힘이 저것이었어.”
윤상희의 광전사처럼 파괴의 날에 자신의 피가 닿아야 발동되듯이, 그녀의 지금 스킬도 여신의 고통이 있어야 전장의 피가 쏟아지는 것이었다.
연희의 염화의 채찍은 어느새 긴 창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붉은 여신의 형상이 손에 든 기다란 창이 엄청난 브레스를 정면을 막고 있었다.
지금 가장 놀란 것은 최민지였다.
하나의 브레스도 아니고, 세 드래곤의 브레스를 연희가 창으로 막고 있었으니, 이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볼테우스! 공격해!”
연희의 머리 위에 있던 볼테우스까지 전격 브레스를 쏘았다.
파지지지직! 콰콰콰쾅!
백광이 번쩍이며, 새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하지만 전격 브레스는 여신을 상하게 하지 못했다.
프레이야의 붉은 형상이 한쪽 손을 들어 전격 브레스를 막아버렸다.
그리고 드디어 황금색 잔에서 피가 전부 쏟아지고, 잔이 사라졌다.
이제 프레이야는 완전히 핏빛으로 물들었다.
그 순간 프레이야가 시야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다.
“헛! 뭐지?”
여신이 사라지자, 드래곤들의 브레스는 허공을 갈랐다.
그 순간 태준은 한쪽을 바라보았다.
그 곳엔 붉은 여신이 긴 창을 들고 바잘겟트를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바잘겟트! 막아!”
뒤늦게 여신의 형상을 발견한 최민지가 다급한 음성으로 소리쳤다.
세 머리 드래곤이 쏜살같이 날아오는 프레이야를 향해 브레스를 뿜었다.
하지만 여신은 브레스를 피하며 창을 뻗었다.
“...볼테우스!”
블루 드래곤이 높은 곳에서 전격을 뿜어냈지만, 여신의 빠른 움직임을 따라가지 못했다.
어느새 거대한 여신의 형상은 바잘겟트 코앞까지 도달했다.
“불꽃 창! 게이르스(Geirs)!”
전쟁의 여신 발키리의 창이 찔러지고, 그것에 대항해 세 드래곤이 일제히 브레스를 뿜어냈다.
여신과 드래곤의 싸움.
천지를 울리는 굉음과 함께 두 기운이 충돌했다.
거대하고 강력한 브레스가 사방으로 퍼지며 주변 도시를 녹이고 있었고, 어디선가 몰려온 검은 구름은 비와 번개를 쏘아내고 있었다.
그때였다.
여신의 창이 이글거리며 앞으로 뻗어졌다.
“헉! 아, 안돼!”
푸욱!
브레스를 뚫은 게이르스는 바잘겟트의 하나뿐인 심장을 찔렀다.
“쿠아아아아!”
세 드래곤의 입에서 동시에 괴성이 뿜어지더니, 거대한 놈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강제 귀환한 것이다.
최민지는 믿을 수 없는 광경에 혼이 반쯤 나갔다.
그때 블루 드래곤 볼테우스가 날아오더니 그녀를 낚아채서 하늘 위로 날았다.
“최민지가 달아나!”
한별의 말에 태준이 반지를 만지작거렸다.
자신은 지금 하늘을 나는 최민지를 공격할 수 없었다. 대신 시간을 돌려 최민지가 도망가기 전으로 되돌릴 수 있었고, 5분의 시간이면 최민지 옆으로 다가갈 충분의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연희가 몸을 돌려 창으로 변한 염화의 채찍을 볼테우스를 향해 겨누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달아나게 내버려 둘 것 같으냐!”
패애앵!
거대한 여신의 손에서 불꽃 창이 날아갔다.
푸욱!
여신의 창은 볼테우스의 한쪽 날개를 완전히 뚫어버리고 부메랑처럼 돌아왔다.
그러자 볼테우스가 날개를 파닥거리며 아래로 추락했다.
그녀를 잡은 것이다.
한별이 갑자기 놀란 표정을 지었다.
“헉! 우리 괴수들에게 포위됐어!”
도시를 파괴한 거대한 괴수들이 어느새 주변까지 밀려왔다.
그들은 마치 태준을 노리고 온 것처럼 둥그렇게 도시를 포위하면서 다가왔다.
연희가 다가왔다.
“내가 길을 뚫어볼게. 그 틈에 달아나!”
프레아 여신과 이연희의 목소리가 동시에 들리며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냈다.
“아니 그럴 필요 없어. 우리 모두 함께 간다!”
태준이 한별과 말볼에 올라탔다.
“연희야, 내 위로 따라와!”
어느새 붉은빛에서 푸른빛으로 바뀐 여신의 형상이 위에서 따라가고, 말볼이 건물을 뛰어내려 괴수들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잔뜩 긴장한 한별이 얼음 장벽을 준비했다.
태준은 지금 엄청난 기세로 몰려드는 수많은 괴수를 향해 그대로 전진하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뼈도 추리지 못할 것 같았다.
그때였다.
“도살자의 시선(視線)!”
태준의 눈빛이 달려오는 괴수와 마주쳤다.
그 순간 괴수들은 두려움에 곧장 달려들지 못하고, 방향을 틀어 양옆으로 갈라졌다.
그 모습의 꼭 바다가 갈라지는 모세의 기적과도 같았다.
“달려! 말볼!”
도살자의 시선을 받은 괴수들과 뒤쪽에서 따라오던 괴수들이 부딪혀, 자기들끼리 서로 뒤엉키고, 쓰러졌다.
엄청난 먼지가 피어올랐고, 괴수들이 격렬하게 머리를 흔들었다.
그리고 정신을 차린 괴수들이 다시 태준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꼭 태준이 자신들의 어미를 죽인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
최민지가 눈을 떴다.
자신이 떨어진 곳은 숲 가장자리였다.
온몸이 부서질 것 같은 충격에 쉬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숨을 쉴 때마다 한쪽 가슴 전체가 아픈 것이 갈비뼈가 몇 개 부러진 것 같았다.
쿵! 쿵!
하지만 괴수가 다가오는 소리에 힘겹게 일어나야 했다.
“제길, 볼테우스 일어나!”
한쪽 날개를 잃은 볼테우스는 더는 하늘을 날지 못했다.
게다가 아래로 떨어진 충격에 여기저기 큰 상처를 입었다.
그런데도 주인을 위해서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쿠아아악!”
그때 숲에서 SS급 괴수 데블로스가 불을 뿜으며 모습을 보였다.
화아아아아!
“막아!”
볼테우스가 몸으로 거센 불길을 막았다.
화르르르르!
그러나 워낙 불길이 거셌기에 뒤에 있던 최민지까지 덮쳤다.
그때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거센 불길에 인간의 몸은 타들어 가야 정상이었지만, 최민지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거센 불꽃이 그녀의 몸에 접근조차 하지 못했다.
최민지가 급하게 숲으로 몸을 피했다.
“시발, 어쩌다가 내가 이런 꼴이 된 건지!”
그녀는 화염 저항의 팔찌(레전더리급)를 차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팔에는 얼음 저항의 팔찌(레전더리급)을 차고 있었고, 양발에는 독 저항의 각반과 전격 저항의 각반을 차고 있었다. 모두 레전더리급 아이템이었으며, 몸속에는 전설의 미스릴 갑옷(레전더리급)을 입고 있었기에 웬만한 물리 공격은 막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손가락에는 각종 마법 공격에 대비한 레전더리 반지와 감응력을 높이는 반지도 있었고, 몸을 안 보이게 하는 투명 목걸이까지 있었다.
“쿠에에에에엑!”
볼테우스가 강제 귀환했다.
수십 마리의 괴수가 몰려와 볼테우스의 몸뚱어리를 찢었기에 더는 버틸 수 없었다.
다행히 그 때문에 이렇게 숲으로 몸을 피할 수 있었다.
“제길! 아직 감응력이 부족해...”
기가테스를 다시 부르기엔 감응력이 부족했다.
적어도 한나절은 지나야, 드래곤 하나를 소환할 수 있는 감응력이 채워질 것이다.
하지만 걱정은 하지 않았다.
온몸에 수조 원대의 아이템을 차고 있었기에 괴수 무리와 직접 부딪히지만 않는다면, 이런 위급한 상황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다.
“헉헉! 이연희, 이 죽일 년...”
깊은 숲으로 들어가자, 더는 거대 괴수들이 쫓아오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큰 나무를 등에 지고 잠시 호흡을 고르고 있었다.
“다음에는 반드시 복수하고 말 테다.”
그때였다.
“게릉?”
작은 티볼(F) 한 마리가 최민지 앞에서 멈춰섰다.
몸 크기가 작은 것이 아직 새끼였다.
티볼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최민지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저리 가! 콱 죽여버리기 전에.”
최민지가 손을 휘저었다.
그런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