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7
137. 드러나는 실체(1).
거대하고 흉측한 괴수가 사람들을 죽이고, 먹어 치운다.
그런데 이 괴수가 어디서 왔는가?
그것은 당연히 게이트에서 왔다고 누구나가 대답했다.
하지만 게이트가 왜 발생했는가?
이 원론적인 물음에 이 세계 누구도 확실한 답변은 하지 못했다.
가장 그럴싸한 가정은 외계인의 침략이었다.
고도의 과학 기술을 가진 문명이 차원을 넘나들 수 있는 게이트를 만든다. 그리고 자신들이 키운 괴수를 먼저 보내 인간의 씨를 말린 다음에 천천히 지구를 점령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가설은 신의 개입설이었다.
타락한 세상을 정화하기 위해 신이 게이트를 만들고 자신들의 애완동물인 괴수를 보내 인간의 씨를 말리려는 것이다.
물론 어떠한 가설을 내세워도 구멍은 있었고, 다행히 지금 지구와 인류는 헌터들 때문에 안전했다.
그런데 지구 최강의 헌터라고 말하는 연희가 이 모든 사단은 한 사람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러니 누가 쉽게 믿을 수 있겠는가?
강남역으로 향하는 레드 드래곤 벨록스의 등 위에선 무거운 침묵이 맴돌았다.
“그러니까 최강해가 게이트를 관리한다는 말이야? 게이트를 생성하고 닫고 그런 상황을 모두?”
“그래.”
연희의 대답은 확고했다.
“그가 게이트 반지를 이용해서 괴수가 있는 티베리안 차원과 우리 세상을 잇는 게이트를 생성하는 거야.”
역시나 다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연희의 말이었기에 가능성은 열어놓았다.
태준이 물었다.
“연희 너도 게이트 반지가 있으니까? 게이트를 만들 수 있는 거야? 저쪽 차원과?”
연희가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나는 클래스가 샤먼이라 이 게이트 반지의 능력을 일부만 사용할 수 있어. 최강해처럼 차원과 차원 사이를 잇는 게이트를 그것도 동시에 여러 개 만들려면, 게이트 특성을 가진 헌터가 있어야 해.”
“게이트 특성?”
“나도 정확히는 모르는데, 게이트 반지의 설명에 그런 헌터 클래스가 있다고 적혀 있어, 게이트를 관리하는 클래스가...”
연희의 말을 듣는 이 순간 모두 단 한 사람을 떠올렸다.
“혹시, 기태가?”
“기태가 그런 클래스 일 수도 있겠다. 기태는 게이트 파장을 읽는 능력이 있으니까.”
“허! 게이트를 만드는 능력이라, 엄청난데!”
한수진의 말에 이연희가 고개를 흔들었다.
“기태가 그런 클래스인 것은 지금 중요하지 않아. 지금 중요한 건, 최강해가 그런 특성을 가진 게 분명하다는 거야. 그러니까 그를 당장 멈춰야 해!”
연희의 열변에 태준과 팀원들은 최강해에 대해 떠올렸다.
그런데 그가 왜 게이트를 만들어 인류를 죽이려 하는지 그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다.
태준이 물었다.
“그런데 최강해가 왜 그런 짓을 꾸미는 거지? 그래서 자기가 얻는 이익이 뭐야?”
“내가 지난 2년간 티베리안 차원에 있으면서 그곳에 살았던 문명인에 대한 정보를 꽤 모은 게 있어. 그들은 완전히 멸종한 게 아니라 다른 차원으로 피신한 거고, 우리 지구로도 상당한 티베리안인들이 넘어갔다고 되어 있어.”
“우리 지구에도? 그럼?”
“그래 내 생각에는 최강해가 티베리안인일 것 같아.”
연희가 자신이 게이트 저쪽 차원에서 알아 본 것들을 추가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티베리안인들은 자신들의 고향 행성과 티베리안 차원으로 돌아가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카라차크라와 괴수들을 이기는 방법이 그들에게는 없었다.
괴수들은 이미 태어날 때부터 티베리안인의 모든 무기와 특성 등에 면역이 유전자에 새겨져 있었기에 그들이 가진 그 어떠한 최첨단 무기로도 괴수들을 죽일 수 없었다.
그리고 자신들은 그 숫자가 현저하게 부족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지구인들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물론 다른 차원으로 간 티베리안인들도 그곳 차원의 생명체를 이용해 괴수를 처단하는 방법을 계속 시도하고 있었다.
그중의 하나가 헌터였다.
헌터의 능력을 티베리안인들이 만들거나 심은 것은 아니었다.
그들이 다른 차원과 차원을 연결하고 다니면서 서로 알 수 없는 기운들이 섞이거나 충돌했고, 그것이 헌터라는 특수한 각성 인자로 인간들의 몸에 스며든 것이다. 그리고 헌터들은 다른 차원의 힘을 받아 초인적인 힘을 낼 수 있었고, 그 각 차원의 특성이 여러 클래스를 만들었다.
그랬기에 마법사나 전사, 궁사, 소환사, 정령사, 네크로맨서, 샤먼 등의 여러 클래스가 생겨날 수가 있었다.
티베리안인들은 차원 게이트를 열면서 괴수가 사는 작은 행성들과 티베리안 행성으로 게이트를 생성해 헌터를 보냈고, 헌터들이 임무를 완수하면 게이트를 닫는 방식으로 그동안 게이트를 관리하고 남몰래 헌터들의 능력을 키웠다.
그리고 드디어 티베리안인들은 자신들이 만든 괴수인 카라차크라(SSS)를 인간 헌터의 힘을 빌려 죽였다.
지난 18년간 게이트 발생으로 괴수에게 죽은 인간 숫자가 어마어마했다. 이 모든 것은 그들이 차원 게이트를 열었기 때문에 생긴 것이었고, 이제는 그들이 남은 괴수를 죽이기 위해 무슨 짓을 할지 알 수 없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은 인간을 이용했고, 앞으로도 이용할 것이다.
그렇기에 그를 막아 더는 게이트가 생성되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해야 했다.
연희가 저들의 우주선에서 알아낸 정보에 의하면 게이트 반지는 모두 열두 개.
그중에서 지구와 티베리안 차원을 직접 연결하는 게이트 반지는 2개였다. 그 2개를 파괴하면 티베리안 차원의 괴수는 지구로 올 수 없었기에 더는 괴수와 싸울 필요가 없었고, 인류는 괴수로부터 완전히 해방될 것이다.
저 멀리 강남역이 보이자, 태준이 상태창을 열었다.
[나태준]
- SSS등급
- 체력 : 2,509
- 마나량 : 143(208)
- 클래스 : 괴수 백정, 도살자(屠殺者).
- 특성 : 관찰(lv22), 도살(lv25). 해체(lv31), 감식(lv20).
- 특기 : 비대각(批大卻). 도대관(導大窾). 난도(亂刀)(lv21)
- 각성 : 할야(割也), 절야(折也), 흡혈(吸血), 섭취(攝取), 재생(再生), 포효(咆哮).
- 도살자 업적 : 괴수 학살자(SSS), 독 수련자(SSS). 괴수의 영혼을 거두는 자(SSS).
- 패시브 스킬 : 지경긍경지(技經肯綮之), 동화(同化).
- 백정 특수 스킬 : 유인유여(游刃有余), 동도심미(動刀甚微), 도살자의 시선(視線), 도륙(屠戮), 포정해우(庖丁解牛).
체력이 2,500이 넘고, 모든 백정 스킬이 20레벨이 넘어섰다.
그제야 SSS등급으로 오른 것이다. 그리고 업적들도 모두 SSS등급이 되었다.
태준이 SS급 헌터가 됐을 때는 백정 특수 스킬이 여러 개가 생겼으나, SSS급이 된 후에는 단 하나의 스킬만 생겼다.
포정해우(庖丁解牛)!!
[포정해우(庖丁解牛) - 포정(庖丁)이 이룬 달인의 경지.
몸과 백정의 칼이 하나로 되며, 칼이 손길 가는 데로 마음 가는 데로 움직인다.]
그러고 보면, 처음부터 자신의 클래스는 다른 헌터들과 달랐다.
특히 연희의 설명을 듣고 나자, 이건 다른 차원에서 받은 클래스가 아니라, 현재 내가 사는 지구에서 받은 클래스인 것처럼 느껴졌다.
이제 최강해를 잡고, 게이트 반지만 확보하면 이 고단한 전쟁도 끝나는 것이다.
“형! 다 왔어!”
태준과 연희, 팀원들이 벨록스에서 그냥 뛰어내렸다.
그들은 급했다.
그러나 모두 강남역을 이 잡듯 뒤졌지만, 지하 헌터 시장으로 가는 포털을 관리하는 이를 찾을 순 없었다.
태준이 바닥에 누워있는 한 헌터에게 물었다.
“언제 지하 헌터 시장에서 나왔습니까?”
“한 며칠 됐어. 그 썩을 놈들이 예고도 없이 갑자기 내쫓는 바람에 술을 마시다가 튕겼어. 뭐, 덕분에 술값은 굳었지만. 크큭.”
연희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이미 한발 늦었어.”
“제길, 어디로 갔을까?”
“어딘가에 꼭꼭 숨어 있겠지.”
SS등급 게이트가 사라지자 사람들이 돌아오고, 전철역에도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이연희다!”
“이연희 헌터가 살아있었어!”
사람들이 연희를 알아보며 몰리기 시작했다.
“일단, 사람이 더 몰리기 전에 가자!”
태준은 최규환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번 일은 자신들만 알아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인류의 모든 헌터가 최강해와 그 일당을 찾아야 했다.
***
최규환이 새로운 국가 헌터원의 수장이 됐다.
이철용이 죽자마자, 기회를 잡은 것이다.
“어서 와! 태준아.”
최규환은 커다란 붉은 드래곤에서 내린, 새로운 절대자인 태준을 향해 반갑게 웃어 보였다.
“중요한 자리에 앉았군.”
“다, 태준이 덕분이지.”
실제로 그랬다.
SS급 헌터 최규환이 이 자리에 앉을 수 있던 것은 나태준이 이철용과 그 측근들을 모두 처리했기 때문이었다.
“앞으론 국가와 국민에게 봉사하면서 살려고.”
최규환은 이 말을 잊지 않았다.
자신이 이철용과 다르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었다.
이철용은 세상을 지배할 욕심이 있어 무리하게 일을 진행 시켰다면, 최규환은 그저 이 자리만을 길게 유지할 생각인 것이 다른 점이었다.
태준이 물었다.
“그래, 내가 부탁한 일은?”
“당연히 했지, 모두 회의실에 모였어.”
태준의 도살자 길드는 헌터 협회에서 김상국의 신화 길드에 이어 2번째로 규모가 큰 길드가 됐다.
그러나 길드 규모를 제외한 다른 것은 모두 도살자 길드가 최고였다.
이연희까지 도살자 길드에 가입하면서 SSS급 헌터가 둘이 되었고, SS급 실력자들도 다수 포진되어 있어 최강의 길드가 된 것이다.
“그럼 들어가자.”
태준과 연희가 회의실로 들어가자, 헌터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는 SSS급 괴수를 처리한 SSS급 헌터에 대한 존경의 표시였다.
태준이 앞자리에 앉고, 연희가 강단에 섰다.
그녀는 SS등급 게이트에서 일어난 일과 최강해, 그리고 티베리안인들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을 가감 없이 헌터들에게 설명했다.
이 모든 것이 티베리안인들이 고향별로 돌아가기 위해 인간들을 이용했다는 말에 헌터들이 분노를 삼키고 있었다.
그리고 여태껏 최강해의 지하 헌터 시장을 이용했던 헌터들은 이제야 그곳이 수상하다는 것을 곱씹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 최강해를 찾는 것이 시급합니다. 그자가 언제 다시 차원 게이트를 열지 모릅니다.”
연희의 말이 끝나자, 몇몇 헌터들이 손을 들었다.
“이미 괴수들의 어미가 죽었으니, 게이트가 열려도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거 아닙니까?”
대답은 강단 옆에 서 있던 최규환이 했다.
“여기 있는 나태준 헌터와 이연희 헌터, 그리고 도살자 길드원들과 우리 국가 헌터원의 헌터들이 게이트가 닫히는 그 마지막 순간까지 셀 수 없이 많은 괴수를 죽였지만, 아직 티베리안 차원엔 괴수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S등급 이하의 괴수는 스스로 번식할 수 있으니, 괴수들이 한 번에 크게 줄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니 게이트가 열리면 다시 그것들이 지구로 몰려올 겁니다. 아직 전쟁은 끝이 아닙니다.”
헌터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때 신화 길드의 김상국이 손을 들었다.
그와 신화 길드의 헌터들은 공략팀의 절반이나 되는 헌터를 잃었지만, 그래도 SS급 게이트 빠져나왔다. 그러고 보면 김상국의 목숨은 참 질겼다.
“최강해를 잡으면 어찌할 겁니까?”
“많은 인류를 죽인 죄를 물어 처단해야 합니다.”
이연희가 강하게 발언했다.
최강해 때문에 많은 인간이 죽었으니, 당연한 것이었다.
“그럼 최강해가 가지고 있는 게이트 반지는 어찌합니까?”
김상국이 진짜 궁금한 것은 지금 질문이었다.
그리고 다른 헌터들도 그것이 궁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