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살자-140화 (140/149)

# 140

140. 드러나는 실체(4).

“그러니까 적당히 해. 아니면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수도 있어.”

태준이 바닥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휙휙휙! 탁!

바닥에 박혀 있던 백정의 칼이 날아와 그의 손에 잡혔다. 그리고 김상국의 목에 서슬 퍼런 칼날이 겨눠졌다.

“허헉, 이게 무슨 짓이야...”

“내 말을 들었으면 알 텐데. 넌 최민지와 도경수, 이철용이 어떻게 죽었는지만 항상 상기하고 있으면 돼.”

“아, 알았어.”

김상국은 머리와 등에 비 오듯 땀을 흘렸다.

“그만 가지.”

“그...그래.”

최규환과 김상국은 옛 헌터 협회 건물이자, 이제 도살자 길드의 건물이 된 곳에서 밖으로 나갔다.

그들이 나가는 모습을 꼭대기 층에서 연희가 확인하며 말했다.

“정말 뻔뻔한 놈들이네. 태준아, 도와줘서 고마워.”

“뭘, 아무것도 아닌 걸 가지고, 이제 당분간 귀찮게 하지 않을 거야.”

“그래, 근데 그 칼에다가 귀환의 룬은 언제 새겼어?”

“귀환의 룬? 안 새겼는데?”

“뭐?”

태준은 웃으며 자신의 칼을 만지작거렸다.

***

밖으로 나온 김상국이 고급 승용차에 타자마자, 인상을 찡그렸다.

“씨발, 씨알도 안 먹히는군.”

“게이트 반지만 문제가 아니야. 진짜 큰 문제는 게이트야. 놈이 게이트 발생 위치를 쥐고 있으니까. 이대로라면 앞으로 도살자 길드는 쭉쭉 뻗어 나갈 거고, 우린 그들이 흘리는 콩고물이나 주워 먹어야 할 거야.”

“그건 이미 시작됐어. 이번에 발생한 게이트도 A등급 아래만 우리에게 나눠줬고, S등급 게이트는 자기들이 싹 가져갔잖아.”

“휴! 맞아. 무슨 방법을 찾아야 해!”

실제로 그랬다.

이번에 발생한 S등급 게이트는 혼란을 피하려고 태준이 일부러 도살자 길드에만 배정했다.

그 이유는 S등급 게이트가 발생하는 장소가 티베리안 차원 중에서 티베리안 행성에서 열렸기 때문이었다.

그곳에서 티베리안인들과 마주쳤고, 놈들이 숨어 있었기에 헌터들의 피해를 최소화 하려는 이유였다.

S등급 게이트부터는 티베리안 차원 중에서 티베리안 행성에서 열렸고, 그 아래 등급은 괴수들이 장악한 여러 작은 행성에서 열렸다.

김상국이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우리가 먼저 최강해를 찾아야겠어.”

***

“좌우 제대로 살펴!”

괴수의 이빨로 만든 화살을 겨눈 한수진이 날카로운 눈매로 주변을 경계했다.

“아무것도 없어.”

“기태야 게이트가 어느 쪽이야.”

기태가 한쪽 방향을 손으로 가리켰다.

“여긴 상희씨가 말볼과 함께 지키고, 나머진 나를 따라간다.”

태준의 팀원들이 게이트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제길, 또 사라졌어.”

그곳엔 최강해는 없었다.

그리고 덩그러니 게이트 하나만 남아 있었다.

“그놈이 우리를 가지고 노는군.”

벌써 몇 번이나 같은 방식에 당했다.

연희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야. 최강해는 지금 티베리안 행성에 숨어 있는 티베리안 인들을 다른 차원으로 옮기고 있는 게 분명해.”

게이트 앞쪽에 우주선과 티베리안인들이 들어간 흔적이 있었다.

전에는 게이트를 열고 짐을 우주선으로 옮겼지만, 태준 일행의 습격으로 이동 준비를 완전히 마친 다음에 게이트를 열고, 자신들이 오기 전에 곧바로 우주선을 게이트로 옮긴 것 같았다.

“아무래도 최강해는 다른 차원을 열 수 있는 게이트 반지도 있는 거 같아.”

“그럴까?”

“전에도 그가 만든 게이트가 지구가 아닌 다른 차원으로 가는 게이트였잖아.”

처음엔 기태가 최강해의 위치를 찾는 것은 티베리안 차원과 지구를 잇는 게이트를 만드는 순간인 줄 알았다.

하지만 몇 번을 반복하자, 그것이 아닌 것을 알았다. 최강해가 티베리안 차원이나 지구에서 무조건 게이트를 만들면 그 순간을 알아차리는 것이었다.

기태가 확인해야겠지만, 눈앞에 이 게이트도 지구가 아닌 다른 차원으로 연결된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까 놈은 다른 차원으로도 이동할 수 있다는 거야.”

정기용이 검을 검집에 넣으며 말했다.

“젠장, 그럼 놈을 영원히 잡을 수 없을지도 모르겠네.”

기태가 가진 게이트 반지의 능력으로는 두 차원을 오갈 수 있는 것이었지, 다른 차원으로는 갈 수 없었다.

뭔가 경우의 수가 복잡해졌다.

확실한 건 이대로라면 최강해를 잡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하지?”

“일단 돌아가자.”

태준 일행은 다시 한번 허탕을 치고, 지구로 돌아왔다.

그리고.

“사실대로 말하면 풀어줄 수도 있어.”

“흥, 거짓말! 지구인들이 이미 우리를 증오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여기서 나가도 우린 죽은 목숨이겠지.”

“네가 원하면 티베리안 행성이나 티베리안 차원의 다른 행성으로 보내줄 수도 있어.”

“뭐?”

“티베리안 행성은 아직 괴수가 많지만, 최강해 그놈이 무분별하게 게이트를 많이 만들어 작은 행성에는 이미 괴수의 씨가 마르고 있지. 너와 동료들을 그중의 한 곳에 보내줄 수도 있어. 그곳에서 조용히 산다면 우린 너희를 다시 찾을 이유도 없고.”

눈앞에 이놈은 티베리안 포로였고, 최강해 성주의 집사였다.

“자 이제 말해보실까? 최강해가 갑자기 게이트 숫자를 늘린 이유가 뭐지?”

최근 들어 A등급 이하, 낮은 등급의 게이트 숫자가 몇 배나 늘었다.

물론 지구의 헌터들이 충분히 막을 수 있었기에 피해는 거의 없었지만, 그 이유가 궁금했다.

이는 최강해가 무엇을 꾸미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이곳에서 이렇게 살다가 죽을 텐가?”

태준이 다시 물었다.

“티베리안인들을 어디 차원으로 보내는 거지? 네놈들의 대장은 너희를 버리고 혼자만 도망갔어. 너희는 버려진 거야.”

자신들이 버려졌다는 말에 집사의 눈동자가 잠시 흔들렸다.

하지만 아무런 입도 열지 않았다.

그때였다.

쾅!

갑자기 정기용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대장, 놈들의 계획을 알아냈어.”

태준이 티베리안인을 보며 웃으며 말했다.

“어떻게요?”

“내 아기 동자 샤먼 있지.”

“네.”

“사람들의 과거만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티베리안 놈의 최신 과거를 들여다보는 걸 성공했어.”

“누구요?”

“2층 포탈을 지키던 놈 있지. 그놈의 과거를 들여다봤는데 최강해와 게이트에 관해 대화하는 부분이 있었어.”

“잘됐네. 그럼 나갑시다.”

“이놈들은 이제 필요 없겠는데.”

“일단, 나중에 처리하고 지금은 계획을 들어보죠.”

정기용이 나가고 나태준이 뒤를 따라 나가려 했다.

“자, 잠깐.”

최강해의 집사가 태준을 붙잡았다.

“내게, 그놈이 모르는 정보가 많다.”

“뭐?”

“그놈은 아는 정보가 적어. 계급이 낮기 때문이지. 난 티베리안 귀족이다.”

“이제야 협상하겠다는 건가?”

“지구인들이 이런 말을 하더군. 똥 밭에서 굴러도 이승이 낫다. 나도 살고 싶네.”

태준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사실 정기용은 지금 연극을 한 것이었다.

“좋아. 정보의 효용성이 크다면, 애초 약속대로 풀어주지.”

티베리안 귀족이 아는 정보를 말하기 시작했다.

“지금 최강해는 여러 차원으로 흩어진 티베리안 함대를 한 차원에 집결시키고 있다. 그러기 위해선 일단 티베리안 차원으로 먼저 이동하고, 그다음에 다른 차원으로 갈 수가 있지.”

12개의 게이트 반지는 모두 티베리안 차원이 중심이었고, 다른 차원이 연결되어 있었다.

“한 차원으로 집결시키는 이유는 뭐지?”

“그곳 차원을 점령해 거점으로 만들려고 하는 거지. 그리고 그 작업은 이미 시작됐다.”

“거점을 만든 그다음엔 티베리안 차원으로 돌아오는 거겠지?”

“잘 아는군.”

그들이 티베리안 함대를 집결시키고 있는 차원 역시 지구의 헌터들처럼 괴수를 공략시키기 위해 게이트를 발생시키고 이용하던 곳이었다.

그러나 이젠 카라차크라가 죽었기에 그럴 필요가 없었다.

게이트는 지구에만 계속 생성시키면 알아서 괴수 숫자는 줄어들 것이고, 자신들은 그사이에 한쪽 차원을 점령해 그곳을 전진기지 삼아 티베리안 행성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리고 차원 게이트를 이용해 지구나 다른 차원을 점령할 생각이었다.

“지금은 티베리안 차원의 작은 행성들을 연결하는 게이트를 중점적으로 발생시키지만, 머지않아 이곳과 티베리안 행성을 연결하는 S급과 SS등급의 게이트를 쉴새 없이 열거야. 그렇게 되면 지구의 인간과 괴수의 전면전이 벌어지는 거지.”

“그게 최강해의 속셈이었군. 둘이 싸우다가 한쪽에 괴멸하는 거.”

“아니, 무조건 지구인들이 이길 거로 생각하지. 물론 피해는 크겠지만.”

태준이나 연희, 그리고 높은 등급의 헌터들이 많았기에 게이트가 수십 개가 열리고, 괴수들과 전면전이 벌어져도 최종적으로 인간들이 이길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그 피해는 엄청날 것이다.

100만 헌터라고는 하지만 얼마나 많은 헌터들이 죽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리고 살아남은 그들에겐 티베리안 함대의 대대적인 침공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원대한 계획은 이미 실행됐다.

“그리고 지금쯤이면 거의 함대가 집결했을 거야.”

“그곳 차원이 선택된 이유가 뭐지?”

그 질문에 티베리안 귀족의 표정이 움찔거렸다.

“이봐, 대답해!”

“이왕 입을 열었으니, 모두 다 말해주지. 아 그전에 내 이름은 살바야 최강해에게 몸을 기탁하곤 있었지만, 고귀한 티베리안 정통귀족이지.”

“그래 살바. 계속 말해봐.”

살바가 쓴웃음을 지었다.

“이 우주와 차원엔 참 신기한 일들이 많아. 특히 저쪽 차원엔 마법이니, 드래곤이니, 언데드, 그리고 또 모였지?”

“정령?”

“맞아! 아무튼, 우리 함대가 향하는 저쪽 차원엔 그런 것들이 살고 있고, 우리도 알지 못하는 미지의 영역이 많지. 너희들이 소환하는 것들도 대부분 그곳 차원에서 소환하는 거야. 물론 본래의 힘보다 절반밖에 쓰진 못하지만.”

살바의 말처럼 참 신기한 일이었다.

자신들에게 힘을 빌려주는 대부분의 소환수나 마법, 정령까지 모두 그들이 향한 차원에 실제 존재하는 생명체였다.

그것들이 어떻게 소환되고, 또 다른 차원에서 죽어도 강제 귀환하고 또다시 소환되는 것인지, 여러 차원 게이트가 한꺼번에 열린 영향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짐작만 할 뿐이다. 고도의 과학 문명을 가진 티베리안인들도 알지 못하는 것을 지구인들이 어찌 알겠는가.

“자신만만하군. 그쪽 차원의 생명체가 쉽게 당할 것 같진 않은데.”

“뭐, 함대의 힘을 한곳에 집결시키면 불가능하진 않아. 괴수들에게는 우리의 힘이 통하지 않았지만, 다른 생명체에겐 매우 위협적이지. 너희 헌터들도 막을 순 없을 거야.”

살바는 자신만만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러자 태준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크게 착각하고 있군. 약속대로 너와 포로들은 살려 주지. 하지만 너희 종족이 멸망하는 것을 지켜봐야 할 거야.”

“뭐?”

태준은 마지막 말을 하고 밖으로 나왔다.

“모두 들었지?”

“그래.”

태준의 팀원들이 모두 이를 갈고 있었다.

그놈들은 고마움이나 상생이란 것을 전혀 모르는 종족이었다.

“모두 괴수 부산물로 만든 장비와 무기를 착용하고, 대기시켜.”

“태준 오빠, 어떻게 할 건데?”

최한별이 물었다.

그러자 다른 팀원들도 모두 태준의 입을 바라보았다.

“그놈들이 저쪽 차원을 점령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놈들을 친다.”

“가자!”

“이참에 티베리안 놈들의 씨를 말려주지.”

“게르르르!”

말볼까지 사나운 이빨을 드러냈다.

***

“태준 삼촌, 티베리안 차원에 게이트가 또 열렸어요.”

태준이 기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기태를 알지 못했거나, 기태가 옛날에 칠성그룹의 박애란 팀장에게 이용당하다가 죽었다면, 자신들은 최강해와 티베리안인들의 음모를 절대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저 죽을 때까지 괴수와 싸우다가 마지막 순간 티베리안 함대의 침공으로 멸망을 맞았을 것이다.

그것을 또래 애들보다 한 뼘이나 작고, 자폐아 증상이 조금 있어 늘 안쓰러운 소년이 알아낸 것이다.

“기태야, 고맙구나! 이제 삼촌과 이모들이 알아서 할게.”

태준이 200명의 결사대를 쳐다보았다.

그들 대부분은 SS급 게이트에서 태준과 함께 싸운 전우들로 모두 SS급 헌터들이었다.

“가자!”

지구의 헌터들이 기태가 만든 게이트로 차례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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