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1
141. 새로운 세상에서의 전쟁(1).
몸이 가볍다.
그것은 태준만 느끼는 것이 아니었다.
티베리안 행성에서 차원 게이트를 통해 새로운 세상에 도착한 모두가 그러했다.
티베리안 행성은 중력의 힘이 지구보다 높았기에 헌터들이 더 많은 힘을 내야 했고, 그것은 경험치로 이어졌다.
그런데 이곳 차원은 중력의 힘이 지구보다 약했기에 몸이 가벼웠다.
최한별이 자신의 상태창을 보더니 놀란 표정을 지었다.
“마나양이 거의 1.5배로 늘었어. 게다가 마력이 몸에서 넘치고 있어!”
“헉! 태준이형, 나도 감응력 수치가 상당히 늘었어. 이 정도면 카올렌과 벨록스를 동시에 소환해도 수치가 많이 남아. ”
이수호도 놀란 표정을 지었다.
마법사는 마력양이 늘었고, 소환수는 감응력 수치가 많이 올랐다. 전사는 힘이 넘쳤고, 모든 클래스의 능력치가 상향되었다.
자신들이 이곳에서 빌려 쓰는 힘이 직접적으로 작용하는 것 같았다. 그랬기에 모두의 능력이 큰 폭으로 올라갔다.
하지만 태준은 중력의 영향으로 몸이 조금 가벼워졌을 뿐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어? 그런데 우주선이 사라졌는데?”
수진이가 두 눈을 비볐다.
자신들 보다 앞서 게이트 안으로 들어간 티베리안 우주선이 보이지 않았다.
“저기 자세히 봐! 사라진 것이 아니라 안 보이게 위장한 거야.”
태준이 가리킨 방향을 살피자, 공간이 일그러진 곳이 보였다.
그들은 느린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정말 저기 있네.”
“저놈들이 이곳의 생명체에게 들키지 않게 은밀히 이동하는 것 같아.”
연희가 태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최강해도 아직 특정한 장소에 게이트를 만드는 건 하지 못한다는 말이네. 가능했다면 바로 집결지에 게이트를 만들었을 테니까.”
“그렇다고 봐야지. 아니면 이곳 차원에서만 그런 걸지도 모르고.”
위장한 우주선이 조금씩 멀어지고 있었다.
“대장, 이제 어떻게 하지?”
한별의 물음에 태준이 주변을 자세히 살피고 명령했다.
“저 우주선을 따라간다.”
게이트로 들어온 우주선은 일정한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분명 집결지로 가는 것이었다.
“수호야. 네가 카올렌을 소환해 높은 곳에서 조용히 우주선을 감시하고, 우리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저들을 추격한다.”
“알았어.”
저들이 자신들의 추격을 눈치챈다면, 집결지로 향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상당한 거리를 두고 따라갈 생각이었다.
수호가 오랜만에 블랙 드래곤 카올렌을 소환했다.
“나와라! 카올렌!”
대지에 푸른 오망성이 일렁거리며 빛을 뿜었다.
그 빛이 너무 밝아 바라보던 이들이 순간 고개를 돌리거나 눈을 깜빡일 정도였다.
“벌써, 큰 힘이 느껴지는데.”
고오오오오오!
주변의 땅이 흔들리고, 푸른 오망성에서 빛이 솟아올랐다.
평소 조용히 소환수가 소환된 것과는 더 격한 반응이었다.
“쿠아아아아!”
커다란 블랙 드래곤 카올렌 그 형체를 드러냈다.
카올렌이 시커먼 눈으로 이수호를 바라보았다.
“오랜만이다 계약자여! 나를 불렀는가?”
“헉!”
지금 이 순간 이수호의 얼굴이 놀람과 기쁨의 감정에 상기 되었다.
“너 우리 말을 할 줄 알았어?”
“난 너와 감응해 너의 지식을 통해 말하고 있다.”
“아! 나는 네게 부탁할 것이 있어.”
“이미 알고 있다. 너와 나는 이미 하나다.”
카올렌이 말을 하자, 헌터들은 당황했다.
하지만 이수호는 뭔가 감동한 듯했다.
태준이 수호에게 말했다.
“수호야, 먼저 저 우주선이 보이는지 물어봐.”
수호가 말을 하기도 전에 카올렌이 무시무시한 고개를 돌리며 대답했다.
“난 우주선의 왜곡된 존재를 느낄 수 있다. 인간들의 대장이여.”
“그럼 은밀히 저 우주선을 하늘에서 추격해줘.”
“나는 남쪽 오르쿠스 밀림의 지배자, 카올렌! 이 세계를 위협하는 자들을 쫓겠다.”
부아아앙!
카올렌이 공중으로 치솟았다.
“허!”
“이거 실화냐?”
“카올렌이 말을 했다면, 내 드래곤도 말을 하겠지? 아, 떨린다.”
그린 드래곤 마르시아스를 소환할 수 있는 신정필 역시 가슴이 두근거렸다.
“아직은 소환하지 마. 지금은 집결지를 알아내는 게 순서야.”
“알았어. 대장.”
카올렌이 공중으로 날아가고 우주선이 완전히 멀리 사라지자, 그제야 일행을 움직였다.
이수호가 천천히 걸으면서 지도를 그려 태준에게 내밀었다.
“이건 뭐야?”
“카올렌이 이 부근의 산과 강, 계곡, 그리고 인간들의 중요한 성과 도시를 표시한 지리를 알려줬어.”
“인간? 이곳에 인간도 있어?”
“있다고 그러네.”
그렇다면 이곳의 인간과 대화를 통해 티베리안인들을 함께 공격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우주선은 인적이 없는 산악 지역이나 깊은 숲 위로 가고 있었다.
덕분에 추격대가 고생하고 있었다.
“그냥 드래곤이나 소환수에 타고 따라가면 좋을 텐데.”
정기용이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연희는 추격하는 내내 긴장을 풀지 않았다.
접신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그녀의 감각은 매우 뛰어났고, 먼곳에서 강한 기세가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게르르릉!”
잔뜩 긴장한 말볼이 갑자기 이빨을 드러냈다.
“전투 준비!”
태준의 말 한마디에 헌터들이 전방을 향해 무기를 겨눴다.
“티베리안 놈들에게 걸린 건가?”
“글쎄, 카올렌이 발견하지 못했으니, 다른 것일 수도 있지."
그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으니, 곧 그 정체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잠시 후, 나무 사이를 빠르게 오고 가는 검은 인형들이 보였다.
“수진아!”
“알았어!”
패앵! 탁!
화살이 날아가 가장 앞쪽에서 다가오는 인형의 바로 아래에 박혔다.
이는 더 다가오지 말라는 경고의 의미였다.
“응? 저건 엘프인데!”
평소 하이엘프를 소환하는 소환사 고상식이 멀리서 움직이는 인형을 보고는 단번에 알아보았다.
“엘프라고?”
“분명해, 대장. 그리고 점점 그 숫자가 늘고 있어.”
그 숫자가 적어도 수백은 되어 보였기에 긴장감이 느껴졌다.
“저들과 대화를 할 수 있을까?”
“나는 안 되지만, 내 소환수라면 가능할 거야.”
고상식이 하이엘프 세 마리를 소환했다.
곧 날렵하고 늘씬한 남자 엘프 셋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다른 소환 술사가 엘프를 소환하면 미녀 엘프가 나와 살림을 차렸느니, 재미가 좋다느니, 그런 말을 들었기에 비싼 레전더리 하이엘프 소환룬을 샀지만, 자신이 계약한 하이엘프는 모두 남자였다.
그 때문에 평소 불만이 많았다.
“너희들, 가서 우리는 싸울 생각이 없다는 뜻을 전해줘.”
하이엘프들이 소환자의 뜻에 따라 숲으로 들어갔다.
“잘 될까?”
“그건 모르겠는데.”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전달하자, 하이엘프들 역시 드래곤들처럼 소환자의 뜻을 잘 알고 있었다.
잠시 후. 숲에서 수백의 엘프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성공한 거 같은데.”
하이엘프가 다가와 고상식에게 텔레파시로 뭔가를 전달했다.
“아, 이들은 동쪽 산맥에 사는 숲 엘프들인데, 우리처럼 우주선을 쫓고 있었데, 그러다가 우리가 뒤에서 쫓아오는 것을 보고는 누군지 알아보려고 접근한 거래.”
“저들에게도 우주선이 보이나?”
“뭔가 이질적인 기운을 느끼고 있나 봐. 자세한 건 나도 더 들어봐야 알 것 같아.”
“그럼 먼저 저들에게 저 우주선이 이곳 세계를 침략하기 위해 왔다고 좀 전해주고, 협력해달라고 좀 해봐.”
“알았어.”
자기 생각을 하이엘프에게 전달하자, 그들이 숲 엘프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렇게 하겠다는데.”
“뭐? 이렇게 쉽게?”
“하이엘프가 엘프들 사이에선 고귀한 존재로 여겨진 데.”
그래서 그런지, 엘프 여자들이 하이엘프 주변에 유난히 많이 모여 있었다.
그리고 하이엘프들의 말을 신뢰했기에 쉽게 설득했다.
“그럼 다행이네. 계속 추격하자.”
그렇게 엘프가 합류했다.
“태어나 이렇게 많은 엘프는 처음이야.”
헌터들의 눈이 호강하고 있었다.
엘프는 여자뿐만 아니라 남자들까지 예쁘고 잘생겼기에 여자 헌터들까지 그들에게 푹 빠져있었다.
그러다.
“뭐? 이번엔 오크라고?”
우주선이 오크들이 장악한 평야를 지나고 있었고, 평야에는 수천, 수만, 수십만의 오크가 살고 있었다.
“수호야. 오크 소환 가능해?”
태준이 과거에 유니크급 우르크 오크 소환룬을 수호에게 준 것을 기억했다.
“가능은 한데, 오크들도 엘프처럼 우리말을 들을까?”
“일단 시도해봐. 오크들과 싸우면서 전진하다가는 티베리안 놈들에게 걸릴지도 몰라. 그러니 그냥 조용히 통과할 수 있게 설득 좀 해”
“알았어.”
곧 우르크 오크 네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크기가 지구에서 소환했던 것보다 머리 하나가 더 컸다.
“이놈들이 이렇게 컸나?”
“무식해 보이는 게 힘 좀 쓰겠는데.”
동료들이 오크를 보며 살짝 감탄했다.
수호가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보냈고, 우르크 오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기다리라는데, 자신들이 흩어져서 근처의 족장들과 이야기해 본 데.”
“카올렌은 계속 추격하고 있지?”
“물론이야. 그놈들은 지금 평원 중간을 지나고 있데.”
“좋아. 서둘러줘.”
세 마리 우르크 오크가 오크들이 득실대는 평원으로 향했고, 한 마리는 이곳에 남았다.
그리고 이틀이 지났다.
한 우르크 오크가 수백 마리의 오크 무리를 이끌고 일행 앞으로 몰려왔다.
“수호야. 애들은 다 뭐야?”
“그게 이야기가 안 통해 족장을 죽였더니, 자기를 따라 왔다는데. 어떻게 하지?”
“일단 숫자는 많을수록 좋으니까 데려가자.”
그리고 다른 두 마리 우르크 오크들 역시 족장을 죽이고 큰 무리를 이끌고 왔다.”
순식간에 천이 넘는 오크 무리가 합류했고, 평원을 가로지르는 사이에 눈덩이처럼 불어나 평원을 지날 땐, 5만 마리가 넘게 따라붙었다.
갑자기 큰 무리가 되자, 우주선과 거리를 사흘 이상 벌려야 했다.
그런데도 카올렌과 이수호는 서로 연락할 수 있었으니, 신기한 일이었다.
“더 합류할 놈들이 없나?”
“글쎄, 이왕 이면 이곳에 사는 몬스터들도 모두 함께 갔으면 좋을 텐데 말이지.”
말이 씨가 되었다.
오우거와 고블린, 다이어울프까지 여러 종의 몬스터까지 합류했다.
그들 역시 투명 우주선에 대한 존재를 느끼고, 공포감에 사로잡혀 있었고, 헌터 소환사들의 도움으로 협력하기로 했다.
“카올렌이 그러는데, 우주선들이 서쪽 바닷가 왕국에 집결해 있데.”
“현재 모여 있는 규모는?”
“큰 우주선이 수십 대고, 지상 병력도 수천이 넘나 봐.”
“살바인가 그 티베리안 귀족 놈 말이 맞네. 그 정도 전력이면 여기 차원은 그냥 쓸어버리겠는데.”
정기용의 말처럼 생각보다 티베리안 함대의 규모가 너무 컸다.
“카올렌에게 다른 드래곤들의 협력을 구할 수 없는지 물어봐.”
“알았어.”
잠시 후, 이수호가 살짝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드래곤들은 힘들 것 같아. 원래 따로 생활하는 종들이라 뭉치기도 어렵고, 영역이 확실해서 다른 드래곤들을 반기지 않는데.”
“그럼 어쩔 수 없지. 일단 최대한 놈들 근처로 이동하자, 카올렌에게 계속 감시하라고 해주고.”
“응.”
대륙 서쪽 끝에 있는 페닐라온 왕국은 이미 초토화가 되었고, 왕궁과 도시는 모두 파괴되었다.
그 과정에서 수십만 명이 죽었으니, 티베리안인들의 잔혹성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리고 대륙에 있는 제국과 왕국에 사자를 보내 충성을 강요했다. 아니면 페닐라온 왕국처럼 지도상에서 사라질 거란 협박을 했다.
그들은 이곳 차원의 인간들을 노예로 삼을 생각이었다.
“이곳 차원의 인간들이 산 너머 평원에 집결하고 있데.”
이곳은 페닐라온 왕성에서 가까운 곳으로 티베리안 함대가 집결한 곳이었다.
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 인간들도 놈들과 싸울 생각이군.”
“왜? 티베리안 놈들이 왜 움직이지 않는 거지? 각개 격파하면 손쉬웠을 텐데.”
“그럴 필요가 없다고 느끼는 거겠지. 귀찮게 일일이 찾아다닐 필요 없이 한 번에 처리하면 더 편하기도 할 테고.”
이연희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이곳 차원의 인간들이 감당할 수 있을까?”
“내 생각엔 힘들 거야. 이곳 차원의 엘프나 몬스터들은 아직 게이트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잖아.”
그렇다.
이곳 차원의 인간들은 아직 저쪽 차원을 넘어간 적이 없었다.
그렇다는 것은 아직 괴수를 잡은 적도 없고, 이들의 보호막을 효과적으로 무력화시킬 수단이 전혀 없다고 봐야 했다.
“우리가 우주선의 보호막을 무력화시키지 않으면 저기 모인 인간과 몬스터 모두 전멸할 거야.”
고상식이 말했다.
“엘프들이 그러는데, 이곳 인간들이 꽤 강하다고 하던데. 마법도 있고, 오러를 다루는 기사들도 많기에 해볼 만하다고 생각하나 봐.”
“보호막은 모르고 있겠군.”
“그럴 거야. 엘프들도 보호막 같은 것은 잘 모른대.”
“아무래도 내가 이곳 인간들을 만나봐야겠어.”
태준과 팀원들이 레드 드래곤 벨록스를 소환해 등에 타고 인간 진영을 향해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