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3
143. 새로운 세상에서의 전쟁(3).
쫓고 쫓기는 추격전.
하늘은 지금 어느 때보다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리자드맨처럼 생긴 타이탄 로봇이 드래곤들을 바짝 쫓았다.
드래곤 등 위에서 쏘는 한수진이나 김서라, 김유정의 화살은 모두 타이탄을 위협할 만했지만, 적들은 많은 숫자와 모선에서 끝없이 지급되는 장비 덕택에 우위를 점해 추격자가 될 수 있었다.
“제길, 괴수는 그래도 양반이었어. 이놈들은 머리까지 쓰네.”
괴수 뼈로 만든 레전더리 검을 들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정기용이 투덜댔다.
자신은 하늘을 날 수 없으므로 드래곤의 위에서 놈들을 공격할 수 없었다.
정기용이 입술을 깨물었다.
“저놈들에게 바짝 붙여봐.”
“뭘 하려고요?”
이수호가 묻자 정기용이 살짝 웃었다.
“아무래도 뛰어내려 한 놈씩 처리해야겠어.”
“에?”
그때 벨록스의 아래쪽에서 타이탄 한 마리가 접근했다.
그리고 기다란 창으로 레드 드래곤을 찔렀다.
치이익!
벨록스가 몸을 옆으로 비틀면서 아슬아슬하게 창날이 다리에 스쳤다.
살짝 스치기만 했는데 타는 듯한 상처를 입은 것은 창끝에 달린 보호막 때문이었다.
그때였다.
파앗!
정기용이 벨록스의 위에서 뛰어내렸다.
“기용이 형!”
터엉!
“이 새끼 잡았다!”
정기용이 가까스로 타이탄 한 마리의 다리에 매달렸다.
“죽어!”
콰앙!
정기용의 검이 타이탄의 다리에 박혔다.
“접신!”
그의 몸 주변으로 조자룡 샤먼의 형상이 뿜어졌다.
쾅! 쾅!
검이 타이탄의 등에 박히자, 정기용과 함께 추락했다.
“형!”
이수호가 급하게 방향을 바꿨지만, 너무 늦었다.
하지만 그때 아래를 지나던 카올렌이 발톱으로 정기용을 낚아챘다.
“큭! 고마워!”
윤상희가 웃으며 말했다.
“계속 고생해줘!”
“뭐?”
휘익!
앞에서 마르시아스를 쫓아오던 타이탄을 향해 카올렌이 정기용을 던졌다.
“제길, 죽어라!”
검을 든 조자룡의 샤먼이 타이탄을 향해 휘둘렀다.
타이탄은 방패를 내밀었지만, 괴수 뼈로 만든 검은 방패를 자르고, 손을 자르고, 타이탄의 머리를 잘랐다.
안에 타고 있던 티베리안인이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쿠웅!
떨어지던 정기용을 이번엔 벨록스가 낚아챘다.
“윽! 너희들 지금 공놀이하냐?”
정기용의 활약으로 두 마리의 타이탄이 사라지자 반격의 기회를 맞이했다.
세 마리 드래곤이 서로를 향해 스쳐 지나가며 미끼 역할을 했고, 궁수들이 서로의 뒤를 추격하는 타이탄을 요격했다.
그러자 놈들의 숫자가 급격하게 줄었다
콰앙!
“좋았어!”
타이탄 한 마리가 또 한수진의 용의 격노 스킬에 맞아 떨어졌다.
“지상군은 어때?”
“우주선의 보호막 때문에 고전하고 있어!”
“안 되겠다. 우리가 먼저 우주선으로 붙어 보호막을 제거하자!”
벨록스가 갑자기 싸우다 말고 전방에 있는 우주선을 향해 돌진했다.
타이탄 한 마리가 쫓아왔지만, 김서라의 도움으로 뿌리쳤다.
“저기야!”
태준이 말한 대로 우주선 상단에 도마뱀 그림과 티베리안 글자가 보였다.
그런데.
“제길, 잔챙이들이 너무 많아!”
우주선 주변엔 티베리안 인들이 너무 많았다.
화살을 쏴도 자살 특공대처럼 몸으로 막거나 광선총으로 쏘아 떨어뜨렸기 때문에 소용없었다.
‘가까이에 붙어서 쏠 수만 있다면...’
그때였다.
벨록스의 옆으로 와이번을 탄 용기사들과 그리폰에 탄 엘프들이 다가왔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지금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
벨록스 위에서 윤상희가 고개를 끄덕이자, 용기사와 엘프가 적들 향해 돌진했다.
그리고 벨록스도 따라 날아갔다.
“물러서지 마라! 돌진해!”
인간 기마대가 우주선에 바짝 붙었지만,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오러 블레이드로도 보호막은 잘리지 않았고, 화살은 더더욱 뚫지 못했다.
하지만 우주선 아래에 있던 티베리안인들의 광선총은 보호막을 뚫고 기사들을 공격할 수 있었다.
콰앙!
“크윽!”
기사들이 말과 함께 폭사했다.
‘아! 이대로 끝이란 말인가?’
제국 근위 기사단의 기사단장 필립스는 속으로 탄성을 내질렀다.
기사들과 병사들을 독려하고 있지만, 계란으로 바위 치기였다.
저쪽 평야에도 오크들과 오우거의 괴성이 들렸다.
몬스터 역시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때였다.
콰앙!
우주선 위쪽으로 시커먼 연기가 뿜어지더니, 궁수들의 화살이 보호막이 아닌 우주선에 맞고 튕겼다.
“지금이다! 보호막이 걷혔다! 이쪽을 공격하라!”
보호막이 걷히자, 아래에 있던 티베리안인들은 밀려드는 기마대를 막을 수 없었다.
“한 놈도 남김없이 죽여라!”
기사들의 검이 티베리안인들을 베어버렸다.
벨록스는 우주선을 주변을 날아다니며, 보호막을 무력화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래쪽에서도 반격의 기회가 생겼다.
쉐에에엑!
쿠아아아앙!
“모두 이연희 헌터를 따라 공격하라!”
프레이야 여신의 형상이 보호막이 걷힌 우주선을 향해 창을 찌르자, 우주선의 선체가 종잇장처럼 찢어졌다.
그 뒤를 헌터들이 달려와 마법을 난사하고, 소환수들이 우주선으로 들어갔다.
순식간에 우주선이 폭발하면서 아래로 추락했다.
카올렌과 마르시아스도 타이탄을 모두 격추하며 합류했고, 용기사와 엘프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우주선의 보호막을 무력화시키기 시작했다.
“좋아 모두 총공격하라!”
파지지지지직!
인간군의 마법사가 거대한 우주선을 아래서 전격 위로 날렸다.
콰앙!
번개가 번쩍이며 구멍이 뚫렸다.
그러자, 그 구멍을 향해 화염 마법사가 불덩이를 쉴새 없이 날렸다.
화르르르르! 콰콰콰쾅!
“오오오크!”
오크들은 헌터들이 만든 구멍을 통해 우주선으로 직접 들어갔고, 무지막지한 힘으로 티베리안인들과 싸웠다.
점점 추락하는 우주선이 많아지자, 놈들은 하늘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놈들이 달아난다!”
“아니, 더 높은 공중에서 공격할 생각이야.”
거의 절반이나 되는 우주선 보호막을 무력화시켰지만, 문제는 놈들이 하늘이나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면 지상에서는 그들을 공격할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드래곤 세 마리와 이미 절반이나 줄어든 용기사와 엘프로는 아직 많은 우주선을 잡을 길이 없었다.
뒤에서 따라오던 우주선에서도 티베리안인들이 벌떼처럼 솟아 나와 하늘로 올라갔다.
“말볼, 달려!”
갑자기 우주선들이 공중으로 오르기 시작하자, 태준은 급해졌다.
최강해가 타고 있는 지휘선도 점점 고도를 높여 말볼이 뛰어들 수 없을 정도로 올라갔다.
태준이 입술을 깨물었다.
여기서 놈을 놓칠 순 없었다.
“가자!”
파파파파팟!
말볼이 높이 뛰어올랐다.
그리고 태준이 말볼 등위에서 지휘선을 향해 몸을 날렸다.
“도대관(導大窾)!”
태준의 신형은 보호막을 뚫고 우주선 선체를 뚫고 안으로 들어갔다.
태준이 무전기에 대고 말을 했다.
치칙!
“연희야 내 말 들려?”
- 그래 듣고 있어.
연희를 말을 하면서도 달아나는 우주선들을 향해 연신 창을 휘둘렀다.
“최강해가 타고 있는 지휘선을 발견했어.”
태준이 후미에 있는 우주선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보호막을 무력화시킬 테니까 이리로 와!”
- 알아서 나도 곧 따라갈게.
하지만 연희는 티베리안인들과 우주선의 공격으로 후미로 바로 가지 못했다.
그 시간 태준은 보호막을 생성하는 기관을 부숴버리고, 지휘관이 있는 곳으로 달렸다.
***
콰앙!
문이 부서지자, 최강해가 고개를 돌렸다.
“찾았다! 최강해!”
태준의 눈동자가 이글거리고 있었다.
“용케도 찾아왔군.”
자신의 눈앞에 지구 최강의 헌터가 있었지만, 최강해는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다.
“나를 아니지, 우리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나 보지? 이제 곧 하늘 높이 오른 우주선들이 지상을 향해 강력한 함포를 쏠 거야. 그동안은 노예로 쓰기 위해 놈들을 살려두려 했지만, 이제는 그냥 쓸어버리는 것이 낫겠어.”
“내가 그렇게 놔둘 것 같아.”
태준이 백정의 칼을 들고 천천히 앞으로 나섰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티베리안인들이 무기를 겨눴다.
“모두 할 일을 해! 이놈은 내가 상대하지.”
최강해가 한 손엔 불길이 이글거리는 검을 다른 손엔 냉기가 풀풀 날리는 검을 들었다.
“너희 기준으로 SSS등급 말이야. 난 아주 오래전에 그 수준을 넘어섰는데, 날 이길 수 있겠어?”
“그렇게 뛰어난 놈이 어째서 카라차크라는 이길 수 없었을까?”
최강해의 표정이 일그러지며, 똥 씹은 얼굴이 됐다.
그가 다시 인상을 풀며 말했다.
“솔직히 그건 인정하지! 지구의 헌터들이, 아니 나태준 네가 카라차크라를 해치운 건 정말 불가사의한 일이었어. 너도 알겠지만, 그놈은 시간은 되돌려, 그래서 상대의 약점을 알아내지. 우린 놈을 이길 수 없다고 판단했기에 수천 대의 함대로 우주에서 놈이 있는 그 일대를 아예 송두리째 날려버릴 생각이었지. 그런데 놈이 시간을 되돌려 무슨 짓을 했는지, 우리 우주선 안에 이미 괴수들의 알이 있었던 거야. 그게 무슨 말인지 알아?”
최강해가 살짝 두 눈을 감았다.
“끔찍했어. 그날 우주 최강의 함대가 전멸했지. 수많은 동료가 죽고, 다들 괴수의 먹이가 됐지. 우린 괴수들이 우주 공간에서도 살 수 있다는 것을 몰랐어. 그랬기에 방심했지.”
그가 다시 눈을 떴다.
“이제 그 골치 아픈 놈을 처리했으니, 다시 우리가 세상을 지배할 거야.”
“곧 죽을 놈이 말이 많군.”
태준이 빠르게 앞으로 달렸다.
“도살(屠殺)!”
카앙!
최강해가 두 검을 교차하며 백정의 칼을 막았다.
“유인유여(游刃有余)!”
칼 놀림이 경지에 달하여 자유롭게 이동하며 전혀 막힘이 없다. 어떤 피부든 칼에 닿기만 하면 결에 따라 벨 수 있는 백정의 검술이 태준의 손에서 펼쳐졌다.
카캉! 카카카캉!
불꽃이 번쩍이고, 서리가 쏘아지지만, 태준은 쉴새 없이 칼을 놀렸다.
“동도심미(動刀甚微)!”
칼이 매우 세미하여 최강해의 급소와 관절을 노리고 소리 없이 그어졌다.
태태태탱! 태탱!
순식간에 수십 번의 칼질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모두 막혔다.
“이야!”
부아앙!
거센 화염과 서릿바람이 몰려오자, 태준이 뒤로 물러섰다.
최강해가 자신의 검을 내려다보면서 입을 열었다.
“오우! 꽤 괜찮은 검술이야. 그리고 그 칼은 신급이군.”
전설급 검인 불의 검과 서리검의 검날이 여기저기 나가고 금이 가 있었다. 레전더리 강화룬으로 여러 번 강화했기에 일반 레전더리 검과는 차원이 다른 검들이었지만, 신급 아이템인 포정의 칼에 맞설 순 없었다.
탱! 태앵!
바닥에 두 검을 버리곤 인벤토리에서 또 다른 검을 꺼냈다.
검날에 이상한 문자가 잔뜩 적혀 있는 것이 신비한 분위기를 풍기는 검이었다.
“엑스칼리버라고 들어봤을 거야. 이건 네놈의 칼과 같은 신급 아이템이지.”
“신급? S급 게이트가 열린 곳이 없었을 텐데. 그건 어디서 얻었지?”
태준이 알기론 포정의 칼을 제외하곤 신급 아이템이 없었다. 그리고 신급은 S급 게이트 이상에서만 나오는 아이템으로 하나는 연희가 가지고 있었고, 나머진 자신이 가지고 있었기에 또 다른 신급 아이템이 나올 순 없었다고 생각했다.
“웃기는군. 내게 게이트 반지가 몇 개나 있는지 모르는 거야?”
최강해의 손에는 모두 여섯 개의 게이트 반지가 있었고, 모두 신급이었다.
그는 티베리안과 이어진 여섯 개의 차원에 모두 갈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네가 잘 모르나 본데. 게이트는 지구에만 열린 것이 아니야. 지구의 헌터들처럼 괴수에 잘 대응하는 차원이 하나 더 있지. 솔직히 처음엔 그놈들이 카라차크라를 죽일 줄 알았어. 지구의 헌터들보다 더 강하고, 성장 속도가 아주 빨랐거든. 그런데 그 미친 것들이 게이트에서 괴수가 쏟아져 나오는데 게이트로 들어가 괴수를 잡을 생각을 하지 않는 거야.”
최강해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왜인 줄 알아? 그놈들은 게이트를 선물 상자처럼 여기고 있던 거야. 신들이 자신들에게 내려준 선물 상자라고... 난 어이가 없었지. 그놈들은 한마디로 전투에 미친 종족이었어. 괴수를 사냥하는 것을 스포츠처럼 여기는 놈들이었기에 게이트를 클리어하지 않고, 오히려 그곳에서 나오는 괴수를 잡으며 즐겼지.”
최강해가 말을 하는 사이 태준은 한쪽에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 티베리안인들의 우주선들이 높은 하늘로 올라와 지상을 향해 함포를 사격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최강해가 인상을 찡그렸다.
“이야기가 길어졌군. 지상 공격을 하기 전에 네놈을 먼저 죽여주지.”
더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 그는 모든 차원을 돌아다닐 수 있었기에 어디선가 신급 아이템을 구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태준이 포정의 칼을 들지 않았다면, 최강해와 싸우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 무기도 같은 등급이니까. 제대로 붙어보자고.”
최강해가 엑스칼리버를 휘두르며 달려들었고, 태준은 백정의 칼을 손바닥 위에서 미친 듯이 회전시키며 달려들었다.
지구 최강의 헌터와 티베리안 최강의 사내가 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