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6
146. 게이트 클리어 조건(2).
상태창에 뜬 것은 게이트 클리어 조건이었다.
그런데 헌터들을 죽이라고?
이건 지구에서 티베리안 차원으로 생성된 게이트가 아니라 반대로 티베리안 차원에서 지구로 생성된 게이트였다.
그런데 게이트 클리어 조건이 헌터들을 죽이라는 것이었다. 분명 최강해가 임의로 생성한 게이트가 분명했다.
[현재 카운터 : A등급 헌터 - 71/300, S등급 헌터 - 19/30, SS등급 헌터 - 1/3.]
게다가 벌써 카운터가 상당히 올라간 것이 많은 헌터가 죽은 후였다.
태준이 아래에 보이는 큰 건물 위에 내려앉았다.
옥상에서 바라본 서울은 복구공사가 한창이었다.
곳곳에 건물이 무너졌고, 도로와 가로수가 박살 난 곳도 많았다.
“최강해가 다른 차원의 생명체까지 끌어들인 건가?”
티베리안 차원에서 본 두 개의 게이트는 태준의 생각이 맞는다는 불길한 징조였다.
고개를 돌리자, 멀리 뉴스 전광판이 보였다.
- 괴수보다 더 무서운 침략자 네피림! 그들은 누구며 어디서 왔는가?
- 티베리안 차원에 게이트를 만든 것은 네피림이다.
- 지구를 침략하는 거인족 네피림을 티베리안 차원에서 몰아내자!
빌딩 위에서 바라본 전광판엔 온통 네피림에 대한이야기뿐이었다.
그리고.
- 위기의 서울을 구한 티베리안인들!
- 티베리안인들은 오히려 피해자였다. 뒤에서 게이트를 조종해 괴수를 지구로 오게 한 것은 네피림이었다!
- 국가 헌터 협회, 티베리안인과 네피림 침략 공동 조사단 발족.
티베리안 우주선 3척이 국가 헌터 협회 상공에 떠 있었고, 최강해와 티베리안인들이 대통령과 정치인들을 만나는 며칠 전 뉴스 장면이 다시 중개되고 있었다.
티베리안 도마뱀들은 가증스럽게도 인간의 탈을 쓰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엔 김상국과 최규환, 국가 헌터 협회의 이사들과 세계 각국의 대표들, 그리고 많은 헌터들이 참석했다.
게다가 이제 자신을 제외한 유일한 SSS급 헌터인 김득구의 모습도 보였다.
‘일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먼저 알아내야겠어.’
침착해야 했다.
또다시 눈앞에서 최강해를 놓칠 수는 없었다.
그러니 완벽한 기회를 기다려 급습을 할 생각이었다. 놈은 자신이 저쪽 차원에서 빠져나왔는지 모르고 있었다.
노을이 지고 있었다.
태준은 밤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도살자 길드 건물로 향했다.
먼저 자신이 없는 사이에 이곳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야 했다.
그런데 멀리서 바라본 도살자 길드 건물 한쪽이 심하게 부서져 있었다.
도살자 길드도 저쪽 차원에서 넘어온 네피림의 공격을 받은 것 같았다.
“기, 길드장님?”
“쉿!”
길드 건물 주변에서 숨어 있다가 잘 아는 길드원 하나를 찾아 골목으로 데려왔다.
“나태준 길드장님, 왜 이제야 오십니까.”
길드원은 반가움에 눈물을 찔끔 흘렸다.
“나는 지금 얼굴을 드러내지 못해. 그보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설명 좀 해줘.”
“그게, 열흘 전쯤에 갑자기 서울 상공에 S등급 게이트가 발생했습니다. 그리고 네피림 전사 수천이 튀어나와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살육했었습니다.”
자신의 예상대로 최강해 이놈이 다른 차원의 인간들까지 이용한 것이 분명했다.
“창수는? 어디 있지?”
“지금 남산 안전 가옥으로 대피해 있습니다.”
“길드원들은 무사한가?”
“네. 다행히 남창수 부길드장님이 만드신 비상연락망이 제대로 작동하여 게이트 발생 직후 가족들을 데리고 대피할 수 있었습니다.”
“너는 지금 당장 길드의 팀장급들 이상 헌터들을 은밀히 남산 안전 가옥으로 집합하라고 연락해. 그리고 절대 내 이름은 발설하지 말고, 부길드장의 이름을 대.”
“네.”
태준은 서둘러 창수가 있는 남산 안전 가옥으로 달려갔다.
***
[남산 안전 가옥]
지하에 마련된 200여 평의 공간에 창수와 도살자 길드 팀장급 이상의 간부들이 모여 있었다.
다행히 기태와 주혁이도 이곳에 안전하게 피신해 있었다.
“태준아, 다른 길드원들은?”
창수가 다른 헌터들을 대신해 궁금한 점을 물었다.
그러자 태준이 다른 차원에 갇힌 팀원들과 200명의 길드원들에 관해 이야기하자,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그들은 무사했지만, 다시 돌아올 수는 없었다.
그리고 티베리안 함대와 대대적인 전투를 벌인 이야기를 듣자, 길드원들이 분개하기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특전대의 활약으로 티베리안 함대가 거의 궤멸했기에 앞으로 지구나 다른 차원을 직접 공격할 일은 없을 것이다.
태준이 다시 입을 열었다.
“네피림은 아마도 다른 차원에서 불려온 전사들일 거야. 티베리안 차원에 S급 게이트 두 개가 서로 마주 보고 있는 것을 봤거든.”
네피림, 그들은 이틀 전에 갑자기 게이트에서 쏟아져 내려왔다. 네피림은 키가 2.5미터에서 3미터 정도 되는 거인족이었다.
생긴 것은 인간과 흡사하나 조금 더 날렵하고, 미적으로 발달해 마치 엘프인데 크기만 거인인 것 같은 모습이었다.
또한, 팔다리가 유난히 길어, 검과 창 같은 일반적인 무기도 인간의 것들보다 배 이상 길었기에 헌터들에게 매우 위협적이었다.
“그리고 그 게이트 부근에 티베리안 우주선이 박살 난 잔해도 있었고, 티베리안들의 시체도 있었어. 아마도 놈들이 네피림들이 사는 차원으로 들어가 그곳 주민들을 죽이고 지구로 유인하다가 당한 것 같아.”
“허, 다른 차원의 인간들까지 끌어들이다니... 그런 악독한 짓을!”
도살자 길드원들 다시 한번 분개했다.
태준이 최강해와 싸우기 직전에 들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지구보다 더 강력하고 전투적인 인간들이 사는 차원이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게이트로 들어가서 괴수를 잡기보단 게이트에서 나오는 괴수들을 잡으며 괴수 사냥을 스포츠처럼 즐겼다고 했다.
그들에게 게이트는 신이 자신들을 강하게 하려고 내려준 선물이라 했기에 감히 게이트 안으로는 들어가지 않았다. 괜히 황금알을 낳은 거위의 배를 쨀 수도 있으니까.
태준이 생각하기에 지구를 공격한 네피림족이 그쪽 차원의 인간들인 것 같았다.
“네피림 족의 전투력은 어때?”
창수가 네피림 전사에 대해 입을 열었다.
“우리를 공격한 네피림 전사 몇몇은 SS등급 헌터에 필적할 정도로 뛰어난 실력이었어. 그리고 대부분 전사가 A등급 이상의 실력을 보였지. 그리고 우리 인간처럼 머리도 뛰어났기에 전술도 펼치고 전략까지 펼쳤기에 우리도 초기엔 상당히 고전했어.”
네피림족은 자신들의 동족을 죽인 것이 최강해의 음모인지도 모르고, 그저 동족의 원수를 갚기 위해, 그리고 자신들이 사는 차원으로 돌아가기 위해 게이트 넘어 지구에 내려오자마자, 인간들을 닥치는 대로 도륙했다.
그들도 지구의 헌터들이 티베리안 차원으로 넘어갔을 때처럼 게이트를 클리어해야 반대편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저 게이트로 들어가지 못해.”
“게이트가 막혔어?”
“그래 몇몇 헌터가 들어가려고 해봤는데 실패했어.”
“최강해가 수작을 부렸군.”
태준은 이제 어떤 게이트든 오고 갈 수 있었지만, 다른 헌터들은 절대 게이트로 들어갈 수 없게 전부 막아 놓았다.
지난 오랜 시간을 최강해는 게이트 반지를 이용해서 게이트를 생성하고 독점하며, 인간들을 괴수 잡는 헌터로 만들었고, 이제 게이트를 이용해 인간들과 거래를 하려고 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가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있어. 아무리 그래도 SS급 게이트에서 쏟아져 나온 괴수들도 막아낸 헌터들이 왜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거지? 게다가 국가 헌터 협회의 세력이 훨씬 더 커졌는데?”
네피림족이 수천이라고 하지만, 지구의 헌터들은 그 숫자가 훨씬 많았고, 헌터 협회와 국가 헌터원이 합병하면서 하나의 단체인 국가 헌터 협회가 완성되어 명령체계도 단일화되고, 이 전 SS등급 게이트에서 살아나온 많은 SS급 헌터가 있었기에 충분히 대응했을 것이다.
그런데 너무 많은 사람이 죽었고, 서울의 피해가 너무 컸다.
태준의 질문에 창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그게 우리도 이상해. 우리 도살자 길드원들은 즉각 전투태세를 갖춰 용산과 서울역 일대를 지켰는데, 국가 헌터 협회가 맡은 대부분 지역은 피해가 컸어. 그놈들이 늦장을 부리다가 피해를 받았고, 티베리안인들이 나타난 다음에야 헌터들을 투입했지. 그런데 방송과 신문에는 그런 기사는 한 줄도 없고, 지난 열흘 전부터 티베리안인들이 네피림을 공격해 몰아내는 화면과 기사들만 계속 내보내고 있어.”
태준은 생각이 많아졌다.
그들은 언론까지 모두 조작하고 있었다.
‘최강해, 그놈이 대체 무슨 수작을 부린 거지?’
아무래도 국가 헌터 협회가 일부러 티베리안인들이 활약할 기회를 만들어 준 것 같은 냄새가 났다. 그것도 자국민의 목숨을 담보로 말이다.
그리고 티베리안들과 갑작스러운 연합 체계를 만든 것을 보자, 국가 헌터 협회가 최강해와 모종의 거래를 했을 가능성이 커 보였다.
당장 달려가 김상국이나 최규환, 그리고 이 일을 계획하거나 방관한 자들을 모두 죽이고 싶었다.
하지만 최강해가 또다시 게이트를 열고, 달아날 수도 있었기에 먼저 그를 찾고 게이트 반지를 빼앗을 완벽한 기회를 만드는 것이 급선무였다.
“일단 지금은 시기가 너무 좋지 않아.”
창수는 최강해를 암살하고 게이트 반지를 확보하기엔 시기가 적절치 않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각종 여론은 최강해에게 유리했고, 사람들은 외계인인 티베리안인들의 존재에 대해 열광했다.
특히 그들이 네피림을 몰아낸 영웅이었다.
그리고 최강해가 얼마 전에 티베리안인의 최첨단 기술을 지구인들에게 전수하겠다는 인터뷰가 나가고 난 후에는 그들은 인류의 친구가 되어 있었다.
최강해는 자신의 함대가 궤멸하고, 지구를 정복하기 힘들다고 판단하자, 지구인들을 이용하기 위해 거래를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신뢰를 얻기 위한 첫 번째 사건이 열흘 전에 벌어진 것이다.
태준은 놈들의 속셈과 방법을 알았지만, 이미 여론과 지구인들의 생각을 바꾸기에는 너무 늦어 버렸다.
특히 국가 헌터 협회의 적극적인 지지가 있었기에 이 모든 일이 가능했다.
“그리고 지금 국가 헌터 협회의 세력이 나날이 커지고 있어.”
자신이 없는 사이에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티베리안인들이 네피림족에게서 게이트를 생성하는 기술을 빼앗았다는 방송이 나오고, 국가 헌터 협회가 티베리안인들의 협력을 받아 티베리안 행성을 식민지로 만들겠다는 뉴스가 연일 터지면서 사람들과 지구의 헌터들은 열광했다.
그렇게 되자, 소속이 없었던 헌터들이나 길드들이 국가 헌터 협회에 몰리자 갑자기 어마어마한 세력으로 커졌다.
그뿐만 아니었다. 타국의 헌터들까지 어떻게든 국가 헌터 협회에 들기 위해 한국으로 몰려올 지경이었으니, 그들의 세력은 하루가 멀다고 커지고 있었다.
“그 썩을 놈들을 어떻게든 막아야 하는데.”
사실을 알게 된 도살자 길드원들은 분통이 터질 지경이었다.
여기 있는 헌터들이야. 도살자 길드원들이 언제든 티베리안 차원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것을 외부에 말할 순 없었다.
“길드원들을 전부 풀어 최강해를 찾아볼까?”
“아니 섣불리 움직이지 마, 최강해의 행방을 확실히 알기 전에는 절대 우리가 그놈을 찾고 있다는 것을 알아선 안 돼. 놈이 잠적하면 더 골치 아파져.”
그때였다.
“삼촌, 최강해가 어디로 갈지 알 것 같아.”
“뭐?”
기태였다.
가만히 한쪽 구석에서 이야기를 듣던 기태가 말을 한 것이다.
“어떻게?”
“며칠 전부터 티베리안 차원으로 향하는 이상한 게이트가 하나 생성되고 있어.”
“이상한 게이트?”
“응, 게이트 파장이 기존에 생성된 게이트와 달라. 이건 내가 만든 게이트와 같은 종류야.”
“그럼 아무런 제약 없이 왕래할 수 있다는 말이네.”
“응, 그리고 내가 만든 것보다 훨씬 커.”
기태의 말에 태준은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기태가 말한 게이트를 찾기 시작했다.
티베리안 차원에서도 성공했으니, 이곳에서도 그 위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곧 생성 중인 게이트를 찾아냈다.
“정말, 국가 헌터 협회 근처에 게이트가 생성되고 있군.”
“어? 태준이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창수가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도 이제 게이트 파장을 읽을 수 있어.”
“뭐?”
“이건 설명하자면 길어. 나중에 해줄게.”
***
며칠 후에 드디어 기회를 잡았다.
지금 생성되고 있는 거대한 게이트의 목적을 알았다.
국가 헌터 협회의 선발대가 티베리안인들과 함께 식민지 사업을 위해 티베리안 행성에 헌터와 군대를 보낸다는 대대적인 광고를 하기 시작했다.
이건 괴수를 잡기 위해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식민지 사업의 첫걸음이었다.
그것은 선발대의 규모에서도 알 수 있었다.
헌터만 5,000명에 달했고, 기지 건설과 수비에 동원된 공병대와 대괴수 부대 군인들이 5만 명이 넘어갔으니, 이건 단순히 게이트를 클리어하는 수준이 아니었다.
게다가 이번 선발대에는 국가 헌터 협회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헌터들과 정치인들이 대거 참여했기에 이런 큰 행사에 최강해가 빠질 리가 없었다.
그랬으니, 저쪽 차원에 생성된 게이트 부근에 가서 기다리다가 보면 최강해가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창수가 말했다.
“우리도 함께 가자.”
“아니, 모두 함께 움직이는 건 위험해. 이런 일일수록 은밀히 움직여야 성공할 수 있어. 그리고 너희는 이곳에서 가족을 지켜야지.”
도살자 길드원들도 함께 가고 싶었으나, 태준의 말처럼 함께 움직이면 들킬 위험이 커졌다.
“기태야 게이트 반지를 내게 줄래?”
“네.”
태준은 기태에게 게이트 반지를 넘겨받았다.
이제 자신은 기태와 같은 능력이 있었으니 스스로 게이트 반지를 이용해 게이트를 만들 수 있었다.
아니 카라차크라의 능력이 있었으니, 기태보다 더 능력이 좋다고 말할 수 있었다.
이로써 최강해를 어디든 추격할 준비는 완성되었다.
태준은 처음으로 게이트 반지를 이용해 티베리안 차원으로 향하는 게이트를 열었다.
그리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