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8
148. 더는 용서할 수 없다(2).
김상국은 경악했다.
“나...나태준?”
얼마나 놀랐는지 그의 얼굴엔 핏기가 하나도 없었다.
등골이 서늘하고, 손발은 미친 듯이 떨고 있었다.
최강해는 분명 나태준이 다른 차원에 갇혔다는 말을 했다.
그런데 여긴 어떻게 온 거지?
깊게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가 온다.
“태, 태준아! 잠깐!”
김상국의 외침에 어린 네피림 근처에 있던 헌터들이 고개를 돌렸다.
그들 역시 단번에 나태준을 알아보았다.
그가 칼과 갈고리를 들고 온다.
헌터들도 순간 몸이 굳었다.
이는 명백한 공격 의지였고, 그의 몸에서 걷잡을 수 없는 무시무시한 살기가 뿜어졌다.
얼마나 대단한지 온몸이 바늘로 찌르는 것 같았다.
“뭐해, 이 새끼들아! 막아!”
“고, 공격해!”
김상국의 명령에 헌터들이 태준에게 달려들었다.
“달빛 가속!”
달을 단번에 가를 것 같은 헌터의 검이 휘둘린다.
SS급 헌터 검사의 베기.
날카롭기가 그지없고, 레전더리 가속의 룬까지 더해진 빠른 검.
뿜어지는 검기에 스치기만 해도 태준은 반으로 갈릴 것이다.
촤악!
“벴다!”
하지만 태준은 연기처럼 사라졌다.
헌터는 허상을 벤 것이다.
그리고.
“응? 이...이게?”
검을 든 자신의 팔에 붉은색 실선이 그어져 있었다.
설마, 베인 건가?
그런데 아프지 않다?
아니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그러다 서서히 검이 손에서 미끄러지는 광경을 눈으로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의 양팔이 검과 함께 바닥으로 떨어졌다.
“으...으아아아악!”
헌터는 끔찍하고 처절한 비명을 질렀다.
다른 동료들이 몸을 움찔할 정도로.
그리고 태준이 그 헌터들 사이를 미끄러지듯이 스쳐 지나갔다.
인간의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뼈가 잘렸다.
그럼에도 검이 부딪히거나 어떠한 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으아악!”
“크악!”
그저, 헌터들의 비명만이 메아리처럼 들려왔다.
닿는 것은 모두 결에 따라 베어버리는 유인유여(游刃有余)의 기술이 펼쳐진 것이다.
“뒤에 무슨 일이야?”
게이트를 포위해 네피림들을 사냥하고 있던 헌터들이 비명을 듣고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헌터들이 짚단처럼 쓰러지고, 아무도 없는 허공에 마법이 작렬하는 기이한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촤르르르르!
갈고리가 날아가 한 헌터의 다리를 감싸고, 질질 끌려가다 칼에 몸이 잘리는 모습을 보았다.
“도, 도살자 나태준이다!”
“나태준이 나타났다!”
헌터들은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여기 모인 절반 이상이 신화 길드와 과거 국가 헌터원 이철용의 부하들이었다.
나태준이란 이름만 들었음에도 두려워 함이다.
이들을 지휘하던 부회장 최규환 역시 태준을 한눈에 알아봤다.
최규환의 뛰어난 생존 감각이 이건 좋지 않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그때였다.
“내가 상대하지!”
대만 출신 타룬 메이가 자신의 번개검을 휘두르며 달려갔다.
이미 김상국 옆에 있던 십여 명의 헌터들이 죽거나 사지가 잘려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타룬 메이는 두렵진 않았다.
자신은 명실공히 국가 헌터 협회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헌터였고, 곧 SSS급 헌터로 승급할 것이다. 어쩌면 눈앞에 나태준을 죽이면 바로 SSS등급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그녀에게 용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게다가 이미 태준과는 신화 길드 로비에서 한차례 격렬하게 싸워본 적이 있었다.
다시 만나면 어떻게 상대할지 수많은 상황을 대비했기에 그녀의 검은 과감했다.
“귀신 검술!”
그녀의 신형이 빨라지며 순식간에 태준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며 바람 같은 검을 찔렀다.
태준은 그녀의 신형을 향해 갈고리를 그었다.
그러자,
그녀의 몸이 숙인 것도 아니고, 옆으로 발걸음을 뗀 것도 아닌데, 눈앞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다.
아니 태준의 등 뒤로 옮겨갔다.
SS등급 헌터가 되며 더욱 발전된 진정한 이형환위(移形換位)의 기술이었다.
“죽어!”
번개검이 태준의 등을 향해 찔러졌다.
푹!
“컥!”
하지만 검을 찌르기도 전에 타룬 메이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태준은 검은 그녀가 등 뒤에 도달하기도 전부터 이미 등을 향해 찌르고 있었다.
“어...어...”
쿵!
타룬 메이가 무릎을 꿇었다.
자신의 배에서 피가 철철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자신이 아니었다.
조금만 더, 정말 조금만 더 하면, SSS급 헌터가 됐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눈은 태준이 다른 헌터들을 베어 넘기고, 어린 네피림 앞을 막아서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감겼다.
“으...으악! 괴물이다!”
파지지지직!
마법이 통하지 않았다.
태준이 백정의 칼로 막자, SS급 마법사의 전격 마법이 사방으로 튕겼다.
“게헤나의 불꽃이여! 눈앞에 적을 태워라!”
마법사의 불덩이가 태준을 향해 날아갔다.
촤악!
하지만 태준이 휘두른 포정의 칼은 마법의 불덩이까지 두 쪽으로 갈라버렸다.
그리고 마법사 역시, 몸이 반으로 갈라졌다.
활을 쏘는 궁사들, 그들은 태준을 제대로 타겟팅하지도 못하고, 목이 떨어져 나갔다.
이것은 일방적인 살육이었다.
괴수를 잡던 백정의 칼이 인간이길 포기한 헌터들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휘둘렸다.
“노, 놈을 공격해라!”
“쿠오오오오!”
대지 드래곤 마콜레움이 태준을 향해 입을 벌리며 달려들었다.
“마콜레움, 한입에 삼켜 버려!”
태준은 소환 술사의 의도대로 드래곤의 입을 향해 몸을 날렸다.
태준이 마콜레움의 입속으로 사라지자마자, 빛이 몇 번 번쩍이더니 드래곤의 머리와 목이 순식간에 십여 개의 조각이 되어 바닥을 뒹굴었다.
헌터들은 경악했다.
헌터가 300명이나 있음에도 그들은 두려움에 휩싸였다.
“정신 차려! 놈들이 포위망을 돌파한다!”
게이트를 나온 네피림들이 하나둘씩 헌터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태준에게 정신이 팔려, 화력이 약해진 것이다.
최규환이 급하게 헌터들을 다그쳤지만, 그들은 앞에서 나오는 네피림보다 뒤에서 헌터들을 도륙하고 있는 나태준이 더 신경쓰였다.
“나태준 멈춰! 지금 뭐하는 거야!”
이제는 주변에 자신을 보호할 헌터가 없자, 김상국이 소리쳤다.
태준이 무표정하게 대답했다.
“나는 너희가 괴물이 되는 것을 막고 있는 거야.”
“그, 그게 무슨 말이야? 너는 지금 헌터를, 아니 인간을 학살하고 있어.”
“그럼 너희는 저들을 왜 죽이는 거지?”
“저들은 인간이 아니야. 네피름은 괴수와 같은 존재들이야. 그리고 저들이 우리를 먼저 공격했어. 그래서 우린 저들을 죽여 헌터 등급을 올리는 거야.”
전후 사정을 몰랐다면, 태준은 그대로 믿었을 지도 몰랐다.
하지만 네피림의 침략은 분명 김상국과 최강해의 작품이었다.
김상국은 말을 하면서 나태준 모르게 자신의 무기인 환상 스킬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는 정신 계열의 헌터, 상대의 눈을 현혹하여 죽음에 이르게 하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평소에 자신의 실력을 보이지 않은 것은 이런 때에 쓰기 위함이었다.
“전부 최강해와 네놈의 배를 불리기 위함이겠지.”
갑자기 태준의 걸음이 멈췄다.
바닥에서 가시덩굴이 뻗어 나와 태준의 다리를 감쌌다.
태준이 그것을 느꼈을 땐, 팔과 몸까지 꽁꽁 묶여 있었다.
“크크큭, 너무 늦었어. 내 환상에 걸렸구나. 아무리 발버둥치려고 해도 벗어나지 못하지.”
김상국이 허공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자,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검은 인형이 바닥에 내려왔다.
그건 김상국의 그림자였다.
“김영식, 저놈을 죽여!”
김영식은 암살자 계열의 헌터로 도경수 때문에 그쪽 업계에서 늘 이인자로 불렸다.
도경수가 죽은 지금 눈앞에 나태준을 죽인다면 자신은 업계 탑으로 불릴 것이고, 국가 헌터 협회에서도 김득구를 이어 확실하게 이인자로 올라설 것이다.
김영식은 그림자처럼 바닥에 붙어서 태준을 향했다.
그리고 그의 앞에 도달하자, 허리춤에서 서슬 퍼런 단검을 꺼냈다.
단숨에 목을 찔러 끝낼 생각이었다.
“딱히 감정이 있는 건 아니야. 그저 일 때문이니, 날 원망하진 말게.”
마지막으로 태준의 목에 단검을 겨누고 그의 눈을 쳐다보았다.
그 순간...
“억!”
팔이 뜯어지고, 다리가 잘리며, 배가 갈라져 내장이 밖으로 쏟아지고, 목에서 피가 쉴새 없이 뿜어지는 자신의 모습의 보였다.
김영식의 몸이 굳었다.
“네가 어떻게 죽을지, 이제 알겠지?”
김영식은 자신이 처참하게 찢겨 죽는 공포를 느꼈다.
도살자의 시선을 너무 가까이에서 마주한 것이다.
그리고.
촤악!
태준의 칼이 환상으로 만든 가시덩굴을 찢어버리고, 김영식의 배를 그었다.
“큭!”
배가 갈라지며 내장이 쏟아졌다.
그리고 몇 번 칼이 움직이자, 조금 전에 자신이 보았던 모습 그대로 쓰러져 죽었다.
믿었던 김영식의 죽음에 김상국은 패닉에 빠졌다.
늘 자신을 지켜주던 그림자까지 죽었다.
게다가 자신의 정신 계열 스킬은 태준에게 통하지 않았다.
아니 도살자의 시선 때문에 무산됐다.
태준이 한발씩 다가갔다.
“태, 태준아! 그만하자. 난 여기서 손을 뗄게. 아니 앞으로 헌터 활동도 그만하지.”
태준이 한쪽에서 공포에 떨고 있는 네피림 아이들을 쳐다보았다.
그 순간 김상국도 그 모습을 보았다.
그는 몸을 돌리더니, 어린 네피림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미안하다. 내가 잘못했어. 그러니 제발 용서해 주렴.”
그는 어린 네피림들에게 고개를 숙이며 잘못을 빌었다.
하지만 태준은 다가오는 걸음 멈추지 않았다.
“저 아이들에게 사과도 했고, 이제 헌터들도 모두 철수시킬 테니까. 말로 하자. 응? 우린 동창이잖아.”
태준이 서슬 퍼런 칼을 들고, 김상국 앞에 섰다.
최규환도 그 모습을 보았지만, 김상국을 돕진 않았다.
그가 사라지면, 자신이 국가 헌터 협회를 장악할 테니까.
그리고 자신은 나태준과 친한 편이라 생각했다.
태준이 김상국에게 물었다.
“왜지?”
“뭐가?”
“왜? 연희를 죽이려 한 거지?”
김상국의 표정은 하얗게 질렸다.
“그, 그게 무슨... 내가 한 게 아니야.”
“도경수가 죽기전에 다 말했어.”
“아, 아니야. 그놈이 나를 모함 한 거야. 절대 아니야. 믿어줘!”
그는 끝까지 변명하며, 목숨을 부지하려 했다.
하지만 더는 용서할 수 없었다.
태준이 바람처럼 김상국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김상국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휴!”
그 순간 김상국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태준은 자신을 놔두고, 게이트 앞에서 네피림과 싸우고 있는 헌터들을 향해 걸어갔다.
절체절명의 순간 말로써 위기를 모면했다.
그런데.
자신의 주변으로 어린 네피림들이 죽은 헌터들의 무기를 들고 서 있었다.
“이 어린놈의 새끼들! 내가 미안하다고 했잖아!”
푹!
“컥!”
등 뒤에 검이 박혔다.
김상국이 몸을 돌려보니, 조금 전에 자신이 지목했던 아름다운 소녀 네피림이 자신을 찌른 모습이 보였다.
그러자 다른 어린 네피림들이 그를 난도질했다.
태준이 그들을 쳐다본 것은 그들에게 원수를 갚을 기회를 준 것이다.
“태, 태준아 오지 마! 지금 대형이 무너지면...”
최규환이 손과 고개를 흔들었다.
하지만 이미 대형은 무너졌고, 게이트를 빠져나온 네피림들이 수 명에서 수십 명으로 늘어 헌터들과 싸우고 있었다.
헌터들은 태준의 등장을 알았을 때부터 이미 흔들리고 있었다.
“으악!”
네피림들이 제 몸 살피지 않고, 달려들어 한 헌터와 동귀어진했다.
그들은 용맹했고, 어린 네피림들을 끔찍이 여겼다.
굳이 태준이 나설 필요도 없어 보였다.
포위가 뚫리고, 네피림들이 헌터들과 뒤섞이자, 사방에서 전투가 벌어졌다.
“멈춰!”
한 헌터가 태준의 앞을 막아섰다.
그는 김득구였다.
태준과 연희를 제외하곤 지구에 남아 있는 유일한 SSS급 헌터.
“왜 김상국의 편을 든거지?”
김득구는 한쪽에 서서 게이트에서 나오는 네피림을 공격하지도 않았고, 김상국이 죽을 때도 도와주지도 않았다.
그랬기에 태준이 물은 것이다.
“이유는 간단해 최강해와 싸우고 싶어서야. 그놈이 얼마나 강한지 내가 말해주지 않았나? 옛날부터 내 목표는 그놈이었어.”
“글쎄, 기억나지 않는군. 그럼 지금 내 앞을 막는 이유는?”
“다른 이유는 없어, 너와 내가 둘 중에 누가 더 강한지. 그것만 가리면 된다.”
김득구는 어렸을 적부터 승부 가리기를 좋아했다.
걸음마를 떼고 난 후부터 아버지에게 복싱을 배웠기에 초등학교 때 이미 중학교 형들과 싸웠고, 싸움에 지면 몇 번이고 다시 도전해 자신이 이길 때까지 싸움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승부에 지나치게 집착했다.
그는 연희와 최민지 다음으로 강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진짜 강한 것이 최강해 성주란 것을 알고 난 후부터 그에게 벌써 몇 번이나 도전했다.
하지만 결과는 언제나 자신의 패배였다.
그러니 자신이 그를 이길 때까지 그는 살아 있어야 했다.
이것이 그가 김상국과 최강해를 돕는 이유였다.
하지만 지금 지구 최강의 헌터는 누가 뭐래도 나태준이었다.
그가 나타나기 전에는 계속 최강해와 싸울 생각이었지만, 태준이 나타났으니, 목표가 바뀌었다.
나태준은 SSS급 괴수를 죽인 유일한 헌터였으니까.
여기서 승부를 가리고 싶었다.
“간다!”
김득구의 권풍이 태준을 향해 휘몰아쳤다.
소용돌이 같은 권풍의 위력에 벽이 파이고, 스친 바람에 바위가 으스러졌다.
살짝만 스쳐도 치명타를 입을 것이다.
하지만 닿지 않았다.
태준은 그의 동작을 보는 것만으로 이미 권풍의 방향을 읽었다.
모두 제대로 맞으면 살이 찢겨나갈 정도의 강력한 일격이지만, 태준이 보기엔 동작이 너무 컸다.
자신이 SS등급이었을 때라면 충분히 위협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태준이 계속 잘 피하자, 김득구가 갑자기 권풍을 날리던 주먹질을 멈췄다.
그러더니 두 주먹을 앞으로 뻗었다.
푸아아아아앙!
엄청난 바람이 김득구의 두 주먹 앞으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무적신권!”
주먹 모양의 커다란 형상이 김득구의 팔과 주먹 앞으로 맺혔다.
그 주먹의 크기가 사람 몸체보다 컸고, 주먹 안에서 엄청난 기운이 소용돌이치고 있었으니, 제대로 맞으면 아무리 SSS급 헌터라도 살이 찢기고, 뼈가 부러질 것이다.
“받아라!”
SSS등급 권술가 계열의 최고 기술이 지금 눈앞에서 펼쳐졌다.
쾅! 쾅! 찌익! 찌이이익!
내려치는 주먹에 땅이 파이고, 앞으로 내 뻗은 주먹에 주변 공간마저 찢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태준은 침착했다.
그리고 백정의 칼을 들어 날아오는 주먹을 향해 힘껏 휘둘렀다.
캉! 캉! 카카캉!
칼과 주먹의 기운이 충돌하자, 쇠가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불꽃이 튀었다.
“내 주먹을 막을 수 있을 것 같으냐!”
태준이 자신의 주먹을 막자, 김득구가 더 강하게 주먹을 휘둘렀다.
그런데.
갑자기 주먹과 팔이 따끔거렸다.
‘뭐지?’
자신의 주먹이 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크윽!”
김득구가 재빨리 주먹을 뺐다.
“이게?”
“승부는 끝난 것 같은데?”
태준의 건조한 음성이 김득구의 뇌리에 박혔다.
“어떻게 이런 일이...”
김득구가 너무 놀라 얼이 빠진 표정을 지었다.
지금 펼친 기술은 자신의 최고 기술인 무적신권이었다.
SSS급 헌터가 되자마자 익힌 기술이고, 다들 S급, SS급 게이트에 미쳐서 보스를 상대하러 갔을 때도 김득구는 묵묵히 한쪽에서 괴수만을 상대하며, 최강해를 이기기 위해 칼을 갈 듯이 준비한 기술이었다.
“그 정도 상처론 죽지 않을 테니, 그만 물러서지.”
태준의 말처럼 이대로 더 싸울 순 없었다.
그 강철같은 주먹이 파이고, 살점이 떨어져 나가 뼈가 보일 정도로 너덜너덜해졌다.
만약 태준의 칼이 레전더리급이었다면, 칼로 막아낼 순 없었을 거고 대결은 길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포정의 칼은 신급 아이템으로 수천, 수만 마리의 S급, SS급 괴수의 피를 묻혔고, SSS급 괴수인 카라차크라의 피까지 묻혀 마지막 봉인이 풀린 희대의 병기였다.
김득구는 그것을 모르니, 기분이 죽을 맛이었다.
“내가 졌다. 다음에 다시 도전하지.”
김득구는 몸을 돌려 반대쪽 동굴을 향해 달렸다.
그리고 조금이나마 김득구를 믿었던 최규환은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저쪽은 매우 짧은 시간에 대결이 끝났지만, 아직 헌터들과 네피림들의 대결은 한창이었다.
하나하나의 실력은 헌터들이 월등했지만, 게이트에서 점점 더 많은 네피림들이 들어와 벌써 숫자가 4배 정도 차이가 나기 시작했다.
네피림은 실력은 떨어졌지만, 용기만은 불굴이었다.
자신의 목숨에 연연하지 않고, 달려드는 폭주 기관차 같았기에 헌터들이 점점 기가 질리고 있었다.
“쿠아아아아!”
드래곤 한 마리가 죽음을 무릅쓰고 달려든 네피림들의 공격에 강제 귀환했다.
“으아아악!”
“커헉!”
헌터들의 비명과 신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였다.
위이이이잉!
요란한 소리를 들었는지, 계곡 아래로 내려갔던 우주선이 빠르게 올라오고 있었다.
태준은 바위틈에 숨어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티베리안인들과 최강해가 급하게 우주선에서 내렸다.
“뭐하느냐! 지구의 헌터들을 돕는다.”
“네!”
지구의 헌터들은 이렇게 사라질 소모품이 아니었다.
아직 이용가치가 많은 자들이었고, 당분간 자신의 수족이 되어야 했다.
티베리안인들이 헌터들을 도와 네피림을 공격했고, 최강해는 게이트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이글거리던 게이트가 점점 검은 빛을 잃고 흐려지기 시작했다.
게이트 생성은 오래 걸렸지만, 소멸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게이트가 흔적도 없이 사라질 때였다.
다다다다닷!
“응?”
누군가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는 소리에 고개를 돌린 최강해가 마치 유령을 본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어, 어떻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