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9
149. 최후의 혈투.(완)
미친 듯이 달려오는 태준을 보고 최강해가 자신의 신검 엑스칼리버를 뽑아 들었다.
“도살(屠殺)!”
태준의 전광석화(電光石火) 같은 일격!
카앙! 치이이익!
태준의 내려치는 칼을 받자, 최강해가 뒤로 쭉 밀렸다.
그 순간 최강해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이놈이 더 강해졌구나!’
칼을 받아낸 순간 느낌은 그것뿐이었다.
그리고.
“유인유여(游刃有余)!”
경지에 달한 태준의 칼 놀림이 최강해를 덮쳤다.
탱! 태태탱! 탱!
대기를 가르며 날아오는 칼은 무서운 예기를 담고 있었다. 하나하나에 엄청난 기운을 담고 있다는 뜻이었다.
“동도심미(動刀甚微)!”
칼의 궤적이 난해하여 받는 상대는 손발이 어지럽다.
게다가 칼의 움직임이 매우 빠르고 세미하여 급소를 향해 휘둘린다.
최강해는 칼을 받으면서도 계속 뒤로 밀렸다.
그러다 이를 악물었다.
더는 밀릴 수 없음이다.
뒤쪽에 자신이 타고 온 작은 우주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우주선에는 티베리안 과학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자신의 마지막 자산이 있었다.
“건방지다! 칼스타그!”
바닥에 오망성이 번쩍였다.
태준의 공격을 받으면서 소환수를 소환한 것이다.
그런데,
사삭!
그 순간 입고 있던 방어복의 소매가 잘렸다.
그와 동시에 손목에 붉은 실금이 자신도 모르게 그어졌다.
최강해는 순간 이마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방금 조금만 더 깊었다면 손목이 잘릴 뻔했다.
“쿠아아아!”
지룡 칼스타그.
놈이 땅 위로 솟아오르며 태준과 최강해 사이를 막아섰다.
그리고 거센 바람과 함께 드래곤의 브레스가 뿜어졌다.
화아아아! 파파파팍!
화염과 그 속에 작은 바위들, 지하에 존재하는 가스와 맹독까지 섞인 지룡 칼스타그만의 브레스.
그것이 최강해에게 달려드는 태준을 향해 뿜어졌다.
하지만 태준은 피하지 않았다.
“난도(亂刀)!”
칼이 거칠게 휘둘러지며, 브레스를 향해 그대로 돌진했다.
칼스타그는 자신에게 달려드는 건방진 인간을 보며 숨결을 멈췄다.
그리고 더 강한 브레스를 내뿜으려 했는데,
“도륙(屠戮)!”
[도륙(屠戮) - 무엇이든 자르고, 벤다. 앞을 막아내는 것이 죽을 때까지 격노(激怒)한 칼질이 이어진다. 난도(亂刀) 스킬과 병행하면 위력이 커진다.]
파도 같은 칼질이 몰려왔다.
작은 칼이 아닌 마치 날카로운 예기를 가진 거대한 투명의 칼날이 휘둘러짐이다.
파파파파파팍!
“쿠에에에엑!”
순간적으로 수십 번의 격노한 칼질이 칼스타그에게 쏟아지고, 지룡은 온몸이 잘려 강제귀환했다.
잠시 숨을 고르며 주변의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던 최강해는 순식간에 칼스타그가 당하자, 인상을 찡그렸다.
그리고 그가 다시 달려오고 있었다.
태준은 도무지 쉴 틈을 주지 않았다.
그것이 그의 작전이었다.
‘좋지 않다!’
인간 헌터들이 밀리기 시작했고, 자신의 부하들 역시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네피림의 숫자는 이미 다섯 배 이상 많아졌다.
게다가 뒤에 있는 티베리안 과학자들이 죽는다면, 티베리안인들의 과학 문명은 퇴보할 것이 뻔했다.
그러니 그들을 살리기 위해선 우선 태준을 유인해야 했다.
“너희는 전진 기지로 돌아가라!”
최강해의 명령을 받은 작은 우주선은 위로 떠올랐고, 최강해는 태준을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촤르르르르!
콰앙!
태준이 던진 갈고리가 날아가 우주선의 후미를 부수며 걸렸다.
“으아아아아!”
도살자의 괴성이 울리며 쇠사슬이 당겨지자, 우주선이 그 힘을 이기지 못하고 아래로 주저앉았다.
콰아아앙!
우주선의 엔진 부분이 발화하며 폭발과 함께 순간적으로 화염이 치솟았다.
“안돼!”
최강해가 소리를 질렀지만, 이미 타고 있던 티베리안 과학자들은 죽은 후였다.
최강해의 몸에서 갑자기 거센 기세가 뿜어졌다.
이젠 제대로 상대할 생각인 것 같았다.
태준은 자신의 작전이 적중했음을 느꼈다.
최강해가 우주선을 보호하는 것을 느끼자마자, 먼저 우주선을 공격했고, 안에 있는 티베리안인들을 모두 죽였다.
그러자 최강해가 분노했고, 도망가는 대신 자신에게 달려들었다.
“나태준! 오늘 끝장을 내주마!”
그가 손을 뻗자, 태준의 양옆에서 커다란 샤벨 타이거 두 마리가 솟아올랐다.
그런데 그 모습이 생물이 아니고, 기계였다.
그것들은 다른 차원에서 소환된 기계 문명의 소환수였다.
온몸이 메탈로 되어 있는 두 샤벨 타이거가 태준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최강해 역시 전면에서 엑스칼리버를 휘두르며 공격했다.
태준은 정신을 집중했다.
처음 보는 소환수였지만, 자신의 칼로 자르지 못할 것은 없었다.
“절야(折也)!”
SS급 괴수의 뼈도 단숨에 자르는 스킬이 먼저 옆에서 달려드는 두 샤벨 타이거에게 휘둘러졌다.
추아아앙! 취앙!
태준은 강했다.
샤벨 타이거들은 머리와 몸통이 잘리며 순식간에 강제귀환했다.
그 순간 최강해의 검이 태준을 짓눌렀다.
“호수 가르기!”
일격에 깊은 호수를 가르는 참격(斬擊)이 태준에게 쏟아짐이다.
신급 에고 소드 엑스칼리버의 위력이 밀려왔다.
“질 것 같으냐! 도살(屠殺)!”
태준은 백정의 칼을 올려쳤다.
콰앙!
병장기가 부딪치는 소리가 아니라, 강한 기운이 폭발하는 소리가 뻗어졌다.
그 순간 게이트 앞쪽에서 치열하게 전투를 벌이던 자들이 일제히 귀를 막았다.
강력한 진동과 파괴력에 고막이 터질 것 같은 고통이 몰려왔기 때문이었다.
“큭!”
“윽!”
최강해와 나태준이 동시에 신음을 흘렸다.
태준의 옷은 갈가리 찢어지고, 몸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최강해는 뒤로 삼 보나 물러서며 자신의 떨리는 팔을 진정시키기 바빴다. 그는 지금 인간의 모습이 아닌 리자드맨과 같은 파충류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고, 손과 팔, 상체까지 폭탄의 파편에 맞은 것처럼 여기저기 구멍이 뚫려있었다.
“본모습을 보였군.”
태준이 피 칠갑 된 몸을 일으켰다.
그런데 그의 몸에 상처가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르게 치유되기 시작했다.
괴수 고기를 섭취(攝取)할 때, 실행되는 고기 치유 스킬이 자동으로 발동했다.
그런데 그 모습이 꼭 카라차크라가 자기 치료를 하는 것과 닮아 있었다.
그 모습에 최강해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네, 네놈이 어떻게?”
“나는 카라차크라와 동화했다. 내 몸속엔 괴수의 피와 살이 공존하고 있지.”
최강해의 눈빛이 또다시 탐욕으로 물들었다.
과학자들이 죽었지만, 자신의 계획은 아직 진행 중이었다.
조금 전까지는 카라차르카를 연구할 과학자는 있었지만, 연구할 재료가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카라차크라를 연구할 재료가 눈앞에 있었지만, 연구할 과학자가 없었다.
하지만 상황은 지금이 더 낳았다.
과학기술이야 인간들에게 그동안 모은 자료와 우주선을 제공하면 그들이 알아서 배우고 성장할 테지만, 연구할 재료는 구할 수 없었으니까.
“네놈을 죽여 살과 뼈를 취해주마!”
최강해가 엑스칼리버를 더욱 거칠게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이제는 태준을 죽이기 위해서였다.
인간 헌터들은 이미 전투를 포기하고, 퇴각하기 시작했다.
어린 네피림들은 어른들에게 구해졌고, 티베리안인들은 모두 죽었다.
일부 네피림들은 헌터들을 추격했고, 수백 명의 네피림들이 최강해와 태준을 넓게 포위했다.
그들은 도마뱀 최강해를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두 강자의 대결에 쉽게 끼어들지 못했다.
두 강자의 칼질에 이미 땅과 동굴은 엉망이 되어 있었고, 검기가 사방으로 날아가 근처로 다가가는 순간 몸이 잘릴 것이다.
한참을 검과 칼이 허공에서 굉음을 내질렀다.
그러다 최강해가 힘이 달리는지 인벤토리에서 또 하나의 신급 검을 꺼냈다.
수르트의 검.
신화 속의 신들을 멸망시킨 불꽃의 검이 태준에게 휘둘렸다.
태양처럼 빛을 내는 검에서 뿜어진 거센 불꽃 해일이 태준을 덮쳤다.
불꽃은 태준만을 공격한 것이 아니었다.
수십 미터 뒤에 있던 네피림들까지 불꽃에 휩싸여 순식간에 수십 명이 죽었다.
단 한 번 휘둘렀음에도 그 위력이 어마어마했다.
그런데 불꽃이 모두 지나간 자리에 태준은 칼을 들고 다시 일어났다.
몸의 살점은 군데군데 녹아내렸고, 온몸에 화상이 가득했다. 그리고 머리카락은 모두 타버렸다.
아주 끔찍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빠른 속도로 살이 돋아나고, 머리카락은 새것으로 교체됐다.
그는 불사신인가?
최강해는 이를 악물고 엑스칼리버와 수르트의 검을 휘두르며 한참 동안 태준을 압박했다.
하지만.
“크악!”
네피림들의 귀에 비명과 함께 최강해가 뒤로 쓰러지는 광경이 보였다.
최강해가 곧바로 일어났지만, 입에선 피를 토해냈다.
그가 수르트의 검을 던지며 손을 뻗었다.
“나와라! 피르보르!”
태준은 소용돌이치는 불의 검을 피했고, 아래쪽에서 거신족이 소환됐다.
네피림이 3미터의 엘프 거인이라면, 최강해가 소환한 피르보르는 키가 20미터에 달하는 인간형 거인이었다.
거신족의 손에는 한 자루 불타는 창이 들려 있었고, 태준을 겨냥하고 있었다.
그 순간 최강해는 카라차크라가 있던 동굴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는 달아나는 것이다.
태준이 자신의 상대가 아니란 건 조금 전 일격에 피를 토하고 느끼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처음 그를 봤을 때부터였는지 모른다.
확실한 건, 그는 싸우면 싸울수록 계속 강해지는 괴수 카라차크라와 같았다.
아니 괴수 카라차크라의 인간형이었다.
게다가 움직이기까지 하니, 도저히 자신이 맞서 싸울 수 없었다.
그렇다면 자리를 피해 후일을 도모하는 것이 현명한 것이다.
“크아아아!”
쿵!
거대한 피르보르가 한발을 앞으로 내밀며 불타는 창을 질렀다.
콰앙!
땅이 파였다.
얼마나 강하게 찔렀는지 10미터나 되는 땅이 파였고,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러나 태준은 그 자리에 없었다.
거신의 다리 밑으로 달리더니 인간의 작은 발을 휘둘렀다.
그러자 믿기지 않는 상황이 펼쳐졌다.
콰직!
거신의 다리가 안쪽으로 함몰되며 부러졌다.
피르보르는 균형을 잃고 쓰러졌고, 태준은 그를 무시하고, 최강해를 쫓고 있었다.
“아르카스!”
눈앞에 절벽이 있었기에 하늘을 날 수 없는 최강해는 드래곤을 또 한 마리 소환했다.
푸른빛의 거대한 드래곤 한 마리가 날개를 펄럭였고, 최강해를 태우곤 공중으로 올라갔다.
여기서 놈을 놓칠 수 없었다.
태준은 절벽 끝에서 위로 솟구쳐 올랐다.
어마어마한 점프력으로 아르카스의 다리를 잡았다.
“쿠에엑!”
태준이 발을 힘껏 잡아당기자, 거대한 놈이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백정의 칼이 드래곤의 다리에 박혔다.
그러자, 최강해가 공중에 게이트를 만들기 시작했다.
단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갈 정도의 작은 게이트.
이것을 만드는 데, 겨우 10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제길, 다음에 죽여주지!”
최강해는 게이트로 몸을 날렸다.
최강해가 사라지자, 태준은 망설임 없이 게이트로 몸을 날렸다.
그 순간 블루 드래곤의 브레스가 태준의 등에 작렬했다.
타는 듯한 고통이 엄습했지만, 이 정도로 태준을 막을 수 없었다.
팟!
“게이트가 사라졌다!”
뒤를 쫓던 네피림들이 아연실색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집으로 돌아갈 게이트가 없었다.
***
쿵!
끝없는 황무지 위에 최강해가 떨어졌다.
급하게 차원 게이트를 열고 들어온 곳은 원시 시대의 지구와 같은 차원으로 인간이 살지 않은 곳이었다.
“제길, 놈이 그렇게 강할 줄이야.”
최강해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로 인해 자신의 계획은 백지상태가 됐다.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눈앞이 캄캄했다.
하지만 자신은 다른 차원들로 이동하는 게이트 반지가 여섯 개나 있었다. 그랬기에 방금도 위기 상황에서 가까스로 탈출할 수 있었다.
쿵!
등 뒤에 들린 소리에 순간 전신의 털이 모두 곤두섰다.
최강해가 뒤를 돌아보았다.
“지옥 끝까지 따라가 주지!”
나태준이 백정의 칼을 들고 다가오고 있었다.
최강해는 미친 듯이 앞으로 달렸다.
어떻게 게이트를 통과할 수 있는지, 알 수는 없었다.
분명 자신 외에는 아무것도 통과시키지 않게 설정된 게이트였다.
한참을 달리고 달렸다.
달리기라면 자신 있었다.
두 다리에 착용한 각반엔 레전더리 “가속의 룬”이 박혀 있었기에 바람처럼 달렸다.
그런데, 뒤를 돌아보자 태준이 여전히 따라오고 있었다. 게다가 아주 조금씩이지만 거리가 좁혀졌다.
놈은 지치지도 않았다.
얼마나 달렸을까.
이대로라면 따라잡히고 만다.
팔을 뻗어 앞쪽으로 또다시 작은 게이트를 생성했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이번에도 나태준은 뒤를 쫓아왔다.
태준은 자신이 만든 모든 게이트를 통과할 수 있었다.
그것을 알게된 최강해는 머리를 굴렸다.
자신이 달리던 앞쪽으로 새로 게이트를 만들고 최강해는 망설임 없이 게이트를 통과했다. 이곳은 방금 전에 왔던 그 불모지 차원이었다.
그리고 몸을 돌려 게이트를 향해 손을 뻗으면서 뒤로 물러섰다.
게이트를 닫으려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게이트가 흐려지는 순간 태준이 빠져나왔다.
게이트가 닫히는 순간보다 태준이 조금 더 빨랐다.
최강해는 공포에 질린 얼굴로 몸을 돌려 다시 달렸다.
그 순간.
[카라차크라의 반지를 사용합니다.]
[시간을 5초 뒤로 돌립니다.]
[게이트에 나온 시간이 짧아 2초 뒤로 돌립니다.]
태준이 생각한 완벽한 기회였다.
게이트를 나와서 카라차크라의 반지를 작동시켰기에 게이트를 나오는 시점부터 다시 시작이었다.
게이트에서 나오자마자, 태준은 백정의 칼을 던졌다.
휙휙휙휙!
칼은 태준의 의지를 따라 낮은 궤적을 그리며 최강해에게 날아갔다.
그 순간 최강해의 창백해진 얼굴이 보였고, 그가 게이트를 향해 뻗은 손도 보였다.
그가 태준을 보고 경악하며 몸을 돌리려고 하는 순간, 백정의 칼이 아래에서 위로 솟구쳤다.
서걱!
“크악!”
네 개의 반지가 끼어있는 손이 절단되어 바닥을 뒹굴었다.
피가 뿜어지는 그 순간에도 최강해는 반대쪽 손을 뻗어 손목을 집으려 했다.
저 게이트 반지가 없으면 자신은 이곳에서 빠져나가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때 태준의 칼이 방향을 틀어 다시 그를 공격했다.
최강해가 놀란 눈으로 엑스칼리버로 막았다.
캉! 카카캉!
칼이 살아 있음이다.
태준은 분명 저쪽에서 천천히 걸어오고 있는데, 그의 칼은 쉴새 없이 자신을 향해 휘둘렸다.
심지어!
“유인유여(游刃有余)!”
백정 스킬까지 쓰고 있었다.
칼이 물 흐르듯이 최강해를 압박하자, 그가 계속 뒷걸음질 쳤다.
그리고.
“도대관(導大窾)!”
20여 개의 칼이 동시에 찔러지는 듯한 스킬이 펼쳐졌다.
“크윽!”
몇 개의 칼날이 최강해의 몸을 찔렀다.
최강해는 그대로 뒤로 쓰러졌다.
이는 괴수 백정 클래스의 SSS등급 스킬인 포정해우의 기술이 펼쳐진 것이다.
[포정해우(庖丁解牛) - 포정(庖丁)이 이룬 달인의 경지.
정신과 백정의 칼이 하나로 되며, 칼이 손길 가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움직인다.]
한 마디로 이기어검술(以氣馭劍術)의 비기와 같은 것이었다.
“이 반지들이로군.”
태준이 잘린 손을 들고, 네 개의 손가락에서 반지를 하나씩 뺐다.
네 개 중에서 세 개가 게이트 반지였고, 나머지 하나는 그냥 레전더리 반지였다.
그의 다른 손에는 3개의 게이트 반지가 있었지만, 더는 게이트를 생성할 순 없었다.
이곳과 티베리안 차원을 이동하는 반지는 이미 태준의 손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백정의 칼이 태준의 손으로 날아왔다.
그리고 그가 다시 던지려는 그 순간.
“잠깐! 나를 죽이면 이 게이트 반지는 영원히 사라질 거야.”
그가 티베리안 차원과 연희와 길드원들이 갇혀있는 차원으로 연결되는 게이트 반지를 인벤토리에 넣었다.
그를 죽이면 다시는 그쪽 게이트를 열 수 없었다.
최강해가 피가 뚝뚝 떨어지는 잘린 손목을 붙잡고 일어섰다.
“거, 거래를 하지.”
“거래? 원하는 것이 뭐지?”
“흐흐흐. 그렇게 나와야지.”
최강해가 고통 속에서 비릿한 웃음을 흘렸다.
“나를 이곳 차원에서 내보내 주면, 네가 원하는 게이트 반지를 주지, 그리고 나는 아예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 다시는 티베리안과 지구로 돌아오지 않겠다. 어때?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조건인데.”
“네놈이 약속을 지킬 것이라고 어떻게 믿지?”
“어차피 이곳에선 나가야 할 거 아닌가? 여긴 황무지밖에 아무것도 없어. 그러니 네가 게이트를 만들고 먼저 나가면 내가 뒤를 따라 나가지. 그리고 티베리안 차원에서 거래하면 그만이지.”
“일단 고민 좀 해야겠군.”
태준은 인벤토리를 열고 물을 꺼내 마셨다.
그러자 최강해 역시 인벤토리에서 각종 치료 관련 약품을 꺼내 상처에 발랐고, 자신의 잘린 손을 쳐다보았다.
“그 손은 필요 없을 테니, 돌려주지그래?”
태준이 그의 잘린 손을 자신의 인벤토리에 넣었다.
“반지를 주면 그때 넘겨주지.”
최강해가 인상을 찡그리며 자신의 잘린 팔에 응급처치했다.
SSS등급 헌터의 재생력이라면 괴사가 되지 않는 한 다시 이어 붙일 수 있었다.
“너무 오래 시간을 끄는 거 아닌가?”
한참이 지났음에도 태준은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
다시 앉아서 또 한참을 고민하다 다시 일어섰다.
“좋아, 조건을 받아들이지.”
태준이 뒤쪽에 게이트를 발생시켰다.
그리고 먼저 밖으로 나갔다.
***
태준이 게이트를 나오고 얼마 후에 최강해가 게이트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쩍!
자신의 머리 위에서 백정의 칼이 내려꽂혔다.
“컥! 이, 이게.”
눈앞에서 태준이 칼을 내려친 것이다.
최강해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쓰러졌다.
그리고 자신의 손에 있는 반지를 빼기 위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이미 잘린 손이었으니, 반지를 어떻게 빼겠는가.
태준이 다가와 최강해의 손에 있는 반지를 꺼냈다.
나머지 3개의 게이트 반지가 그대로 있었다.
“어, 어떻게?”
“나 네놈을 믿지 않아.”
그렇다.
최강해는 처음부터 게이트 반지를 인벤토리에 넣은 적이 없었다.
그저 페인트로 레전더리 반지 하나를 넣었고, 그것을 태준에게 각인시켰을 뿐이었다.
그리고 만약 그의 말대로 게이트 반지가 없었다면, 하루가 지났기 때문에 다시 5초 뒤로 시간을 되돌리면, 그만이었기에 모험을 시도했다.
6개의 게이트 반지가 모두 태준의 손에 있었다.
지구로 향하는 반지는 2개였기에 총 7개의 반지였다.
이제 태준은 모든 차원을 이동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되었다.
그랬기에 어디든 갈 수 있었고, 게이트도 얼마든지 열고 닫을 수 있는 무소불위(無所不爲)의 힘을 가지게 되었다.
태준은 먼저 네피림들이 있었던 곳으로 달려갔다.
그들은 아직 동굴에서 떠나지 않았고, 부상자들을 치료하고 있었다.
그들을 위해 집으로 돌아가는 게이트를 열어줬다.
어린 네피림들과 성인 네피림들이 태준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그리고 전진 기지로 돌아가 지구와 티베리안 차원을 연결했던 게이트를 소멸시켰다.
게이트 소멸시간은 200시간, 돌아갈 시간은 충분했다.
모든 것을 처리하곤, 드디어 연희와 팀원들이 있는 차원 게이트의 문을 열었다.
자신이 티베리안으로 넘어왔던 게이트는 이미 소멸했기에 다른 게이트를 열었고, 그쪽 세계로 넘어왔다.
***
독충이 우글거리는 밀림으로 떨어졌다.
이곳에서 팀원들이 있는 왕국의 바닷가까지 얼마나 걸릴지 몰랐다.
하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여행을 시작했다.
십여 일을 걷자 바다가 나왔고, 해안선을 향해 다시 걷자, 문명 왕국이 나왔다.
하지만 이곳은 일행이 있는 대륙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게이트를 생성에 다시 티베리안으로 갔다가 다시 이곳 차원으로 돌아왔다.
그것을 수십 번 반복하자, 드디어 왕국과 가까운 곳에 게이트가 생성됐다.
그리고 며칠을 달려 바닷가 마을에 도착했다.
그런데 아무도 없었다.
이쪽 사람들의 말로는 그들은 모두 동쪽으로 이동했다고 했다.
태준은 연희와 길드원들의 발자취를 따라 동쪽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드디어 너른 벌판에서 연희와 팀원들을 만났다.
“도, 돌아왔구나!”
연희가 달려와 안겼다.
그리고 팀원들과 길드원들도 모두 달려와 태준을 환영했다.
태준과 팀원들의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근데,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아! 큰일이야! 마왕이 이 세계를 침공했어. 그래서 우리의 힘이 필요해.”
“뭐?”
“아무래도 마왕도 게이트 반지를 가지고 있었나 봐.”
저 멀리 지평선 뒤쪽으로 마왕과 수백만이나 되는 어둠의 군단이 진군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커다란 검은 게이트가 이글거렸다.
어찌 된 일인지 마왕은 다른 차원으로 가는 또다른 게이트 반지를 차고 있었다.
마왕은 몇백 년에 한 번씩 이 세계를 침공한다고 했고, 그때마다 용사들이 나타나 마왕을 물리쳤다고 했다.
“휴! 어쩔 수 없지. 저놈의 멱을 따버리고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태준은 백정의 칼을 들고 말볼을 타고, 어둠의 군단을 향해 달렸다.
하지만 이번엔 혼자가 아니었다.
연희가 나란히 달렸고, 뒤에 최한별, 한수진, 윤상희, 이수호, 정기용, 이수경, 김서라가 따라왔고, 그 뒤로 도살자 길드원들이 달렸다. 그리고 그 뒤로 수십 만의 인간들과 몬스터 군단이 돌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