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시의 지배자-1화 (1/148)

< --  히말라야에서   -- >“하아~”숨을 내쉬자 가냘픈 숨길마저도 얼어버릴 만큼 혹독한 추위가 온몸을 감싼다. 나는 피켈로 빙벽을 찍고 갈라진 틈새에 아이스하켄(icehaken)을 때려 박아 지지대를 삼았다. 바람에 흔들리던 몸이 추락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빙벽에 바싹 붙었다.영하 2도의 날씨는 양호한 편이었지만 칼날 같은 날카로운 바람이 문제였다. 날씨는 시간이 지나도 좋아질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고 오히려 눈보라까지 조금씩 불어오고 있어 등반을 멈추고 되돌아왔다.  히말라야의 K2의 제 1캠프를 만드는 작업이 며칠이 가도록 지지부진 했다. 나는 오늘도 고도가 5천2백 미터에 세운 전진기지로 되돌아오고 말았다. 나에게는 10명의 셀파가 돕고 있다. 그중 2명은 단순한 짐꾼이 아니라 등반동료이며 조력자였다. 알과 두파가 그들이다. 나는 낭가파르바트를 혼자 등반한 전설적인 알피니스트인 헤르만 불(Hermann Buhl)을 생각했다. 그는 세계에서 9번째로 높은 산이며 죽음의 산, 악마의 산으로 알려진 낭가파르바트(Nanga Parbat, 8125m)를 산소통도 없이, 그리고 셀파도 없이 혼자 등반하였다. 그는 가장 험난한 코스를 거의 일직선에 가까운 난코스를 통과하

였다. 그러나 그는 너무나 많은 심력을 사용했는지 올라갈 때는 청년이었으나 내려올 때는 노인의 얼굴이 되어 내려왔다. 나는 위대한 등반가인 그를 닮으려고 혼자 등반을 시작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리고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려는 그런 고상한 의도도 없었다. 하다못해 조지 말로니가 뉴옥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말한 것처럼 산이 거기 있었기 때문에(Because it is there) 히말라야를 찾은 것도 아니었다. 나는 산에 대한 사랑 따위는 애초에 가지지 않았다.나는 내 운명을 시험하고 싶어 온 것이다. 하지만 사실 솔직히 말하자면, 깨끗하고 고귀한 모습으로 죽으러 왔다. 내 삶의 끝을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마치고 싶었다. 그 누구도 내 불행한 운명에 동정을 하지 못하도록 말이다.해발 5000미터에 마련된 전진기지는 주변에 비해 상대적으로 움푹 들어간 곳이라 강풍에도 잘 견디었다. 전진기지로 사용하는 곳에는 4개의 텐트가 쳐졌으며 한 개는 내가 사용하고 2개는 셀파들이 사용하며 나머지 한 개는 장비와 식량들이 비축되어 있다. 얼음을 녹여 끓인 따뜻한 물을 마시자 호흡하기가 한결 나았다. 더운 물을 자주 마셔주지 않으면 고산지대에서는 고산증에 걸리기 쉽다. 그래서 고산병의 증상인 탈수나 구토, 두통 등을 피하려면 따뜻한 물을 자주 먹어줘야 한다. 2/11 쪽

시간이 지날수록 눈보라가 심해졌다. 나와 셀파들은 텐트에 깊이 처박혀 눈보라가 잦아들기만 기다렸다. 눈보라가 치는 K2는 무섭고 잔인했다. 아무도 그 앞에서 똑 바로 설 수 없었다. 눈은 다음날 아침이 되자 그쳤다.아침을 먹고 나는 알과 두파와 함께 어제 개척한 루트를 따라 다시 올라갔다. 이렇게 루트가 개척이 되면 10명의 셀파는 짐을 날라 다음 캠프를 설치한다. 짐꾼인 고산족(高山族) 셀파들은 유능한 짐꾼이며 동시에 산악인이기도 했다. 사실 그들의 가난한 삶이 유능한 등산가가 되도록 강요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K2를 혼자 오를 결심을 한 이유는 K2를 단독으로 등반에 성공한 라인홀트 메스너의 말처럼 히말라야는 대규모 등정보다는 소규모에 의한 속도전이 더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필요한 장비와 물품이 많아지고 위험도 증가한다. 인간의 감정을 잃어버린 나는, 얼음보다 차가운 마음 때문에 히말라야의 얼음과 눈이 고통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마음과 달리 몸은 시시각각으로 고통을 느끼며 내가 가진 영혼의 죄악을 경고했다.50도에 가까운 빙벽을 오르던 알이 갑자기 중심을 잃고 굴러 떨어졌다. 순간 자일에 연결된 밧줄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두파가 놀라 그를 바라보았다.3/11 쪽

“알, 정신차려.”두파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허공에서 대롱대롱 매달렸던 알이 정신을 잃지 않았는지 한 호흡 만에 대답한다.“이곳에 지지할 만한 곳이 있어. 하켄으로 지지대를 삼겠다. 힘들겠지만 더 떨어지지 않게 해줘.”알의 말은 바람소리에 웅웅거리지만 비교적 선명하게 들려왔다. 두파가 그의 말을 듣고 바로 대답했다.“잠시만, 하나, 둘, 셋하면 당긴다. 그 순간에 피겔로 버텨.”“오케이.”알은 있는 힘을 다해 대답했다. “하나, 둘, 셋!”두타의 말에 알이 재빠르게 피겔로 빙벽을 찍고 버티자 두파가 그를 조금씩 끌어올렸다. 다행히 알이 미끄러진 길이가 얼마 되지 않아 맨 밑에 있던 나에게까지 미치는 영향은 없었다. 4/11 쪽

우리는 처음부터 빙벽의 기울기가 사뭇 가팔라서 추락할 가능성을 열어두고 격시등반(interupted climbing)을 했었다. 격시등반은 등반대원들이 서로 어느 정도 안전지대를 확보하고 시차적으로 등반하는 것을 말한다. 등반하기 힘든 코스를 만나면 안전을 확보하기위해 앞뒤 사람과의 시차와 간격을 벌리면 사고의 위험에 대처하기가 그만큼 쉽다.우리는 알이 무사하게 되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알이 부상을 당했는지 더 이상 등반을 하지 못했기에 우리는 이날도 어쩔 수 없이 빙벽을 하강하여 내려왔다.알은 미안한 듯 나와 두타에게 말했다.“숨겨진 크레바스를 미처 발견하지 못했습니다.”“별 수 없군요. 상처는 어떻습니까?”“심하지는 않지만 빙벽을 타기는 곤란합니다.”크레바스는 빙하 사이에 생긴 균열을 의미한다. 눈으로 덮인 히든크레바스에 걸리면 굉장히 위험하게 된다. 등산에 성공한 후에도 산을 내려올 때 크레바스에 당하여 실종되는 경우도 많고 이렇게 실종되면 거의 찾지를 못한다. 어떻게 보면 중간에 있던 알이 히든크레바스에 노출된 것은 앞선 두파의 실수이다. 선행자는 느리더라도 위험을 회피하여 안전한 길을 확보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이는 우리들 중에서 두파가 가5/11 쪽

장 실력이 좋다는 말이기도 했다.나와 두파는 알의 부상으로 오는 공백에 대해 걱정하며 의논하였다. 내려올 때 빙벽에 부딪혔는지 인대에 이상이 생긴 그는 걷는 것을 힘들어했다. 걷지도 못하는데 등반이라니.빙벽을 오르려면 아이젠을 신고 발끝에 힘을 주어 아이젠의 발톱이 얼음에 박혀야 한다. 그래야 중심을 제대로 잡을 수 있게 된다. 우리는 내일까지 그의 병세가 차도가 나지 않으면 알은 베이스캠프로 이동하기로 했다.베이스캠프로 가는 것도 걸어서 꼬박 5일이 걸리니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일단 알이 등반을 하지는 못해도 어느 정도 발목을 움직이는 데 고통을 느끼면 베이스캠프로 이동도 할 수 없게 된다. 알은 다음날 오후가 되어서야 인대의 고통이 줄어든 듯 동료 고산족 동료 2명과 함께 베이스캠프로 이동했다.하, 어쩐다? 나는 알의 부상으로 난처해졌다. 알과 두파는 2년 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다. 그렇지 않다면 내가 혼자 K2를 등반한다고 할 때 그는 따라나서지 않았을 것이다.나는 인왕산과 한라산에서 히말라야에 대한 훈련을 1년을 한 후 2년 전 현지답사차원에서 고산족 마을인 테임(Thame)에서 그들을 만났었다. 그때 알의 홀어머니가 병이 들었지만 돈이 없어 병원에 입원을 하지 못하였다. 그 사실을 안 내가 약간의 돈을 6/11 쪽

보태주어 그의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의 어머니는 결국 2달 후에 죽었다. 오래된 지병과 영양실조로 고생을 해서 병이 갑자기 악화되었던 것이다.알은 그후 내게 생명의 은인이라며 깊이 감사를 했었다. 그때에 그는 막 셀파를 시작하던 때라 돈이 없던 때였다. 그런 그였다. 알은 자신 때문에 등반에 차질을 준 것을 알고 매우 미안해했다.“알,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도 너 덕분이야. 충분히 고마워. 네가 아니었다면 내가 어떻게 두파와 같이 훌륭한 파트너를 만날 수 있었겠어. 마음에 두지 말고 빨리 낫기나 해.”나는 알과 두파를 보며 미안해졌다. 다른 팀을 만났다면 조금 더 편하게 일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들를 애써 외면해야한다. 나의 죽음은 천사의 날개보다 아름다워야 한다. 악마의 죽음이므로, 아들을 살해한 자의 비극은 프로메테우스 형벌보다는 아파야 한다. 그래야 한다. 간이 새에게 파먹이듯이 내 영혼이 아들의 원혼으로 골수가 파여야 한다. 세상이 나를 벌 줄 수 없으므로, 내가 내 자신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벌을 내려야 한다. 나의 아들아, 네가 아버지라 부를 수 없는 나는, 너에게 다가갈 수 없어 스스로를 벌7/11 쪽

한다. 아벨을 죽인 카인이 신에게 용서를 받듯이, 나는 그렇게 사람들에게 용서를 받아서는 안 된다. 이것은 나의 운명이다. 그러나 만약에, 만약에 여기서 죽지 않는다면, 그것이 내 운명이고 신의 뜻이라면 네 무덤에 꽃을 놓을 자격을 얻는 것으로 생각하겠다. 나는 두파에게 다시 등반을 시작하자고 했다. 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그런 남자다. 돈을 받았으면 끝까지 책임을 지는. 두파는 알의 이종사촌지간이다. 고산지대의 작은 마을에는 따지고 보면 친척이 아닌 사람이 없다. 그래도 둘은 어릴 적부터 같이 자라 유난히 친했다. 그래서 두파가 셀파의 일을 먼저 시작하자 알도 같이 따라서 셀파가 되었다.6시간 동안 빙벽을 오른 후 마침내  제 1 캠프를 세울 수 있는 곳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8명의 셀파들이 짐을 날라 제 1캠프를 설치했다. 일을 시작할 무렵 바람이 불어왔지만 어렵지 않게 텐트 하나를 칠 수 있었다. 작년에 여행캠프를 겸한 여행자로드에 참가하여 전진기지까지 왔었다 산악회 소속이 만든 트래킹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그때 나는 이 엄청난 얼음벽을 보고 꼭 오르고 싶었었다. 그리고 그것은 오늘 이루어졌다.나는, 어디쯤에서 죽을까를 생각했다. 죽음을 생각했을 때 왜 이 히말라야를 생각했는지 모른다. 투신이나 약물로 인한 자살은 왠지 하고 싶지 않았다. 밑바닥까지 내려왔지만 그것만은 도저히 할 수 없었다. 왜 그런지 나도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아마8/11 쪽

도 쉬운 죽음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던 것 같았다.다시 일주일 뒤 제 2 캠프를 만들고 나서 결국 우리는 K2에서 물러나기로 했다. 갑자기 기상이 악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5월의 K2는 이렇게 날씨가 변화불측하지 않는다. 비록 일교차가 심하기는 하지만 대체적으로 날씨는 맑은 편이었다.나는 먼저 셀파들을 내려 보내고 다음 두파를 가게 했다. 다음은 내 차례였다. 젠장, 죽는 것도 마음대로 못 한단 말인가. 나는 셀파들에게 피해를 줄 수 없어 그 뒤를 따랐다. 그리고 나는 잠시 다른 생각에 잠기느라 그들을 놓쳤다.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지고 보이는 것은 온통 눈이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그것은 변하지 않았다.아마, 이쯤에서 오른쪽으로 갔었지. 나는 무심코 그들이 내려갔을 것이라고 짐작되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때였다. 발밑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하더니 밑으로 끝없이 추락했다. 젠장, 빌어먹을 눈처마였다. 나는 떨어지면서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 안도했다. 다행하게도 눈더미에 파묻혀서인지 부상은 없었다.히말라야에서 길을 잃는다면 당연히 고통없이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산소통의 산소가 떨어지면서 추위는 견디기 힘들었다. 호흡을 할 때마다 그르륵 소리가 나는 것이 폐에 물이 조금씩 들어가는 것 같았다. 물을 끓여 마셔도 그때만 조금 도움이 될 뿐이었다. 그 순간만 지나면 바늘로 허파를 치르는 듯한 고통이 다시 찾아왔다.9/11 쪽

나는 그때야 산사나이들의 죽음이 그다지 낭만적인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았다. 추위에 얼어 죽는 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 것 같았다. 추위와 싸우면서 위대한 산악인 헤르만 불과 같이 눈처마의 붕괴로 죽게 되는 것을 영광으로 삼는 것이 조금은 위안이 되었다. 마침내 추위가 완전하게 몸을 점령했다. 몸의 감각이 이제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 이렇게 죽게 되겠지. 나는 얼음바위에 기대 마지막으로 편안한 포즈를 취했다. 만약 구군가 나를 발견하는 이가 있다면 바로 이 모습이리라. 나는 이 세상에 존재했었던 모든 것들에게 작별을 고했다. 머릿속에 명멸하던 그림들도 사라졌다. 그리고 눈을 감으려고 할 즈음 대각선의 아랫부분에 희미한 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아무리 봐도 크레바스의 일부로밖에 보이지 않는 얼음덩어리들 사이에 난 작은 틈, 그 사이로 희미한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뭐지?이상하게도 그 빛을 보자 조금씩 기운이 나기 시작했다. 여전히 폐에는 물이 고인 듯 호흡할 때마다 그르륵거리는 소리가 났지만 몸이 조금씩 움직여졌다. 얼었던 몸의 감각이 돌아오고 있었다.이게 뭐지? 어떻게 가능하지? 알 수 없는 미스테리가 다름 아닌 내게 벌어지고 있었다.폐에 물이 찼다는 말은 폐부종으로 상태가 심하지 않은 경우는 이뇨제를 써서 소변의 양을 늘리면 어느 정도 해결된다. 그러나 산에서 폐부종은 다르다. 특별한 의약품10/11 쪽

이 없다면 바로 사망할 만큼 무서운 병이 될 수 있다.나는 희미한 의식의 끈을 붙잡고 그 빛이 나는 곳으로 기어갔다. 얼음의 벽들이 앞을 가로 막았지만 어디에서 힘이 나왔는지 피켈로 얼음 덩어리를 깼다. 얼음의 벽이 약한지 조금씩 부셔졌다. 나는 그 얼음덩어리들을 깨면서 내가 무엇을 하고 있지, 하고 생각했지만 나의 본능이 저곳으로 가면 산다고 말해주고 있었다. 어떻게 살 수가 있단 말인가? 이곳은 K2다. 에베레스트 산보다 더 험한 곳이 바로 이곳이다. 얼음이 걷히고 연한 노란빛이 새어 나오는 길을 무릎으로 기어서 갔다. 그 빛에 가까이 갈수록 신기하게도 몸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나는 이 기묘한 현상을 이해할 수 없었다. 다만 마치 내가 K2를 온 이유가 나의 생명의 소멸이 아니라 이 작은 노란 불꽃을 만나러 온 것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친근함을 느꼈다.마침내 나는 일어나 걸었다. 점점 숨을 내쉬는 것이 편해지고 있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까? 해발 5천 미터가 넘는 곳에 위치한 이 초라한 얼음의 궁전인 크레바스에서, 빛들의 향연이 펼쳐졌다. 나는 빛에 이끌려 몽유병환자처럼 그렇게 그곳으로 다가갔다.아, 빛에 투영되던 얼음들이 끝나자 얼음이 아닌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동굴이 나타났다. 빛은 동굴 안에서 비추어지고 있었다. 수정처럼 빛을 반사하던 얼음이 끝나자 광경이 확하고 바뀌었다.11/11 쪽

아, 빛에 투영되던 얼음들이 끝나자 얼음이 아닌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동굴이 나타났다. 빛은 동굴 안에서 비추어지고 있었다. 수정처럼 빛을 반사하던 얼음이 끝나자 광경이 확하고 바뀌었다.11/11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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