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랑을 위하여, -- >결혼은 눈이 멀었을 때 하라는 말이 있다. 노처녀 노총각이 결혼을 못하는 이유는 눈이 높아서다. 눈이 높아진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의 하나가 세상을 잘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이정도’인데, 상대방은 ‘요정도’는 돼야지 하고 바라게 된다. 그런데 상대방의 ‘요정도’는 냉철하게 판단을 하고 나의 ‘이정도’는 후하게 판단하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나는 나를 가장 잘 아니까 남이 보지 못하는 장점들이 점수에 가산되기 때문이다. 이래서 남들이 보기에 우리의 눈이 터무니없이 높아지는 것이다. 삶을 통달한 현자들은 조건이 아니라 사물의 본질을 본다. 본질은 포장되지 않은 본연의 ‘나’이다. 사넬백을 시장에서 물건사면 담아주는 검은 비닐봉투에 넣으면 그것은 영락없는 짝퉁이 되는 것이고 짝퉁을 고급스러운 진품케이스에 넣으면 사람들의 눈에는 진품으로 보이는 법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드러나지 않는 진실은 없다. 사넬백을 판매한 직영점으로 가서 확인해보면 10분도 안되어 진품여부가 드러난다. 그런데 사람은 그렇게 파악할 수 없으니 문제다. 오래 사귀고 살아봐도 모를 때가 있으니. 나는 지금 그녀의 집으로 가고 있다. 월급쟁이의 별 볼일 없던 나를 사랑해주던 그녀의 부모님을 찾아뵙고 허락을 얻기 위해서다. 현주도 그렇고 나도 빨리 결혼할 생각회1/9 쪽등록일 : 12.01.28 15:19조회 : 24023/24063추천 : 233평점 :선호작품 : 6582※ 당신의 응원 한마디 한마디가 작가분에게는 큰 힘이 됩니다. 욕설/비방글은 삼갑시다.아아어덕참좋은아침: 건필하세여~~ (2012.04.05 19:26): 잘 봤습니다. (2012.03.11 17:08)핑커벨: 예쁜사랑방식에마음이따듯해지네요^^*조아라에선자극적인글이많은데사실그런표현들이나묘사가이제는식상하고진부해요ㅋㅋ이런잔잔한글을기다려왔어요ㅎㅎ응원할께요 (2012.02.23 05:56)모욕감: 잘보고가요 (2012.02.13 16:18)살기때문에: 작가님은 아름다운 사랑을 꿈꾸는군요. ㅋㅋㅋ (2012.02.12 22:05)현대백수: 좋은 글 같습니다. 저도 잘 보고 갑니다. 요즘에는 글은 안쓰고 자꾸 보기만 해서 전 큰일 이네요. 하하하 워낙 도시의 지배자랑 사열님 글이 재미있어서 저 슬럼프 오는 중입니다. 화이팅 입니다. ^^ (2012.01.28 22:18)여름밤바닷빛: 노블란에서 보기힘든 잔잔한 글이군요. 응원하겠습니다. 쿠폰이라도 한장 던지고 갑니다. 건필해주세요 (2012.01.28 첫째: 재밌네요. (2012.01.28 21:41)에드워드웡하우페페르티부르스키4세: 확 자빠뜨렼ㅋㅋ (2012.01.28 21:38)다크사이드: 그래도 모 글이 너무 잔잔하게 흘러가서 너무 좋아요..ㅋ_ㅋ; 매번 자극적인거 보다가 이런글 보니 신선하단 느낌이 더 강함..=_= (2012.01.28 17:16)
이다. 결혼이란 나이가 차서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이 나타나고 그 사람과 한평생을 해도 좋다는 확신이 들면 하는 것이다. 22살의 그녀도 확신하는 데 48살 먹은 내가 못할 것이 무엇인가. 나야 부끄럽고 고마운 일이지. 변하지 않는 사랑은 없다. 결혼이란 변하고 희석되어가는 우리의 열정을 신뢰와 의지로 묶는 일이다. 아이가 태어나고 같이 공유한 시간들이 깊어지면서 호르몬이 아닌 진짜 신뢰와 존경 그리고 서로에 대한 배려가 숙성시킨 사랑이 시작되는 것이 ‘결혼’이다.나, 이제 그런 사랑해보려고 한다. 20년의 전생에서 여자의 외모에 빠져 속아 살던 바보가 아니라 현자처럼 행동하려고 한다. 그래서 저 별빛처럼, 다이아몬드처럼 빛이 나는 피앙새에게 욕심을 내보는 것이다. 내게 보내준 무한한 신뢰와 사랑을 평생 갚으며 또 서로에게 배우며 신이 허락한 시간까지 알콩달콩 살고 싶은 것이다.차가 서초동을 지나 방배동으로 접어들었다. 부자들이 모여 사는 골목어귀에 덩그렇게 놓여있는 허름한 집이 그녀의 집이다.초인종을 누르자 그녀가 반가운 목소리로 ‘오빠, 왔어?’ 한다.현관입구에는 그녀의 어머니가 나와 반가운 얼굴로 나를 맞이하신다.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대단한 미인이시다. 안으로 들어가니 꼬맹이들이 나를 바라보며 ‘와 멋지다.’ ‘어, 키가 크네.’ ‘오우, 옷발이 죽이네.’ ‘딱 내 스타일이야!’라고 한소리씩 한다.2/9 쪽
“어서오게.”“김이열이라고 합니다.”나는 손을 내미는 그녀의 아버지의 손을 공손히 잡았다. 가볍게 인사를 마치자 꼬마들이 몰려온다.“사촌동생들이에요. 조금 있으면 아이들 엄마 아빠도 올 거예요.”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들이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언니 어떻게 만났어요?”“오빠, 언니가 시상식에서 사랑한다고 고백한 그분 맞죠. 와 너무 부럽다.”“뭐 내가 보기엔 별로인데.....”남자 아이 하나만 시큰둥하게 나를 바라본다. 나도 녀석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나도 너는 별로다. 그리고 내가 너에게 잘 보여야 할 이유도 없는 것이지. 긴장하고 있는 나에게 녀석의 말은 사뭇 예리한 비수가 되어 꽂혔다.잠시 후에 아이들 부모까지 와 온 집이 떠들썩하다. 아, 이렇게 화목한 가정에서 자라 현주가 그렇게 밝았던 거구나. 나는 현주의 대책없는 밝음에 항상 경이로움을 느꼈었는데 가정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았다.3/9 쪽
나는 내가 사가지고 온 선물을 드렸다. 아버님에게는 술을 좋아하신다고 해서 구한 루이13세, 백년 숙성한 술이라 한다. 어머니에게는 기초화장품셋인데 사실 제품이 어디 것인지 나도 잘 모른다. 누나가 사준 것을 그냥 들고 왔다.아버님은 루이 13세를 보더니 침을 꿀꺽 삼키신다.“커험. 뭐 이런 것을.”병만 봐도 예술품처럼 생긴 이 루이13세를 보시며 눈이 반달모양으로 변하셨다. ‘아, 난감하다.’초롱초롱 눈을 빛내고 있는 친척 분들과 꼬맹이들을 보며 난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이건 예정에 없던 순서라 선물을 미처 준비를 못했었다.“설마 우리 선물은 없는 건 아니죠?”어른도 그렇고 꼬맹이도 그렇고. 나는 혹시나 해서 부모님들에게 드리려고 가져온 현금이 좀 있었다. 나는 화장실로 급히 가 봉투에서 돈을 빼 지갑에 넣었다. 뭐 별 수 없다. 용도변경이다. 나는 화장실에서 나와 아이들에게는 용돈을 주었다. 얼마를 줘야 할 지 몰라 집는 대로 주려고 하자 현주가 가로채 아이들에게 공평하게 나눠주었4/9 쪽
다. “아이들은 무조건 공평하게 나눠줘야 해요. 나이가 많다고 더 주면 안 돼요.”아, 그렇군. 나는 몰랐던 이야기라 현주가 한 말이 마음에 와 닿았다. 인사가 끝나고 부모님하고 독대가 이루어졌다. 나를 마음에 들어 하시는 눈치시라 마음을 놓고 있었는데.“교제는 허락하겠네. 그러나 결혼은 안 되네.”“네?”아버님이 단호한 어투로 말씀하시자 나는 당황했다. 하지만 여기서 물러나면 남자도 아니다. 나는 거듭 현주를 사랑하며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약속했으나 이빨도 들어가지 않았다. 나는 별수 없이 물러나야 했다. 뭐 이번만 날이 아니니, 교제를 허락 받은 것으로 만족해야겠다.나는 돌아가는 발걸음이 착잡했다. 하긴 내가 아버지라 해도 딸이 22살에 결혼한다고 하면 허락하지 않을 거야, 하며 위로를 하는데 그녀에게 전화가 걸려왔다.[아빠가 뭐라고 하셔?]“교제는 허락하시겠다고 하시고 결혼은 안 된다고 하시네.....”5/9 쪽
[그럴 리가 없을 텐데. 왜 그러시지?]“무슨 말이야?”[작년까지는 내가 일직 결혼한다고 하면 웃으시면서 그러라고 하셨거든.]“그래?”나는 부모님이 나를 마음에 안 들어 하셨나 하는 생각을 했지만 어쩔 방법은 없었다.[오빠, 저녁 늦게 우리 집으로 다시 올 수 있어?]“씻고 집 앞으로 갈게.”[응, 오빠 이따 봐요.]현주는 항상 큰 일이 생기면 나와 같이 있고 싶어 했다. 그래서 오늘도 그녀의 빌라에 가서 서로 안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이번엔 그녀가 긴장을 하지 않아서 저번처럼 매달리지 않고 차분하게 나를 위로한다.48살이나 먹은 나를 위로하는 어린 애인을 보며 나는 위로는 나이가 많아서 하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런데 그녀는 나에게 많이 위로가 되었다. 이럴 때는 현주는 무척 현명하다. 나의 감정의 변화를 누구보다 먼저 캐치를 하니 말이다.우리는 서로를 안고 사랑을 나눴다. 우리의 사랑은 격정적이지 않았다. 우리는 더 자극적인 몸짓이나 이상한 체위를 연구하지 않아도 서로를 깊이 느끼고 흥분하며 쾌락6/9 쪽
을 느끼니 말이다. 나는 가능한 격정적인 육체의 언어보다는 같이 감정을 공유하고 취미생활을 같이하는 등의 일을 하려고 노력했다. 쾌락은 자극적이나 오래가지 않는다. 이 쾌락의 언어는 남자와 여자 둘이 만나기만 하면 대상불문하고 언제든 가능한 것이다. 물론 특이한 변강쇠나 옹녀가 개중에 없지는 않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남자들이 술자리에서 명기 명기하는데 사실 명기가 얼마나 되겠는가. 남도 할 수 있는 섹스를 내가 한다면, 아니 그보다 좀 더 내가 잘한다고 하더라도 섹스의 추억이 진하게 남을 리가 없다. 그때 우리는 진짜 진하게 놀았지, 하며 술자리에서 안주삼아 나누는 사랑이야기란 얼마나 비참한가. 눈을 감고 하염없이 내리는 비나 눈을 창가에서 앉아 보며 그때 우리의 사랑은 참 아름다웠어, 라고 고백할 수 있는, 그런 사랑을 해야 인생을 되돌아 볼 때 목가적인 서정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나는 그녀의 몸 위에서 그녀의 안에서 그녀의 숨결을 느끼는 것으로도 족했다. 지금은 우리가 이것으로 만족할 수 있지만 더 노력해서 호르몬이 주는 약발이 떨어질 때도 서로에 대한 흥분과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그 무엇을 만드는 것이 중요한 일이다.“아, 정말 정말 좋았어요. 미치게 좋았어요.”“나도 좋았어. 나 녹아서 죽는지 알았어.”“정말? 그 정도로 좋았어?”7/9 쪽
“응.”“아이 좋아.”내가 만족했다는 말에 그녀는 무척 뿌듯해 했다. 잠자리에서 상대방을 만족시키는 일이야 말로 본능적인 것이라 인간의 근원적 자존심과 관련이 있다. 남자로 있게 하는 그것, 여자로 있게 하는 본원적인 그것. 그 원시적인 본능을 무시할 수는 없다. 다만 평상시의 사랑과 신뢰가 깊으면 이 끈적거리는 원시적 본능도 보다 쉽게 만족된다는 것이다.“그러면 우리 어떻게 해요?”“뭐 어떻게 해. 내가 매일 찾아뵙고 이렇게 아름답고 섹시한 따님을 달라고 해야지.”“아빠 엄마에게 꼭 그렇게 말해야 해.”“왜?”“엄마, 아빠는 내가 까불기만 하는 까불이라 여자로 매력이 없대요.”“그럴 리가 있나? 나도 뻑이 가고 대한민국 남자들 중에 현주에게 뻑이 간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히히힛. 그렇지?”“응.”그녀를 가슴에 안고 그녀의 알몸을 감상하며 아침이 오는 것을 지켜봤다. 어떻게 해야 그녀의 아버지에게서 결혼 승낙을 얻을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을 해봐8/9 쪽
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이럴 때는 우직하게 나가는 수밖에 없다. stay hungry, stay foolish! 스티브 잡스의 말처럼 열정을 가지고 우직하게 나가는 수밖에 없다, 지금으로서는.사랑은 쟁취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쟁취하는 것인가도 중요하다. 나는 이제 나의 사랑을 쟁취해야 한다. 내 양심에 비추어 부끄럽지 않게끔, 그런 방법으로 그녀를 얻어야 그녀의 신뢰와 존경을 얻을 수 있을 터이니 이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9/9 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