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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지배자-59화 (59/148)

< --  나아가다  -- >저녁을 먹고 차를 마셨다. 눈치를 보니 현주는 기분이 조금 풀린 듯 했다. 오늘 그녀는 마치 여왕처럼 당당하고 심술난 마녀처럼 변덕스러웠다. 방금 전에도 먹지도 않을 것들을 시켜서 짜증을 부리고 하는 것을 내가 웃으며 다 받아줬다. 나는 오히려 그녀가 이러는 것이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그동안은 너무 어른 같이 굴었었다. 22살에 불과한 주제에 마치 노회한 정치인처럼 굴었었다. 그러니 탈이 나지, 라고 생각했다.웃긴 게 짜증을 부리고 심술을 부리면서도 내 눈치를 살살 보는 것이라니. 나는 겉으로 표현을 하지 못했지만 그녀가 이러는 것이 매우 유쾌하였다.“여자들은 임신을 하면 호르몬의 이상이 와서 신경이 예민해져요.”“아, 나도 들었어. 아이를 가지는 것은 사실 쉬운 일은 아니지.”“아이그, 둔탱이.”“뭐어?”“흥, 이제 집으로 가요.”“응.”집으로 가는 내내 차에서 내내 현주가 나에게 정말 둔하다고 그러는데 뭐가 둔하지 정말 감이 잡히지 않았다. 놀리기도 지쳤는지 내 어깨에 기대어 온다.회1/13 쪽등록일 : 12.02.16 00:01조회 : 19848/19877추천 : 248평점 :선호작품 : 6582

“운전중이야.”“그래서 뭐?”“아냐, 조심해서 운전할게.”어둠속을 뚫고 달리는 차 안에서 바라보는 도시는 화려한 불빛들로 형형색색 찬란하다. 누가 이 거리의 주인일까. 사람들은 바쁘게 걷고 뛰곤 하는데 차 안에서 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신호등 앞에 서서 망연히 도시를 바라보았다. 거대한 건물더미들이 이곳저곳 없는 곳이 없는 이곳은 어딜까.“여보.”“응?”“신호 바뀌었어요.”“응, 고마워.”나는 다시 도시 위를 달린다. 동그란 네 개의 타이어가 달려가는 곳은 다정한 나의 집. 우리들이 살아가는 보금자리다.현주가 나를 보는 것 같아 옆을 보니 현주가 다정한 눈으로 쳐다본다. 그래, 부부란 이렇게 기분이 우울할 때 짜증도 부리고 해야지, 그런데 현주가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2/13 쪽

“당신은 매력적이면서도 조금은 건조해요. 다정하고 자상한데 뭔가 너무 정적이에요.”“아, 그렇군. 나를 친구들이 샌님이라고 놀렸었어.”“어머, 맞는 말인 거 같아요.”차가 주차장에 서자 나는 문을 열고 나가려고 하자 현주가 나를 제지하고 나가지 못하게 한다.“왜?”“집에 들어가 아빠 엄마를 만나기 전에 당신에게 해야 할 말이 있어요.”너무 정색을 하는 현주의 표정에 나도 조금 긴장을 하게 되었다.“나, 임신했어요.”“엉? 뭐?”“내가 그렇게 힌트를 주고 했는데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다니, 잠 둔하기도 해요.”“아, 아기......”나는 임신이라는 단어를 듣자 머리가 멍해졌다. 그동안 그녀와 지냈던 모든 순간들이 한꺼번에 지나가고 그리고......민우의 처참한 죽음이 떠오르고 그리고 K2의 바위보다 단단한 그 빙벽이 떠올랐다. 그리고 내 아이, 생물학적인 나의 유전자를 이어받3/13 쪽

은 아기가 태어난다고 생각하자 가슴이 뭉클하며 저 깊은 곳에서 뜨거운 것이 밀려오는데 그 감정을 도저히 주체하기가 힘들었다.“어머, 울어요?”나는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있었나 보다. “감동이야.”“어머, 이렇게 감격할 줄은 전혀 몰랐는데, 미련하면서 이렇게 감정이 풍부할 줄은 몰랐어요. 후훗, 귀여워.”현주가 내 뺨에 키스를 한다. “당신, 사랑스러워요. 당신처럼 아름다운 정신을 가진 남자가 내 남편이 돼서 너무 좋아요.”나는 나도 모르게 현주를 안았다.“어마, 숨이 막혀요.”“아, 미안.”4/13 쪽

나는 힘을 풀고 가볍게 다시 그녀를 껴안았다.“고마워.”“정말?”“응.”우리는 말없이 차안에서 그렇게 있다가 감정이 추슬러진 다음에 손을 잡고 나왔다.거실에서는 아버지가 TV를 보시고 계셨고 어머니는 보이지 않았다.“다녀왔습니다.”“아빠, 다녀왔어요.”“허허허, 늦었구나.”“네, 엄마는 요?”“피곤하다고 먼저 들어가던데. 그러게 운동 좀 같이 하자고 내가 그랬었는데 이리저리 피하더니, 몸이 약해서 탈이야.”현주는 어머니가 계신 안방으로 들어가더니 잠시 후에 모시고 나왔다.“아니 무슨 일인데 자는 나를 깨워 데리고 온다니.”그러고 보니 어머니는 잠옷 바람이셨다. 말씀은 그렇게 하셔도 기분은 나쁘지 않으5/13 쪽

신 듯 했다.“여보, 자기가 말해요.”“내가?”“네.”현주는 수줍게 고개를 숙이며 얼굴을 붉힌다. 나 참, 이 대목에서 내숭은.“현주가 임신했어요.”“뭐? 정말이냐?”“네, 저도 방금 전에 들었습니다.”“아가야, 정말 수고했다. 용하다.”“하하하, 이거보다 더 경사가 어디 있나. 여보, 샴페인 있지?”“이 밤에 무슨 샴페인이에요. 포도주나 드세요.”“아, 그런가.”나는 아버지가 아끼는 포도주를 일부로 들고 왔다. “이거 따도 되요?”“당연하지. 우리 딸 임신했는데 그깟 포도주가 문제냐? 그렇죠, 당신?”“그러긴 한데 그 이야기는 내가 막 하려고 했었는데......”6/13 쪽

포도주 한잔을 마시고 우리는 위층으로 올라왔다. 갑자기 내 앞에 놓인 세계가 눈부신 빛으로 가득 찬 것 같은 느낌이었다.너를 위하여 나 살거니 소중한 건 무엇이나 너에게 주마이미 준 것은 잊어버리고못다 준 사랑만을 기억하리라    -김남조, 너를 위하여.나는 가슴 가득 떠오르는 태양같은 감격에 현주를 들어 빙글빙글 돌렸다.“아이, 어지러워요.”“사랑해.”“나 참, 그놈의 사랑한다는 말 듣고 싶으면 임신을 해야겠네요.”눈을 흘기는 현주를 보며 고개를 숙였다. 마음으로는 항상 가득한 말이었는데 이렇게 말로 표현하기가 쉽지가 않다니. 아버지에게도 사랑한다는 말을 하겠다고 해놓고 7/13 쪽

하지 못했고. 우리는 서로 껴안고 다정하게 잠을 잤다. 아침이 되었는데 어제의 감격 때문인지 기분이 좋았다. 괜히 웃음이 나고 기분이 좋다는 것을 숨기기 힘들 정도로 얼굴에 드러나는지 현주가 툴툴거렸다.“여보, 아기 태어나도 나 예뻐해 줄 거지.”“당연하지. 아기는 선물이야. 부부가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 아이들 교육에 더 좋아. 아이들을 너무 위해주면 아이들은 자기가 세계의 중심인줄 착각하게 돼서 안 좋데.”“누가 그러는데?”“내가.”“피이.”현주도 얼굴 가득 미소가 가득하다. 새로운 생명이 태어난다는 것은 경이로운 동시에 어깨가 무거운 일이다. 커피숍으로 출근하자 사람들이 다 무슨 좋은 일이 있냐고 묻는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웃을 뿐이었다.“로또라도 맞으셨나?”“아냐, 이건 아마 현주 씨가 임신을 하신 거야.”8/13 쪽

“정신에 문제가 있으신 건 확실하신 듯......”직원들은 자기들 끼리 모여 소곤거렸다. 그러는 중에 전화가 걸려왔다. 우연찮게 알게된 두레공동체의 나동일 간사와 친해졌고 그래서 나는 도시빈민의 삶이 어떤 것인지 호기심이 나서 이야기를 했더니 한번 오라고 한다."네, 네. 그래서요. 아, 그렇군요. 시간은 있습니다.”잠시 창밖을 바라다 보았다. 사람들이 갑자기 없는 한가한 거리였다. 그리고 수화기를 통해 나동일 간사의 말이 다시 들려왔다.[네, 대단위 철거가 되고 있는데 와서 한번 보시면 도시빈민의 삶이 어떤 것인지 체감하실 것입니다.]“네, 시간 맞춰 가지요.”나는 시간을 보내며 커피를 마셨다. 커피나무가 보이자 꼬맹이들이 생각났다. 현재 꼬맹이들의 노래는 인기 폭발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이들을 위해 할 일이 없었다. 대부분의 일은 SN엔터테인먼트에서 알아서 해주고 있으니 말이다. 아이들은 떴지만 여전히 방송국을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나미가 다 나았지만 워낙 큰 병이라 조심하는 것도 있었고 아이들은 가능한 언론에 노출되는 것은 자제하는 것이 이번 싱글앨범의 전략이기도 했다.9/13 쪽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나는 문득 내 삶이 참 빠르게 지나간 것을 깨달았다. 회귀한지 불과 2년 만에 결혼하고 아기도 뱃속에서 자라고 주식으로 버는 돈은 시간이 지날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친척들과 지인들로부터 받은 투자금은 벌써 수익률이 10프로가 넘어가고 있었다. 나는 무엇을 사고파는 지는 말하지 않고 단지 대략적인 수익률에 대해서만 알려주었다. 소문이 났는지 투자금이 조금씩 들어오고 있었다. 나는 단기자금은 무조건 거부했다. 서울 시내의 외곽에 한창 철거가 진행되고 있었다. 비닐하우스가 있고 그 비닐하우스에 사는 사람들이 포크레인에 쫓겨 도망가고 있었다. 일부의 사람들이 그 앞에 드러누으면 잠시 포크레인이 멈추고 격렬한 실랑이가 벌어진 후 다시 철거가 시작되는, 이런 행태의 연속이었다. 사람들이 살던 비닐하우스는 검은 천으로 차광막이 있는 것들이었고 일반 비닐하우스는 그냥 비닐만 씌워있었다.이곳은 치열한 투쟁이 이루어지고 있었지만 다소 맥이 빠진 전투였다. 이미 대다수가 이전을 해갔고 소수의 사람들만이 정말 갈 데가 없는 사람들이 삶의 투쟁을 하였지만 이미 투기도 의욕도 별로 없어 보였다.“좀 잔인하군요.”“네. 그렇지 않은 철거현장은 거의 없지요. 이렇게 무단으로 시의 땅을 점유해서 수10/13 쪽

십 년을 산 곳은 대부분 이렇습니다.”나동일 간사가 씁쓸한 표정으로 대답한다.“이곳의 사람들은 정신상태가 제대로 박혀있는 사람들은 별로 없지요. 남자들은 낮에 술을 먹고 집이나 길에서 뻗어 자고 여자들이 나가서 벌어오는 것으로 생활하죠. 그러니 이미 오래전부터 철거계고장이 나왔어도 이렇게 대책 없이 있는 거죠. 작년 겨울에 동네 사람 한 분이 술을 먹고 길에서 자다가 동사를 했지요.”나는 나동일 간사가 철거를 강행하는 사람들에게 분노를 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철거민들에게 부정적인 말들을 한다. 내 표정을 읽고 그가 웃는다.“저도 처음에는 저들을 동정했지요. 하지만 저들은 변하지를 않아요. 이미 떠나간 사람들 중에서는 적지 않은 가정이 전세자금을 마련하거나 그도 아니면 월세보증금은 마련했지만 저들은 그렇지가 못했습니다. 저희도 저들이 옳아서 돕는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어서 돕는다는 것이 맞습니다.”“아~”누구보다 도시빈민들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이렇게 말하면 그렇겠지.“하지만 이렇게 대책없이 철거를 하면 죽으라는 소리나 마찬가지라 우리들도 답답합11/13 쪽

니다.”이들은 서울 외곽을 벗어날 수 없다. 더 밑으로 외곽으로 내려가면 그나마 벌어먹을 일거리가 없어지니 말이다.“보상을 더 받을 수는 없는 겁니까?”“저희도 그렇게 주장을 하고 있지만 그게 쉽지만 않은 문제지요. 주택도 아닌 비닐하우스고 무단점거였으니 말이죠. 사업주체는 가능한 법이 요구하는 범위 안에서만 보상을 하려고 하니 저렇게 되는 것이지요.”“흐음. 답답하군요.”나는 뭐 이렇게 사는 사람들을 처음 보았다. 역시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움직이려고 한다. 그리고 법은 항상 있는 자들 위주로 만들어졌고.도시는 계속 발전해갈수록 없는 자들은 점점 외곽으로 밀려난다. 도시는 화려한 불빛 아래 어두운 그늘을 이렇게 숨겨두고 있었다.돌아오는 차안에서 내차에 탑승한 나동일 간사가 묻는다.“뭐 좀 느끼신 것이 있습니까?”“글쎄요. 처음이라 아는 것이 없어서.....”“다들 이런 곳에 한두 번은 다녀가지만 금세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잊혀집니다. 구조12/13 쪽

적 모순이라 어떻게 손을 댈 수가 없거든요. 생각해봐야 마음만 아프니 모른 체를 하는 것이죠.”“그렇군요.”나는 운전을 하는 동안 겁에 질려있는 아이들의 얼굴이 자꾸 생각났다. 차라리 그 아이들보다 시설 좋은 고아원의 원아들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이들을 보고 와서인지 오후 내내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내가 침울해 있자 현주가 무슨 일이냐고 묻자 나는 사실대로 이야기를 했다.“불쌍하다.”그녀도 말없이 한숨만 내쉬었다. 무슨 대안이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생각할수록 가슴만 답답했다.============================ 작품 후기 ============================오늘 제가 쓴 글을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여러 비판들이 있어서 보았는데 대부분 맞는 말씀이더군요. 마음은 아파도 쓴 약이 몸에 좋듯, 이제는 조금 댓글에 담담해지기로 결심하면서 의견은 예전처럼 겸허히 받기로 하였습니다. 이제 제가 의도한 분량의 3분의 1 정도가 지났습니다. 이제 원래대로 나아가야겠지요.13/13 쪽

오늘 제가 쓴 글을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여러 비판들이 있어서 보았는데 대부분 맞는 말씀이더군요. 마음은 아파도 쓴 약이 몸에 좋듯, 이제는 조금 댓글에 담담해지기로 결심하면서 의견은 예전처럼 겸허히 받기로 하였습니다. 이제 제가 의도한 분량의 3분의 1 정도가 지났습니다. 이제 원래대로 나아가야겠지요.13/13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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