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 사냥꾼 2화
허공을 가득 채운 메시지창이 사라지자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정말…… 돌아왔군.’
삭막하기 그지없는 동굴.
옆에서 푸른빛을 내뿜는 ‘던전 코어’만이 유일한 존재감을 나타내고 있었다.
수십 년 전에 잃어버린 그것이 지금 내 눈앞에 멀쩡히 남아 있는 것이다.
있을 리 없는 게 있다. 이 상황이 뜻하는 바는 하나였다.
정말 과거로 돌아왔다는 것!
믿기지가 않았다. 시간을 역행하다니.
‘상태창.’
그를 속으로 되뇌자 곧 눈앞에 창 하나가 떠올랐다.
이름: 랜달프 성: 브뤼시엘
직업: 마계 백작(던전 마스터)
칭호: 없음
능력치:
힘 64 지능 42
민첩 59 체력 72 마력 50
특이 사항: 없음
‘허! 능력치까지 과거로 돌아간 건가.’
과거로 돌아왔다면 능력치가 롤백 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주먹을 꽉 쥐며 눈을 빛냈다.
‘바라고 또 바랐다. 내게 다시 기회가 주어지기를.’
죽어 가는 상황에서 나는 그 하나만을 무한히 염원했다.
능력치가 초기화됐지만 전혀 아쉽지 않았다.
기회가 주어진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게다가 기억이 온전하다면 강해질 방법 따위야 차고 넘쳤다.
‘이제 다시는 잃지 않으리라.’
나는 몸을 돌려 던전 코어를 바라봤다.
어른 몸통만 한 돌이 푸른빛을 사정없이 뿜어 대고 있었다.
이 돌덩이가 던전의 중추인 코어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필히 지켜야 하는 보배. 나는 이걸 너무나 빠르게 잃었다.
이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잃지 않을 것이다.
내게 주어진 것 중 단 하나도 잃을 생각이 없었다.
쉬이익.
곧 코어에서 뿜어지는 푸른빛이 더욱 강렬해지며 작은 형상을 만들어 냈다.
조금씩 모습을 갖춰 가던 그것은 이내 완성되었다. 완성된 형상은 내 예상처럼 반투명한 요정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손바닥 크기의 요정이 빙글빙글 주변을 맴돌았다.
귀엽고 깜찍한 외관이지만 에메랄드빛 머리칼과 초롱초롱한 눈망울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잠시 후 내 눈앞에 멈춰 선 요정이 꾸벅! 배꼽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던전 마스터. 저는 던전 마스터의 도우미 요정 이히예요! 이히!”
이히가 이빨을 드러내며 환하게 웃었다.
‘이히!’하고 웃어서 이히다.
평생을 간직할 이름인데, 요정의 이름은 대개 이런 식이었다.
간단명료한 사고관의 소유자들.
나는 진심을 담아 말했다.
“오랜만이구나. 반갑다.”
이히와 만나는 건…… 정확히 25년 만이었다.
자신을 외면하는 나를 돕기 위해 필사적으로 모든 걸 내민 요정.
결국 그 노력은 보답받지 못한 채 스러지고 말았다.
당시의 나는 너무나도 완고했고, 모든 걸 혼자 해결하려고만 했으니까.
이제는 다를 거다.
맹세코 다시는 던전 코어를, 이히를 잃지 않을 것이다.
“이히를 반겨 줘서 고마워요, 던전 마스터.”
이히가 작은 날개를 파닥였다.
실체가 없는 요정은 대신 이름 자체에 힘이 깃들어서, 많이 부르고 불릴수록 좋다.
이히가 자신의 이름을 스스로 호명하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였다.
“그런데 오랜만이라뇨? 던전 마스터는 이히를 어디선가 본 적이 있으신가요?”
이히는 입술에 손가락을 대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면서 연분홍색 입술을 오물거리며 눈을 깜빡였다.
“그냥 해 본 소리다. 그보다 나타난 이유가 있지 않나?”
아무리 반가워도 말투만은 어쩔 수가 없다. 그나마 이것도 엄청나게 부드러워진 것이라고 스스로 생각할 정도였다.
이히가 손뼉을 탁! 쳤다.
“아, 그랬어요. 던전 마스터에게 설명을 해 드리는 건 이히의 사명이었어요. 뭐가 궁금하세요? 이히는 뭐든지 다 알아요. 아니면 아예 처음부터 쭉 읊어 드릴까요?”
오랜만에 이히의 설명을 듣는 것도 괜찮다 싶었다.
그러나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었고, 빠르게 일을 처리할 필요가 있었다.
“설명은 괜찮다.”
“정말요?”
이히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을 이었다.
“여기는 전혀 다른 세상인데요? 전혀 다른 시스템으로 가동하고 있다구요? 이해하기 쉽고 짧게 설명해 드릴 수 있어요. 이히는 설명하는데 도가 텄거든요.”
날개를 힘없이 파닥이며 입술을 쭈욱 내밀었다. 설명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태도다.
요정은 기본적으로 수다쟁이다. 25년 전의 이히도 다를 바가 없었다. 여기서 한 번 수락했다간 몇 시간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이야기를 늘어놓을 게 뻔했다.
“미안하지만 필요 없다.”
“알았어요.”
날개가 축 늘어졌다. 그러면서 슬쩍 고개를 들어 나를 올망졸망한 눈초리로 바라봤다. 자신을 불쌍히 여겨 설명을 들으라는 태도였지만 내겐 통하지 않았다.
“상점을 이용하마.”
“헉! 상점을 아세요? 혹시 예습하고 오신 거예요? 아니면, 아니면 설마!”
이히가 껑충 뛰어올랐다.
호들갑을 떠는 것도 여전했다.
이히가 뭐라 할지 대충 예상이 됐기에 응답해 주었다.
“그래, 독심술을 익히고 있지.”
“우와! 대단하세요, 마스터! 독심술이라니!”
‘그래서 설명이 필요 없다고 한 거구나~’라며 이히가 스스로 답을 내렸다.
이히. 단순 무식의 대표 주자가 아닐까.
“알았으면 이제 상점을 열어라.”
잠시 표정을 수습하던 이히가 헛기침을 두어 번 내뱉더니 손을 휘저었다. 곧 허공에 글자가 솟아났다.
[만물상점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메시지창 아래로 무수히 많은 물건이 나열되었다.
구매할 때 필요한 건 오로지 포인트(PT).
나는 백작의 자격으로 200,000PT를 소유하고 있었다. 공작이나 대공은 훨씬 많은 포인트를 가지고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얼핏 들어 본 적이 있었다.
일반적인 포션부터 시작해서 매우 강력한 마법 무구까지.
비싼 것은 수백만 PT를 가볍게 넘기는 것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바라는 건 그런 고가의 물품이 아니다. 눈동자를 굴리자 상점 목록의 페이지가 빠르게 넘어갔다.
이어 ‘스킬북’을 모아 둔 목록이 내 눈에 들어왔다.
스킬북을 구매해 익히면 이능(異能)을 사용할 수 있다. 급에 따라 차이가 나긴 하지만 매우 흥미로운 물건임은 분명했다. PT만 많으면 상위의 스킬을 익혀 더욱 강해질 수 있다는 방증이었다.
던전을 잃었을 당시 나는 얼마나 후회했던가!
25년을 돌아 다시 상점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스킬북은 수천 가지가 넘었다.
수량에도 한계가 있었다.
아주 좋은 스킬북은 가격도 비싸거니와 한 개밖에 팔지 않는다. 아마도 다른 마족이 구매하면 목록에서 사라질 것이다.
그것 중 내가 바라는 스킬북이 있는지 눈여겨 찾아보았다.
‘전부 있군.’
나는 빠르게 손가락을 옮겼다. 스킬 조합(Rare), 멀 리보기(Normal), 확대(Normal), 눈 질끈 감기(Normal), 눈싸움(Normal), 평정(Exceptional Normal).
총 여섯 개의 스킬북을 선택하자 옆에서 이히가 손가락을 물고 ‘어버버’거렸다.
“마, 마스터? 포인트는 신중히 사용하셔야 해요? 포인트 벌기가 얼마나 힘든데요. 이히는 추천하지 않아요. 게다가 전부 그다지 좋은 스킬들도 아니고…….”
이히가 만류했지만 이미 나는 구매 버튼을 눌렀다.
“맙소사……!”
15만 포인트가 산화했다.
털썩! 이히가 주저앉았다. 상당히 충격이 큰 거 같았다.
그럴 만도 했다.
던전 코어의 정령은 던전 마스터가 강해지고 마왕이 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돕는다. 그래야 던전을 지킬 수 있으며 종국에는 자신의 ‘격’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한데, 시작하자마자 15만 포인트가 날아갔으니…… 패닉에 빠질 만도 하다.
지이잉!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 일렁인다. 마치 소용돌이처럼. 일렁임이 멈추자 그 장소에 구매한 스킬북 여섯 개가 놓여 있었다.
익히는 방법은 간단하다.
원하는 스킬북을 쥐고.
“습득.”
한마디 하면 끝이었다.
[스킬 조합(R)을 익혔습니다. Rare 등급 아래의 스킬을 조합할 수 있습니다.]
[멀리 보기(N)를 익혔습니다. 숙련도를 높이면 보다 멀리 볼 수 있습니다.]
스킬을 익히는 과정은 이런 식이다.
나는 나머지 스킬북을 모두 습득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스킬 조합.”
[조합할 스킬을 선택해 주세요.]
“멀리 보기, 확대, 눈 질끈 감기, 눈싸움, 평정!”
[멀리 보기, 확대, 눈 질끈 감기, 눈싸움, 평정을 조합합니다. 이대로 계속 조합하시겠습니까?]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의 의사 표현만으로도 충분하다.
조합하는 스킬 중 가장 높은 등급이 익셉셔널 노말(Exceptional Normal).
레어 등급 이상의 스킬이 없으므로 조합할 수 있었다.
이히가 침을 질질 흘리며 그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무슨 짓이냐는 눈빛이다.
스킬 조합이란 게 언뜻 보면 좋아 보이지만 꽝인 경우가 대다수다. 상점에서 팔지 않는 스킬을 얻을 수 있지만 아주 낮은 확률의 도박과 같았다.
대다수가 포인트만 날리기 마련이다. 이상한 스킬이 생겨 버리면 더욱 약해지는 경우도 허다했다.
하지만…….
[축하합니다! 유니크(Unique) 스킬, 모든 것을 꿰뚫는 제3의 눈 ‘심안’이 조합되었습니다! 유니크 등급 이상의 스킬은 오직 한 명만 익힐 수 있습니다.]
[최초로 유니크 스킬을 조합하는 데 성공하셨습니다. 30,000PT가 지급됩니다.]
나는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