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 사냥꾼 3화
* * *
심안.
내가 원한 스킬이다.
이걸 노리고 나는 15만 포인트를 사용했다.
보상도 괜찮았다.
칭호가 나왔으면 더할 나위 없었겠지만 30,000PT는 결코 적은 보상이 아니다.
“마, 말도 안 돼!”
이히가 경악 가득한 음성을 내뱉었다.
믿기지 않는다는 듯 입을 크게 벌렸다.
이해한다.
쓸 만한 유니크 스킬북의 가격대는 100만 PT를 넘는 경우도 많았다.
고작 15만 PT로 유니크 스킬을 건졌으니 이히의 입장에선 놀랄 만도 하였다.
상태창을 불러오자 특이 사항 아래에 추가된 항목이 떠올랐다.
스킬:
스킬 조합(R)- Rare 등급 아래의 스킬을 조합할 수 있다.
심안(U)- 상대의 상태창을 볼 수 있다. 히든 스테이터스(hidden status), 잠재력이 개방된다.
고작 두 개.
하지만 든든했다.
나는 히든 스테이터스를 확인하고자 상태창을 떠올렸다.
곧 능력치 아랫부분에 새로이 추가된 사항을 볼 수 있었다.
이름: 랜달프 성: 브뤼시엘
직업: 마계 백작(던전 마스터)
칭호: 없음
능력치:
힘 64 지능 42
민첩 59 체력 72 마력 50
잠재력(287/500)
특이 사항: 없음
스킬: 스킬 조합(R), 심안(U)
잠재력이 추가된 것이다. 스킬란도 개설됐다.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얕게 끄덕였다. 잠재력은 내 성장 가능성을 나타낸다.
287은 현재 내 능력치의 총합이고, 뒤의 500은 내가 가진 한계치였다.
하나의 능력치는 100까지 올릴 수 있고, 다섯 개의 능력치를 모두 끌어 올리면 딱 한계치인 500이 된다.
그 이상을 올리려면 칭호, 능력치를 올려 주는 아주 좋은 무구, 혹은 한계 돌파란 과정이 필요하다. 한계 돌파를 할 수 있는 방법은 대공들만 안다. 물론 당장의 나에겐 필요 없는 과정이었다.
‘시작이 좋군.’
심안은 사기적인 스킬이다.
상대의 상태창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나건만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
전생에서 이 스킬을 가진 자는 ‘30개의 입을 가진 디펠라 공작’이었다.
그녀는 무언가를 실험하길 좋아했는데, 스킬 조합도 그중 하나였다. 벌어들인 포인트 중 상당수를 스킬 조합에 사용할 정도였다.
그 과정에서 우연찮게 심안을 얻었고, 디펠라 공작은 자랑을 했다.
입이 많아서 그런지 디펠라 공작에겐 비밀이 없었다. 그리고 불행 중 다행으로 유니크 등급 이상의 스킬은 단 한 사람만 익힐 수 있었다. 누군가가 다시 조합한들 심안은 나오지 않는 것이다.
디펠라 공작은 심안을 이용하여 아주 막강한 군대를 만들었다.
그녀가 지휘하는 마수는 강하지 않은 게 없었다.
적어도 마수의 질적인 차원에서 디펠라 공작은 단연 돋보이는 수준이었다.
그로 인해 얻는 이득도 많았다.
마수는 마족끼리 교환할 수 있었고, 디펠라 공작은 아주 많은 포인트를 벌어들였다. 벌어들인 포인트로 마수를 사거나 스킬을 조합했다. 그로 인해 그녀의 던전은 난공불락이란 이름으로 인간들 사이에서 유명해졌다.
대공의 던전에 쳐들어갈지언정 디펠라 공작의 던전은 피해 간다.
……라는 말이 있을 수준이니 두말해 무엇하랴.
‘모든 포인트를 쏟아부어도 심안은 익힐 가치가 있다.’
무분별한 스킬 조합의 폐해로 능력치가 바닥을 치고, 마수를 이용한 포인트 벌이를 너무 한 탓에 마족들에게 미움을 받아 버려지긴 했지만 디펠라 공작의 던전 하나만큼은 어느 대공과 비교해도 꿀리지 않았다. 그만큼 심안은 유용한 스킬이었다.
“마, 마스터. 대체 무슨 마법을 부린 거지요?”
“마법은 무슨.”
가장 중요한 스킬 하나를 확보했다. 그러나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나는 상점의 목록을 더 살폈다.
지금 내게 남아 있는 포인트는 80,000.
그 안에서 최대한의 효율을 뽑아내야 한다.
‘초보자 보호 기간 동안 능력치를 올려야겠군.’
초보자 보호 기간은 8개월.
그 시간 동안 좋으나 싫으나 던전에 있어야 한다.
초보자 보호 기간 동안 1층에 무작위로 나타나는 마수는 던전 마스터도 공격한다. 숫자는 적지만 마수 중에는 지금의 나도 상대하기 힘들 것들이 있었다.
그것은 다른 마족들도 마찬가지.
즉, 초보자 보호 기간이란 마족과 인간들 모두에게 통용되는 기간이다. 적어도 8개월간 마족이 인간들을 직접적으로 공격할 일은 없을 테니까.
용사가 나타나고, 던전에 적응하는 시간, 마족은 던전을 보강하고 계획을 짤 수 있는 여가 시간. 그게 초보자 보호 기간이다.
20,000PT를 이용해 알람 마법을 구매했다.
이것은 스킬과 다르게 던전 코어에 새겨지는 마법이다. 최상층에 누군가가 잠입하면 던전 코어가 자동으로 내게 알람을 해 주는 기능이 있다. 능력치를 올리고자 수련만 하다가 우연히 침입한 누군가가 던전 코어를 깨트리면 말짱 황이니 보험 삼아 구매했다.
물론 그럴 가능성은 한없이 0에 가까웠지만 대비해서 나쁠 건 없었다.
이제 마지막으로…….
[수련의 방 입장권- 첫 이용 시 20,000PT. 입장할 때마다 소모되는 PT가 두 배씩 올라갑니다.]
나는 주저 없이 수련의 방 입장권을 끊었다.
8개월이나 수련의 방에 머물 기회는 지금밖에 없다.
이후 초보자 보호 기간이 지나면 던전 강화를 위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야 한다.
물론 그 외에도 목적이 있었다.
‘던전 안에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은 다 얻어야지.’
전생과는 다른 길.
그 길 끝에 답이 있으리라 여겼다.
* * *
수련의 방.
들어선 순간 숨통이 트이는 걸 느꼈다.
마나가 풍부하다! 단지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몸이 좋아지는 기분이다.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수련의 ‘방’이라 이름 붙었지만 사실 이곳은 미로다. 좁은 길이 굽이굽이 처져 있고, 여러 갈래의 길이 나무의 뿌리처럼 나뉘어져 있다.
내 목표는 이 미로의 끝을 보는 거다.
‘사실 그게 본 목적이지. 수련은 덤이다.’
초반의 능력치는 매우 빠르게 오른다. 약해진 몸에 적응하며 원래의 힘을 제대로 받아들이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회복’의 개념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마나가 풍부한 수련의 방은 능력치를 회복하기에 안성맞춤인 장소다.
하지만 능력치를 올리는 것보다 수련의 방을 클리어하고 얻을 이득이 더욱 탐났다. 능력치는 언젠가 올릴 수 있는 거라지만 방의 끝에서 얻을 수 있는 보상은 딱 하나.
칭호였다.
사실 확실하진 않다. 그런 이야기를 들었을 뿐이다. 그래도 뭔가를 얻을 확률은 매우 크다. 칭호를 획득한다면 더 바랄 것이 없지만 포인트를 얻어도 손해는 아니다.
‘칭호는 정말 얻기 힘드니까.’
칭호는 한계에 막힌 능력치를 뚫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다. 칭호는 여러 개를 얻어도 중복 가능하지만 전생에서 내가 거머쥔 칭호는 두 개에 불과했다. 마지막까지 아등바등 살아남았음에도 고작 두 개. 그만큼 얻기 힘들다.
아무리 잠재력이 뛰어나도 어느 순간 벽에 막힌다. 그때 좋은 무구와 칭호는 단비와 같은 존재가 된다.
특히 나에게는 더욱 그렇다.
전생에서 나는 다섯 개의 능력치 중 단 하나도 한계치까지 올리지 못했다.
그나마 체력 93포인트를 달성한 게 전부다. 다른 능력치가 상대적으로 낮아서 온갖 고생을 도맡아 했다.
‘수련의 방을 몇 번밖에 이용하지 못한 게 컸지.’
나는 누구보다 빠르게 던전을 잃었다. 당연히 수련의 방도 오래 이용할 수 없었다.
의지를 활활 불태웠다. 이번 생에서는 질릴 때까지 이용해 주겠노라 다짐하며.
어쨌거나, 벽을 해결해 줄 수 있는 게 칭호다. 그 중요성은 몇 번을 말해도 부족하다.
무구는 착용에 제한이 있지만 칭호는 중복이 가능하다. 여기까지 말했는데 칭호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한다면 그놈은 강해질 생각이 없다고 보면 된다.
“이 광경도 오랜만이군.”
마나의 농도만 좋다 뿐이지 사방이 막혀 있다.
미로가 괜히 미로겠는가. 아주 꽉꽉 막혀 있어서 날아서 확인하는 건 불가능할 듯싶다.
허리에 찬 가죽 주머니를 들고 안에 든 물건을 확인했다.
원할 경우 언제든지 귀환할 수 있지만 클리어 전까진 절대 빠져나가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구매한 10,000PT짜리 마법 주머니다. 크기의 150배에 달하는 물건을 넣을 수 있다.
안에 든 물건은 물약을 제외하면 온통 먹을거리뿐이다. 마족이라도 8개월 동안 굶고 살 순 없으니까. 맛보단 실용성 위주로 준비했다. 허기만 채우면 충분하다.
물건을 확인한 나는 가죽 주머니를 닫았다.
‘우선 가볍게 달려 보자.’
수련의 방은 분기점마다 과제가 주어진다. 과제를 깨고 여러 갈래의 길 중 한 곳을 택해서 나아갈 수 있다.
첫 번째 분기점이 나올 때까지 달렸다.
3시간쯤 달리자 거대한 방 하나가 나왔다. 방의 한가운데 기본 무기 수십 개가 놓여 있었다. 종류별로 하나씩은 있는 것 같았다.
[무기를 선택해 주세요.]
허공에 떠오른 메시지창. 미련 없이 철검을 들었다. 그러자 다른 무기가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주변의 마나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심상치 않은 마나 파동이다.
“크르르…….”
이윽고 공간에 균열이 생기며 마수가 나타났다. 그 숫자가 어림잡아 300은 되어 보인다.
[늑대형 마수 크레이지 하운드를 퇴치하세요! 300/300]
마계였다면 코웃음 치며 한 손가락으로 상대했을 녀석들, 크레이지 하운드(Crazy hound)였다. 하지만 능력치가 극악하게 제한받는 지금의 몸으로는 위험한 숫자다.
나는 심안으로 녀석들의 상태창을 확인했다.
이름: 크레이지 하운드
능력치:
힘 31 지능 14
민첩 42 체력 34 마력 9
잠재력(130/130)
특이 사항: 수련의 방에 임시로 소환된 마수. 랜달프 브뤼시엘에게 강렬한 적대감을 가지고 있다.
스킬: 광분(Normal)
심안으로도 상대방이 가진 스킬의 설명을 읽지는 못하는 모양이다. 그나마 크레이지 하운드가 가진 스킬은 이름만 봐도 대충 무슨 효과를 지녔는지 상상할 수 있었다.
‘미친개에겐 몽둥이가 약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