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 사냥꾼 5화
2016년 3월 14일.
사람들은 이날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아무런 이변도, 예고도 없이 세계에 동시다발적으로 72개의 던전이 나타난 날이기에.
던전은 그 하나하나가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을 만큼 컸으며 당연하다는 듯 하늘을 먹어 버렸다.
거대한 그림자에 깔린 사람들은 모두 할 말을 잃었다.
감히 비교를 불허하는 스케일에 압도될 수밖에 없었다.
외계인의 집이다, 신이 기거하는 장소다, 지저 세계의 물건이다 등 수많은 억측이 오갔다.
결국 몇몇 용감한 이들이 호기심을 이기지 못해 들어갔다.
그리고 들어간 대부분의 사람이 돌아올 수 없었다.
던전에서 생환한 생존자는 하나같이 괴물을 보았다며 몸을 잘게 떨었다. 아예 정신병에 걸린 사람도 있었고, 두려움을 이기지 못해 자살하는 이가 속출했다.
그러던 찰나, 미국의 존이라는 남자가 유튜브에 동영상 하나를 올렸다. 존이 핸드폰으로 촬영한 던전 내부의 모습에 세상은 충격에 휩싸였다.
던전의 안에는 온갖 마수들이 날뛰고 있었다. 이 세상에 존재할 리 없는 괴물. 오로지 적의와 살의만을 가진 그것들!
그들 앞에서 인간의 육체는 간단히 허물어졌다.
“휘유~ 웬만한 CG 저리 가란데?”
“끔찍해!”
“이 영상은 합성이 아닙니다. CG 처리도 되지 않았습니다.”
“2020년에 지구는 멸망합니다. 저 괴물들로 인해서 말이죠.”
세상은 불안에 휩싸였고, 하루가 다르게 퍼져 가는 정보는 어떤 국가도 제재할 수 없었다.
유튜브, SNS, 블로그, 개인 방송, 신문 등 이야기가 퍼져 나갈 수 있는 곳이라면 어떠한 매체를 막론하고 화두로 삼았다.
날이 갈수록 의문은 덩치를 불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불협화음은 커졌다.
결국 미국 국방부 장관의 공식 발표가 진행된 후에야 무수히 많은 추측을 낳았던 던전의 실체가 백일하에 드러났다.
“그곳은 마굴, 던전입니다. 흔히 판타지 소설에 나오는, 마수가 기거하는 장소 말입니다. 우리는 던전 내부를 살피고자 최첨단 기기를 모두 동원했지만 실패했습니다. 마수는 움직이는 건 설혹 그 크기가 아무리 작아도 공격하는 성향을 지녔습니다. 던전 외부는 막…… 그러니까 보이지 않는 베리어(barrier) 같은 게 처져 있어서 모든 공격을 무효화시킵니다.”
꿀꺽!
긴장의 도가니다. 던전에 관한 이야기는 2016년의 으뜸으로 꼽히는 뜨거운 감자였다. 그에 관한 정보가 지금 흘러나오고 있는 것이다.
국방부 장관은 생수통에 든 물을 마시며 목을 축였다.
“우리는 특수 부대를 파견해 던전 내부의 탐색을 지시했습니다. 그러나 던전 내부에서 화기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마치 공간이 왜곡되는 것처럼 총알은 원하는 방향으로 날지 않고, 폭약은 폭발하지 않는 겁니다. 약한 마수는 그래도 어찌 해결할 수 있지만 간혹 변칙적인 강함을 지닌 괴물이 존재했습니다. 모든 타격이 통하지 않으며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빠른 괴물! 우리는 후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모든 기자가, 영상 매체로 지켜보던 모든 사람이 놀랐다.
던전이 나타나고 수개월.
여태껏 침묵하던 미국의 첫 마디가 후퇴였으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현대의 화기가 던전 안에서는 전혀 통하지 않았다는 게 충격이었다. 던전 안에서 마수는 무적이란 소리가 아닌가.
“그러면…… 방법이 없는 겁니까? 만약 그것들이 바깥으로 나온다면 상당히 큰일일 텐데요?”
한 기자가 손을 들어 질문했다.
그러자 국방부 장관은 고개를 저었다.
“마수들이 까다로운 건 던전 안에서 뿐입니다. 놈들이 바깥으로만 나오면 아무리 강력한 마수라도 현대의 무기로 충분히 상대할 수 있습니다.”
던전 안에서 무기가 통하지 않는다고 손가락 빨며 구경만 하진 않았다. 목숨을 담보로 마수들의 데이터를 어느 정도 뽑아낸 상태다. 그 결과 던전 바깥이라면 피해가 상당하긴 하겠지만 죽일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약한 마수는 총만 있어도 충분하다. 반대로 던전 안에서는 총알이 아군을 노릴 확률이 높았다. 그래서 군대를 투입하지 못하는 것이다.
질문한 기자가 고개를 갸웃하곤 물었다.
“그럼 위험을 방치하는 게 아닌가요?”
국방부 장관이 얕게 미소 지었다.
“혹시 영웅(Hero)에 관해 들어 보셨습니까? 동방에선 용사라고도 칭하는 사람들 말입니다.”
“요즘 회자되고 있는 이들 말입니까?
“예, 맞습니다. 그들은 유일하게 던전 내에서 마수와 맞설 수 있습니다.”
던전이 나타났다.
하지만 던전만 나타난 것도 아니었다.
영웅 또한 나타났다.
다른 말로는 각성자.
그들은 던전이 나타남과 동시에 출현했다.
그들은 스스로를 영웅, 용사라 칭했다.
그들은 평범한 인간의 육체적 한계를 벗어나 있었다.
특히나 그들의 공격은 마수에게 치명적이었다. 총기로 수십 발은 쏴야 죽을 마수를 매우 손쉽게 처리하곤 했다.
“무엇보다……마수를 처치하면 코어(Core)가 나옵니다. 그것은 감히 현자의 돌이라 칭해도 부족함이 없는 물건입니다.”
웅성웅성!
기자들 사이에서 소란이 일었다.
현자의 돌은 ‘완전한 물질’이라고도 불린다.
그것이 왜 지금 이 순간에 미국 국방부 장관의 입에서 튀어나온 것인지 다소 생뚱맞게 들린다.
하지만 이어진 국방부 장관의 말에 그들은 다시 입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마수를 사냥하면 나오는 코어.
새끼손톱만 한 크기의 코어도 상당한 에너지를 담고 있었다. 돌처럼 생겼으나 태우면 탔다. 그것도 몇 시간이나 계속해서 탄다. 타면서도 다른 에너지를 생성한다. 감히 신에너지라 칭해도 부족함이 없다.
게다가 코어를 갈아 상처에 뿌리면 감쪽같이 나았고, 물에 타서 먹으면 모든 병마가 조금씩 진전되었다. 정력을 증진시키거나 몸을 젊게 만들었다.
이것만으로도 현자의 돌이란 이름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허…….”
“말도 안 되는군.”
이 사실을 알고 있던 이는 극소수였다.
하지만 오늘이 지나면 세계의 모든 이가 알게 될 것이다.
동시에 기자들은 의아해했다.
왜 이런 정보를 발설한 걸까?
이 정도의 정보라면 미국은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들일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미국의 생각은 달랐다. 던전은 72개나 존재한다. 결국 언젠가 탄로 날 비밀이었다. 그럴 바엔 조금 더 많이 알고 있는 자신들이 주도적으로 일을 진행시키는 게 이득이라 판단한 것이다.
무엇보다 각성자는 지금도 조금씩 늘고 있었다.
계속해서 비밀에 부쳤다간 사회에 거대한 혼돈을 줄 터이다. 실제로 지금도 알게 모르게 회자가 되는 중이었다.
인간은 힘을 가질수록 악해지기 쉬운 종족이다. 그들은 사회에 많은 문제를 일으켰다.
더는 숨길 수 없다고 판단한 미국이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면서까지 전면에 나섰다. 코어에 관한 기밀도 털어놓았다.
“우리는 각성한 그들이 다르다 하여 차별하지 않을 겁니다. 오히려 자격을 주고 대우하겠습니다.”
미국이 이러는 이유는 간단하다.
더욱 많은 각성자를 유치하기 위해서!
처음에는 던전을 파괴하려 했지만 코어의 쓰임새가 알려지고 그 가치가 천문학적임을 깨달았다. 코어의 가치는 석유에 비할 바가 아니다. 세상 어느 것도 코어의 가치와 비교할 순 없다.
던전은 한정되어 있으나, 마수는 끔찍하게 많았다.
마수를 퇴치하며 코어를 얻으려면 아주 많은 각성자가 필요하다.
근미래, 마침내 그들의 가축화에 성공한다면…… 에너지원의 해결뿐 아니라 인류는 한 발 더 나아가 ‘진화’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영웅들은 던전을 탐사하며 비밀을 파헤치고 진리에 다다른다. 던전의 끝에는 코어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물건이 있을 것이다.
인류가 진리에 다가갈 수 있는 기회였다. 적어도 그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정말 코어가 완전한 물질이란 말입니까?”
아직도 기자들은 쉬이 믿지 못하는 태도였다.
이에 국방부 장관이 씽긋 웃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코어를 풀 용의가 있습니다. 국가에서 정식으로 요청한다면 대가 없이 드리겠습니다. 코어의 용도는 직접 확인해 보십시오.”
그 말마따나 기자 회견이 끝난 즉시 미국은 가지고 있던 코어를 풀었다. 코어의 효과가 입증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대영웅 시대의 막이 올랐다.
* * *
‘초보자 보호 기간도 막바지로군.’
수련의 방을 깬 직후 나는 던전 코어를 이용해 던전의 내부 상황을 살펴보는 중이었다. 그래 봐야 1층을 제외하면 텅텅 비었지만 현황을 확인할 필요는 있었다.
‘아예 방치했는데 생각보다 상황이 괜찮아.’
내정은커녕 수련의 방에 콕 박혀 있었다. 그런데 1층의 현황을 보아하니 가만히 내버려 둬도 몇 개월은 더 버틸 것 같았다.
‘그렇다고 진짜 가만히 내버려 둘 수는 없지.’
던전을 지키고, 내가 강해지려거든 저들도 키울 필요가 있다. 그러려면 던전의 모든 층이 유기적으로 돌아가야 한다.
“내정 모드.”
슈웅-
[내정 모드에 들어갑니다.]
던전 코어가 떨리며 곧 홀로그램을 띄웠다.
던전을 작게 축소한 모형이 떠올랐다. 총 31층의 던전은 1층을 제외하면 텅텅 비어 있었다. 반대로 1층엔 작은 파란색의 점들이 무수히 많이 깔려 있었다.
입구 쪽에 보이는 몇몇 붉은색은 던전에 들어온 인간을 뜻하는 것이었다.
‘코볼트 32,144마리, 고블린 87,112마리, 어스웜 12,246마리, 식육 박쥐가…… 40만 마리? 이건 너무 많군. 줄일 필요가 있겠어.’
제대로 던전을 꾸리려면 던전의 생태도 신경 쓸 필요가 있었다. 특히나 식육 박쥐는 배가 고프면 주변에 있는 모든 생명체를 공격하는 아주 흉포한 녀석이다. 동족도 심심치 않게 잡아먹는다.
‘천적이 없어서 그렇겠지. 그래도 너무 늘어났다.’
이대로 식육 박쥐가 마음껏 설치면 1층은 식육 박쥐만 남을 것이다. 좋지 않은 현상이었다.
곰곰이 고민하다가 어깨 위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이히에게 물었다.
“식육 박쥐의 천적이 뭐지?”
“흐읍! 네, 네? 이히 안 졸았어요!”
“침이나 닦고 말해라.”
이히가 열심히 양손으로 흘린 침을 닦았다.
“흠흠, 식육 박쥐의 천적 말이죠? 이히가 아주 잘 알고 있답니다. 고양이, 뱀, 족제빗과 마수예요.”
고양이나 족제빗과 마수는 코볼트와 고블린이 쉽사리 사냥할 수 없다. 물리고 물리는 관계를 형성해 놔야 생태가 알아서 돌아간다.
“뱀과의 마수는 뭐가 있지? 저렴하면 좋겠는데.”
최하급 마수도 던전에 들이려면 포인트가 든다. 특히 이번처럼 천적 관계를 형성할 때 들어가는 포인트는 상당하다. 한두 마리 풀어놓는다고 식육 박쥐를 억제할 순 없기 때문이다.
“에일 스네이크가 마리당 20포인트로 가장 저렴해요.”
에일 스네이크는 최하급 중에서도 최하급 마수다. 대신 주변 환경에 빠르게 적응하고 동화할 수 있다. 시력이 좋지 않은 식육 박쥐를 상대로는 제격이다.
적당히 독도 가지고 있어서 들어오는 용사들을 상대로도 선전해 줄 것이다.
“몇 마리를 풀어야 적당할까?”
“이히가 볼 때는 말이죠. 음, 한 천 마리는 풀어야 하지 않을까요?”
단박에 20,000PT라.
어지간한 마법 물품 하나 값이었다.
허나, 1층의 생태를 보전하려면 필요한 투자였다.
“에일 스네이크 천 마리를 구입하겠다.”
동시에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에일 스네이크 1,000마리를 20,000PT에 구매하셨습니다.]
[던전 내에 풀어놓을 장소를 지정해 주세요.]
“1층에 무작위로.”
[에일 스네이크 1,000마리가 무작위로 배치됩니다.]
메시지창이 사라지자마자 던전의 내부를 투사한 홀로그램에 파란 점이 늘어났다.
이런 식으로 대량 구매할 수 있는 최하급 마수는 그다지 효율이 좋진 않다. 지능이 너무 낮아서 던전 마스터의 명령에도 따르지 않는다. 알아서 증식하며 알아서 죽는다.
이번 투자는 어디까지나 던전의 생태를 지키고, 용사를 정상적으로 양식하기 위한 일환일 뿐이었다.
1층은 정리가 됐다. 이제 나머지 층을 살필 차례다.
‘4층까지는 난이도가 조금씩 올라가게 조정해야겠군. 자신이 강해지고 있다는 성취감이 들 수 있도록. 모험, 탐구…… 마법 물품을 곳곳에 조금씩 풀어놓는다면 더욱 동기가 강해지겠지.’
나는 그들이 잘 클 수 있게 다방면에서 도와줄 작정이다.
용사 육성 계획!
내가 세운 몇 가지 계획 중 하나이며 중심.
그 첫 발자국을 지금 막 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