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 사냥꾼 6화
나는 이마를 두드리며 나머지 층에 배치할 마수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너무 급격하게 난이도가 올라가선 안 된다.
계단을 오르듯 단계별로 배치해야 서로에게 득이 된다.
급격하게 난이도가 높아지면 용사들은 굳이 던전을 오르려 하지 않을 것이고, 약한 마수를 잡거나 퀘스트를 진행하며 충분히 강해진 다음에나 시도할 것이다.
그러면 시간이 너무 걸린다.
게다가 배치한 마수에 비해 용사들이 강할 경우 당연히 나는 포인트를 얻을 수 없다. 투자한 포인트도 회수할 수 없게 된다.
‘2층은 오크를 소수 섞어야겠어. 놈들은 번식률이 뛰어나니 많이 필요하진 않겠지. 3층부턴 코볼트와 고블린 우두머리를 몇 마리 두고…….’
우두머리가 통솔하는 마수는 조금 더 조직적으로 변한다.
상대하기 까다로워지는 것이다.
우두머리 자체도 같은 종보다 훨씬 뛰어났다.
그래서 구매에 필요한 포인트가 만만치 않았다.
‘10만 포인트가 순식간에 날아갔군.’
한 번에 대량 구매를 행하자 포인트가 증발하듯 사라져 간다.
240,722PT가 남았지만 최대한 아낄 생각이다.
‘4개월 뒤에 열리는 마계 옥션. 그곳에서 살 것들이 있으니까. 포인트는 많을수록 좋지.’
1년에 한 번씩 열리는 마계 옥션.
마신 데스브링어의 이름으로 열리는 경매장이다.
그곳엔 상점에 팔지 않는 귀한 매물이 존재하고, 경매로 구매할 수 있었다.
원하는 걸 전부 사려면 24만 포인트도 부족하다.
생각 같아선 한 백만 포인트쯤 있으면 좋을 것 같았다.
‘특히 반용족(半龍族)은 반드시 구매해야 한다.’
마계 옥션에선 노예도 구할 수 있다.
다른 마계의 생명체와 다르게 옥션에서 구매한 모든 것은 던전으로 가져올 수 있었다.
개중에는 던전 코어를 지키는 가디언(guardian)의 재목도 가끔 나왔다.
던전 코어는 던전의 중심이고 가장 중요한 물건이다. 당연히 그것을 지킬 가디언은 던전에서도 뛰어난 이가 맡아야 한다.
용족의 피가 흐르는 반용족 크라스라!
대공 우파의 가디언 중 하나.
전생에서 마창을 사용한 마창술사로 이름이 높았다.
모든 마족이 부리는 마수 중 서열 백 위 안에 든 초강자다.
그 강함은 피부로 느껴질 정도다.
크라스라는 특히 인간을 잔인하게 죽였다.
원한이라도 있는 양 인간에게 무한한 증오를 쏟아부었다.
어찌나 잔인한지 지켜보는 마족들이 하나같이 혀를 내둘렀다고.
그가 휘두르는 창에 스러진 인간 용사의 생명은 헤아릴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런 녀석이 이번 옥션에 나온다. 낙찰가는 기억나지 않지만 상당할 것이다. 24만 포인트로도 부족할지 모른다.
‘강한 마수는 강한 마족의 척도 중 하나지.’
당장에 내가 손에 거머쥘 수 있는 마수 중 크라스라는 우선 영입 1순위다. 포인트를 전부 사용해서라도 손에 넣어야 한다.
성정은 난폭하지만 노예의 각인이 새겨져 있는 한 주인을 배신하진 못한다. 적당히 훈련시키면 플로어 마스터나 던전 코어 가디언도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재목이었다.
‘포인트를 더 벌 수 있으면 좋겠는데…….’
던전 내의 마수들이 용사를 죽이면 포인트를 얻긴 한다.
그러나 지금은 초창기다. 약한 용사를 죽여 봐야 몇 포인트 오르지도 않았다.
많이 죽이면 되지 않느냐? 라고 묻는다면 가볍게 조소를 흘려 줄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황금 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짓이다.
‘지금 내가 달성할 수 있는 업적이 있나?’
무언가 업적을 달성했을 때 상당한 포인트를 얻을 수 있다.
최초로 유니크 스킬을 조합하고, 최초로 수련의 방을 깔끔하게 격파하자 포인트를 주지 않았던가.
그 외에 마족들과 거래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긴 하지만 4대공과도 적대적인 나와 거래를 틀 마족은 없을 것이다.
‘초보자 보호 기간…… 흠. 1층에 무작위로 나타난 마수를 전부 쓸어버리면 뭔가 나올 거 같기도 한데.’
초보자 보호 기간 동안 누가 뭔가를 얻었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없었다. 모든 마족이 적응하기에도 바쁜 시간이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래도 당장 업적을 얻을 수 있는 일은 이것뿐이었다.
지금 내 실력이면 죽지는 않을 거다. 운 나쁘게 블랙 워리어(Black Warrior)나 암흑 기사 같은 것만 소환되지 않았다면 해 볼 만했다.
지금 내 실력은 마족 중에서도 순위권이다. 수련의 방에서의 성과와 칭호의 효과면 공작들과도 붙어도 할 만할 것 같았다. 물론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은 더욱 빠르게 강해지겠지만 당장은 내가 우위에 있었다.
‘최초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게 걸리는군.’
반드시 최초로 해내야 성과를 주는 건 아니다. 그러나 최초로 무언가를 해낸 업적은 그만큼 고평가를 받는다.
얻는 이득이 쏠쏠하다는 뜻이다.
공작급 아래의 마족이야 1층을 쓸어버리겠단 생각 자체를 하지 않겠지만 공작이나 대공은 입장이 다르다.
애당초 시작점이 다른 이들이다.
물론 그런 그들도 상당히 모험을 해야 쓸어버릴 수 있는 게 무작위로 소환된 마수였다.
모험을 싫어하는 마족이라면 가만히 놔둬도 없어질 것들을 굳이 건드리진 않을 터였다.
‘15일 안에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해 보자.’
시간이 없다.
초보자 보호 기간은 고작 15일이 남은 상태.
결단을 내린 나는 내정 모드를 종료하고 던전의 1층으로 발을 옮겼다.
* * *
김용우.
그는 던전이 나타남과 동시에 각성한 ‘스타터’다.
한국에서 유명한 스타터는 다섯 명. 그중 하나가 김용우였다.
당연히 다른 각성자들과는 차별화된 노하우를 가지고 있었다. 그를 토대로 던전 공략을 하며 그는 누구보다 빠르게 ‘부’를 쌓을 수 있었다.
마수를 사냥하여 얻을 수 있는 코어의 값어치는 천문학적이니까.
천명회(天命會)라 이름 지은 길드도 만들었다. 다른 네 명의 스타터 역시 그들만의 길드를 운영했는데, 천명회도 그에 뒤지지 않았다.
길드원 중에는 코어를 이용해 물건을 만들 수 있는 사람도 있었다.
대장장이니, 인첸터니 하는 직업을 가진 자들 말이다.
그들이 만든 무기를 이용해 더욱 수월히 던전 사냥을 해냈다.
반대로 무기를 다른 각성자에게 팔기도 하며 벌써 수백억대의 자산을 축적하였다.
‘인생 역전이었지.’
각성하고 고작 7개월 조금 더 지났을 뿐이다.
그런데 신문 배달, 우유 배달, 공사판을 전전하면서도 하루에 라면 하나로 연맹하던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생활이 가능해졌다.
얼마나 부유한지 농담이 아니라 강남에 길드 전용 빌딩을 하나 세울 정도였다.
‘용우야. 인생 한 방이다, 한 방. 9회 말 2아웃 역전 홈런이라고, 자식아. 크크…….’
각성자가 되지 못했다면 꿈도 꾸지 못했을 호화로운 나날.
김용우.
그는 선택받은 자였다.
천명회라 이름 지었듯 그는 자신이 하늘의 선택을 받았다고 생각했다.
천애 고아지만 그게 어때서?
중졸인 게 대수인가?
대한민국이란 나라는 돈만 많으면 장땡이다.
전에는 몰랐지만 대한민국은 정말 돈 많은 이가 살기 좋은 나라였다.
돈만 있으면 못하는 게 없었다. 안 되는 게 없었다.
매일 자신을 욕하고 무시하던 이들이 지금은 발아래 있다.
아침엔 전용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고, 저녁엔 모델들과 뜨거운 밤을 보냈다.
그렇게나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는데. 하루에도 수십 번씩 죽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 매일이 즐겁다.
웃음이 입가에서 떠나질 않는다.
인식의 차이인가? 정말 자리가 사람을 만든 건가?
애벌레가 나비로 탈피하듯 그는 전혀 다른 존재가 되었다.
다른 각성자들조차 그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진정으로 하늘의 선택을 받은 자는 자신뿐이라고 믿었다.
대한민국에서 그가 갑이요, 왕이었다.
“씨바알…….”
하지만 지금 그가 있는 곳은 던전.
대한민국이되 대한민국이 아닌 장소다.
던전의 마수는 돈이 많다고 봐주지 않았다.
김용우는 벽에 기대 인상을 찌푸렸다.
관통당한 허벅지에서 피가 줄줄 흘러내린다.
그는 상의를 찢었다.
찢은 천을 허벅지에 묶고 강하게 조였다.
코어를 갈아 만든 포션이 있으면 좋겠지만 지금 그가 가지고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무기도 동료도 내팽개치고 도망갔기에 있을 리가 없었다.
‘개 같은 놈. 병신 같은 놈.’
12명의 공격대원이 자신 빼곤 전부 죽었다.
누군가가 살아 있으리란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그들을 습격한 건 진짜 괴물이었으니까.
각성자들 사이에서 은연중 떠도는 소문.
던전에는 규격 외의 괴물이 존재한다는 이야기.
괴물을 만나면 절대로 살아 돌아올 수 없다고 했다.
김용우는 코웃음 쳤다.
던전은 벌써 수십 번이나 들락거렸다.
들어갈 때마다 보이는 건 난쟁이 같은 마수들뿐이었다.
실력에 자신도 있었다.
그는 누구보다 열성적으로 자신의 능력을 키웠다. 잠자는 시간마저 줄이며 미친 듯이 몰두했다.
나올 테면 나오라지. 그렇게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오늘, 마수를 몰이하던 가더가 그 괴물을 데려왔다. 무슨 짓을 했는지 어그로가 잔뜩 끌린 상태로.
김용우의 자신감은 산산조각 났다.
공격대원 12명이 변변히 반항 한 번 하지 못하고 종이처럼 찢겨 나갔다.
“후욱, 후욱……!”
방금 전 벌어진 일을 떠올리자 숨이 가빠온다.
소문은 그저 부풀려진 망상이 아니었다. 진짜였다. 과대평가가 아니라 과소평가 당했다.
정말 거지 같은 일이다. 그나마 목숨 부지한 게 천만다행일까?
하지만 생환할 가능성은 낮다. 뒤돌아보지 않고 도망치느라 던전 깊숙한 곳으로 들어와 버렸다. 범의 아가리에 목을 들이민 꼴이다.
‘난, 나는 선택받았다. 하늘의 선택을 받았단 말이다!’
김용우는 이를 갈았다.
그리고 몸서리를 쳤다.
선택받은 자신이 죽을 리 없다.
맞다. 이건 하늘의 시련이다.
하늘은 인간이 이길 수 있을 정도의 시련만 준다고 했다. 선택받은 자신에게 불가능한 시련을 내려 줄 리가 없다.
크르르르!
동시에 언제 떨렸냐는 듯 몸이 굳는다.
김용우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침을 뚝뚝 떨어트리는 마수가 있었다.
인간과 비슷한 외양이지만 인간이 아니다. 검은색 갑옷을 입은 그것은 침을 뚝뚝 떨어트리며 김용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건 시련이다. 그러니까 저건 환상이다. 아니, 아직 나는 꿈을 꾸고 있는 거야!’
현실을 도피해도 바뀌는 건 없었다.
인간형의 마수는 갑옷 안의 몸이 마치 미라인 양 전부 쭈글쭈글했다. 그와 반대로 송곳니와 손톱은 피부를 단박에 뚫어 버릴 만큼 뾰족했다.
규격 외의 괴물이다. 공격대를 전멸시킨 괴물과는 달랐다. 한 마리가 있으면 두 마리도 있을 수 있다는 걸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마수와 눈을 마주치는 순간 김용우는 자신의 죽음을 예감했다.
‘제발, 제발…….’
마수가 다가왔다. 김용우는 눈을 질끈 감았다.
크르?
몇 발자국을 남겨 두고 마수가 멈춰 섰다. 그러더니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김용우는 감았던 눈을 떴다.
“다크 워리어라…… 귀찮게 됐군.”
동시에 마수의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을 발견했다.
조각같이 잘생긴 미남이었다.
서리가 풍길 듯 차가운 분위기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그가 풍기는 기도는 마수와 비교해도 전혀 떨어지지 않을 만큼 흉포했다.
허리에 찬 검은 꺼내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한없이 여유로워 보인다.
그래서일 것이다. 마수도 남자에게 쉽사리 덤벼들지 못하는 이유가.
남자는 슬쩍 눈길을 돌려 김용우를 바라봤다.
“먼저 온 손님인가?”
“아, 아니…… 아니요, 난…….”
김용우는 횡설수설했다.
방금 전까지 욕설을 내뱉던 태도와는 사뭇 다르다. 본능적으로 이게 자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동아줄임을 알아봤기 때문이다.
그러자 남자는 아무 말 없이, 무언가를 보는 것처럼 김용우가 있는 곳을 가만히 응시하다가 ‘흠’하고 침음을 내뱉었다.
“아직 덜 여물었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