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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사냥꾼-7화 (7/242)

던전 사냥꾼 7화

뭐가 덜 여물었다는 거지?

궁금하지만 묻지 못했다. 물을 수가 없었다. 일순간 보인 남자의 눈이 자신을 먹이로 여기는 마수의 그것과 별다를 게 없다고 느껴진 것이다.

크르르!

자신이 무시를 당했다고 느껴서일까.

마수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제야 남자가 검을 뽑았다. 김용우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대장장이 직업을 가진 영웅들. 그들은 코어를 이용해 검을 제련할 수 있었다.

코어를 철과 섞은 뒤 스킬과 제련 기술을 이용해 검을 만들면 아주 막강한 검이 탄생하는 것이다.

그런 검은 으레 코어의 냄새가 미약하게 풍긴다. 마력의 향이라고 부르는데, 강한 친화력을 가진 소수의 용사만 그 냄새를 맡을 수 있다.

김용우는 마력의 향을 맡을 수 있는 각성자였다.

그리고 저 검에선, 그 냄새가 아주 강렬하게 풍겼다.

‘코어를 얼마나 써야 이런 냄새가 풍기는 거야? 그만한 코어를 제련할 수 있는 대장장이가 있긴 하나?’

자신이 아는 한도 내에선 없다. 말로만 전해 듣던 레어 등급 스킬이면 가능할까 싶었다. 중국의 한 각성자가 그런 등급의 스킬을 가지고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긴 했다.

하지만 그조차도 공격 관련 스킬이다. 제련처럼 레어 보조 스킬을 가진 사람은 아예 없었다. 각성자에 관해 상당한 정보를 모으고 있는 김용우가 모른다면 정말 없을 가능성이 높다.

캉!

그때 공방이 시작됐다.

마수가 남자의 검을 맨손으로 받았다. 세상에, 저만한 검조차 통하지 않는 피부라니! 하지만 공격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캉! 캉! 카앙!

김용우는 도망칠 생각도 하지 못하고 침을 꿀꺽 삼켰다. 남자의 몸놀림은 상상 이상이었다. 눈에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허나, 그것은 마수도 마찬가지.

한 치의 물러섬 없이 오로지 머리만 노린다. 단 한 번. 공격을 허용하면 머리를 날려서 끝내겠다는 의지가 절절하게 느껴진다.

‘저자는 대체?’

지능을 가진 마수? 딱히 그런 것 같진 않다. 그러나 마수가 아니라면 도저히 지금 남자의 움직임은 설명이 되지 않았다.

김용우는 각성했을 때보다 더욱 큰 충격을 느끼고 있었다. 거친 파도에 잡아먹힌 기분이다.

그는 자신이 코끼리인 줄 알았다. 다른 인간은 모두 개미로 여겼다. 때론 가지지 못한 개미들이 욕을 하기도 했지만 웃으며 넘겼다. 그들과 열을 올리며 논쟁을 하기엔 수준이 맞지 않았다. 개미가 욕한들 코끼리가 화를 내겠는가.

하지만…… 저 남자의 입장에서 보면 김용우 자신도 결국은 개미와 같이 보이지 않을까.

진정으로 선택받은 자가 있다면 그것은 저 남자와 비슷한 부류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김용우란 인간을 지탱하던 탑 하나가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순간이었다.

촤악!

그 순간 마수의 오른팔이 날아갔다.

강철보다 단단해 보이던 팔이 잘려 나간 것이다.

쿵!

이어 마수의 무릎이 꿇렸다.

남자는 손에 사정을 두지 않았다. 단번에 무릎 꾼 마수의 목을 날려 버렸다.

데구루루…….

마수의 목이 김용우를 향해 굴러왔다.

“흐읍!”

멍하니 있다가 마수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란 김용우가 뒷걸음질을 쳤다. 하지만 등 뒤는 벽이다. 뒤로 빠질 구멍은 전혀 없었다.

마수의 얼굴은 당장이라도 달려들어 자신을 산채로 물어뜯을 거 같았다. 바지가 촉촉이 젖어 바닥에 소변을 뿌린 것조차 인식하지 못할 만큼 김용우는 겁을 먹었다. 마수가 죽자 도리어 죽음에 대한 공포가 커졌다.

슬쩍 고개를 돌려 남자를 바라봤다.

창백한 얼굴. 기세는 전혀 수그러들지 않았다.

이젠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남자는 코끼리다. 자신은 개미다. 밟으면 죽어야 한다. 코끼리가 개미를 죽이는 데 양심의 가책을 느낄 리도 없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김용우는 급히 일어나 오체투지를 했다. 바닥에 이마를 박은 채 빌었다.

“살려…….”

남자의 무덤덤한 눈빛이 김용우에게로 향했다.

“지금 달려간다면 무사히 던전을 빠져나갈 수 있을 거다.”

김용우는 덜덜 떨리는 몸을 억제하며 고개를 들었다.

“저, 정말 살려 주시는 겁니까?”

“너 따위를 죽여 내게 무슨 이득이 있지?”

“혹시 돈이 필요해서…….”

“그냥 지금 죽이는 게 낫겠군.”

쿵! 김용우가 다시 머리를 박았다.

“사사, 살려 주십시오!”

남자는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찼다.

“내 마음이 바뀌기 전에 꺼져라. 3초 주마. 3, 2…….”

“가, 감사합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김용우는 크게 고개를 숙였다. 그러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냅다 입구 방향으로 뛰기 시작했다.

잠시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남자가 입맛을 다셨다.

* * *

[믿기 힘든 업적! 초보자 보호용 마수를 전부 쓰러트렸습니다!]

[100,000PT가 지급됩니다.]

15일간의 대장정이 막을 내렸다.

그것도 초보자 보호 기간이 끝나기까지 고작 몇 분을 남겨 두고.

‘하마터면 늦을 뻔했군.’

남은 시간을 확인한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고작해야 3분 남짓 남았을 따름이다.

이번만큼은 나조차도 피가 말릴 수밖에 없었다.

‘최초가 아닌 건 아쉽지만.’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친다.

혹시나 싶었지만 역시나 최초는 아닌 것 같았다.

‘그래도 10만 포인트면 괜찮은 성과다.’

최초로 해냈다면 15만 내지 20만 포인트 정도는 받았겠지만 후회해 봐야 늦은 일이다. 이내 깔끔하게 털어 버렸다.

10만 포인트는 결코 적은 수치가 아니니까. 업적 표시가 뜨지 않았다면 아무것도 얻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업적은 웬만하면 공개하지 않으니…….’

업적은 무한히 존재하지 않는다. 아예 한 번만 할 수 있거나, 많아야 다섯 번을 넘기면 자연스럽게 소멸하는 경우가 절대다수다. 때문에 자신의 계파 마족이 아니면 공개하지 않는다.

나는 뭐, 인간들의 말마따나 솔로 플레이어였던 탓에 업적 관련해선 아는 게 적다. 초보자 보호 기간 동안 랜덤으로 생성되는 마수를 처리하는 것도 반쯤 추측으로 움직이지 않았던가.

하지만 업적이 발생하는 원리를 대강 안다. 일단 움직이면 높은 확률로 업적 관련 포상을 얻어 낼 수 있다는 뜻이다.

3분여가 지나자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초보자 보호 기간이 끝났습니다!]

[8개월간의 결과를 합산합니다.]

[네 개의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업적 점수 총합 1,250점!!]

[3급 이스터 에그(Easter Egg)가 개방됩니다.]

……음?

처음 보는 문구에 당황하고 말았다.

원래는 초보자 보호 기간이 끝났다는 문구만 나타나야 정상 아닌가?

밑의 두 줄은 생소하기 그지없었다.

게다가 이스터 에그라니.

그런 것이 있다는 건 들어 본 적이 없었다. 나도 처음 보았다.

그때였다.

[‘그림자 황제의 보물 창고’가 열렸습니다. 용을 사육할 정도로 마법의 진수가 발달했던 마도 시대. 그림자 황제는 마도 제국 최악의 폭군으로서 욕심이 많았던 인물입니다. 중간계의 인간이지만 신조차 인정할 강함을 지녔던 자로서, 그의 보물 창고에는 수만 년간 잠든 막대한 유산이 존재합니다.]

[보상 목록이 갱신됩니다. 보상은 하나만 선택할 수 있습니다.]

[아타샤의 검(Epic), 힘의 물약(중), 마룡왕의 뿔, 호문클루스, 잔혹한 사령관의 군단…….]

[경고! 보물 창고에 잠들어 있던 나락 군주의 심장이 강제 전이됩니다!]

[경고! 제거되지 않은 나락 군주의 영혼이 침범을 시도합니다!]

‘카카카! 멍청한 신들! 이때만을 기다렸다. 나는 부활할 것이다. 얌전히 육신을 내놓아……?! 자, 잠깐, 이건? 한낱 마족의 몸 따위에 왜 이런 게! 크아아악!’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나락 군주의 영혼이 소멸되었습니다.]

[나락 군주의 심장이 무사히 안착합니다.]

[보상 선택이 완료되었습니다.]

“컥!”

나는 붉은 피를 게워 낸 후 심장을 부여잡고 바닥에 쓰러졌다. 그러곤 오한이 든 것처럼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전신에 핏기가 사라졌다.

“끄윽.”

울컥!

입가를 타고 올라오는 피의 양이 점점 많아진다. 이어 코에서, 눈에서, 모든 모공에서 피가 철철 흘러나왔다. 전신의 피가 다 빠져나가는 느낌!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흐으…….”

살아생전 당한 고통을 전부 합치면 지금의 강도가 될 것 같았다.

지렁이처럼 몸을 꿈틀대며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가느다란 생명줄만큼은 절대로 놓지 않았다.

워낙 빠르게 진행된 일이라 대비할 수도 없었다.

고통은 점점 강해져만 갔다.

흰자위가 드러나고 악물린 입에선 얕은 신음이 흘러나온다.

이윽고 나는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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